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7장에서는 고린도 교회가 문제가 많았는데 서로 화해하니 바울이 기뻐했다. 우리는 복음 안에서 평화가 있어야 한다. 고린도 교회는 서로 파를 나누어 싸우고 있었다. 교회가 분쟁이 일어나면 세상 사람들이 욕한다. 성도는 교회 안에서 서로 싸우지 말고 말씀으로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야 한다.
위로와 기쁨을 얻는 직분(고후 7:1-16)
1절,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자
[1절]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
‘이 약속’은 앞에서 말한 바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약속을 가리킨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얻었다(요 1:12). 그러나 우리는 아직 하나님의 자녀의 모습이 없어 보이며 장차 의인의 부활 시 하나님의 자녀의 영광스런 모습을 가질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의 품위를 가지고 바르게 살아야 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라는 말은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우리의 거룩한 삶의 원동력이 됨을 보인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계시기 때문에, 그가 친히 명령하셨기 때문에, 또 장차 그가 심판하시고 보응하실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거룩하고 의롭게 살아야 한다. 잠언 16:6,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인하여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라는 것은 구원받은 성도의 삶의 목표, 곧 성화의 목표를 보인다. 비록 그것이 땅 위에 사는 동안 불가능할지라도, 성도는 온전한 거룩을 향해 달음질해야 한다.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이란 우리가 정신적, 심적 더러움, 예를 들어 미움, 음란한 마음, 물질에 대한 탐욕 등에도 빠지지 말아야 할 것을 보인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사역으로 구원을 받았고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육의 더러움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는 온전한 거룩함을 이루어야 한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질 때 가능하다.
2-4절, 마음으로 우리를 영접하라
[2-4절] 마음으로 우리를 영접하라. 우리가 아무에게도 불의를 하지 않고 아무에게도 해롭게 하지 않고 아무에게도 속여 빼앗은 일이 없노라. 내가 정죄하려고 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 말하였거니와 너희로 우리 마음에 있어 함께 죽고 함께 살게 하고자 함이라. 내가 너희를 향하여 하는 말이 담대한 것도 많고 너희를 위하여 자랑하는 것도 많으니 내가 우리의 모든 환난 가운데서도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치는도다.
고린도 교인들은 사도 바울에 대한 거짓 교사들의 악한 비난으로 인해 생긴 간격을 버리고 마음으로 그를 영접해야 했다. 바울은 그들에게 불의를 행하거나 해롭게 하거나 속여 빼앗은 일이 없었다. 모세도 하나님께 백성의 한 나귀도 취하지 않았고 한 사람도 해하지 않았다고 말했고(민 16:15), 사무엘도 백성에게 “내가 뉘 소를 취하였느냐? 뉘 나귀를 취하였느냐? 누구를 속였느냐? 누구를 압제하였느냐?”고 말했다(삼상 12:3). 디모데전서 3:8은 집사의 자격에 더러운 이익을 탐하지 않는 것을 말했다. 또 바울은 그 교인들과의 일치된 마음과 사랑으로 생사(生死)를 같이하기를 원했다. 교인들을 향한 바울의 담대함과 자랑은 그들을 사랑하고 신뢰하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그가 그들을 참으로 사랑하지 않고 신뢰하지 않았다면 담대히 말할 것도, 자랑할 것도 없었을 것이다. 그의 담대함과 자랑대로, 그의 사랑과 신뢰대로 그는 많은 환난 중에서도 그들로 인해 위로와 기쁨이 넘쳤다. 6, 7, 13절에도 이런 사실이 증거되어 있다.
목회자는 성도들에게 불의를 행하거나 해롭게 하거나 속여 빼앗지 말고 그들과 함께 죽고 함께 사는 심정을 가져야 한다. 성도들의 변화된 삶은 목회자에게 많은 위로와 기쁨이 된다. 한편, 성도들은 목회자를 마음으로 영접해야 한다. 목회자와 교인들은 다같이 정직하고 선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연합하여 주를 섬기는 교회를 이루어야 한다.
5-11절, 위로와 기쁨을 얻음--그들의 회개 때문에
[5-7절] 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치 못하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라. 그러나 비천한 자들(타페이누스)[낙담한 자들, 침체된 자들](KJV, NASB, NIV)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의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저의 온 것뿐 아니요 오직 저가 너희에게 받은 그 위로로 위로하고 너희의 사모함과 애통함과 나를 위하여 열심 있는 것을 우리에게 고함으로 나로 더욱 기쁘게 하였느니라.
바울의 전도 활동은 육신적 휴식이 없는 활동이었다. 그는 사방으로 환난을 당했다. 밖으로는 유대인들의 핍박과 이방인 우상숭배자들의 핍박이 있었고 안으로는 인간적 연약과 두려움이 있었다. 주님을 따르는 전도자의 길은 많은 고난을 통과해야 하는 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고 복음을 위해 충성되이 일하려 하다가 힘이 빠지고 마음이 침체된 자들을 위로하신다.
바울의 마음이 위로를 받고 기쁨을 얻은 것은 그의 협력자 디도가 그들로부터 돌아와서 그들에 대한 좋은 보고를 하였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위로이며 기쁨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세상에서 하나님만 바라며 가난하고 외롭게 사는 종들과 성도들을 도우시고 위로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이 세상에서 그들이 위로받을 데가 없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도우시고 위로하신다.
[8-9절] 그러므로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함은 그 편지가 너희로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먼저 쓴 편지에서 범죄자를 지적하고 책망한 것이 너무 심하여 그들이 낙심했을까봐 후회했으나, 그것이 잠시만 그들을 근심케 한 줄을 알고 이제 후회하지 않게 되었고 지금은 도리어 기뻐하고 있다. 그것은 그들이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르러 바울에게 어떤 징계도 받을 필요가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죄인을 포용한 문제에 대한 책망이 그 범죄자와 교회에 좋은 결과를 가져왔던 것이다.
[10절]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세상에는 두 종류의 근심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하나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요 다른 하나는 세상 근심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자기의 죄와 부족을 깨닫고 하는 근심이다. 이런 근심은 많이 할수록 좋다. 왜냐하면 그것은 회개와 구원에 이르기 때문이다. 시편 34:18,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시편 51:17,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그러나 세상 근심은 세상의 일들로 인한 근심과 염려, 즉 의식주의 염려, 건강의 염려, 경제의 염려, 사회 환경의 불안 등이다. 이런 근심은 마음과 몸의 건강을 해치고 믿음까지도 잃어버리게 할 것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이런 근심과 염려를 버려야 한다. 마태복음 6:31-34,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빌립보서 4:6-7,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우리는 세상의 모든 근심과 걱정은 버리고, 믿음으로 바르게 살지 못하고 성화(聖化)를 많이 이루지 못한 것만 근심하자.
[11절]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명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저 일에 대하여 일절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한 근심은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그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 빠르고 충실하게 순종하였다. 그들은 또 그들의 거룩함을 증거하기 위해 변명했고 범죄한 자의 죄와 그 죄를 포용한 자신들의 잘못을 인해 의분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과 징벌을 두려워했으며 하나님의 은혜와 의를, 그리고 그들의 지도자 바울을 사모하였다. 또 그들은 회개하기에 열심을 내었고 악한 자를 벌하였다. 그들은 그렇게 함으로 그들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려 하였다. 이것은 감사한 일이었다. 미련한 자는 교훈과 책망을 받으려 하지 않지만, 지혜로운 자는 겸손히 그것을 받아들인다. 잠언 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우리가 남에게 책망을 들을 때 그것이 우리에게 해당되지 않는 내용이면 참고하고 조심하면 될 것이고, 우리에게 해당되는 내용이면 받아들여 고치고 회개하면 될 것이다. 고린도 교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바울의 책망을 겸손히 받는 지혜로운 자들이었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복음사역자들에게 많은 고난 중에서도 위로와 기쁨을 얻게 하신다. 그것은 특히 범죄한 성도들의 회개와 순종을 통해서 온다. 둘째로, 우리는 의식주의 염려, 건강의 염려, 경제의 염려, 사회 환경의 불안 등 세상 근심을 다 버리고 다 하나님께 맡기고 오직 믿음의 견고함과 성화(聖化)를 위해서만 근심하자.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바른 교훈과 책망을 들을 때 거절하지 말고 겸손히 듣고 빠르고 충실하게 순종하는 지혜자가 되자.
12-16절, 위로와 기쁨을 얻음--그들의 순종 때문에
[12-13절]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그 불의 행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그 불의 당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오직 우리를 위한 너희의 간절함이 하나님 앞에서 너희에게 나타나게 하려 함이로라. 이로 인하여 우리가 위로를 받았고 우리의 받은 위로 위에 디도의 기쁨으로 우리가 더욱 많이 기뻐함은 그의 마음이 너희 무리를 인하여 안심함을 얻었음이니라.
바울의 편지의 결과, 바울을 향한 고린도 교인들의 진실함과 간절함이 확인되었다. 편지를 통한 그의 책망은 그들의 회개를 가져왔다. 이로 인해 바울 일행은 위로를 받았다. 뿐만 아니라, 바울이 그들에게 보냈던 디도의 마음이 그들로 인하여 안심함과 새 힘을 얻었기 때문에 바울은 더욱 많이 기뻐하게 되었다. 말씀의 봉사자의 위로와 기쁨은 성도들이 예수님 잘 믿고 믿음 안에서 순종하며 살 때 온다.
[14절] 내가 그에게 너희를 위하여 자랑한 것이 있더라도 부끄럽지 아니하니 우리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다 참된 것같이 디도 앞에서 우리의 자랑한 것도 참되게 되었도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진리를 말했고 디도에게 고린도 교인들에 대해 말한 말도 참되었다고 증거한다. 이것은 말씀의 일꾼들에게 꼭 필요한 간증이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항상 참말만 해야 한다. 잠언 15:28, “의인의 마음은 대답할 말을 깊이 생각하여도 악인의 입은 악을 쏟느니라.” 야고보서 3:1-2,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15-16절] 저가 너희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떪으로 자기를 영접하여 순종한 것을 생각하고 너희를 향하여 그의 심정이 더욱 깊었으니 내가 너희를 인하여 범사에 담대한 고로 기뻐하노라.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이 보낸 복음사역자 디도를 두렵고 떨림으로 영접하였고 그의 말을 순종하였다.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들의 바른 태도이다. 예수께서는 열두 제자들을 내보내시면서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라고 말씀하셨다(마 10:40). 또 그는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형제된 전도자들 중 지극히 작은 자 하나가 어려울 때 그를 돌아보는 것이 곧 주 예수를 위해 한 선한 행위라고 가르치셨다(마 25:35-40).
요한삼서에 보면, 디오드레베라는 사람은 교회에서 으뜸이 되기를 좋아하는 자이었다. 그는 전도자들을 영접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영접하려는 진실한 성도들을 교회에서 내어쫓기까지 하였다. 얼마나 악한 행동인가! 사도 요한은 그 서신에서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하나님에게서 나왔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고 교훈하였다(11절).
고린도 교인들을 향한 디도의 사랑의 심정은 그들의 진실한 영접과 순종을 인해 더욱 풍성해졌다. 복음의 일꾼이 주의 백성의 진실한 믿음과 순종을 볼 때 그들을 향해 사랑이 깊어지고 풍성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또 디도의 이런 보고를 받은 바울도 기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을 향한 신뢰와 담대함 때문에 바울은 기뻐하였다. 복음사역자들에게 고난과 핍박, 그리고 교회로 인한 근심도 많았지만, 또한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기쁨도 풍성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복음사역자들에게 많은 고난도 주셨지만 시시때때로 위로와 기쁨도 얻게 하셨다. 그것은 특별히 교인들이 그들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뜻을 전한 그들의 교훈에 순종할 때 생긴다. 그들이 주의 종들을 영접한 것은 그들을 보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것이요 그들이 주의 종들에게 순종한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한 것이다. 오늘날도 참 교회들 안에 바른 목양 관계가 이루어져야 한다.
[요나 3장 복음 성경말씀] 니느웨의 회개(욘 3: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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