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요한은 마지막 때에 적그리스도를 경계해야 할 것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때나 지금이나 적그리스도는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마지막 종말이 될 때 예수님을 부인하는 적그리스도가 출현하게 됩니다. 우리는 거짓 이단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율법의 의를 강조하는 사람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행위로 구원 얻을 수 있다고 말하는 자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이루어집니다.
적그리스도에 대한 경계 말씀(요이 1:7-13)
7절 호티 폴로이 플라노이 에이셀돈 에이스 톤 코스몬 호이 메 호몰로군테스 이에순 크리스톤 에르코메논 엔 사르키 후토스 에스틴 호 플라노스 카이 호 안티크리스토스
=====1:7
개역성경에는 '호티'('왜냐하면')가 생략되어 있다. 이는 사랑과 진리의 관계에 대해 언급한 4-6절까지의 내용과 7-11절에서 언급될 '미혹하는 자와 적그리스도에 대한 경고'가 상관관계를 맺고 있음을 시사한다. '진리와 사랑'은 그리스도인이 갖추어야 할 기독교의 가장 중심적인 요소로서 이를 부인하거나 거부하는 자들은 곧 미혹하는 자이며 적그리스도들이다. 본절은 요일 2:23,27과 4:1-3을 반영한다.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 '많이'로 번역된 헬라어 '폴로이'는 4절에 나타난 '너의 자녀 중에'에서 암시된 '몇몇'(티나스)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이는 수신자들이 속한 교회에서 진리를 따라 살아가는 자들은 극히 소수에 불과했으나 미혹하는 자를 따라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인하는 자들은 매우 많았음을 시사한다. 한편 '나왔나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엑셀돈'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1) 미혹하는 자들이 자신들의 무리를 형성하기 위하여 교회에서 나왔다는 의미로 해석된다(요일 2:19). (2)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에게서 나와 세상에 들어오셨고(요 17:18; 20:21; 요삼 1:7) 같은 단어가 사용되는 것으로 보아 미혹하는 자들이 잘못된 자신들의 가르침을 전파하기 위하여 나왔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 본절은 요일 4:2를 반영한 것으로 미혹하는 자의 정체를 나타낸다. 본절과 병행을 이루는 요일 4:2에서는 완료 분사인 '엘렐위도타'('오신 것을')가 사용되어 그리스도께서 온전히 육체로 세상에 오셨음을 나타내나 본절에서는 현재 분사인 '에르코메논'('임하심을')이 사용되어 미래 시제의 의미 즉, 그리스도의 재림을 암시한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본절이 그리스도의 재림을 시사하는 것으로 이해할 이유가 없다. 요한이 요일 4:2에서와 같이 완료 시상을 사용하지 않고 현재 시상을 사용한 것은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이 초시간적인 사건임을 나타내기 위함이다(Barker, Marshall, Stott, Brooke, Alford). 미혹하는 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셨음을 부인하는 자들이다.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후토스 에스틴 호 플라노스 카이 호 안티크리스토스) - 본문에는 관사 '호'가 미혹하는 자와 적그리스도에 대해 수신자들이 잘 알고 있었음을 시사한다(Smalley). 이러한 이단자들은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자로서(요일 2:18,22,26)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교제를 회복한 그리스도인들을 파괴(破壞)시킨다(9절).
8절 브레페테 헤아우투스 히나 메 아폴레소멘 하 에이르가사메다 알라 미스돈 플레레 아폴라보멘
=====1:8
너희는 너희를 삼가 우리의 일한 것을 잃지 말고 오직 온전한 상을 얻으라. - '우리의 일한 것을'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 혹자는'너희가 일한 것을'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what you have worked for, NIV, RSV, Stott, Bultmann, Schnackenburg). (2) 혹자는 '우리가 일한 것을'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which we have wrought, KJV, NEB, RV, JB, Brooke, Marshall, Westcott).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한 듯하다. 만약 수신자들이 미혹하는 자의 속임수에 넘어가 그리스도를 대적한다면 요한을 비롯한 많은 사도들이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해 수고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기 때문이다(갈 4:11,19, Barker). 한편 '온전한 상'의 헬라어 '미스돈 플레레'는 유대적인 표현으로(LXX 룻 2:12) 신약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의 신실한 봉사에 대한 보상을 가리킨다. 본절에서 '온전한 상'은 그리스도인이 신실하게 행한 진리와 사랑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온전한 영생의 보상을 의미한다(벧전 1:9; 요일 4:14-16, Smalley).
9절 파스 호 파라바이논 카이 메 메논 엔 테 디다케 투 크리스투 데온 우크 에케이 호 메논 엔 테 디다케 투 크리스투 후토스 카이 톤 파테라 카이 톤 휘온 에케이
=====1:9
지내쳐 그리스도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마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이 사람이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 - 미혹하는 자와 적그리스도를 따라 행할 때 온전한 상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함을 강조한 앞절에 이어 본절은 그리스도의 교훈에 거하지 않으면 하나님조차도 상실하게 됨을 나타낸다. '지내쳐'로 번역된 헬라어 '프로아곤'은 진리를 넘어서 지나치게 나아간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미혹하는 자들이 스스로 믿음의 초보 상태를 벗어나 진보되고 성숙된 믿음을 소유하였다고 주장하는 잘못된 모습을 나타낸다(Stott, Smalley). 한편 '그리스도의 교훈'에 해당하는 헬라어 '테 디다케 투 크리스투'에서 나타난 소유격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 혹자는 주격적 소유격으로 해석하여 '그리스도의 교훈'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Westcott, Stott, Brooke, Schnackenburg). (2) 혹자는 목적격적 소유격으로 해석하여 '그리스도에 관한 교훈'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Smith, Bultmann, Marshall, Smalley). 두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닌다. 왜냐하면 두 가지 견해가 불가 분리의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가리키는 그리스도에 관한 교훈과 그리스도께서 명령하신 '서로 사랑하라'는 교훈은 결코 분리될 수 없으며 전자는 믿음의 근본을 이루는 진리를 나타내며 후자는 진리에서 비롯된 믿음의 표현을 나타낸다(Barker).
10절 에이 티스 엘케타이 프로스 휘마스 카이 타우텐 텐 디다켄 우 페레이 메 람바네테 아우톤 에이스 오이키안 카이 카이레인 아우토 메 레게테
=====1:10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 - '이 교훈'은 앞절에서 언급된 그리스도의 교훈을 가리키는 것으로 요한이 본서에서 특히 강조하는 '진리와 사랑'을 의미한다. 한편 본절의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는 명령은 요한의 교훈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왜냐하면 요한은 다른 사도와는 달리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특히 강조하며 나그네 된 자들을 환대해야 함을 강조했기 때문이다(요삼 1:5-8). 그러나 본문의 '들이지도 말고'는 사적(私的)인 환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신약성경에서 '집'은 일반적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만났던 장소로서(롬 16:5; 고전 16:19; 골 4:15; 몬 1:2) 미혹하는 자들을 '집으로 받아들이는 행위'는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미혹하는 자들을 공식적으로 환대하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Stott, Smalley). 그러기에 요한은 교묘하게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고 거짓된 진리를 자랑하며 선전하는 자들을 강력하게 거절할 것을 권면한다.
11절 호 가르 레곤 아우토 카이레인 코이노네이 토이스 에르고이스 아우투 토이스 포네로이스
=====1:11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예하는 자임이니라. - 본절은 미혹하는 자를 받아들이지도 말고 인사하지도 말라는 명령에 대한 이유이다. 미혹하는 자들과의 인사는 그들과의 만남의 시작이나 혹은 끝을 의미하는 것으로 미혹하는 자들과의 교제를 의미한다(Smalley). 그들과의 교제는 그들이 저지르는 악한 일 즉, 교리적으로 그리스도께서 육체적으로 오심을 부인하는 죄와 윤리적으로 타인의 고난에 동참하는 사랑의 중요성을 부인하는 죄를 초래하게 된다. 이러한 행위에 참여하다가는 온전한 상을 상실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조차도 잃어버리고 영원한 파멸을 향하게 된다(마 6:24; 고전 10:20).
12절 폴라 에콘 휘민 그라페인 우크 에불레덴 디아 카르투 카이 멜라노스 알라 엘피조 엘데인 프로스 휘마스 카이 스토마 프로스 스토마 랄레사이 히나 헤 카라 헤몬 에 페플레로메네
=====1:12
내가 너희에게 쓸 것이 많으나 종이와 먹으로 쓰기를 원치 아니하고 오히려 너희에게 가서 면대하여 말하려 하니. - '원치 아니하고'의 헬라어 '우크 에불레덴'은 서간체 단순 과거이다. 이는 수신자들이 서신을 받아보았을 때를 기준으로 하여 요한이 본 서신을 기록하였음을 나타낸다. 한편 '면대하여'로 번역된 헬라어 '스토마 프로스 스토마'는 문자적으로 '입과 입으로'라는 의미로 '종이와 먹으로 쓰기를'과 대조를 이루는 표현이다. 요한은 본절에서 수신자들에게 전해야 할 말이 많으나 더 이상 서신으로 교제를 나누지 아니하고 직접 만나기를 원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는 너희 기쁨을 충만케 하려 함이라. - 본문은 요한이 서신을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수신자들을 만나기를 원하는 이유이다. 그것은 온전한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이다. 이 기쁨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그리스도 인간의 교제를 통해서 성취될 수 있다(요일 1:3,4).
13절 아스파제타이 세 타 테크나 테스 아델페스 수 테스 에클레크테스 아멘 이오안누 에피스톨레 듀테라
=====1:13
택하심을 입은 네 자매의 자녀가 네게 문안하느니라. - 본절의 마지막 인사는 본서 처음에 나타난 인사인 '택하심을 입은 부녀와 그의 자녀에게'와 병행(竝行)을 이룬다(1절). '수'('네')와 '세'('네게')는 집합적인 의미를 지닌 단수로서 수신자들이 속한 그리스도인 공동체 전체를 가리킨다(Marshall, Smalley, Barker).
[헬라어 성경 강해 요한일서] 빛 가운데 행동하는 신앙(요일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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