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원문 강해

[헬라어 성경 요한삼서] 디오드레베의 악행에 대한 심판(요삼 1:9-15)

엘벧엘 2021. 10. 31.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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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요한은 디오드레베의 악행을 알고 심판을 하게 됩니다. 디오드레베는 교회에는 으뜸 되기를 좋아했습니다. 복음을 전파하는 자들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교회에서 복음 전하는 자들을 맞이한 성도들도 쫓아냈습니다. 요한은 이런 디오드레베를 심판하러 간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복음 전하는 자들을 귀하게 보아야 합니다. 

 

디오드레베의 악행에 대한 심판(요삼 1:9-15)

 

9절 에그랍사 테 엑클레시아 알르 호 필로프로튜온 아우톤 디오트레페스 우크 에피데케타이 헤마스

=====1:9

 내가 두어 자를 교회에게 썼으나. - '두어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티'는 가이오에게 보내고 있는 본서 이전에 다른 편지 하나가 보내졌음을 보여준다. 이 편지에 대해 혹자는 요한이서라고 주장하지만, 요한이서가 영지주의의 그릇된 가르침에 대해 강하게 대항하고 있는데 반해  본서에는 이단의 주장이 직접적으로 나타나 있지 않기 때문에 타당치 않다. '썼으나'의 헬라어 '에그라프사')는 과거에 이미 완료된 것을 의미하므로 이 편지는 본서 이전에 보내진 것으로 일련의 형제들에 의해 전해졌고 그들이 돌아와서 장로에게 보고하는 과정에서 가이오가 언급된 듯하다(3절). 요한이 먼저 보낸 '두어 자'의 내용은 명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9,10절로 추측할 수 있다. 즉 그것은 보내는 선교사들을 접대해 줄 것과 그들의 여행을 지원해 달라는 요청이었던  듯하다. 이러한 내용의 편지는 오만한 디오드레베에 의해서 무시되었다. 혹자는 가이오가 디오드레베와 같은 지역 내의 다른 교회 회원으로 그 모임의 지도자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가이오가 디오드레베가 속한 교회의 일원일 가능성이 더 크다. 왜냐하면 가이오를 디오드레베가 지도자로 있는 회중 중의 한 일원으로 볼 때, 9,10절의 내용이 보다 더 분명히 이해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가이오가 어려운 상황으로 몰리게 되었음을 설명되기 때문이다.

   저희 중에 으뜸 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접대하지 아니하니. - 아마도 디오드레베와 그의 행위는 요한이 이 서신을 쓰게 된 중요 동기인 듯하다). 디오드레베가 요한의 제안을 거절한 이유에 대한 견해는 네 가지이다. 다음 네 가지 견해 중 전반의 두 가지 견해는 정치적인 이유이며 후반의 두 가지 견해는 교리적인 이유이다. (1) 혹자는 디오드레베가 속사도 시대에 나타나는 직임으로 사도들의 후계자요 지역 교회의 최고의 권위를 가지는 장로, 감독의 위치에 대해 야심이 있었음을 지적한다. 디오드레베는 그 지역의 합법적인 초대 감독이었던 듯하며 요한의 정치적 간섭에 민감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2) 혹자는 디오드레베가 교회 내에서 카리스마적 지도자로 부각되었음을 지적한다. 그는 조직화된 교회적 권위를 이어받은 요한에게 반발하여, 그 세력을 배제하기 위해 형제들을 지원하는 일을 거부했던 것 같다. (3) 혹자는 디오드레베가 요한일서에서도 공격되는(요이 1:7-11) 적그리스도의 하나로 해석한다. 즉 디오드레베는 사도 요한의 공동체에서 선교사로 파송되었으나 후에 그의 이단적인 견해가 드러났다고 보는 것이다. (4) 혹자는 장로가 초기 영지주의의 이단적 성향을 가져서 디오드레베는 감독으로 교회에서 그와 같은 장로를 쫓아냈고,  동일한  이유로 회중으로부터 일련의 형제들을 쫓아낸 것으로 생각한다. 네 가지 견해 중 처음 두 가지 견해가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니는 듯하다. 디오드레베가 '으뜸이 되기를 좋아한다'는 진술은 요한이 계속적으로 교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에 대해 디오드레베가 불만을 품고 거부하였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으뜸 되기를 좋아하는'의 헬라어 '필로프로튜온'은 디오드레베의 독립 성향이 그 직임에 있어 우려 이상으로 현실화되어 있음을 암시함과 동시에 그의 행위의 동기가 진리에서 벗어나 사회적 명성과 자기 야심에 있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디오드레베의 성향은 도덕적인 문제 이상으로 상황을 악화시켜서 정치적인 다툼을 야기시키고 분열과 붕괴를 초래하기도 한다). 그 결과 여행하는 형제들 즉 선교사들을 접대하고 교회에서 지원해 주기를 요청했던 요한의 권면과 요구를 거절하게 되었다. '접대하지 아니하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우크 에피데케타이'는 신약성경에서 본문과 10절에서만 발견되는 단어로 '...의 권위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다'라는 의미이다. 이는 사도적 권위로 제안한 요한의 권면을 무시하고 디오드레베가 요한의 사자들을 영접하기를 거절했음을 뜻한다(마카비 1서 10:1,46). 이러한 디오드레베에게서 나타나는  개인적인 야망과 세력 다툼은 초대  교회의 사역에 실패를 초래하는 위험 요소들이었다.

10절 디아 투토 에안 엘도 휘포므네소 아우투 타 에르가 하 포이에이 로고이스 포네로이스 필뤼아론 헤마스 카이 메 아르쿠메노스 에피 투토이스 우테 아우토스 에피데케타이 투스 아델푸스 카이 투스 불로메누스 콜뤼에이 카이 에크 테스 엑클레시아스 에크발레이

=====1:10

 이러므로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 - 요한은 그 자신이 회중을 직접 방문할 것을 약속한다. 그의 여행에 대한 어떠한 실질적인 내용이 나타나 있지는 않으나 '내가 가면'이란 표현을 통해 자신이 방문할 것을 알리고 있으며 방문했을 때 디오드레베가 행한 일에 대해 엄하게 꾸짖을 것을 약속한다. '내가...잊지 아니하리라'로 번역된 헬라어 '휘폼네소'는 문자적으로는 '내가 생각나게 할 것이다'를 의미한다. 요한은 디오드레베를 비롯하여 그를 따르는 무리들이 잘못한 행위에 대해 세 가지로 제시한다. (1) 저가 악한 말로 우리를 망령되이 폄론하고도. - '망령되이 폄론하고도'의 헬라어 '플뤼아론'은 문자적으로 '허튼소리'나 '남을 모함하는 말'을 의미하는 것으로 디오드레베가 요한의 권위를 떨어뜨리기 위해 중상모략을 하였음을 암시한다. 이것은 디오드레베가 장로에 대항하여 진술하는 요구들이 이치에 맞지 않고 거짓된 것임을 시사한다.  (2) 형제들을 접대치도 아니하고. - 디오드레베는 요한을 중상모략하여 그의 권위를 추락시키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요한이 '두어 자'를 적어 보낸 편지의 내용  즉 선교사들을 환대하고 지원해 줄 것을 부탁하는 요청을 단호히 거부하여 선교사들을 접대하지 않았다. 개역성경 본문에는 나타나지 않는 '아우토스'('그가')라는 인칭 대명사가 헬라어 본문에 사용되어 디오드레베가 속한 교회 전체가 선교사들을 대접하기를 거부한 것이 아니라 디오드레베가 거부한 것임을 나타낸다.  (3) 접대하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어 쫓는도다. - '금하여'에 해당하는 헬라어 '콜뤼에이'는 현재 시제로 계속적인 행위를 의미한다.  디오드레베는 자신이 선교사들을 대접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요한의 제안을 받아들여 접대하고자 하는 자들을 방해하고 접대하지 못하도록 금하였다. 더 나아가 디오드레베는 자신의 말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을 교회에서 쫓아냈다. '내어  쫓는도다'의 헬라어 '에크발레이'는 문자적으로 '내던지다'라는 의미로 디오드레베가 단지 자신을 따르지 않는 무리를 회중 밖으로 쫓기를 원하지만 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추방의 행위를 자행했음을 시사한다(마 18:17; 눅 6:22; 요 9:34,35; 고전 5:2). 아마도 이러한 디오드레베의 방해와 거부로 인해 선교사들을 즐거이 접대한 가이오는 교회에서 냉소를 당하였던 듯하다(6절). 또한 디오드레베는 그의 믿음과  행위가 초래한 교회 내의 대립과 붕괴 위험으로 인해 장로와 그의 공동체로부터 지지받을 수 없었던 듯하다.

11절 아가페테 메 미무 토 카콘 알라 토 아가돈 호 아가도포이온 에크 투 데우 에스틴 호 데 카코포이온 우크 헤오라켄 톤 데온

=====1:11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 본문은 두 가지 명령, 즉 부정적인 명령과 긍정적인 명령을 담고 있다. 부정적인 명령인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는 디오드레베의 악행을 염두에 둔 것이고, 긍정적 명령인 '선한 것을 본받으라'는 데메드리오의 참됨을 염두에 둔 듯하다(12절). 요한은 앞서  언급된 디오드레베의 행위 즉 자기가 으뜸이 되고자 하여 선교사를 영접하고 접대하며 지원해 주기를 원했던 요한의 제안을 무시한 것을 가이오에게 본받지 말 것을 간절히 요청한다. 이것은 비록 디오드레베의 영향력으로 인해 가이오가 냉소를 당한다 할지라도 이전에 해왔던 선교사의 접대 행위를 계속적으로 행하라는 요청이다. 그리스도인들이 본받아야 할 중요한 본은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력 있는 진리(1-3절), 실제적인 사랑(6절), 그리고 옳은 행실(11절)로, 이는 그리스도인들이 닮아가야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성들이다).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 - '하나님께 속한 자'는 '선을 행하고', 모든 '사랑의 명령'(요일 2:7-11)에  순종하며, 형제들을 영접하는 모습(5,6절)에서 구별된다. 이러한 선한 행위는 이상적인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실현 가능한 것이어야 하며 그리스도인과 하나님 사이의 친밀한 관계와 교제를 내포하는 것이어야 한다(요일 4:6-8,14) 한편 '뵈옵지'의 헬라어 '헤오라켄'은 완료 시제로 현재까지 효과가 계속되는 과거의 사건을 나타낸다. 이는 악을 행하는 자들이 지속적으로 악을 행함으로 나타난  궁극적 결과로, 그들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없고 대면할 수 없으며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음을 시사한다.

12절 데메트리오 메마르튀레타이 휘포 판톤 카이 휘프 아우테스 테스 알레데이아스 카이 헤메이스 데 마르튀루멘 카이 오이다테 호티 헤 마르튀리아 헤몬 알레데스 에스틴

=====1:12

  데메드리오는 뭇 사람에게도, 진리에게도 증거를 받았으매 우리도 증거하노니 너는 우리의 증거가 참된 줄을 아느니라. - 데메드리오에 대해서는 분명히 알 수 없으나 두 가지 추측이 가능하다. (1) 에베소의 은장색이었던 데메드리오이다(행 19:23). (2) 사도적 관행에 따르면 후에 요한이 빌라델비아의 감독으로 임명했다는 데메드리오의 준말로 나타나는 데마이다(골 4:14; 딤후 4:10; 몬 1:24). 두 사람 중 어느 누구라고 할 수 있는 분명한 증거가 없다. 다만 혹자가 추측한 대로 본서를 가지고 간 사람이며 이방 출신의 사람인 듯하다. 유대인의 관습과 같이 두 세 사람의 증언을 통해(신 19:15; 요일 5:7,8) 데메드리오의 참됨이 입증되었다. 요한이 데메드리오에 대해 제시한 증거들 중 첫째는 뭇 사람이며, 둘째는 진리이고, 셋째는 요한 자신이다. 데메드리오가 행한 행위는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았으나 그의 선한 행위는 뭇 사람들이 인정하였으며 진리 곧 복음에 합당하였고 요한 자신도 칭찬할 만한 것이었다. 요한은 이렇듯 모든 사람과 진리 그리고 자신이 인정할만한 선한 행위를 하는 데메드리오를 가이오에게  천거하여 가이오로 하여금 디오드레베의 방해와 교회의 냉소 속에서도 선교사를 대접하는 행위를 비롯한 모든 선한 행위를 그치지 않고 계속 행할 것을 암시적으로 권면한다.

13절 폴라 에이콘 그라페인 알르 우 델로 디아 멜라노스 카이 칼라무 소이 그랍사이

=====1:13

 내가 네게 쓸 것이 많으나 먹과 붓으로 쓰기를 원치 아니하고. - 본절에서  15절까지는 본서의 결말 부분이다. 앞절에서 1인칭 복수인 '우리'를 사용한 반면에 본문에서는 1인칭 단수인 '내가'를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인칭 변화에 대해 혹자는 요한이 틀에 박힌 서신 양식을 탈피하려 했다고 주장하나 그보다는 요한이 가이오에게 사무적으로 길게 말하지 않고, 개인적이고도 인격적인 교제를 원하는 자신의 희망  때문에 단수로 사용한 듯하다는 주장이 더 타당하다. 한편 '먹과 붓'은 '종이와 먹'이라고 표현한 요한이서의 의미와 같은 것으로 서신을 시사한다(요이 1:12). 요한은 본문에서 쓸 것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종이와 먹으로 쓴 서신으로 하지 않고 직접 방문하여 얼굴을 대면하고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고 싶다는 자신의 소망을 암시하고 있다(14절).

14절 엘피조 데 유데오스 이데인 세 카이 스토마 프로스 스토마 랄레소멘

=====1:14

  속히 보기를 바라노니 또한 우리가 면대하여 말하리라. - 본절은 앞절에  이어지는 표현으로 '속히'가  첨가되어  있는 것을 제외하고 요이 1:12의 내용과 유사하다. 그런데 이러한 표현은 요한의 문학적 특색이면서 동시에 디오드레베의 행위와 그로 인한 위기상황을 대처하려는 요한의 심중을 시사한다. 한편 '면대하여'로 번역된 헬라어 '스토마 프로스 스토마'는 문자적으로 '입과 입으로'를 의미하는 것으로 마음을 나누는 인격적인 만남을) 속히 갖기 원하는 장로의 간절한 바람을 나타낸다.

15절 에이레네 소이 아스파존타이 세 호이 필로이 아스파주 투스 필루스 카트 오노마 이오안누 에피스톨레 카돌리케 트리테

=====1:15

  요한은 본절에서 별개의 세 가지 인사로 마감한다.

   평강이 네게 있을 지어다. - 이는 가이오에 대한 요한의 개인적인 축복으로 바울의 서신에서는 서두에서 발견된다(롬 1:7). 이것은 아마도 본서의 시작 인사가 부족한  것을 보충하는 의미도 있는 듯하다.

   여러 친구가 네게 문안하느니라. - 요한은 지역 교회에 속한 자신의 친구들이 가이오에게 문안 인사를 보낸다고 전한다. 이는 요한 자신뿐만 아니라 친구들도 요한의 주장이 정당하며 이로  인해  가이오의  행위가 올바름을 입증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너는 각 친구 명하에 문안하라. - 본문의 '친구'는 가이오가 속한 교회에서 요한의 생각에 공감하고 가이오를 지원하는 회원들이다. 즉 본문은 가이오가 본서를 자신이 속한 교회의 구성원들과 함께 돌려보기를  요한이 원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헬라어 성경 강해 요한이서] 적그리스도에 대한 경계 말씀(요이 1:7-13)

 

[헬라어 성경 강해 요한이서] 적그리스도에 대한 경계 말씀(요이 1:7-13)

사도 요한은 마지막 때에 적그리스도를 경계해야 할 것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때나 지금이나 적그리스도는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마지막 종말이 될 때 예수님을 부인하는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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