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원문 강해

[히브리어 성경말씀 열왕기상] 아도니야 처형과 아비아달 파면(왕상 2:19-27)

엘벧엘 2022. 1. 1.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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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2장에서 아도니야가 처형을 당하게 됩니다. 아도니야는 스스로 왕이 되려고 했던 자입니다. 구속사 관점으로 보면 믿음이 아닌 행위로 구원을 얻으려고 했던 자를 상징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 자기 스스로 의롭게 되려고 하면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받아 죽게 됩니다. 또한 대제사장 아비아달을 직분을 파직했습니다. 솔로몬 왕은 아비아달을 죽이지는 않고 네 고향 아나돗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엘리 제사장의 대가 끊어졌습니다. 우리는 항상 예수님의 복음 말씀을 따라서 살아야 합니다.

 

아도니야 처형과 아비아달 파면(왕상 2:19-27)

 

19절 바타보 바트 셰바 엘 하멜렉크 쉴로모 리다베르 로 알 아도니야후 바야캄 하멜렉크 리크라타흐 바이쉬타후 라흐 바예셰브 알 키시오 바야셈 키세 리엠 하멜렉크 바테셰브 리미노

=====2:19

   왕이 일어나 영접하여 절한 후에 - 솔로몬이 모친 밧세바를 태후(太后)로 존중하여 최대의 예우와 존경으로 맞이하는 모습이다. 70인 역에는 왕이 입 맞추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이스라엘 왕국에서 태후의 지위는 매우 유력했던 것 같다(J.Hammond, Exell). 그런데 성경 기록상 밧세바는 최초의 공식적인 태후인 것이다. 그러므로 솔로몬의 즉위에  큰 공헌을 한 밧세바(1:15-21)에 대향 예우가 이후 왕실의 태후에 대한 예우 확립에 많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 우편에 앉게 하는지라 - 우편(右便)의 자리는 특히 고대 근동 사회에서 존대와 영광을 나타내는 자리였다(Keil). 그리고 그러한 관례는 성경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었다(시 110:1;ak 20:21;25:33;행 7:56;롬 8:34 등). 한편 본문이 이처럼 솔로몬의 극진한 예절을 소상히 기록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즉 솔로몬은 효성이 지극한 왕이었음을 알리고, 동시에 그러한 효성에도 불구하고 솔로몬이 모친의 청을 단호하게 거절한 것은 결코 괄시가 아니라 아도니야의 요청이 역모에 관련된 탓임을 나타내려는 이유 때문이었다.

20절 바토메르 쉬엘라 아하트 키타나 아노키 쇼엘레트 메이타크 알 타셰브 에트 파나이 바요메르 라흐 하멜렉크 샤알리 임미 키 로 아쉬브 에트 파나이크

=====2:20

   한 가지 작은 일로 - 아도니야의 "한 가지 소원"(16절)이 밧세바에게 이르러 "한 가지 작은 일"로 바뀌어 있다. 이것은 밧세바가 아도니야의 부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고 었었음을 나타낸다. 분명 밧세바는 그러한 부탁을 단순한 '애정 문제'로 생각했던 것 같다(B hr, Hammond). 한편 그런데 이와는 전혀 다른 견해도 있다. 즉 솔로몬이 아비삭을 좋아했기 때문에 밧세바가 일종이 질투심에서 아도니야의 청을 적극 수락했다는 견해이다(Grove). 이 견해는 아가서의 술람미 여인을 수넴 여자 아비삭과 동일시 가설에 기초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에 그 가설을 입증할 만한 기록이 전혀 없고, 설령 그렇더라도 밧세바가 질투하거나 반대할 까닭이 없으며, 그리고 무엇보다도 문제의 핵심은 아도니야의 역모(逆謀) 여부에 주어지고 있으므로(22절), 그러한 견해는 지나친 비약이다.

21절 바토메르 이탄 에트 아비샤그 하쉬나미트 라아도니야후 아히카 리이샤

=====2:21

   아비삭을 아도니야에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소서 - 분명 밧세바는 아도니야의 이 부탁을 단순한 남녀 간의 애정 문제로 인식하고, 이처럼 솔로몬에게 아도니야의 청을 들어줄 것을 부탁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적어도 밧세바의 생각으로는, 수넴 여자 아비삭은 다윗과 동침하지 않았으므로(1:4), 그녀는 한낱 수종 드는 시종에 불과할 뿐이라고 간주했을 것이기 때문이다(Keil). 여기에 덧붙여 밧세바는 왕위 경쟁에서 실패한 아도니야에 대한 일종의 동정심도 작용하여 이 문제를 '한 가지 작은 일'로 보았던 것이다(20절). 그러나 당시 일반 백성들은 분명 아비삭을 다윗의 첩(후궁)으로 인식하고 있었을 것이다(Patterson). 그리고 당시의 관례상 선왕(先王)의 후궁을 계승하여 소유한다는 것은 곧 그 왕좌를 계승한다는 하나의 상징적 행위였다(삼하 3:7;12:8;16:20-22;Herodotus, -68). 그러므로 만일 아도니야의 뜻대로만 된다면, 그는 왕권 회복의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 되고(Rawlinson), 또한 아도니야의 추종 세력들은 크게 힘을 얻는 계기가 될 것이었다(삼하 16:21).  이러한 모든 배경 하에서 밧세바의 이 말을 듣는 순간 솔로몬은 이전에 아도니야의 반역죄를 용서해 주면서 한 말, 곧 "악한 것이 보이면 죽으리라"라고 경고했던 일이 떠올랐을 것이다(1:52).

22절 바야안 하멜렉크 쉴로모 바요메르 리임모 비라마 아트 쇼엘레트 에트 아비샤그 하쉬나미트 라아도니야후 비샤알리 로 에트 하밀루카 키 후 아히 하가돌 미메니 비로 우리에비야타르 하코헨 우리요아브 벤 치루야

=====2:22

   어찌하여 아도니야를 위하여...아비삭을 구하시나이까 - 처음의 다정했던 분위기가 일순간 깨어지는 순간이다. 이때 솔로몬은 분명히 격노했을 것이다. 현명했던 그는 아도니야의 '한 가지 소원'(16절)의  저변(底邊)에 깔려 있던 역모의 흉계를 곧 간파했다. 그리고 그 흉계를 모르고 중개 역할을 한 모친에게 노골적으로 불만을 토로했다. 

   저를 위하여 왕위를 구하옵소서 - 결과적으로 아도니야가 아비삭을 요구한 것이 솔로몬에게 있어서는 왕위를 요구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이 부분은 밧세바의 '한 가지 작은 일'이 사실은 아도니야의 역모(逆謀) 임을 단정하는 부분이다. 한편 본절 전체에서는 '위하여'에 해당하는 '로'가 세 번 나온다. 그리고 그것이 거듭될 때마다 새로운 요소가 추가되면서 하찮게 보이던 작은 부탁이 결국은 왕위를 노리는 의도였음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즉 선왕의 후궁과 다름없는 아비삭을 요구하는 것은 <17절> 원래 장자권을 가졌던 아도니야가 <15절> 애초 자신의 1차 거사 세력과 재차 역모를 시도하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냐는 것이다. 따라서 21절의 밧세바의 말과 본절의 솔로몬의 대답은 같은 요소들을 포함하지만, 사건을 보는 시각은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아비아달과...요압도 위하여 - 여기서 대제사장 아비아달과 군대 장관 요압의 이름이 거론된 것으로 보아, 아마도 1차 거사 실패 이후(1:7,49)에도 이들 핵심 세력 3인은 왕권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계속 암중모색해 왔던 것 같다. 혹자는 생각하기를, 과거 압살롬에게 다윗의 후궁들을 취하라고 권면한 자가 아히도벨이었던 것처럼(삼하 16:21), 이번에 아도니야에게 아비삭을 요구하라고 권면한 자가 혹 아비아달 또는 요압이 아닌가 추측하기도 한다(Theodoret).

23절 바이샤바 하멜렉크 쉴로모 바아도나이 레모르 코 야아세 리 엘로힘 비코 요시프 키 비나피쇼 디베르 아도니야후 에트 하다바르 하제

=====2:23

   하나님은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심이 마땅하니이다 - 이것은 맹세의 일반적 형식으로서 반드시 맹세의 내용을 지키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표명이다. 즉 변경할 수 없는 결심을 나타내는 맹세의 관용적 용법이다(룻 1:7;삼상 3:17;14:44 등).

24절 비아타 하이 아도나이 아셰르 헤키나니 바요쉬비니 알 키세 다비드 아비 바아셰르 아사 리 바이트 카아셰르 디베르 키 하욤 유마트 아도니야후

=====2:24

   나를 세워...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  다윗의 맹세(1:29)에서와 마찬가지로 솔로몬의 일반적인 맹세치 형식에다 자신의 절실한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신앙고백을 결합시켜 결연히 맹세하고 있다. 특히 여기서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한 것은 곧 여호와의 살아계심이 불변의 진리인 것처럼 자신의 맹세 내용 역시 결코 변하지 않을 확고 부동한 것임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허락하신 말씀대로...집을 세우신 - 여기서 '집'에 해당하는 '바이트'는 때때로 '가족'을 의미하기도 한다(창 50:22;수 2:18;렘 38:17).  따라서 혹자들은 '자손'을 주신 것으로 보고, 곧 솔로몬은 여기서 자신의 왕위를 이을 아들 르호보암을 낳은 사실을 말한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Keil, Wordswoth). 그러나 솔로몬의  결혼은 이 일 뒤에 있었으므로(3:1). 그러한 견해는 따르기 곤란하다(B hr). 오히려 솔로몬의 이 말은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과 관련하여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견고한 왕위'를 허락해 주셨다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12절;삼하 7:11-16). 즉 일찍이 하나님께서 선지자 나단을 통해 다윗에게 허락하신 말씀대로(삼하 7:11-16;12:@4,25;대상 22:6-10), 왕위가 다윗에 이어 솔로몬에게 주어짐으로써 그 왕위를 더욱 견고케 하셨다는 뜻이다.

25절 바이쉴라흐 하멜렉크 쉴로모 비야드 비나야후 벤 이호야다 바이피가 보 바야모트

=====2:25

   브나야를 보내매...쳐서 죽였더라 - 원문상 '브나야의 손으로 쳐서 죽였다'란 뜻이다. 그런데 이것이 왕의 친위 대장인 브나야 자신이 직접 행동한 것인지 아니면 그렛 사람과 블렛사람<1:38>의 우두머리인 브나야의 감독하에 사형을 집행한 것인지 확실치 않다. 아무튼 당시 왕의 친위(경호) 대장은 사형 집행관의 역할도 겸하였기 때문에, 솔로몬 왕의 명을 받은 브나야의 책임하에 아도니야에 대한 처형이 공식 집행되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한편, 혹자들은 이유야 어떻든 솔로몬이 자신의 이복 형인 아도니야를 처형시킨 것은 담대히 세속적인 왕권 쟁탈 싸움과 다를 바 없는 비윤리적인 행위라고 비난한다. 사실 얼핏 보면 솔로몬이 아도니야를 구태여 처형시킨 일은 가혹한 일로 비쳐질 수도 있다. 그러나 솔로몬은 혈연관계를 초월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대권을 위임받은 신정 왕국의 통치자로서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고, 공의를 구현하는 데 주력해야만 했다. 따라서 1차 경고(1:52)에도 불구하고 재차 반역을 시도함으로써, 신정(神政) 왕국 이스라엘의 근간 질서를 문란케 한 아도니야의 죄는 엄중히 다스려져야 마땅하였다(Keil, Hammond, Patterson). 즉 솔로몬의 아도니야 처형 사건은 단순히 '왕권 도전 세력의 제거'라는 정치적 차원에서 평가될 것이 아니라, '신정 왕국의 확립 및 강화'라는 신적 공의 실현의 차원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이렇게 볼 때 솔로몬이 자기 형 아도니야를 처형시킨 사건은 불행한 사건이었지만, 그러나 정당했고, 결과적으로 선을 이루었다.

26절 우리에비야타르 하코헨 아마르 하멜렉크 아나토트 레크 알 사데카 키 이쉬 마베트 아타 우바욤 하제 로 아미테카 키 나사타 에트 아론 아도나이 아도나이 리피네 다비드 아비 비키 히티아니타 비콜 아셰르 히트아나 아비

=====2:26

   아나돗 - 베냐민 지파에 속한 고을로 제사장의 성읍이다(수 21:18;대상 6:60). 예루살렘에서 동북쪽으로 약 5.6km 정도의 거리로서(Robinson), 선지자 예레미야의 부친 힐기야의 고향이기도 하다(렘 1:1). 

   죽을 자로되...죽이지 아니하노라 - 혹자는 이것을 제사장의 목숨은 왕이 결정하는 법이 아니었기 때문으로 보나, 사울의 예로 미루어 합당치 못하다(삼상 22:6-19). 따라서 솔로몬의 이러한 조치는 역시 본문이 알리는대로 부친 다윗을 도왔던 아비아달의 공로가 참작된 것이다. 구체적으로 아비아달의 공로는 다음 두 가지이다. 다윗 앞에서 여호와의 궤(언약궤 또는 법궤)를 메어 올린 일-제사장 아비아달은 법궤를 오벧에돔의 집으로부터 예루살렘으로 옮길 때(대상 15:11-15)와 다윗이 압살롬의 난을 당하여 피난할 때(삼하 15:24-29) 법궤를 맡아 책임짐으로써 다윗을 도운 적이 있었다.

   다윗과 환난을 같이 받은 일-제사장 아비아달은 다윗이 사울로부터 박해를 받을 때(삼상 22:20-23;23:6)와 압살롬의 난을 당하여 도피할 때(삼하 15:24,35) 다윗의 입장에서 동고동락했었다.

27절 바이가레쉬 쉴로모 에트 에비야타르 미히요트 코헨 라아도나이 리말레 에트 디바르 아도나이 아셰르 디베르 알 베이트 엘리 베쉴로

=====2:27

   아비아달을 쫓아내어...제사장 직분을 파면하니 - 이러한 솔로몬의 조치는 제사장을 세우고 폐하는 일이 왕에게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아비아달의 경우,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왕에 대항하여 계속 반역을 모의함으로써 스스로 제사장직으로부터 이탈하였으므로, 솔로몬은 그에 상응하는 합당한 조치를 취했을 뿐이다(B hr). 한편, 추방당한 이후의 아비아달의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다. 추측컨대, 추방당할 때의 나이가 80세가량의 노령이었으므로, 이후 오래 살지 못했으리라 짐작된다(Keil & Delitsch, op. cit. p.34).

   엘리의 집...말씀을 응하게 함이더라 - 일찍이 하나님께서 익명의 선지자를 통하여 엘리의 집에 선포한 예언의 구체적인 내용은 삼상 2:27-36에 자세히 나타나 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죄악으로 말미암아 엘리 가문의 제사장직이 폐하여질 것이라는 경고였다. 그런데 여기서 열왕기 저자는 아비아달의 제사장직 파면 사건을 그 예언의 성취로 보고 있다. 왜냐하면 이로써 아비아달은 이다말과 엘리 계통으로 이어져 내려오던 제사장 중 마지막 제사장이 된 셈이기 때문이다. 원래 아론의 네 아들들(나답, 아비후, 엘르아살, 이다말) 중 나답과 아비후는 잘못된 분향 사건으로 인해 일찍 죽었기 때문에(레 10:1,2), 엘르아살과 이다말이 유력한 제사장 계열로 남는다(레 10장;민 3:4;대상 24:3). 그런데 아비아달은 엘리 집안 소속으로서 이다말 계열에, 사독은 엘르아살 계열에 각각 속한다(IDB;삼상 14:3;22:9;eotkd 24:3). 그러므로 아비아달이 역모죄로 말미암아 솔로몬에 의해 파면된 것은 곧 대제사장직이 엘르아살 계통으로 완전히 일원화되었음을 의미한다(Keil;35절;대상 6:1-8). 아울러 다윗 시대의 2명의 대제사장 문제 <1:8>가 해결되었고, 결국 엘리 집안에 대한 하나님의 예언이 성취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통해 역사의 시종을 당신의 선하신 뜻대로 섭리 주관해 나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뚜렷이 감지할 수 있다.

[히브리어 성경 사무엘하 강해] 아브넬이 아사헬을 죽임(삼하 2:18-23)

 

[히브리어 성경 사무엘하 강해] 아브넬이 아사헬을 죽임(삼하 2: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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