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원문 강해

[헬라어 성경말씀 히브리서 강해] 성육신하셔서 고난받은 예수(히 2:1-10)

엘벧엘 2021. 12. 11.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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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2장은 하나님이지만 인간의 비천한 모습으로 오셔서 골고다 십자가에서 고난 받은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선택받은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면서 선택받은 자를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이 땅에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오신 것을 증거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셔서 승천하시고 하나님의 우편 보좌에서 영광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이 땅에 주님이 구름 타고 재림하십니다. 우리는 재림하실 주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성육신 하셔서 고난 받은 예수(히 2:1-10)

 

1절 디아 투토 데이 페릿소테로스 헤마스 프로세케인 토이스 아쿠스데이신 메포테 파라르휘오멘

=====2:1

  그러므로 - 여기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아 투토'는 앞장의 내용 전체를 가리킨다. 따라서 이것은 '아들인 그리스도가 천사들보다 우월한 존재이므로'라는 의미이다.

   모든 들은 것을 우리가 더욱 간절히 삼갈지니 - '들은 것'의  헬라어  '아쿠스데이신'은 '아들'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최종적인 계시 즉 '복음' 혹은 '케리그마'를 의미한다. 옛 계시는 모세가 '천사의 중재'를 통해 받은 율법이었으나(2:2) 새 계시는 그의 아들인  그리스도를 통하여 직접 임한 것으로서 옛 계시보다 우월하고 온전한 구원의 복음이다. 한편 '더욱 간절히 삼갈지니'로 번역된 헬라어 '페릿소테로스 프로세케인'은 '더욱 많이 주의하여 숙고하라'는

의미이다. 저자는 그리스도께서 모든 천사보다 우월하며, 전해주신 복음이 온전하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더욱더 열심히 복음을 상고해야 함을 강조한다.

   혹 흘러 떠내려갈까 염려하노라 - '흘러 떠내려갈까'의 헬라어 '파라뤼오멘'은 '흘러가다' 혹은 '반지가 손가락에서 빠져나가다'의 의미로 복음에 대한 관심 부족과 부주의로 인해서 진리를 잃어버리는 것을 시사한다. 이것은 성도가 복음의 진리라는 안전한 항구에서 떠나 위험하게 되는 것을 나타낸다.

2절 에이 가르 호 디 앙겔론 랄레데이스 로고스 에게네토 베바이오스 카이 파사 파라바시스 카이 파라코에 엘라벤 엔디콘 미스다포도시안

=====2:2

  천사들로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 이것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율법을 암시하고 있다(갈 3:19). 출 19장과 20장에서는 천사에 대한 언급이 나타나지 않으나 신 33장에서는 하나님의 출현을 묘사할 때 하나님께서 일만 성도 가운데 오셨다고 선포하고 있으며 70인 역에서는 '천사들이 그의 오른편에 함께 하였다'라고 언급하고 있다(LXX 신 33:2;시 68:7). 1세기의 유대사가 요세푸스(Josephus)도 율법을 전해준 천사에 대해 설명했으며, 랍비들도 율법과 관련된 천사들의 사역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천사들이 율법을 전해주는 것으로 전하고 있다. 천사들을 통해 전해진 율법은 하나님의 목적과 바람을 계시해 주었고 율법 안에 제시된 모든 규례들을 엄격하게 지킬 것을 강요하였다.

   모든 범죄함과 순종치 아니함이 공변된 보응을 받았거든 - '순종치 아니함'의 헬라어 '파라코에'는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거부하는 것으로 '범죄함'과 더불어 하나님의 뜻에 대한 의도적인 거절을 내포한다. '공변된'의 헬라어 '엔디콘'은 '...안에서'를 의미하는 전치사 '엔'과 법정 용어인 '공의'를 의미하는 '디케'의 합성어로서 '공의의 판단으로 이루어지는'이란 의미를 갖는다. 또한 '보응'으로 번역된 헬라어 '미스다포도시안'은 응당히 치러야 할 '보수'라는 뜻으로 율법을 범한 죄인들에게 진리대로 적용하시는 하나님의 필연적인 심판의 행위를 시사한다(롬 2:2-12). 하나님께서 옛 언약 아래서 천사들을 통해 전해주신 율법에 대한 범죄와 율법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에 대한 거부는 상응한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3절 포스 헤메이스 에크퓨크소메다 텔리카우테스 아멜레산테스 소테리아스 헤티스 아르켄 라부사 랄레이스다이 디아 투 퀴리우 휘포 톤 아쿠산톤 에이스 헤마스 에베바이오데

=====2:3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 '큰 구원'이란  천사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셨던 율법의 구원 사역과 대조되는 것으로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된 구원을 시사한다. 한편 '어찌 피하리요'로 번역된 헬라어 '포스 에크퓨크소메다'는 수사적 의문문으로서 '도무지 피할 수 없다'는 부정적인 의미를 강조한다. 본절은 그리스도보다 열등한 천사를 통해 전해준 율법을 거역해도 그에 상응한 심판을 받는데 하물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진 구원을 무시하게 되면 율법을 통해 시행되었던 공의의 심판보다 더 큰 보응을 피할 수 없음을 시사한다.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 '주로'에서 '로'의 헬라어 '디아'는 '...을 통하여'의 뜻을 갖는 전치사이다. 이 표현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이루셨다는 의미로 구원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에게서 비롯되었음을 나타낸다.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 '들은 자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들은 사도들을 포함하여 복음을 들은 모든 사람들로서 복음이 예수님의 말씀과 일치하는가를 증거해줄 사람들을 가리킨다. 한편 '확증한 바니'의 헬라어 '에베바이오데'는 법률 용어로써 '보증인을 세우다'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구원의 복음에 대한 확실성을 강조한 말이다.

4절 쉬네피마르튀룬토스 투 데우 세메이오이스 테 카이 테라신 카이 포이킬라이스 쉬나메신 카이 프뉴마토스 하기우 메리스모이스 카타 텐 아우투 델레신

=====2:4

  하나님도...저희와 함께 증거하셨느니라 - 본절은 '큰 구원'(3절)과 상관된 것으로 하나님께서 큰 구원에 대해 함께 증거하셨음을 나타낸다. '함께 증거하셨느니라'의 헬라어 '쉬네피마르튀룬토스'는 '쉰'('...함께')과 '마르튀레오'('증거하다')가 결합된 이중 합성어이다. 예수로부터 복음을 들은 자들이 복음을 전파할 때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여 그들이 전하는 복음을 선포할 때 확증시켜주신 방법은 네 가지이다.

   표적들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세메이오이스'는 '표시', '증거', '표적'의 의미를 지닌다. 이것은 단순히 기적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기적의 의미, 곧 그 속에 담긴 하나님의 목적을 드러내 주었다. 이러한 표적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수단이었다.

   기사들 - 이로 번역된 헬라어 '테라신'은 가시적으로 나타나는 경이로운 기적을 의미하는 것으로 신약성경에서 '표적'과 함께 나타난다(마 24:24; 막 13:25; 요 4:48; 행 2:19,22,43; 4:30; 5:12; 6:8; 7:36; 14:3; 롬 15:18; 고후 12:12). 이것은 초자연적 현상을 통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경이로움과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역사로서 70인 역에서는 하나님의 구속 행위를 묘사하는 데 사용되었다.

   여러 가지 능력 - '능력'에 해당하는 헬라어 '뒤나메신'은 본래 자연적인 현상에서 나타나는 힘을 의미했지만 후에 표적과 기사를 내포하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힘(마 8:13) 또는 하나님의 역사하심 자체를 의미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은 초자연적인 이적 현상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자신을 계시하기도 하며  또한 계시하신 말씀을 확증하고 보증하시기도 한다.

   성령의 나눠 주신 것 - 본문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이다. (1) 소유격으로 된 '성령의'를 목적격으로 보아 그리스도인들에게 '선물로 주어지는 성령'을 의미한다는 해석(갈 3:5). (2) '성령의'를 주격으로 보아 믿음의 분량대로 각 사람에게 성령께서 나눠주신 은사를 의미한다는 해석(고전 12:11). 두 가지 해석 중 후자가 타당하다. 하나님께서 복음을 확증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는 전체 문맥으로 볼 때 본절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령께서 그리스도인에게 부어주시는 은사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5절 우 가르 앙겔로이스 휘페탁센 텐 오이쿠메넨 텐 멜루산 페리 헤스 랄루멘

=====2:5

  장차 오는 세상을 천사들에게는 복종케 하심이 아니라 - '장차 오는 세상'에 해당하는 헬라어 '텐 오이쿠메넨 텐 멜루산'은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좌정하셔서 왕으로 등극하시고 온 우주에 대한 구원을 행사하시는 새 창조된 세상을 가리킨다. 천사들은 이러한 세상을 다스릴 권한이 없으며, 이러한 세상도 천사들에게 복종해야 할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장차 오는 세상'은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통해 전하신 율법으로 이루어진 세상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신 구속 사역을 통해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6절 디에마르튀라토 데 푸 티스 레곤 티 에스틴 안드로포스 호티 미므네스케 아우투 에 휘오스 안드로푸 호티 에피스케프테 아우톤

7절 엘라트토사스 아우톤 브라퀴 티 파르 앙겔루스 독세 카이 티메 에스테파노사스 아우톤 카이 카테스테사스 아우톤 에피 타 에르가 톤 케이론 수

8절 판타 휘페탁사스 휘포카토 톤 포돈 아우투 엔 가르 토 휘포탁사이 아우토 타 판타 우덴 아페켄 아우토 아뉘포타크톤 뉜 데 우포 호로멘 아우토 타 판타 휘포테타그메나

=====2:6,7,8

  본 구절들은 시 8:4-6을 인용한 것이다.

   누가 어디 증거하여 가로되 - 본문은 유대인들의 문어체 표현 방식으로서 저자와 서신의 수신자들이 본절에서 인용된 시편의 내용을 잘 알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 '사람'과 '인자'는 히브리 시(時)의 병행 법칙을 따른 것으로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 인자 곧 '사람의 아들'에서 '...의 아들'이라는 말은 히브리어의 관용구로서 어떤 것의 속성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따라서 '사람의 아들'이란 '사람됨의 속성을 지닌 자' 즉 '사람'이란 의미이다. 본절에서 사용된 '인자'(휘오스 안드로푸)는 본래 예수께서 자신을 가리켜 사용하신 '인자'(호 휘오스 투 안드로푸)와 동일하지 않다. 그러나 저자는 여기에서 '인자'를 그리스도에게 적용시켜서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인자와 동일시하고 있다. 한편 '생각하시며'의 헬라어 '밈네스케'는 도움을 베풀기 위해 '기억하신다'라는 의미이며 '권고하시나이까'의 헬라어 '에피스케프테'는 '조사하다'혹은  '방문하다'라는 뜻으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돕기 위해 기억하시며 돌보기 위해 찾아오시는 분이심을 나타낸다.

   저를 잠깐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 - '천사'에 해당하는 맛소라 본문은 '엘로힘'으로서 RSV는 이것을 '하나님'(God)으로 번역하고 있으며, NIV는 '천상의 존재들'로 번역하였다. 그러나 70인 역에서는 명확하게 '천사들'(파르 앙겔루스)로 번역하고 있으며 탈굼 역도 역시 같은 해석을 하고 있다. 저자는 70인 역을 따르고 있다. 한편 '못하게 하시며'는 맛소라 본문을 따를 경우 하나님보다 잠시 못 하게 된 것으로 해석될 수 있으나 저자가 1장에서 그리스도와 천사를 비교한 것으로 볼 때 천사보다 못한 상태 즉 성육신 하셔서 '인간'이 되셨음을 시사한다고 봄이 타당하다(빌 2:7).

   영광과 존귀로 관 씌우시며 - '관 씌우시며'의 헬라어 '에스테파노사스'는 '왕관을 씌우다'라는 의미로 왕위에 오르심을 시사한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죄와 죽음을 정복하신 승리자로서 영광과 존귀로 하나님의 우편 즉 왕위에 오르셨으며(1:3: 엡 4:8),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는 주권적인 권한을 소유하셨음을 시사한다.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케 하셨느니라 하였으니 만물로 저에게 복종케 하셨은즉 복종치 않은 것이 하나도 없으나 - 본문은 1:13의 인용문인 시 110:1과 연결된다. 1:13에서는 원수가 그리스도 앞에 복종하는 것으로 나타나나 본절에서는 '모든 만물'이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모든 만물'은 맛소라 본문에서는 '모든 우양과 들짐승이며 공중의 새와 바다의 어족과 해로에 다니는 것'으로 되어 있어 만물에 대해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영광과 존귀로 왕위에 오르셔서 하나님 우편에 좌정하시므로 모든 만물 즉 온 우주에 대한 주권을 소유하셨으며, 자신의 완전한 주권을 통해 온 우주를 지배하시고 다스리신다. 한편 여기서 '저에게'가 지칭하는  대상에 대해서 여러 견해가 있다. (1) 혹자는 맛소라 본문을 근거로 그것은 그리스도가 아니라 사람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2) 혹자는 '저에게'(아우토)가 대표적 단수로서 그리스도를 지칭한다고 주장한다.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저'를 사람으로 이해한다면 바로 뒤에 이어지는 9절의 내용과 연결될 수 없으며, 저자가 시편을 인용하면서 '인자'나 '사람'을 순수하게 '사람'의 의미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인자되신 그리스도'에게 적용시키고 있기 때문이다(6절).

   지금 우리가 만물이 아직 저에게 복종한 것을 보지 못하고 - 본절은 시 8편에는 없는 구절이다. 본절의 '저에게' 역시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봄이 타당하다. '아직'의 헬라어 '우포'는 '일시적'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 미래에 성취되어야 하는 것임을 암시한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그의 모든 주권을 회복하여 만물이 저에게 복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들이 그것을 보지 못하는 이유는 아직 그의 왕국이 완전히 실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직 공중 권세 잡은 사단이 이때의 지배자처럼 행세해서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왕권을 보지 못한다 할지라도(마 4:8,9; 엡 2:2)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날 즉 그분의 왕국이 온전히 실현되는 날 보게 될 것이다.

9절 톤 데 브라퀴 티 파르 앙겔루스 엘라트토메논 블레포멘 이에순 디아 토 파데마 투 다나투 독세 카이 티메 에스테파노메논 호포스 카리티 데우 휘페르 판토스 규세타이 다나투

=====2:9

  천사들보다 잠깐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 본 구절은 7절의 반복이다. 그리스도께서 천사들보다 못하게 되신 것은 오직 잠깐 동안으로 이는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가리킨다. 본절에서는 '잠깐 동안'에 해당하는 헬라어 '브라퀴 티'를 7절과 다른 위치에 삽입함으로 이 말을 7절보다 더 강하게 강조하고 있다.

 7절 (엘라트도사스 아우톤 브라퀴 티 파르 앙 겔루스)

 9절 (브라퀴 티 파르 앙겔루스 엘라트토메논)

한편 '인하여'의 헬라어 '디아'는 예수께서 '관'을 쓰셔서 왕이 되시는 것이 '죽음의 고난'을 통해 이루어진 것임을 시사한다(빌 2:8,9). 더욱이 저자는 여기서 특별히 '예수'라는 이름을 사용하여 그의 '인간 되심'과 '죽으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 '이를 행하심'이 가리키는 것에 대해서 혹자는 예수의 죽으심과 영광의 관을 쓰심 모두를 가리킨다고 주장하나, '죽음의 고난'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예수께서 죽으신 것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이다. '모든 사람을 위하여'에 해당하는 헬라어 '휘페르 판토스'에서 '판토스'는 두 가지로 해석된다. (1) '판토스'는 중심으로서 '온 우주'를 가리킨다. (2)'판토스'는 남성으로서 '모든 사람'을 가리킨다. 두 가지 해석 중 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저자는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이 인간을 위한 것임을 강조하기 때문이다(16절). 한편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의 헬라어 '카리티 데우'는 몇몇 사본에 '코리스 데우'('하나님을 떠나서')로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교부들이 본문을 '코리스 데우'로 보아 예수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것을 뜻하며(마 27:46; 막 15:34)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실 때에는 인류의 죄를 대신한 죄인으로서 그의 신성이 상실되었던 것으로 해석하였다. 그러나 본문은 '카리티 데우'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대부분의 사본들이 이것을 지지하고 있으며 교부들의 견해도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한 구속 사역의 성취는 그의 죽음을 통해 사람들로 하여금 아들 됨과 영광을 경험할 수 있도록 섭리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다(10절; 12:15).

10절 에프레펜 가르 아우토 디 혼 타 판타 카이 디 후 타 판타 폴루스 휘우스 에이스 독산 아가곤타 톤 아르케곤 테스 소테리아스 아우톤 디아 파데마톤 텔레이오사이

=====2:10

  만물이 인하고 만물이 말미암은 자에게는 - '만물이 인하고'의 헬라어 '디 혼 타판타'는 '만물'의 존재의 근원인 하나님을 의미하며 '만물이 말미암은'의 헬라어 '디 후 타 판타'는 '만물'이 존재하도록 창조하신 하나님을 의미한다. 이것은 예수의 고난을 통한 구속 사역이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임을 시사한다.

   많은 아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 본문은 하나님의 구속 사역 목적을 나타낸다. '많은 아들'(폴로스 휘우스)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자들을 총체적으로 가리키는 것으로, 구속받을 자가 극소수가 아님을 의미하며 나아가 '아들 되었음'을 시사한다. 한편 '영광'은 그리스도인의 궁극적인 구원을 가리킨다.

   저희 구원의 주를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심이 합당하도다 - 본절의 '주'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아르케곤'으로서 신약성경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된 '주'(퀴리오스) 즉 만물의 통치자이며  주인으로서의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용어와 다른 것임을 알 수 있다. '아르케곤'은 문자적으로 '맨 먼저 시작하는 자', '개척자'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구원의 주'란 죽음을 통해 구약의 모든 것을 완성하시고 구원의 새로운 길을 이루사 구원받을 모든 후사의 맏아들 되신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또한 '온전케 하심'에 해당하는 헬라어 '텔레이오사이'는 본래 모세 오경의 제의 본문에서 제사장이 자신의 직무를 거룩하게 하는 행위를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다(출 29:9,33: 레 8:33; 16:32; 21:10;민 3:3). 이런 제의적 배경을 가진 '텔레이오사이'는 예수께서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시고 승귀 되심을 시사한다. 이러한 예수의 종말론적인 승귀 되심은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존재가 아니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인간과 똑같은 고난을 받으심으로써 인간을 구원시키기에 완전한 조건을 구비하셨다는 의미이다.

[빌레몬서 헬라어 성경말씀] 오네시모를 용서하라는 바울의 부탁(몬 1:15-25)

 

[빌레몬서 헬라어 성경말씀] 오네시모를 용서하라는 바울의 부탁(몬 1:15-25)

빌레몬서 1장에서 바울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보면서 용서해 주기를 부탁하고 있습니다. 오네시모가 빌레몬에게서 도망쳤는데 바울은 예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구원받게 하고 다시 빌레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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