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원문 강해

[빌레몬서 헬라어 성경말씀] 오네시모를 용서하라는 바울의 부탁(몬 1:15-25)

엘벧엘 2021. 12. 11.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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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레몬서 1장에서 바울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보면서 용서해 주기를 부탁하고 있습니다. 오네시모가 빌레몬에게서 도망쳤는데 바울은 예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구원받게 하고 다시 빌레몬에게 돌려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 안에서 같은 형제가 되었으니 오네시모를 용서하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쉬운 일이 아니지만 예수님 안에서 빌레몬은 오네시모를 용납하여 받아들이게 됩니다.

 

오네시모를 용서하라는 바울의 부탁(몬 1:15-25)

 

15절 타카 가르 디아 투토 에코리스데 프로스 호란 히나 아이오니온 아우톤 아페케스

=====1:15

  개역성경에는 '가르'('왜냐하면')가 생략되어 있다. 본절은 앞절에서 바울이 빌레몬에게 오네시모의 문제를 자발적으로 해결하기를 원하는 이유를 제시한다. 한편 '타카'('아마도') 역시 개역성경에는 생략되어 있는데 바울은 '타카'를 사용함으로써 오네시모의 도망 사건 배후에 있는 하나님의 섭리를 암시하고자 했다(O'Brien, Vincent).

   떠나게 된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코리스데'는 '코리조'('분리시키다')의 부정 과거수동태로서 하나님의 숨겨진 섭리가  오네시모의 도망 사건 배후(背後)에 있었음을 암시한다(Lohse, Vincent). 히브리어에서는 이런 수동태를 소위 '하나님의 수동태'라고 부른다(O'Brien). 이는 이미 행해진 일에 대해 책임을 지는 인격자로서의 하나님의 숨겨진 의도를 가리키는 데 사용된다. 바울은 오네시모가 도망간 것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떠나게 된' 것이라 묘사함으로 오네시모 개인의 잘못에 대한 빌레몬의 분노를 누그러뜨릴 뿐만 아니라 빌레몬의 관심을 오네시모 사건에서 잘못된 일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섭리로 옮기고 있다.

   영원히 두게 함이니 - '두게 함이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페케스'는 빌레몬과 오네시모의 관계를 나타내는데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새로운 관계인 한 형제로서의 관계를 의미한다(16절). 또한 '아페케스'는 '영원히'(아이오니온)와 상관성을 갖는다. 그러므로 '영원히'에 해당하는 '아이오니온'은 '프로스 호란'('잠시')과 대조되는 개념으로서 오네시모의 도망이 극히 짧은 시간에 불과한 반면에 그것을 통해서 이루어진 빌레몬과 오네시모의 한 형제 관계는 영원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16절 우케티 호스 둘론 알르 휘페르 둘론 아델폰 아가페톤 말리스타 에모이 포소 데 말론 소이 카이 엔 사르키 카이 엔 퀴리오

=====1:16

 종과 같이 아니하고...사랑받는 형제로 둘 자라 - '종과 같이 아니하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우케티 호스 둘론'에서 바울의  세심한 언어적 표현을 볼 수 있다. 바울은 '호스'('같이')를 사용하여 '종'의 신분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아니하면서 전과는 다른 신분 즉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로서 오네시모를 대해야 할 것을 권고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바울이 '오네시모'를 '사랑받는 형제'로 부르고 있는 데서 분명히 나타난다.

   내게 특별히 그러하거든 하물며 육신과 주 안에서 상관된 네게랴 - 바울은  본절에서 자신과 오네시모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빌레몬에게 당연히 오네시모를 형제로  받아들여야 할 것을 권고한다. '특별히'에 해당하는 헬라어 '말리스타'는 '말라'('매우')의 최상급으로서 '무엇보다도 가장'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바울이 오네시모를 얼마나 사랑하는 형제로 생각하고 있는가를 나타낸다. 또한 바울은 '빌레몬'과 '오네시모'의 관계를 '하물며'(포소 말론)라는 부사를 사용하면서 부연 설명한다. '포소말론'은 '말리스타'보다 더 강한 뜻으로 바울이 오네시모를 사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사랑해야 함을 나타낸다. 그 이유는 빌레몬과 오네시모가 '육신과 주 안에서' 서로 상관된 자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육신 안에서'는 '인간적 관계'  즉 '주인과 종'의 외적  관계를 의미한다(O'Brien, Vincent). 반면에 '주 안에서'는 '영적 관계'로서(Vincent)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임을 시사한다.

17절 에이 운 에메 에케이스 코이노논 프로살라부 아우톤 호스 에메

=====1:17

 그러므로 - 이 접속사는 본절 이하의 내용이 앞서 오네시모에  대해  변증한  내용(11-16절)에 대한 결론임을 의미한다.

   네가 나를 동무로 알진대 - 바울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영접하라고 호소하기 전에 호소의 근거로서 빌레몬과 자신과의 밀접한 관계를 상기시킨다. '동무'로 번역된 헬라어 '코이노논'은 '공통적 관심과 사역을 공유하는 사람'으로서 '동료'(partner)를 의미한다. 이것은 본서의 앞에서 설명한 '동역자'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1절). 그러나 '코이노논'은 결코 사업상 관계나 우정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교제'(코이노니아)를 전제로 한 동료 관계를 의미한다(Lohse, O'Brien).

   저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고 - '내게 하듯'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스 에메'를 통해서 바울은 자신과 오네시모를 동일시(同一視)하고 있다. 이처럼 바울이 빌레몬에게 자신을 영접하는 것과 동일하게 오네시모를 영접해 줄 것을 호소하는 것은 두 가지 차원에서 이해될 수 있다. (1)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행해지는 일반적인 영접이다. 바울은 로마 교인들에게 서로 영접하라고 권면한 바 있다(롬 15:7). '영접하는 행위'는 그리스도인들의 의무이다(Bruce). (2)'동역자'로서의 영접이다. 바울이 빌레몬과의 관계를 '동역자'로 밝히고 나서 오네시모를 자신과 같이 영접하라고 빌레몬에게 권면하는 것은 오네시모를 바울의 동료로서 영접하라는 의미이다(O'Brien, Bruce). 왜냐하면 바울은 이미 오네시모가 자신을 돕고 있었음을 암시하였기 때문이다(11-13절). 따라서 바울은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그리스도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역을 감당하는 동료로서 영접하기를 호소하고 있다(Bruce).

18절 에이 데 티 에디케센 세 에 오페일레이 투토 에모이 엘로게이

=====1:18

  개역성경에는 '데'('그러나')가 생략되어 있다. 바울은 자신을 영접하는 것과 같이 오네시모를 영접하기를 호소한 후 이야기를 발전시켜서 오네시모가 도망가면서 빌레몬에게 끼쳤을지도 모를 재산상의 손해에 대한 책임에 대해 언급한다.

   저가 만일...내게로 회계하라 - 오네시모가 끼친 손해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오네시모가 빌레몬의 재산을 가지고 도망갔다(Lightfoot, Vincent,  Caird). (2) 오네시모의 도망으로 인해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한 데에서 손해가 발생했다(Martin, Gayer, Lohse). 두 견해 중 후자가 더 타당하다. 전자는 추론(推論)에 불과하다(O'Brien). 바울은 오네시모의 도망 자체로 인해서 생겨난 손해를 오네시모의 아버지로서 회계할 것임을 빌레몬에게 밝히고 있다.

19절 에고 파울로스 에그랍사 테 에메 케이리 에고 아포티소 히나 메 레고 소이 호티 카이 세아우톤 모이 프로소페일레이스

=====1:19

 나 바울이 친필로 쓰노니 - '나 바울'(에고 파울로스)은 이중적 언급으로 강조를 나타낸다. '친필로 쓰노니'(에그랖사 테 에메 케이리)에서 '에그랖사'는 '그라포'('기록하다')의 부정 과거로서 일반적으로 '서명'을 할 때 사용된다(Lightfoot). '친필'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 본절 이후의 내용만 바울이 썼다(Dibelius-Greeven, Friedrich). 그리고 본서의 나머지 내용은 대필(代筆)되었다. (2) 바울이 본서 전체를 썼다(Lightfoot, Roller, Muller). 그러나 본절만을 가지고서는 바울이  전체를  썼는지, 나머지는 대필시키고 이 부분만 썼는지는 확실하지 않다(O'Brien, Vincent, Lohse).

   너는 이 외에 네 자신으로 내게 빚진 것을 - '빚진'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소페일레이스'는 앞절에서 언급한 '오페일로'('빚지다')와 '프로스'('더하여')의 합성 동사이다(Robertson). 여기서 '프로스'는 '빌레몬이 바울에게 진 빚이, 바울이 오네시모로 인해서 빌레몬에게 갚겠다고 한 빚보다 더 큰 빚'임을 시사한다(Bruce). 이것은 바울이 빌레몬을 믿음 안에서 낳은 영적 아버지임을 암시한다(Lightfoot, O'Brien). 빌레몬의 개종은 바울이 골로새 교회에 파송한 에바브라에 의해서 이루어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바울이 본절에서  빌레몬의 개종의 직접적 원인자로 자신을 강력하게 언급하는 것으로 보아 바울이 빌레몬을 직접 만났을 것이다(Hendriksen, O'Brien). 그러므로 바울은 본절에서 빌레몬의  개종의 빚에 대해 언급함으로 오네시모가 개종될 때에도 같은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경험하였다는 사실을 빌레몬으로 하여금 이해시키고 있다. 즉 이러한 사실들을 이해시킴으로써 바울은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그리스도 안에서 용납하고 한 형제로 받아들일 것을 권고한다.

20절 나이 아델페 에고 수 오나이멘 엔 퀴리오 아나파우손 무 타 스플랑크나 엔 퀴리오

=====1:20

  본절은 바울이 오네시모에 대해 빌레몬에게 변호하고 호소해왔던 것에 대한 결론이다.

   오 형제여! - 바울은 결론적으로 호소를 끝맺기 전에 다시(7절) '형제'라고 부름으로 애정 어린 말로 빌레몬에게 호소한다.

   나로 주 안에서 너를 인하여 기쁨을 얻게 하고 - '기쁨'에 해당하는 헬라어 '오나이멘'은  일반적으로 '자식의  도리'를 언급할 때 사용되었다(Lightfoot). 바울은 이 표현을 통해서 빌레몬이 '주 안에서' 낳은 아들로서 영적 아버지인 자신의 호소에 순종함으로 기쁨이 되게 하기를 바라고 있다.

   내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하게 하라 - 바울은 앞서 빌레몬이 성도들에게 베푼 사랑으로 인해 성도들이 평안함을 갖게 되었던 것처럼(7절) 오네시모를 자신과 같이 영접하여(17절) 평안함을 얻게 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

21절 페포이도스 테 휘파코에 수 에그랍사 소이 에이도스 호티 카이 휘페르 호 레고 포이에세이스

=====1:21

  나는 네가 순종함을 확신하므로 - '순종함'에 해당하는 헬라어 '휘파코에'는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순종'(롬 6:16)이나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고후 7:15;10:6)을 나타낼 때 사용되었다. 그래서 혹자는 바울이 빌레몬에게 호소한 것이 구속력(拘束力)이 있는 권위를 내포한 것이라고 주장한다(Lohse). 그러나 바울은 본서의 처음부터 사도적 권위에서가 아니라 사적으로 빌레몬의 이해와 관용에 호소하였다(14절). 따라서 빌레몬이 순종할 것이라고 바울이  확신했던 것은 구속력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사랑 안에서 하나님의 뜻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실천을 간청한 것에서 오는 확신이었다(O'Brien).

   네가 나의 말보다 더 행할 줄을 아노라 - 바울은 '더'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지시하지 않는다. 이것은 오네시모의 법적인 노예 해방뿐만 아니라 복음 사역에의 참여에 관한 것으로 여겨진다.

22절 하마 데 카이 헤토이마제 모이 크세니안 엘피조 가르 호티 디아 톤 프로슈콘 휘몬 카리스데소마이 휘민

=====1:22

  개역성경에는 '하마'('동시에')가 생략되어 있다. '하마'는 앞절에서 바울이 간절히 기대한 것과 동시에 또 다른 바울의 요구가 본절에 있음을 시사한다.

   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라 - '처소'에 해당하는 헬라어 '크세니안'은 본래 '환대'나 '대접'을 의미하나 본절에서는 '손님이 거할  방'을 의미한다(O'Brien). 바울이 빌레몬에게 자신이 머무를 방을 부탁하는 것은 문자적 의미보다는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즉 당시에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던 바울은 후에 자신이 빌레몬을 방문할 때에 빌레몬이 바울을 편안히 맞이할 수 있는 상태에 있게 되기를 부탁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곧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받아들이는 것을 암시한다.

   너희 기도로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게 하여 주시기를 바라노라 - '기도'에 해당하는 '프로슈콘'은 '타인을 위한 간구' 곧  '중재 기도'를  의미한다. 또한 '너희'(휘몬)는 복수로서, 그 중재 기도가 단순히 빌레몬뿐만 아니라 압비아, 아킵보, 그리고 교회의 다른 성도에 대한 기도임을 암시한다. 한편 '바라노라'에 해당하는 '엘피조'는 바울이 곧 감옥에서 풀려나게 될 것을  확신하고 있음을 시사한다(O'Brien). 그 방법과 때는 불확실하나 중재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며(행 12:4-19), 풀려나기를 바라는 이런 바울의 소망은 자신을 위함이 아니라 골로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유익을 끼치기 위함이었다.

23절 아스파존타이 세 에파프라스 호 쉬나이크말로토스 무 엔 크리스토 이에수

24절 마르코스 아리스타르코스 데마스 루카스 호이 쉬네르고이 무

=====1:2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문안하느니라 - 본절에서 에바브라에게 사용된 '나와 함께 갇힌 자'라는 호칭은 골로새의 '아리스다고'에게도 적용된다(골 4:10). 이 호칭이 '그리스도에 의해 사로잡힌 자로서의 동역자'라는 비유적 의미로 사용될 수도 있겠지만 본절에서는 '에바브라'가 바울과 함께 실제로 감옥에 갇혔음을 시사한다. 더욱이 본절의 '쉬나이크말로토스'('함께 갇힌 자')는 다음 절에 언급될 '쉬네르고이'('동역자들')와 분명히 구별되기 때문에 굳이 비유적인 의미로 이해할 필요는 없다. '에바브라'는 골로새에 파송된 바울의 대표자로서 골로새의 복음 전도자이며), 골로새 교회의 설립자였다(골 1:7ff.;4:12ff.). 한편 바울은 동역자로서'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를 언급하는데, 이들은 골로새서에서도 문안 대상으로 나타난다(골 4:10,14). 이것은 빌레몬의 가족이 골로새 교회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음을 나타낸다. 바울은 동역자들의 문안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동역자들 간에 관심을 가질 것을 강조한다.

25절 헤 카리스 투 퀴리우 헤몬 이에수 크리스투 메타 투 프뉴마토스 휘몬 아멘 프로스 필레모나 에그라페 아포 로메스 디아 오네시무 오이케투

=====1:25

  너희 심령과 함께 할지어다 - '너희'에 해당하는 헬라어 '휘몬'은 복수로서 빌레몬은 물론 그의 가족과 섬기는 교회 전체를 가리킨다. 한편 본절에서 '심령'으로 번역된 '프뉴마토스'는 본절의 '너희'와 같은 의미이다 바울은 본절에서 서신을 끝맺기 전에 빌레몬과 그의 가족 그리고 교회에 축복하고 있다.

[헬라어 성경 좋은 말씀 디도서] 거짓 교사에 대한 경계 말씀(딛 1: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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