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원문 강해

[마태복음 헬라어 성경말씀] 헤롯왕의 음모와 요셉의 애굽 도피(마 2:13-18)

엘벧엘 2022. 7. 2.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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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성경말씀은 마태복음 2장에서 헤롯 왕이 동방박사들에게 속았다는 것을 알고 예수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헤롯 왕이 아기 예수님을 죽이려고 할 때 하나님의 사자가 요셉에게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을 데리고 도피하라고 했습니다. 요셉은 마리아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신하게 됩니다. 헤롯 왕은 베들레헴과 그 지역에 있는 사내아이를 두 살부터 그 아래로 학살했습니다. 이것은 예레미야를 통해서 예언하신 말씀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했습니다.

 

헤롯 왕의 음모와 요셉의 애굽 도피(마 2:13-18)

 

13절 아나코레산톤 데 아우톤 이두 앙겔로스 퀴리우 파이네타이 카트 오나르 토 이오세프 레곤 에게르데이스 파랄레베 토 파이디온 카이 텐 메테라 아우투 카이 프게 에이스 아이큅톤 카이 이스디 에케이 헤오스 안 에이포 소이 멜레이 가르 헤로데스 제테인 토 파이디온 투 아폴레사이 아우토

=====2:13

 저희가 떠난 후에 - 본절의 '떠나다'는 동사는 12절의 '돌아가다'는 동사와 같은 의미로서 본절 이하의 사건과 긴밀한 연관성을 갖고있음을 암시한다. 따라서 주의  사자를 통한 애굽 피난 지시가 박사들이 떠난 얼마 후에 내려졌는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으나 어쩌면 박사들에게 지시가 임했던 시기에 같이 내려졌을 수도 있고 아니면 박사들이 떠난 그날 밤에 있었을 수도 있는 만큼 매우 근접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주의 사자가...현몽하여 - 요셉은 제2차로 주의 사자의 계시를 접하고 있다(1:20). 그런데 이번 계시의 요지는 당신의 아들인 메시아를 보호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를 나타내는 데 있었다.

   헤롯이...죽이려 하니 - 메시아에 대한 헤롯의 살해 음모가 이방인의 경배와 예물 바로 뒤에 다가왔다. 실로 이것은 예수의 생애 가운데 계속되는 배척과  수모(受侮)의 전조(前兆)가 되는 셈이다.

   일어나...애굽으로  피하여 - 여기서  '일어나'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겔데이스'는 조금도 여유를 두지 말고 곧바로 행하라는 촉급한 의미가 담겨 있다. 실로 유대인의  왕이요, 구원자로 오신 예수께서 유대 땅의 환영을 받지 못하시고(요 1:11), 마치 도망자의 모습으로 이방 땅에 급히 피하실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애굽은 당시 로마의 식민지로서 헤롯의 통치권밖에 있는 지역이며, 그 당시 약 100만 명 정도의 유대인 집단이  군집을 이루며 살고 있었다고 한다. 애굽 특히 알렉산드리아 지역의 헬라화 된 거주민들을 위해 헬라어로 된 구약인 70인 역(LXX)이  만들어진 것은 적어도 애굽에서의 유대인 지위가 상당히 인정받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한 예(例)이다. 한편 유대인의 애굽 피난 역사는 오래전부터 행해진 것이었다. 그곳은 일찍이 흉년으로 인해 아브라함(창 12:10)과 야곱(창 46:6)이 내려간  바 있으며, 솔로몬 사후 많은 유대인들이 그곳으로 피난하였고(왕상 11:40), 포로 시대에는 예레미야를 비롯한 많은 유대인이 그곳으로 갔으며(렘 26:21-23;43:7) 특히 신구약 중간기 때는 시리아의 학정에 의해 그곳으로 많은 유대인이  내려가는 등 애굽은 유대인이 피난하기에 적지가 되어 있었다. 따라서 예수의 식구들은  쉽게 애굽에 이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비 팔레스틴 계열의 외경 중 하나인 '예수 유년기의 복음'은 당시 애굽으로 내려간 예수의 각종  이적들을 소개하고 있다.

   내가...거기 있으라 - 아기 예수를 안은 요셉과 마리아는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애굽으로 간 것처럼 돌아와 때도 하나님의 명령을 기다려야만 했다. 즉 그들은 헤롯이 죽을 때까지만이 아니라 다시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있을 때까지(19, 20절) 애굽에서 인내하며 기다려야만 했던 것이다. 한편 이 지시는 요셉으로 하여금  하나님께서는 피난길 뿐만 아니라 피난 기간과 그 이후까지도 보호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했을 것이다.

14절 호 데 에게르데이스 파렐라벤 토 파이디온 카이 텐 메테라 아우투 뉘크토스 카이 아네코레센 에이스 아이귑톤

=====2:14

 요셉이 일어나서...애굽으로 떠나가 - 여기서 '일어나서'에 해당하는 '에게르데이스'는 수동태 제1 과거 시상으로서 주저함 없이,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곧바로 행동을 취한 것임을 나타낸다. 마치 1:24처럼 요셉의 절대적이고 즉각적인 순종이 부각되어 있다. 실로 요셉은 그 밤에 출발하여 애굽의 변경까지 약 120km나 되는 먼 여행을 시작해야만 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완전한 믿음이다(히 11:1, 6). '아기와 그의 모친'이란 구절은 본장에서 계속 나오는 표현으로서 하나님의 섭리와 보호하심이 추호(秋毫)도 실수가 없음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다.

15절 카이 엔 에케이 헤오스 테스 텔류테스 헤로두 히나 플레로데 토 레덴 휘포 투 퀴리우 디아 투 프로페투 레곤토스 엑스 아이귑투 에칼레사 톤 휘온 무

=====2:15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 헤롯은 추하고 심각한 질병으로 고생하다가 비참히 죽어갔다고 전한다. 이러한 헤롯의 죽음(B.C.4년)은 많은 사람들에게 해방을 가져다주었다. 그중에서도 특별히 하나님의 지시를 고대하던 마리아와 요셉은 아기와 함께 '나사렛'(23절)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그 외에도 초금욕주의자들인 에센파의 쿰란 종파 사람들은 B.C. 31년에 파괴되었던 그들의 본부에 돌아와 재건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요셉은 마리아와 아기를 데리고 애굽에서 체류하는 동안에 그곳에 살고 있던 동족들의 도옴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 유대인 탈무드에 따르면 애굽에는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유대 회당이 있었고 그곳을 통해 유대인들의 접촉이 많았으며, 더불어 직업을 구하는 일이나 각종 생활 정보도 나눌 수 있었다고 한다. 특히 같은 부류의 직업인들끼리는 쉽게 동화될 수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목수출신의 요셉은 애굽 생활 중에 쉽게 일자리를 얻어 생계를 꾸려갈 수 있었을 것이다. 

   이는 주께서 선지자로 말씀하신 바 - 구약에 능통한 유대인들을 향해 글을 쓰고 있던 마태의 독특한 문장 표현이다(1:22). 즉 마태는 구약의 예언과 계시가 예수 그리스도의 때에 완성되고 있음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여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는 호세아 선지자의 예언적 메시지(호 11:1) 예수의 생애와 접목시키고 있는 것이다.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 - 마태는 예수의 애굽 피난 사실을 11:1의 말씀과 일치시키고 있다. 사실 11:1에서 인용한 이 구절은 본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불러내신 사건을 언급한 말이다. 그러나 마태는 성령의 영감으로 그 사건을 예수께 적용시켰다. 즉 마태는 이스라엘(하나님의 자녀)의 역사가 예수(하나님의 독생자)의 생애 속에서 재현되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이처럼 구속사 전개의 정점인 예수의 개인적 생애에 신. 구약을 포함한 하나님의 자녀들의 역사가 다 포함되어 있음을 암시한 것은 예수의 사역이 단순한 민족적 해방에 그친 모세의 사역을 넘어서 전 인류의 영원한 구원을 위한 것임을 의미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예수는 신약에서 이스라엘의 원형으로 종종 나타난다. 몇 가지를 예시해 보면 (1) 이스라엘의 40년 광야 시험(신 8:2, 3)-예수의 40일 금식 기도(4:2), (2) 이스라엘은 열매 맺지 못한 포도나무(사 5장)-예수는 참 포도나무(요 15장), (3)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장자(출 4:22)-예수는 하나님의 맏아들(롬 8:29;히 1:6), (4) 이스라엘은 다윗의 골육(삼하 5:1)-예수는 다윗의 자손(1:1) 등이다. 또한 신약에서는 어디에서나 구약의 역사와 율법을 예언적 의미를 지닌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즉 '예언의 성취'라는 말은 그것이 구약과 연결되어 구약의 예표의 실체(원형)라는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따라서, 호 11:1은 단순히 출애굽만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이 구절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그리고 있고, 그 사랑은 참 이스라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전히 이루어질 것으로 보아야만 한다. 호세아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진행되는 동안에 펼쳐진 계시, 즉 하나님의 구속의 사랑이 그려진 그림과 같은 전형적인 계시의 일부분을 제공했고, 마태는 그 계시의 '완전한 의미'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생애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메시아 대망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이 차지하는 위치는 민족적, 혈통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는 데서 결정된다. 

16절 토테 헤로데스 이돈 호티 에네파이크데 휘포 톤 마곤 에뒤모데 리안 카이 아포스테일라스 아네일렌 판타스 투스 파이다스 투스 엔 베들레엠 카이 엔 파신 토이스 호리오이스 아우테스 아포 디에투스 카이 카토테로 카타 톤 크로논 혼 에크리보센 파라 톤 마곤

=====2:16

 이에 헤롯이...속은 줄을 알고 - 여기서 '속다'는 뜻의 '에네파이크'는 단순히 속다는 뜻 이상의 의미로서 '희롱(조롱)하다'는 강렬한 뉘앙스를 담고 있다. 따라서 박사들이 자기에게로 오지 않고 떠나버렸다는 사실을 뒤늦게 안 헤롯은 박사들의 태도를 기만 이상인 자신을 희롱한 사실로 여겼을 것이다. 박사들이 자신의 교활한 음모를 꿰뚫어 보고 몰래 달아남으로 자기를 앉아서 '바보처럼' 기다리게 했다는 생각이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인 헤롯을(1절) 못 견디게 했을 것이다.

   심히 노하여 - 여기서 '노하다'는 뜻의 헬라어 '뒤모오'는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분노하다는 뜻으로서 그 당시  헤롯의  활화산같이  꿇어 오르는 극렬한 분노를 예감케 해준다.

   사람을 보내어...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 헤롯의 칼날 같은 명령이 실행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베들레헴과 예루살렘 사이는 약 8km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며, 또 베들레헴은 조그마한 소도시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 지경에'는 베들레헴뿐 아니라 베들레헴 근교의 한적한  오두막까지를 포함한다.

   사내아이를...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 헤롯은 자기가 찾는 아이의 나이를 정확히 몰랐다. 따라서 그는 장차 유대인의 왕이 될 가능성이 있는 자를 모조리 살해하기 위해 살해 범위를 '2살 이하의 사내아이'로 한정시켰다. 여기서 '두 살부터'는 '별이 나타난 때'(7절)에 근거하는 바, 이에 대한 견해는 (1) 아이를 완전히 제거하고자 충분한 여유를 둔 것이다. (2) 박사들이 예루살렘까지 근 2년 동안이나 걸려 도착했다.  (3) 박사들의 귀국 후 2년 만에 살해했다 등이 있는데 분명하지 않다. 그리고 '2살 이하'란 말이 갓 태어난 신생아까지를 포함한다는 것에 대부분의 학자들은 회의적이다. 대신 15개월 내지 20개월까지로 보기도 하며 좀 더 넓게 6개월에서 20개월 사이까지로 보기도 한다 당시의 분노에 찬 상황으로 보아 후자의 견해로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한편 당시 살해된 유아의 수효에 대해 대단히 많았다는 견해를 피력하는 학자도 있고 심지어 14,000명 정도로 추산하는 전승도 있다. 그러나 베들레헴이 조그마한 도시요 당시 주민이 1,2천 명 정도였다는 점을 들어 단지 수십 명 안팎이었다고 보는 견해가 타당한 듯하다. 그런데 헤롯의 이러한 잔인한 살상극은 '유대인의 왕'에 대한 영적 무지의 결과이다. 즉 예수의 진상 도래는 로마 정복을 위한 정치적 목적에서가 아니라 죄의 속박에서 이스라엘을 해방하기 위해 오신 것이었다. 그러나 이를 모르는 헤롯은 살인마의 탈을 또 한 번 쓰게 된 것이다. 한편 이 사건에 대하여 요세푸스는 다루지 않고 있어 진위를 의심하는 사람도 있으나, 마크로비우스의 저서 '축제'에 보면 아구스도 황제가 '헤롯의 명령으로 시리아 지역의 두 살 이하 아이들이 살해당할 때 그 속에 헤롯 자신의 아이도 포함되었다'하면서 '차라리 그의 아들이 되기보다 돼지가 되는 편이 낫겠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아무튼 권능과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헤롯의 손에서 예수를 거뜬히 건져내셨고, 세상의 왕들이 꾸미고 있는 음모에 대해서 가소로이 비웃고 계셨을 것이다(시 2:1-6).

17절 토테 에플레로데 토 레덴 휘포 이에레미우 프로페투 레곤토스

=====2:17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로 - 마태복음에 예레미야라는 이름이 세 번 나오며(16:14;27:9), 그 밖에는 신약성경 어느 곳에도 나오지 않는다.

18절 포네 엔 라마 에쿠스데 드레노스 카이 클라우드모스 카이 오뒤르모스 플뤼스 라켈 클라이우사 타 테크나 아우테스 카이 우크 에델렌 파라클레데나이 호티 우크 에이신

=====2:18

 라미에서 슬퍼하며...라헬이...애곡하는 - 예레미야가 이 예언(렘 31:15)을 선포한 시기(여호야김 통치 초기)를 고려해 볼 때(렘 30:1-33:26) 주전 586년에 멸망한 유다와 베냐민의 포로 장면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라헬은 야곱의 아내이자, 요셉과 베냐민의 모친으로서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유대인의 전형적인 어머니로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라마는 베냐민 지파 성읍이며(수 18:25)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에서 가까우며 벧엘로 가는 도중에 위치하는 곳이다. 바로 이 부근에 라헬의 무덤이 있는 셀사가 있었다(삼상 10:2). 이러한 정황들을 익히 알고 있는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수를 바라보며 라헬이 그녀의 무덤 속에서 자신들의 범죄로 인해 포로가된 자손들, 즉 '그 자식'들이 끌려가는 모습(렘40:1,2)을 바라보면서 통곡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즉 이 구절은 옛날 이스라엘의 조상 야곱이 가나안에 정착할 당시 라마에서 에브라다(베들레헴)로 가는 도중에 자식이 없어 슬퍼했었던 라헬이 베냐민을 낳다가 산고로 인해 죽은 사실(창 35:19,20)을 포로됨에 비유하여 예레미야가 시적으로 표현하였다. 그리고 다시 이것을 마태가 베들레헴 유아 학살 사건에다 관련시킨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마태가 여기에서 바벧론 포로 장면을 연결시키고 있는지 이해할수 있다. 다시 말해서 이 두 사건들의 초점은 베들레헴에 맞추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어미들(라헬)이 흘리는 '눈물'에 맞춰져 있는 것이다. 바벧론 유수 때에는 다윗의 혈통에서 이어지던 왕권이 물러나고 이방의 속박으로 인하여 흘리던 탄식의 '눈물'이, 또 다른 이방인(헤롯은 에돔인이었음)의 학정으로 살해된 베들레헴(다윗성이라고 불리는, 삼상 16:1) 아이들이 어머니가 흘리는 '눈물'로 그 절정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는 곧 그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다윗의 후손 예수가 '유대인의 왕'이 되어 이스라엘을 다스림으로 오랜 포로 생활이 끝나고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언약해 주신 새 언약(26:28;렘 31:31-34)이 온 이스라엘에 선포될 것이기 때문이다.

[헬라어 마태복음 성경 좋은 말씀 ] 동방박사의 예수님 경배(마 2:9-12)

 

[헬라어 마태복음 성경 좋은 말씀 ] 동방박사의 예수님 경배(마 2:9-12)

오늘의 성경말씀은 마태복음 2장에서 동방박사들이 별을 보고 아기 예수님이 탄생하신 것을 알고 베들레헴에 가서 경배하고 있습니다. 헤롯 왕은 예수님이 탄생하신 것을 싫어하여 죽이려고 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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