레위기 11장 주석 강해설교 말씀은 하나님이 부정한 동물과 정결한 동물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정한 동물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정결한 동물을 먹으라고 했습니다. 영적으로 보면 우리도 거짓 복음처럼 부정한 것은 먹지 말아야 합니다. 참된 예수님의 복음을 먹어야 합니다.
부정한 동물과 정결한 동물(레 11:1-47)
먹을 수 있는 짐승과 먹을 수 없는 짐승(1-8)
• 11:1-8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고하여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육지 모든 짐승 중 너희의 먹을 만한 생물은 이러하니 짐승 중 무릇 굽이 갈라져 쪽발이 되고 새김질하는 것은 너희가 먹되 새김질하는 것이나 굽이 갈라진 짐승 중에도 너희가 먹지 못할 것은 이러하니 약대는 새김질은 하되 굽이 갈라지지 아니하였으므로 너희에게 부정하고 사반도 새김질은 하되 굽이 갈라지지 아니하였으므로 너희에게 부정하고 토끼도 새김질은 하되 굽이 갈라지지 아니하였으므로 너희에게 부정하고 돼지는 굽이 갈라져 쪽발이로되 새김질을 못하므로 너희에게 부정하니 너희는 이 고기를 먹지 말고 그 주검도 만지지 말라 이것들은 너희에게 부정하니라
육지의 모든 짐승 중에 이스라엘 백성이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이 있다.
첫째, 먹을 수 있는 짐승은 쪽발이 갈라지고 새김질도 하는 짐승이다. 소, 양, 염소는 새김질도 하고 쪽발이 갈라진 짐승이므로 하나님 앞에 제물도 될 수 있고 하나님의 백성이 먹을 수도 있다.
굽이 갈라져 쪽발이 되고 여기에 대한 신령한 뜻은 구별된 생활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구별된 생활을 하는 성도를 받으신다. 성도는 진리와 비진리를 갈라놓아야 되고 성령의 역사와 마귀의 역사를 갈라놓아야 되고 하늘의 운동과 땅의 운동을 갈라놓아야 된다.
병이 낫는 것이나 희한한 능력이 나타나는 것을 기준으로 하지 말고 성경을 표준으로 해서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해야 한다. 성경보다 이적과 기사를 따라가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게된다. 신신학과 그릇된 신비주의로 나가는 자들은 성경에서 탈선된 자들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범사에 쪽발 갈라진 생활을 해야 한다.
두아디라 교회는 이세벨을 용납했기 때문에 환난 가운데 던짐을 받았고 그들의 자녀는 사망으로 죽임을 당했다(계 2:22,23). 버가모 교회는 발람의 교훈을 분별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검을 가지고 싸우신다고 하셨다(계 2:16). 오늘날도 성도가 진리와 비진리를 갈라놓지 않고 나가면 예수님께서 검으로 싸우실 것이다.
새김질은 소나 양과 같이 한 번 먹어 위에 넣었던 것을 다시 꺼내서 여러 번 되씹어 다시 위에 넣는 일이다. 여기에 대한 신령한 뜻은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속에 받아들였다가 다시 그 말씀을 상고(詳考)하여 되새기며 회개하며 결심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 말씀대로 살지 못한 것을 회개하고 그대로 순종하기 위해 기도하며 결심하며 실행에 옮겨 나아가는 것이다. 기도할 때 성경을 들어서 새김질하는 기도를 해야 한다. 말씀을 되새기고 날마다 그 말씀대로 살려고 결심하고 나아가야 한다. 그러면 죄는 점점 떠나게 되고 심령이 새로워지고 변화가 일어나고 인격이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만들어진다.
새김질하는 생활하면서 한 가지 조심할 것은 남의 허물을 보지 말고 자기 허물을 보아야 된다. 아론은 자기를 위해서 먼저 속죄제를 드리고 그다음에 백성을 위해서 속죄제를 드렸다(9:7).
둘째, 먹을 수 없는 짐승은 새김질은 하나 굽이 갈라지지 않은 종류이거나 굽이 갈라져 쪽발일지라도 새김질을 못하는 종류이다. 이 중에서 약대와 사반과 토끼 등은 새김질은 하나 굽이 갈라지지 않았으므로 부정하고, 돼지는 굽은 갈라졌으나 새김질은 하지 않으니 부정하다. 이런 짐승들은 부정하므로 먹지 못하고 주검도 만져서는 안 된다. 사반은 바위틈에 집을 짓고 사는 연약한 동물로서 토끼와 비슷하고 붉은 갈색을 띠고 있다.
신약시대에는 구약의 의문(儀文)과 의식(儀式)을 폐했기 때문에(골 2:14-17) 약대나 사반이나 토끼나 돼지의 고기를 먹어도 괜찮다. 그러나 거기에 내포된 진리는 신약시대에도 지켜야된다. 구약의 의문과 증서(證書)는 예수님이 십자가로 도말하셨으나 그 의문과 의식이 내포하고 있는 진리는 일점 일획도 변함이 없다.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고 완전케 하러 오셨다(마 5:17,18). 예를 들면 구약시대에 소나 양을 잡아 제사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속의 피를 흘려 속죄 제물이 되어 주실 것을 가리킨다. 신약시대에는 그 의문과 의식은 폐했으나 그리스도의 피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그 진리는 절대 폐하지 않은 것이다. 할례와 유월절도 그 제도만 폐한 것이고 내포된 진리는 신약시대에 세례와 성찬으로 계속되는 것이다.
구약시대 성도들이 새김질하고 쪽발 갈라진 짐승을 먹은 것처럼 신약시대 성도들도 구별된 생활을 하고 하나님 말씀을 받아 새김질해야 하나님 앞에 합당한 자가 된다.
먹을 수 있는 물고기와 먹을 수 없는 물고기(9-12)
• 11:9-12 물에 있는 모든 것 중 너희의 먹을 만한 것은 이것이니 무릇 강과 바다와 다른 물에 있는 것 중에 지느러미와 비늘 있는 것은 너희가 먹되 무릇 물에서 동하는 것과 무릇 물에서 사는 것 곧 무릇 강과 바다에 있는 것으로서 지느러미와 비늘 없는 것은 너희에게 가증한 것이라 이들은 너희에게 가증한 것이니 너희는 그 고기를 먹지 말고 그 주검을 가증히 여기라 수중 생물에 지느러미와 비늘 없는 것은 너희에게 가증하니라
물고기 중에 비늘과 지느러미가 있는 것은 먹을 수 있고, 그것들이 없는 것은 먹을 수 없다. 비늘은 물고기의 갑옷과 같고 지느러미는 방향을 조정하고 전진하는 데 사용한다.
비늘 큰 물고기의 비늘은 창으로 찔러도 잘 뚫지 못한다고 한다. 여기에 대한 신령한 뜻은 성도가 전신갑주(全身甲冑)를 입어야 할 것을 가리킨다. 에베소서 6:16에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라고 했다. 성도는 전신갑주를 입고 언제나 마귀의 화전과 창을 잘 막아야 한다. 마귀는 계속해서 우리를 창으로 찌르고 활로 쏘고, 칼로 찔러서 넘어뜨리려고 하는데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지 않으면 마귀의 공격을 막을 수 없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다니면 어느 곳에 있어도 괜찮다. 요셉이 부모 밑에 있을 때나 형들이 시기해서 팔아 먹었을 때나 애굽에 가서 종살이할 때나 감옥에 들어갔을 때에도 마귀의 침해를 받지 않았다. 루터가 종교개혁 할 때에 로마 교황이 죽이려고 했고. 또 독일 황제도 죽이려고 했으나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끝까지 싸워 승리했다.
지느러미는 몸통 양쪽과 꼬리와 등에 붙어 있다. 물고기는 그 지느러미로 방향을 바로 정하여 전진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지느러미 있는 물고기처럼 신령한 세계를 바라보고 날마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개치며(지느러미 치며) 올라가는 생활을 해야 한다.
먹을 수 없는 가증한 새들(13-19)
• 11:13-19 새 중에 너희가 가증히 여길 것은 이것이라 이것들이 가증한즉 먹지 말지니 곧 독수리와 솔개와 어응과 매와 매 종류와 까마귀 종류와 타조와 다호마스와 갈매기와 새매 종류와 올빼미와 노자와 부엉이와 따오기와 당아와 올응과 학과 황새 종류와 대승과 박쥐니라
여기 열거한 새들은 성도가 먹지 못할 새들이다. 이 새들은 대개 약한 종류들을 잡아먹는 새들이다. 이것은 성도가 남을 잡아 먹거나 해를 주면 안 될 것을 가르쳐 준다. 참 성도는 남을 살리고 남에게 유익을 준다.
어응(魚鷹)은 당아새과의 큰 물새로서 지중해나 갈릴리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아먹고 산다. 다호마스는 쏙독새와 부엉이의 일종으로 파랑새류에 속한다. 노자(노자)는 가마우지라 불리며 부리가 길고 발에 물갈퀴가 있어서 물에서 헤엄치며 물고기를 잡아먹는다. 당아(塘鵝)는 펠리칸이라고 불리는 물새이다. 물갈퀴가 있고 못이나 황무지에도 산다. 올응(兀應)은 독수리과에 속하는 새인데 죽은 짐승이나 썩은 물고기를 즐겨 먹는다. 대승(戴勝)은 오디새라고도 불리며 더러운 오물이나 찌꺼기 등을 먹고 물고기도 잡아먹는다.
이 새들은 모두 부정한 새들로서 남을 잡아먹거나 썩은 고기를 좋아한다. 이것들을 가증히 여기라는 것은 성도가 남을 잡아 먹거나 썩어진 것을 취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사기하고 착취하며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주며 자기 배를 채우는 일은 악한 일이다.
날개 있는 곤충 중 정한 것과 부정한 것(20-25)
• 11:20 날개가 있고 네 발로 기어다니는 곤충은 너희에게 가증하되
날개가 있고 네 발로 기어다니는 곤충은 가증하다. 날아다닐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날개를 주셨는데 날아다니지 않고 기어 다니는 것은 합당치 않다. 하나님이 성도에게도 신령한 날개를 주셨다. 이사야 40:31에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라고 하였다. 성도는 하나님이 주신 신령한 날개를 가지고 날아서 시온산에 올라가기도 하고 피난처에 숨기도 하고, 하나님의 뜻을 빨리 순종해 드려야 한다. 그러나 정당하지 않게 행하는 자는 기어다니는 자이다. 성도가 날지 않고 땅에서 기어다니는 것과 같은 행동은 합당치 않다.
• 11:21-23 오직 날개가 있고 네 발로 기어다니는 모든 곤충 중에 그 발에 뛰는 다리가 있어서 땅에서 뛰는 것은 너희가 먹을지니 곧 그중에 메뚜기 종류와 베짱이 종류와 귀뚜라미 종류와 팟종이 종류는 너희가 먹으려니와 오직 날개가 있고 기어 다니는 곤충은 다 너희에게 가증하니라
날개가 있고 기어다니는 곤충 가운데도 메뚜기와 같이 뛰는 다리가 있어서 뛰는 것은 먹을 수 있다. 이러한 곤충은 메뚜기, 베짱이, 귀뚜라미, 팟종이 등이다. 이것은 성도가 날지 못하면 뛰기라도 해야 된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날지 않고 뛰지도 못하고 기어 다니기만 하는 성도는 하나님 앞에 합당하지 않다. 어떤 성도는 신령한 세계로 날아가고 어떤 성도는 뛰어가는데 어떤 성도는 땅에서 기어 다니고 어떤 성도는 기어 다니지도 못하고 아예 앉아 있는 앉은뱅이가 있다. 또 어떤 성도는 아예 심령이 죽은 사람도 있다. 나는 자와 뛰는 자만 하나님께 합당하다.
• 11:24-25 이런 유는 너희를 부정케 하나니 누구든지 이것들의 주검을 만지면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며 무릇 그 주검을 옮기는 자는 그 옷을 빨지니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부정한 곤충의 주검을 만지는 자는 부정하게 되며 그 주검을 만진 자는 옷을 빨아야 한다. 여기에 대한 신령한 뜻은 날개가 있고도 기어다니는 생활하는 사람과 교제하고 짝하는 성도는 자신도 더러워진다는 뜻이며, 믿음이 죽은 자와 교제하며 접촉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더러워진다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5:33에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라고 하였다. 옷을 빨지니 부정한 생활을 회개하고 죄에서 떠나라는 것이다.
부정한 짐승의 시체에 접촉하지 말 것(26-28)
• 11:26 무릇 굽이 갈라진 짐승 중에 쪽발이 아닌 것이나 새김질 아니하는 것의 주검은 다 네게 부정하니 만지는 자는 부정할 것이요
굽이 갈라졌어도 두 쪽으로 갈라지지 않고 개와 같이 여러 쪽으로 갈라진 것은 부정하다. 하나님의 역사와 마귀의 역사, 신본주의와 인본주의, 하늘의 운동과 땅의 운동, 영의 운동과 육의 운동 등을 둘로 갈라야 한다. 이것을 여러 가지로 갈라 놓으면 진리가 밝혀지지 않고 영적 생명운동이 되지 못한다. 또 하나님 말씀을 받아 새김질하지 않고 나가는 사람을 가까이하여 신앙적인 교제를 하면 자기도 곧 부정해진다.
• 11:27-28 네 발로 다니는 모든 짐승 중 발바닥으로 다니는 것은 다 네게 부정하니 그 주검을 만지는 자는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며 그 주검을 옮기는 자는 그 옷을 빨지니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그것들이 네게 부정하니라
네 발로 다니는 짐승 중 발굽이 없이 발바닥으로 다니는 짐승은 부정하다. 소나 양은 발굽이 있으나 사자, 곰, 개 같은 짐승은 발바닥으로 다닌다. 발바닥으로 땅을 딛고 다니는 것은 살이 땅에 밀착된 것이다. 여기에 대한 신령한 뜻은 성도가 세상에 살지만 발굽이 있어서 세상과는 구별된 생활을 하여야 할 것을 가리킨다. 성도가 만일 세상과 밀착된 생활을 하며 세상과 짝하면 하나님께 합당치 않다.
갈라디아서 5:24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고 하였다. 성도가 땅에 거하지만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고 살아야 한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6:14에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고 하였다. 바울은 세상을 십자가에 못 박고 세상은 바울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 부정한 짐승들의 주검을 만지는 자는 저녁까지 부정하다. 오늘날 성도가 세속화된 신자와 더불어 신앙적 교제를 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감염이 되어 속화(俗化)된다. 그러므로 신앙이 잘못된 자들과 접촉하지 말고 접촉했으면 즉시 회개하고 끊어 버려야 된다.
땅에 기어 다니는 것 중 부정한 동물(29-40)
• 11:29-31 땅에 기는 바 기는 것 중에 네게 부정한 것은 이러하니 곧 쪽제비와 쥐와 도마뱀 종류와 합개와 육지 악어와 수궁과 사막 도마뱀과 칠면석척이라 모든 기는 것 중 이것들은 네게 부정하니 무릇 그 주검을 만지는 자는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며
여기는 땅에 기어다니는 것 중에 부정한 짐승들을 열거했다. 합개, 육지 악어, 수궁, 칠면석척 이것들은 다 도마뱀 종류이다. 이것들과 족제비, 쥐 등은 살살 숨어 다니면서 다른 짐승을 잡아먹기도 하고 또 도적질해 먹는다. 여기에 대한 신령한 뜻은 성도는 언제나 정정당당하게 행해야 된다는 것이다. 쥐처럼 남의 것을 몰래 훔쳐먹지 말고, 쪽제비처럼 살살 다니면서 남을 잡아먹지 말고 정당하게 일하여 먹고살라는 것이다.
이것들의 죽음을 만지는 자는 부정해진다. 여기에 대한 신령한 뜻은 우리가 쪽제비와 쥐와 도마뱀 같은 생활을 하는 자와 신앙적 교제를 하면 우리도 더러워진다는 것이다.
• 11:32-35 이런 것 중 어떤 것의 주검이 목기에든지 의복에든지 가죽에든지 부대에든지 무론 무엇에 쓰는 그릇에든지 떨어지면 부정하여지리니 물에 담그라 저녁까지 부정하다가 정할 것이며 그것 중 어떤 것이 어느 질그릇에 떨어지면 그 속에 있는 것이 다 부정하여지나니 너는 그 그릇을 깨뜨리라 먹을 만한 축축한 식물이 거기 담겼으면 부정하여질 것이요 그 같은 그릇의 마실 만한 마실 것도 부정할 것이며 이런 것의 주검이 물건 위에 떨어지면 그것이 모두 부정하여지리니 화덕이든지 질탕관이든지 깨뜨려 버리라 이것이 부정하여져서 너희에게 부정한 것이 되리라
부정한 행위를 하는 자와 죄 짓는 자와 가까이하여 그 일에 감염되었으면 자기가 부정해진 줄 알고 모든 것을 다 깨뜨려 버리고 (끊어 버리고) 철저히 회개하여야 정결케 될 것을 가르쳐준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시기 때문에 부정한 것과 불의를 용납지 않으신다.
• 11:36-38 샘물이나 방축물 웅덩이는 부정하여지지 아니하되 그 주검에 다닥치는 것만 부정하여질 것이요 이것들의 주검이 심을 종자에 떨어질지라도 그것이 정하거니와 종자에 물을 더할 때에 그것이 그 위에 떨어지면 너희에게 부정하리라
부정한 짐승의 주검이 샘물에 떨어졌으면 샘물 전체가 더러워진 것이 아니고 떨어진 부분만 더러워진다. 그러므로 그 샘물을 퍼내 버리고 먹으면 괜찮다. 그것이 강물이나 바닷물에 떨어졌다고 해도 그 전체가 더러워진 것이 아니고 그 닿은 부분만 더러워진다. 부정한 짐승의 죽음이 종자에 떨어져도 종자가 더러워지지 않으나 종자에다가 물을 줄 때에 그것이 떨어지면 부정해진다. 그 물이 종자 속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신령한 뜻은 하나님의 말씀(샘물)에 부정한 것들이 와서 부딪혀도 하나님 말씀은 더러워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정한 사상, 부정한 이론들이 말씀에 혼합되면 더러워진다. 말씀은 종자이다(눅8:11). 부정한 것들이 아무리 와서 말씀을 더럽히려 해도 말씀이 더러워지는 것이 아니고 그 사상이 말씀에 혼합될 때에는 말씀이 더러워진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에 다른 것이 섞이지 않도록 잘 파수(把守)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누룩이 들어와서 섞이면 전체가 변질(變質)되고 가증한 것이 된다.
• 11:30-40 너희의 먹을 만한 짐승이 죽은 때에 그 사체를 만지는 자는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며 그것을 먹는 자는 그 옷을 빨 것이요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며 그 주검을 옮기는 자도 그 옷을 빨 것이요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성도가 먹을 만한 정결한 짐승이라도 죽으면 부정해지고 그 사체(死體)를 만지거나 옮기는 자는 부정해진다. 신령한 뜻은 신앙이 죽은 사람과 신앙적 교제를 하면 자신도 더러워진다는 것이다. 정결해지는 법은 옷을 빠는 것처럼 철저하게 회개하고 그것을 떠나야만 한다.
땅에 기어 다니는 짐승은 가증함(41-43)
• 11:41-43 땅에 기어다니는 모든 기는 것은 가증한즉 먹지 못할지니 곧 땅에 기어 다니는 모든 기는 것 중에 배로 밀어 다니는 것이나 네 발로 걷는 것이나 여러 발을 가진 것이라 너희가 먹지 말지니 이는 가증함이니라 너희는 기는 바 기어 다니는 것을 인하여 자기로 가증하게 되게 말며 또한 그것을 인하여 스스로 더럽혀 부정하게 되게 말라
땅에 기어다니는 것 중에서 네 발로 기어 다니는 것과 배를 땅에 대고 밀어 다니는 것과 여러 발 가진 것 등은 부정하다. 소나 양 같은 것은 네 발로 걸어다닐 때 다리가 길어서 배가 땅에서 떨어져 걸어 다닌다. 그러나 도마뱀 같은 것은 다리가 짧아서 배를 땅에 대고 기어 다니기 때문에 부정하다. 성도가 땅에 속한 생활을 하면 하나님께 합당치 않다.
배로 밀어 다니는 것에는 뱀, 지렁이 등이 있다. 이것은 성도가 배로 하나님을 삼으면 하나님께 가증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빌립보서 3:19에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고 하였다. 교역자나 성도가 먹는데에 치우쳐서 배를 위해서 사는 것은 합당치 않다. 돈 많이 주고 잘 대접하는 교회에 가려고 하는 교역자는 배를 땅에 대고 다니는 자이다.
여러 발을 가진 것 지네나 그리마 같은 것이다. 이것은 성도가 발이 많으면 부정하다는 것이다. 많은 발로 여기저기 연결시켜 놓고, 끊을 것을 끊지 못하고, 사방에 끌려 다니면 신령한 길을 걸어가지 못한다. 교역자 가운데에도 많은 발을 가진 자는 여기저기 볼일이 너무 많고 만날 사람도 많아 동분서주(東奔西走)하며 기도 생활하지 못하고 성경 연구하는 일을 하지 못하게 된다. 발이 여러 개가 있으면 빨리 가지 못하고 뛰지도 못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발이 여러 개 있는 생활을 하지 말고 필요 없는 것은 다 끊어버리고 뛰기에 합당하도록 해야 한다. 누가복음 10:41-42에 “주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고 하였다.
거룩하라(44-47)
• 11:44-45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 바 기어 다니는 것으로 인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나님께서 거룩하시니 성도들도 땅에 기어다니는 생활을 하지 말고 거룩한 생활을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성도를 애굽(세상)에서 인도해 내신 목적은 자기 백성을 삼으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거룩을 닮아가야 된다.
• 11:46-47 이는 짐승과 새와 물에서 움직이는 모든 생물과 땅에 기는 모든 기어 다니는 것에 대한 규례니 부정하고 정한 것과 먹을 생물과 먹지 못할 생물을 분별한 것이니라
본장은 짐승과 새와 물고기를 들어 성도의 성별생활(聖別生活)을 가르쳐 주신 것이다
[창세기 13장 강해 설교말씀] 아브람과 롯이 서로 헤어짐(창 13: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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