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말씀 강해

[창세기 6장 설교 말씀] 하나님의 홍수 심판 예고와 방주 건조(창 6:1-22)

엘벧엘 2023. 7. 19.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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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6장에서는 하나님이 이 세상을 홍수로 심판한다고 예고했다. 의로운 노아에게 나타나서 방주를 건조할 것을 명령했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방주를 만들었다. 우리도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면서 믿음을 방주를 만들어야 한다.

 

하나님의 홍수 심판 예고와 방주 건조(창 6:1-22)

 

범 죄(1-2)

6:1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노아 홍수 전에는 사람들이 장수하였으므로 세상의 인구가 급속히 증가되었다.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사람의 딸들이 났다는 뜻이다(2). 사람의 딸들이란 가인의 계통에서 난 딸들을 말하는 동시에 불신자를 말한다.

6: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하나님의 아들들 아벨의 신앙의 계통에 속한 셋의 후손들, 다시 말하면 믿는 성도들을 가리킨다. 구약 시대에도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믿은 성도는 진리와 영감으로 거듭났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다(1:12).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성도가 불신자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그들을 아내로 맞아들였다. 이것은 믿음으로 하지 않고 육체의 소욕대로 행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외모가 아름다운 것보다 믿음으로 속사람의 만들어져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나아가는 것을 더 아름답게 보신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들이 믿음이 타락되어 육신중심으로 기울어져 외모만 보고 결혼하였다. 참 성도는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성도의 신앙 인격의 아름다움을 보고 좋아한다(16:3). 성도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지 않고, 외모의 아름다음을 보고, 안목의 정욕으로 아내를 취하고, 또한 세상의 것(물질이나 명예나 영광)을 욕심으로 취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 성도가 결혼할 때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신앙 중심으로 해야 한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자기들의 좋아하는 자로 아내를 삼은 것은 자기 중심이요, 육신 중심이다. 무엇이나 자기의 좋은 대로 욕심을 따라 취한 것은 큰 죄악이다. 로마서 8:5-7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분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고 했다.

성도가 영의 인도를 따라가지 않고 육체의 욕심을 따라가는 것은 사망의 길을 가는 것이다. 두아디라 교회는 이세벨을 용납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다. 이것은 교회가 비진리를 용납하고 그와 타협한 것을 말한다. 세속화되고 타락한 교회는 육신적인 예능, 기술, 지식면에 치중하므로 그 방면에 뛰어난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진리를 세워 나가는 참 교회는 신앙적인 면에 치중하며 말씀만 따라간다. 개인이나 교회나 진리와 내적 생명의 역사가 있으면 외부적으로 보잘것이 없어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축복해 주신다.

심판 결정(3-8)

6:3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아들들이 영으로 살지 않고 육체로 기울어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신이 떠나게 되었고 얼마 후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오게 되었다. 성도가 육신 중심으로 살면 범죄하기 마련이며 범죄 하면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신다.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 년이 되리라 그때부터 120년 후에는 하나님이 심판하신다는 뜻이다. 120수는 하나님의 만수이므로 오늘날에도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하면, 정한 기간이 되면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온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회개하도록 은혜 베푸시는 기간에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받을 수밖에 없다. 하나님께서 범죄한 자를 즉시 심판하시는 경우도 있으나 대개는 회개할 수 있는 기간을 허락해 주시고 그 후에 회개하지 않는 자를 심판하신다. 이것은 사람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오래 참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다(벧후 3:8-9). 그러나 하나님의 긍휼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심판이 없는 줄로 알아 회개하지 않고 더욱 악을 행하기에 담대한 자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할 것이다. 전도서 8:11악한 일에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않으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사람들은 결국 멸망할 뿐이다. 그러므로 회개할 기회를 주실 때에 즉시 회개하고 바로서는 자가 지혜로운 자요 복 있는 자이다.

6:4 당시에 땅에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이 용사라 고대에 유명한 사람이었더라.

네피림은 장부(丈夫), 또 힘센 자들을 의미한다. 이 단어 민수기 13:33에도 나온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낳은 자손이 네피림으로서 용사요 고대에 유명한 자가 되었다. 하나님의 지혜(말씀)를 받은 성도가 그 지혜를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자기와 세상을 위해서 쓰면 외부적으로는 왕성해지고 발전이 잘된다. 그러나 그들의 날은 하나님의 세신 바 되고 심판은 정해져 있다.

6: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육체로 기울어진 때부터 죄악은 세상에 급속히 퍼져서 죄가 세상에 관영해졌으므로 사람들의 생각하는 것과 모든 계획하는 것이 자기 중심이요 욕심으로 하게 되었다.

6: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사람들의 생각과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한 것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한탄하셨다. 하나님께서 한탄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심이나 경영하심이 잘못되었으므로 후회하심이 아니고 사람의 죄악으로 인한 하나님의 탄식이 크심을 이렇게 표현한 것뿐이다. 하나님은 절대로 후회하지 않으신다고 하였다(23:19; 4:28).

만일 하나님께서 당신이 하신 것을 잘못했다고 후회하신다면 전지전능의 하나님이라고 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무한히 완전하시고 그 하시는 일도 완전하시기 때문에 절대로 후회함이 없으시다. 후회하셨다는 말로 표현한 것(삼상 15:11,35)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 갑자기 변경되므로 사람이 보기에 하나님이 후회하신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해가 뜬다”, “해가 진다는 말과 같다. 사실은 해가 뜨거나 지는 것이 아니고 지구가 도는 것인데, 사람이 보기에 해가 떠오르므로 해가 뜬다고 하고 해가 서편으로 지므로 해가 진다고 한다.

6:7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사람들의 생각과 계획이 항상 악하고, 죄악이 세상에 관영하므로 하나님께서 사람과 육축과 공중의 새까지 심판하여 지면에서 쓸어버리기로 작정하셨다. 사람의 죄 때문에 만물까지 다 심판받게 되었다(8:19-22 참조). 이것은 그 모든 짐승이나 새나 만물을 다 사람을 위하여 지었기 때문이다.

6: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노아는 그들의 죄에 참여하지 않고 의를 행하며 믿음을 지켰다. 성도가 믿음을 지키게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다. 신앙의 계통이 아담에게서 아벨과 셋에게 이어져 내려갔고 또 아담의 7대손인 에녹에게로 내려갔다. 에녹은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죽음을 보지 않고 승천하였으며, 또 아담의 10대손인 노아에게로 신앙의 계통이 내려갔다.

그 시대에 믿지 않는 세상은 말할 것도 없고, 믿음의 계통인 하나님의 아들들까지도 육신을 따라 정욕으로 기울어져 하나님을 근심하게 하였다. 누가복음 17:27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라고 했다. 먹고 마신다는 것은 물질주의요, 장가들고 시집간다는 것은 음란방탕주의를 가리킨다. 그러한 시대에도 하나님께서 노아를 통하여 신앙의 빛을 남겨 두셔서 참된 신앙의 계대를 이어 가도록 하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참된 은혜인데, 노아는 그 은혜를 입은 사람이다.

노아의 신앙과 그 시대의 죄악(9-13)

6:9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노아는 의인이요 로마서 3:10에 세상에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였는데, 노아는 어떻게 의인이 되고 완전한 자가 되었는가?

노아는 오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인이 되었고, 그 당시에 도덕적으로 다른 사람과 비교해 볼 때에 의인이요, 완전한 자라고 한 것이다. 욥도 순전하고 정직하여 악에서 떠난 자라고 했다(1:1). 욥도 역시 노아와 같이 믿음으로 의인이 되었고 도덕적으로 다른 사람과 비교할 때에는 의인이요 완전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보실 때에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라고 할 자는 세상에 하나도 없다. 욥도 속에 부패성을 지닌 죄인이었다. 그러므로 욥이 하나님께 회개하나이다라고 하였다(42:6).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노아는 에녹과 같이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은 언제나 하나님을 모시고 그로 더불어 주장을 받는다.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하나님과 교통하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영감으로 사는 생활을 해야 한다. 하나님과 동행한 것은 생명이요 영생이다. 그러나 하나님과 동행하지 못하고 육체대로 산 생활은 다 실패의 생활이요 멸망의 생활이다.

6:10 그가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노아가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세 아들을 낳았다. 에녹도 자녀를 낳아 기르면서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에녹이 이렇게 300년간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었던 것은 가정생활을 하면서도 육신 생활에 매이지 아니하고 힘써 하나님과 동행하며 믿는 일을 했기 때문이다.

우리들도 환경에 얽매이거나 빠지지 말고 그 환경을 이기면서 믿음의 달음박질을 잘해야 한다. 배는 물이 있어야 하지만 그 물이 배 안에 들어오면 침몰하고 만다. 그와 같이 성도들이 세상에서 살고 있으나 세상의 물결이 마음속에 들어오지 않도록 해야 된다. 오직 하나님만 따라가고 하나님의 말씀만 순종하고 믿는 일을 첫째로 하여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

6:11-12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패괴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함이었더라

노아 당시에 불의한 세력이 세상에 가득하여 땅에 강포가 충만케 되었다. 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의 마음이 부패하여 행위가 어그러지고, 인간의 도덕이 타락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재촉하고 있었다.

6:13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 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라

강포가 땅에 가득 찬 것은 끝 날이 이른 증거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고 하셨다.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도리와 본분을 지키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멀리 떠나 배로 하나님을 삼고 먹고 마시며, 음란 방탕하고 강포를 행하므로 하나님께서 그 세상을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시고, 그것을 노아에게 알게 해 주셨다.

방주 제조 명령(14-22)

6:14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라고 명령하셨다.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실 때에 구원할 자를 방주로써 구원하시려고 하나님이 계획하셨다. 방주는 그때 유일한 구원의 길이었다. 이 구원의 방주는 앞으로 오실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온 세상이 심판받아 멸망할 때에 그리스도 외에는 구원받을 길이 없다.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여러 종류의 금수(禽獸)를 갈라서 넣기 위함이었다. 역청 아스팔트와 같은 것이다. 이것을 배()에 칠한 것은 물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 함이었다. 역청으로 칠하여 물이 들어오지 못하게 한 것처럼 성도들도 세상이 자기 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그리스도의 구속을 날마다 덧입고 말씀대로 잘 무장해 나가야 한다.

방주를 잣나무로 지으라고 하셨다. 여기에 대한 신령한 뜻은 잣나무는 사철 푸른 나무로써 변함없는 진리의 말씀을 상징하고, 방주 짓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성도들이 신앙 인격을 만들어 나가는 것, 즉 그리스도 안에 살며 그리스도를 덧입어 나가는 일을 가리킨다(13:14). 성도는 잣나무와 같이 사시 불변하는 생명의 말씀으로 자신의 영적 인격과 실력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홍수는 대환난을 상징하는데, 그 환난에 쓰러지지 않고 그 환난을 발로 밟고 승리할 만한 신앙의 실력을 길러 나가야 한다.

노아가 방주 지은 기간은 몇 년이나 걸렸을까? 하나님께서 홍수로 심판하신 때는 노아가 600세 되던 때였다(7:6,11; 8:13; 9:28-29). 또 그때는 그의 아들들이 모두 장가들었던 때였다(6:18; 7:13). 5:32에 보면 노아가 500세 후에 세 아들을 낳았다고 하였다. 11:10에 노아의 장자 셈이 100세 되는 때는 홍수 후 2년이었다고 했으므로 홍수 때에는 셈이 98세였고 노아가 600세였으므로 노아가 셈을 502세에 낳았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 후에 둘째와 셋째 아들을 낳고 자부를 맞은 다음에 홍수 예고와 방주를 지으라는 명령을 받았다(6:18). 그때 노아의 나이는 약 530세쯤, 셈의 나이는 28세쯤 되었을 것으로 본다면 방주를 지은 연수는 대략 70년쯤 될 것 같다. 6:3에 사람들의 날이 120년이 되리라고 한 것은 그 시대에 사람들이 타락하의 육체주의가 되었으므로 하나님께서 심판을 예고하신 때부터 120년 후에 세상을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때에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을 예고하시고 아직 방주 지으라는 명령을 내리기 전이었다. 그때부터 몇십 년이 지난 후에 노아에게 홍수가 있을 것을 말씀하시고 방주를 지으라고 명령하셨다. 홍수가 나기 120년 전에는 노아가 480세였는데 그때에는 장자 셈을 낳기 22년 전이다(5:32; 7:7,11).

6:15 그 방주의 제도는 이러하니 장이 삼백 규빗, 광이 오십 규빗, 고가 삼십 규빗이며

방주의 크기는 길이가 300규빗, 폭이 50규빗, 높이가 30규빗이다. 일 규빗은 한자() (45cm)쯤이다. 그러면 방주의 길이는 450척(약 135m)이다.

6:16 거기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상층으로 할지니라

방주의 창문은 꼭대기에서 한 규빗 내려와서 옆으로 내었다. 이것은 물이 방주 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요 성도는 위만 쳐다보고 살게 하기 위함이었다. 하 삼층으로 방주를 짓도록 한 것은 고등중등하등 동물들을 구별해서 넣기 위함인 것 같다.

6:17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식 있는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자가 다 죽으리라

인간의 죄로 인하여 진노하신 하나님께서 홍수의 심판으로 사람뿐 아니라 땅의 생명 있는 육체를 다 멸절하시기로 작정하셨다.

6:18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자부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노아에게는 구원의 언약을 세우시고 방주에 들어가도록 허락하셨다. 노아뿐 아니라 아내와 아들들과 자부들도 함께 들어가서 구원을 받으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죄악 세상을 심판하시되 성도에게는 언제나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시는 것이다.

6:19-20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 수 한쌍씩 방주로 이끌어 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케 하되 새가 그 종류대로, 육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 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케 하라

노아를 통해서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암 수 한 쌍씩 방주로 들여보내어 생명을 보존케 하라고 하셨다. 새가 그 종류대로, 육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종류대로 각각 둘씩 방주에 들어가게 하라고 하였다.

6:21-22 너는 먹을 모든 식물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 이것이 너와 그들의 식물이 되리라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사람과 모든 육축이 먹을 식물을 방주에 저장하여 홍수 기간 동안 먹고살게 하셨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에게 반드시 먹을 것을 주신다. 노아가 하나님의 명하신 대로 다 순종하는 것이 곧 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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