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원문 강해

[히브리어로 보는 열왕기상] 기혼샘에서 솔로몬 즉위식(왕상 1:38-53)

엘벧엘 2021. 9. 16.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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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히브리어로 보는 열왕기상 중에서 기혼 샘에서 솔로몬 즉위식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솔로몬은 다윗의 노새를 타고 기혼 샘으로 올라가서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게 됩니다. 다윗 왕을 이어서 왕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 왕을 선택했기 때문에 아도니야가 왕이 되려고 했어도 되지 않았습니다.

기혼 샘에서 솔로몬 즉위식(왕상 1:38-53)

 

38절 바예레드 차도크 하코헨 베나탄 하나비 우베나야후 벤 예호야다 베하케레티 베하펠레티 바야르키부 에트 쉘로모 알 피르다트 하멜렉크 다비드 바욜리쿠 오토 알 기혼

=====1:38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 - 이들의 명칭이 어디서 유래되었는지에 대하여 크게  두 가지 해석이 있다. 즉 (1) '그렛'을 그레데 섬으로 보는 해석으로서, 블레셋 사람이  유래하였다는 '갑돌'(암  9:7;신  2:23)이 바로  이곳과 일치하는 것으로 본다(J. Hammond). 따라서 그렛 사람들(the Cherethites)은 대부분 이방인들인 블레셋  사람들일 것으로 본다. (2) '그렛'과 '블렛'의 어근이 각각 '자르다'(카라트)와 '신속하다'(펠레트)란 의미일 것으로 보고 곧 이들이 사형 집행인과  전령일 것으로 보는 해석이 있다(Gesenius, Keil). 한편, 그러나 이들의 직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대부분 일치된다. 즉 이들은 외국인 용병들로 구성된 왕의 친위 부대라는 것이다. 유대 사가 요세푸스(Josephus)도 이들을 '소마토퓔라케스'('왕위 근위병' 혹은 '신변 보호자'란 뜻)라고 불렀다(삼:18;15:18;20:23). 자세한 내용은 삼하 8:18 주석 참조.

39절 바이카흐 차도크 하코헨 에트 케렌 하쎄멘 민 하오헬 바이메샤흐 에트 쉘로모 바이트케우 바쇼파르 바요메루 콜 하암 예히 하멜렉크 쉘로모

=====1:39

   성막 가운데서 기름 뿔을 가져다가 - 여기서 '기름 뿔'(the horn of  oil)은  불로 만들어진 기름을 담는 뿔 그릇을 가리킨다. 그리고 '기름'은 제사장, 선지자, 왕,  그리고 성전의 기물들을 거룩히 구별할 때 특별히 사용하는 거룩한 기름(sacred  oil, Living Bible) 곧 '관유'(灌油, 출 30:22-33)를 가리킨다. 그런데 이  거룩한  기름은 언약궤(법궤)가 보관된 성막 안에 보존되어 있었으며, 당시 이 성막은 시온산에  있었다(대상 15:1;삼하 6:17). 한편 만일 아도니야가 제사장 아비아달을 통해 기름 부음을 받았다면, 그때 기름 뿔은 응당 에느로겔에 가있어야 마땅했다. 그런데도 본절에는 그것이 시온 산 위의 성막 안에 그대로 있다고 기재되어 있다. 이는 두 가지 사실을 추측케 한다. (1) 아도니야가 도유식(塗油式)을 거치지 않고 왕위 즉위를  선포했다.  (2) 성막에 기름 뿔이 여러 개 비치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 중 두 번째 견해가 더  타당성이 많은 것으로 짐작되는데, 본서 기자는 솔로몬의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해  아도니야의 도유식을 생략하였던 것으로 보이며, 또한 비록 사독이 기브온 산당에서  제사장으로 임명받았지만, 그의 신분상 시온 성막의 출입도 자유로웠을 것이기 때문에(keil), 당시 다윗의 명을 좇아 시온 성막에 비치되어 있었던 여러 개의 기름 뿔 중 하나를 취하여 솔로몬의 도유식을 거행했던 것 같다. 그리고 유대 전승에 의하면 이 기름  뿔은 바벨론 포로 전까지 잘 보존되었다고 한다(J. Hammond).

   솔로몬에게 기름을 부으니 - 이 기름 부음의 의식은 하나님께서 택하여 성별 하셨다는 의미(34절 참고) 외에도 하나님께서 또한 여호와의 신 (성령)을 부어 주신다는 의미도 갖고 있다(Bahr ; 삼상 16:13). 실제로 사울과 다윗은 기름 부음을 받은 후 곧 여호와의 신에 감동되었다는 기록이 나온다(삼상 10:9,10;삼상 16:13).

40절 바야알루 콜 하암 아하라이브 베하암 메할렐림 바할릴림 우세메힘 시므하 게돌라 바티바카 하아레츠 베콜람

=====1:40

   모든 백성이 왕을 따라 올라와서 - 솔로몬의 대관식에 참석한 모든 백성이  만세를 부른 이후(39절) 솔로몬은 명실상부한 저들의 왕이 되었다(25절과 비교).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윗 왕의 명과 뜻을 좇아 솔로몬을 따른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은 다윗의 순종과 신하들의 충성을 통해 결국 백성들의 황영에서 완성된 것이다.

   땅이 저희 소리로 인하여 갈라질 듯하니 - 여기서 '갈라지다'(바카)란 말은 '찢다', '쪼개다', '부수다' 등의 뜻을 가지는 바, 위의 표현은 그 소리가  땅을 진동시킬 만큼 솔로몬을 추종하는 백성들의 무리가 많았고 또한 즐거움으로 사기충천한 사실을 가리키는 과장법적 표현이다(45절).

41절 바이쉐마 아도니야후 베콜 하케루임 아쎄르 이토 베헴 킬루 레에콜 바이쉐마 요아브 에트 콜 하쇼파르 바요메르 마두아 콜 하키르야 호마

=====1:41

   함께 한 손들 - 여기서 '손들'은 '초청받은 자들'이란 뜻으로서, 곧  왕위  찬탈을 위한 아도니야의 제사 잔치에 초대받아 응함으로써 반역 거사에 가담한 자들을 가리킨다. 그 핵심 인물은 대제사장 아비아달과 군대 장관 요압이다(7, 19절).

   요압이 양각 소리를 듣고 - 전쟁터를 많이 경험한 노련한 군인 요압이 특히 민감하게 나팔 소리에 반응하고 있다(Hammond, Bahr). 일찍이 요압은 압살롬이 반역하여 왕이 될 때에 이러한 나팔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삼하 15:10). 그러나 지금은 반역의 자리에 앉아 있는 그에게 들린 나팔 소리로 인해 요압은 그 의미를 예감하고 불안해하였을 것이다.

42절 오데누 메다베르 베힌네 요나탄 벤 에브야타르 하코헨 바 바요메르 아도니야후 보 키 이쉬 하일 아타 베토브 테바세르

=====1:42

   말할 때에 요나단이 오는지라 - 성경 기록에서 대제사장 아비아달의 아들 요나단은 특별한 일의 전달자로 이미 잘 알려져 있다(삼하 15:27;17:17). 한편 그는 아버지 아비아달과는 달리 아도니야의 잔치에 참석치 않았다. 그 이유는 (1) 아직  연소하여 초청을 받을 만한 지위가 되지 못했거나 (2) 궁중의 전령자(傳令者)로서 항시 바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편, 혹자는 당시 아도니야 측에서 왕궁의 동정을 탐지키 위해 요나단을 대기시켜 놓은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Bahr).

   너는 용사라 아름다운 소식을 가져오는도다 - 이와 비슷한 표현이 삼하 18:27에서도 나타난다. 즉 '좋은 사람은 좋은 소식을 가져올 것'이라는 다윗의 말이다. 아마도 이 같은 말은 그 무렵 속담처럼 통용되었던 것 같다(삼상 24:13). 따라서 여기서 '용사'란 말은 '좋은 사람'의 의미를 가진 인사말일 것이다(J. Hammond). 한편 성경에서 '용사'와 '아름다움'은 흔히 결부되어 등장한다(참고, 삼하 1:17  이하의  다윗의  노래). 여하튼 아도니야는 성중에서 들려오는 환호 소리와 나팔 소리에 내심 불안한 심기를 감추지 못하면서도, 짐짓 자신과 무리를 안심시키기 위해 이처럼 허세 섞인 말을 한 것이다(Keil, Hammond).

43절 바야안 요나탄 바요메르 라아도니야후 아발 아도네누 하멜렉크 다비드 히멜리크 에트 쉘로모

=====1:43

   과연 솔로몬으로 왕을 삼으셨나이다 - '과연'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아발'은  '그러나',  '오히려'와  같은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대하 19:3;33:17). 따라서 여기서의 사용도 내용상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Not  at  all, NIV), 혹은 '아니올시다'(No, RSV)라는 부정의 의미를 갖는 것이라 하겠다.  왜냐하면 솔로몬이 왕이 된 소식이 아도니야에게는 결코 아름다운 소식일 수 없기 때문이다. 한편 이것은 앞에서 아도니야가 한 말(42절)이 그 표현과는 달리 짙은 불안과 의혹을 담은 말이므로 불행히도 그것이 사실이라는 의미에서의 '과연'이기도 한다.

44절 바이쉘라흐 이토 하멜렉크 에트 차도크 하코헨 베에트 나탄 하나비 우베나야후 벤 예호야다 베하케레티 베하펠레티 바야르키부 오토 알 피르다트 하멜렉크

45절 바이메쉐후 오토 차도크 하코헨 베나탄 하나비 레멜렉크 베기혼 바야알루 미솸 세메힘 바테홈 하키르야 후 하콜 아쎄르 쉐마에템

=====1:44,45

   본문은 38, 39절 내용의 반복으로서, 곧 솔로몬의 즉위식이 거국적으로 성대히 거행되었음을 요나단이 아도니야에게 사실 그대로를 보고하는 장면이다. 따라서 본문은 19절과 25,26절에 나타난 바 아도니야의 즉위식 장면과 비교된다. 비교해 보면, 아도니야에게 결핍된 요소들이 솔로몬의 즉위 장면에는 많이 나오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예를 들면 왕의 노새, 기름 부음, 백성의 환영 등이 그것이다.

46절 베감 야샤브 쉘로모 알 키세 하멜루카

=====1:46

   솔로몬이 나라 위에 앉았고 - 여기서 '위'(키세)는 '왕위'(王位)를  가리키는 말로서, 이 말은 성경에서 어떤 사람이 한 나라의 주권자임을 나타낼 때 주로 사용되었다(출 11:5;삼하 7:13;대하 29:1 등). 한편 솔로몬은 부왕(父王)인 다윗이 아직 죽기 전, 왕으로 여전히 있을 때 왕위에 즉위했다. 이처럼 노환, 질병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선왕(先王)의 생전에 후왕(候王)이 왕위에 올라 외형상 두왕이 한 나라를 공동 통치하는 경우를 '섭정 제도'(the system of Co-regency)라고 하는데, 이 제도는 당시 애굽, 앗수르, 바벨론 등 고대 중근동 국가에서 흔히 발견되는 제도였다. 이스라엘에서는 다윗과 솔로몬 때를 기점으로 후대 왕국의 역사에서 자주 나타나게  된다<서론, 11. 열왕기서의 연대기 문제>.  

47절 베감 바우 아브데 하멜렉크 레바레크 에트 아도네누 하멜렉크 다비드 레모르 예테브 엘로헤이카 에트 솀 쉘로모 미쉐메카 비가델 에트 키세오 미키세에카 바이쉐타후 하멜렉크 알 하미쉐카브

48절 베감 카카 아마르 하멜렉크 바루크 아도나이 엘로헤 이스라엘 아쎄르 나탄 하욤 요셰브 알 키세이 베에나이 로오트

=====1:46-48

   본문은 솔로몬의 즉위에 관한 좀 더  구체적인 요나단의 보고이다. 히브리어 원문상 여기서 요나단의 말은 '그리고 또한', '더욱이'와  같은 부가, 축적의 뜻을 지닌 히브리어 '웨감'(and also)이 매절 초두에 거듭됨으로써 강조되고 있다. 따라서 요나단이 전하는 사실의 확실성이 점점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아도니야의 거사는 실패하였음도 점점 확실해져 간다. 한편 여기서 본문이 보여 주는 구도(構圖)는 솔로몬이 확실히 이스라엘의 통치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

=====1:47

   왕의 신복들이 원하나이다 하매 - 나단과 밧세바로부터 아도니야의 반역 거사 소식을 전해 들은 다윗이 즉각 그에 상응하는 조치(33-35절)를 취하자 거의  대부분의 신복들이 급속히 솔로몬 지지 쪽으로 기울어져 솔로몬을 축원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 축원(祝願)의 내용은 37절에 나타난 브나야의 축원과 거의 동일하다. 한편  브나야를 비롯한 다윗의 신복 등의 이 축원은 후일 하나님의 크신 축복으로 말미암아  그대로 이루어졌다(4:20-34).

   왕이 침상에서 몸을 굽히고 - 다윗 왕의 이 동작을 신하들의 축복 인사에 대한  답례로 보기로 한다(Thenius). 그러나 48절 초두의 '웨감'(and also)은 47절 동작의 목적을 보여주는 것이므로, 침상에서 몸을 굽혀 절한 다윗 왕의 행동은 하나님께 대한 경배 행위인 것이다(Hammond, Keil, Bahr). 한편 이처럼  침상에서  경배하는 행위는 노년의 야곱에게서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행위는 또한 어떤  맹세나  선포에 대한 확증의 의미를 띠기도 한다(창 47:31).  

=====1:48

   여호와께서 나로 목도하게 하셨도다 - 왕이 생존해 있는 동안 양위(讓位)하는 일은 매우 특이한 예에 속한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왕들은 죽을 때까지 통치를  했고, 따라서 그 후계자들은 선왕(先王)이 죽은 후에야 비로소 즉위식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다윗이 생전에 솔로몬의 즉위식을 직접 목도하게 된 것은 특기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더구나 성전 건축과 더 큰 번영을 이룰  약속된  후계자가 왕위에 오르는 것을 분명히 보게 되었으니, 다윗으로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크게 찬송하지 않을 수 없었다(3:13;대하 9:22).   

49절 바예헤르두 바야쿠무 콜 하케루임 아쎄르 라아도니야후 바옐레쿠 이쉬 레다르코

=====1:49

   아도니야가 함께 한 손들 - 여기서 '손들'(하케루임)이란  말은 직역하면 '초대받은 자들'(those who were invited)이란 뜻이다. 분명 이들은  하나님과 다윗 왕의 뜻이 솔로몬에게 있는 줄을 알면서도 아도니야의 역모 책동에  솔깃하여 훗날 한자리 차지해 보려는 얄팍한 계산 하에 몰려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이 그르치게 되자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에 급급하여 황급히 도주해 버렸던 것이다.

   다 놀라 일어나 각기 갈 길로 간지라 - 아도니야의 불의한 반역 거사 초대에 응했던 무리들(9절)이 솔로몬의 즉위 소식을 듣자 생명에 위협을 느껴 뿔뿔이 해산하는 광경이다. 여기서 (1) 그들이 그토록 쉽게 공포에 사로잡힌 것은 애초부터 확신이  없었음을 보여주고, (2) 또한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당황하여 급히 일어남은 용기가 없었음을, (3) 그리고 각기 제멋대로 처음부터 자기 잇속을 차리기 위해 모인 무리들인 것을 보여 준다.

50절 바아도니야후 야레 미페네 쉘로모 바야콤 바옐레크 바야하제크 베카르노트 하미즈베아흐

=====1:50

   제단 뿔을 잡으니 - 제단 뿔은 곧 번제단의 네 모퉁이에 튀어나온  돌기  부분이다(출 38:1-7 주석의 그림을 참조하라). 제사를 드릴 때 여기에 짐승을 매기도 했고, 또 희생 제물의 피를 바르기도 하였다(출 29:12;시 118:27). 그런데 성경에서 '뿔'(케렌)은 주로 힘과 능력을 상징한다(신 33:17;삼상 2:10;시 18:2;75:10;112:9). 그러므로 제단의 뿔은 하나님께로부터 임하는 힘과 능력을 상징한다. 아울러 그러한  하나님의 힘과 능력으로 약자와 억울한 자 및 죄인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상징한다. 따라서 이 제단 뿔을 잡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를 호소하는 상징적 행위이다(Keil). 그런데 이처럼 제단 뿔을 도피처로 삼는 행위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단지 출애굽 이후 오살자(誤殺者)의 도피 제도(출 21:13)와 더불어 시작되었으리라 추측할 뿐이다. 왜냐하면 출애굽 시대 이후부터 성소의 제단은 실수로 사람을 죽인 범죄자의 피신처로 인정되었기 때문이다(출 21:12-14). 이후 모세 율법은 이러한 자들을 위한 사회적 보호제도로 도피성(逃避城) 규례를 만들었고(민 35:9-34), 그 규례는 가나안 정착 후 그대로 실시되었다(수 20:1-9). 여하튼 그때 이후 성소의 제단은 도피성과 아울러 범죄자가 하나님의 보호와 긍휼을 호소하고 바라는  피신처의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맥락 하에서 반역 거사를 주도한 아도니야도 사형 집행을 두려워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바란다는 의미로 이처럼 제단  뿔을  잡은  것이다(Bahr). 한편, 그런데 아도니야가 피신하여 붙든 제단 뿔은 분명 예루살렘의 시온 성막 내에 있는 번제단 뿔일 것이다(Keil, Hammond).

51절 바유가드 리쉘로모 레모르 힌네 아도니야후 야레 에트 하멜렉크 쉘로모 베힌네 아하즈 베카르노트 하미즈베아흐 레모르 이솨바 리 카욤 하멜렉크 쉘로모 임 야미트 에트 아브도 베하레브

=====1:51

   아도니야가 솔로몬 왕을 두려워하여 - 여기서는 5절과 관련하여 아도니야의 성품이 교만할 뿐만 아니라 비겁하기도 함이 나타난다. 만일 아도니야가 자신의 왕위 계승 자격을 굳게 확신했더라면 이토록 비루하게 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으로부터 나오는 참된 신념이 있었다.

   솔로몬 왕이 자기 종을 죽이지 않겠다고 - 아도니야는 자신의 입으로  솔로몬을 '왕'으로 시인하고, 자신을 그의 '종'으로 인정함으로써 이제 왕위(王位)를 포기했음을 고백한다. 아울러 목숨만을 구걸하는 허울 좋은 겁쟁이로 나타남으로써, 그의 오만함이 솔로몬의 권위 아래 여지없이 부서진 사실이 적나라게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아도니야는 교활했다. 일단 대세가 솔로몬 쪽으로 완전히 기울자 이처럼  굴복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역모를 계획하다가 결국 처형당하고 말았다(2:13-25).

   맹세하기를 원한다 하나이다 - 히브리인들 맹세 속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성호가 들어 있다. 따라서 하나님이 맹세의 증인이 된다. 그러므로 만일 누가 맹세를 하고도 그 맹세를 어기면 그는 하나님을 모덕한 죄를 범한 자가 되고 만다. 이런 이유로 인해 맹세는 그 엄숙함과 불변성을 지니게 된다. 따라서 아도니야도 자기의 생명 보장에 대해 솔로몬이 맹세로써 보장해 줄 것을 요구한 것이다.

52절 바요메르 쉘로모 임 이흐예 레벤 하일 로 이폴 미사아라토 아르차 베임 라아 티마체 보 바메트

=====1:52

   솔로몬이 가로되 - 아도니야의 요구와 달리 솔로몬은 맹세는 하지 않고 다만  말로써 약속할 뿐이다. 오히려 조건부로 약속한다. 그러므로 다음장의 아도니야의 죽음(2:25)은 이러한 조건부 약속을 어긴 결과인 것이다.

   선한 사람이 될진대 - 문맥상 이 말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즉 이제 아도니야가 왕권에 대한 불의한 욕심을 버리고, 더 이상 선동적인 역모를 꾀하지 않으면서 조용히 사적인 생활을 보낸다면 그의 생명은 확실히 보장될 것이란 뜻이다(Patterson, Bahr).

   악한 것이 보이면 - 여기서의 '악함'(라)이란 도덕적 악함이라기보다  왕이 되려는 '불측한 의도'를 말한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이 악함의 성격은 '비겁함'이다. 왜냐하면 본절에 '악함'에 대비되는 '선함'(벤 하일)의 원어적 의미는 '용감성'이기 때문이다(공동 번역은 실제로 '용감한 사람'으로  번역하였다). 그러므로 아도니야의 반역 음모는 처음부터 떳떳하지 못하게 몰래 솔로몬과 그의 세력을 해치우려 했던 비겁한 행위로 비쳤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솔로몬은 만일  아도니야가 왕권에 대한 욕심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또다시 비겁한 역모를 꾀할 경우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고 엄중히 경고하면서 조건부로 아도니야의 목숨을 살려 주었던 것이다.

53절 바이쉘라흐 하멜렉크 쉘로모 바요리두후 메알 하미즈베아흐 바야보 바이쉐타후 라멜렉크 쉘로모 바요메르 로 쉘로모 레크 레베티카

=====1:53

   네 집으로 가라 - 솔로몬의 이러한 처분은 그의 관용을 나타낼 뿐 아니라, 경고의 의미가 크다(J. Hammond). 왜냐하면 이와 비슷한 명령을 다른 기록에서 찾아보면 언제나 징계, 연금의 의미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2:36;삼하 14:24). 그러므로 최소한 왕궁을 노리던 아도니야에게 사적(私的)인 개인으로서 이제 제 집으로 돌아가라는 것은, 앞으로는 분수에 넘는 짓하지 말고 조용히 지내라는 경고가 충분히 담겨있는 것이다.

[히브리어로 보는 열왕기상] 다윗이 솔로몬을 왕으로 인정함(왕상 1:32-37)

 

[히브리어로 보는 열왕기상] 다윗이 솔로몬을 왕으로 인정함(왕상 1:32-37)

안녕하세요. 오늘은 히브리어로 보는 열왕기상 중에서 다윗이 솔로몬을 왕으로 인정함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다윗은 신하들의 말을 듣고 솔로몬을 왕으로 인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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