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3장에서 바울은 교회의 기초는 예수님이라고 한다. 성도는 교회에서 예수님을 위해서 충성해야 한다. 예수님 외에 다른 것으로 기초를 쌓으면 무너진다. 교회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충성하면 하나님이 상을 주신다고 했다. 주님이 재림하실 때 공적이 남아 있으면 상을 받는다.
바울이 닦은 터(고전 3:11-15)
여기에서 바울은 그들 가운데에 세운 터가 어떤 것인지 우리에게 말한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엡 2:20). 이 터 위에 모든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은 세운다. 이 반석 위에 모든 기독교인은 소망을 둔다. 다른 터 위에 천국의 소망을 세우는 사람은 모래 위에 세우는 사람이다.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다음을 주목하자. 우리 주와 그의 중보의 교리는 기독교의 기본 교리이다. 그것은 기초이다. 이 기초를 떠나면 모든 위로가 무너지고 죄인의 소망이 사라진다. "죄 많은 세상을 하나님에게 화목하게 하는 것은 다만 그리스도 안에서이다"(고후 5:19). 이 기초를 잡고 그리스도의 중보를 믿는 사람 중에 두 종류가 있다.
Ⅰ. 어떤 사람은 이 터 위에 "금과 은과 보석으로" 세운다. 즉 복음의 순수한 진리를 받아들이고 전파하며 예수 안에 있는 진리만을 잡으며 그것만을 전파한다. 이것은 좋은 터 위에 잘 세운 집이다. 이때에 사역자들은 교회의 대 예언자로서 그리스도만을 의지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지도자와 교사로 여기고 그리스도가 가르친 복음을 가감함이 없이 순수하게 받고 전한다.
Ⅱ. 다른 사람들은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운다." 즉 그들이 이 기초 위에 세우나 여러 점에 있어서 예수의 마음을 떠나며 그리스도의 교리 대신에 그들의 상상이나 창작을 대치시키며 심판날에 견디지 못할 것과 불이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드러낼 것으로 세운다. 이들은 다 타버린다. 사람들이 이 터 위에 세운 것이 밝히 드러날 때가 온다. "모든 사람의 공력이 밝히리니" 자기와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어리석음 때문에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알지 못하나 주의 날에는 그들의 행위가 밝히 드러날 것이다. 잘못을 범한 자와 피할 자가 밝히 드러난다. 지금은 우리가 실수를 하지만 우리의 잘못을 그대로 나타날 때가 온다. 왜냐하면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13절). 최후의 날 심판의 날에는 모든 것을 나타낸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유대 국가가 멸망하고 그의 체제가 없어지는 때를 의미하며 기독교 위에 유대 교사들이 세우고자 한 피상적인 건물을 가리킨다고 보기도 한다. 그 표현은 야금술을 은유하기도 한다. 불이 금과 은과 불순물을 가르고 구별한다. 금과 은과 보석은 불을 견디고 나무와 풀과 짚은 타버린다. 아래 사항을 주목하자. 불이 금을 찌꺼기로부터 구별하고 타버리는 물질과 타지 않는 금속을 구별하는 것과 같이 사람과 사람 그리고 일과 일을 구별하는 때가 온다.
1. 어떤 사람들의 일은 시험에 견디고 좋은 것으로 판단된다. 그들은 좋은 터에 잘 세웠으며, 좋은 재료를 사용하여 잘 세운 것이다. 터나 건물이 한 덩어리가 된다. 기본 진리와 그 진리를 수호하는 사람들이 함께 가르침을 받는다. 지금은 이것을 판단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그날에는 완전히 드러난다. 잘 짓는 사람은 반드시 보답을 받는다. 그는 명예와 칭찬을 받고 영원한 상을 얻는다.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의 충성은 내세에 있어서 완전한 보답을 받을 것이다. 진실하고 순수한 신앙을 전파하며 그들의 일이 올바르면 보답을 받는다.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얼마나 넘치는 보답일까!
2. 그들의 공력에 "불타 버릴 사람들이 있다"(15절). 이들의 부패한 의견과 가르침이 나타나고 잘못된 경배가 거절될 때에 하나님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거절을 당할 것이다. 최후의 날은 모든 위장을 제거하고 사실을 밝힌다. 공력이 타버리는 사람은 큰 손해를 당한다. 좋은 터 위에 나무와 풀과 짚으로 세우는 사람은 손해를 당한다. 그가 비록 정직한 그리스도인이었더라도 그의 약함과 부패가 그의 영광을 삭감한다. 구원을 받더라도 공력이 수포로 돌아간다. 다음을 관찰하자. 기독교의 터를 잡고 풀과 나무와 짚으로 세우는 사람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이것은 우리의 사랑을 크게 한다. 우리는 남의 약점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그 자신은 그의 공력을 태워버리는 불에서 구출된다. 이것은 타락하고 기독교를 부패시키는 사람들의 구원이 힘든 것을 암시한다. 하나님은 그들을 불에서 끄집어내는 가지처럼 구원하나 그들의 공력은 태위 버리신다. 이 구절에서 가톨릭 교도들은 연옥의 교리를 세운다. 이것은 분명히 불이나 짚의 교리이다. 성경에서 온 교리가 아니고 신부들의 야망과 탐욕을 채우기 위하여 만들어진 교리다. 이 교리는 이 구절에서 지지를 얻지 못한다.
(1) 왜냐하면 이것은 비유적인 불을 의미하고 실제적인 불을 의미하지 않는다. 어떤 실제적인 불이 종교적인 의식이나 교리를 소멸할 수 있겠느냐?
(2) 왜냐하면 이 불은 인간의 공력이 어떠한 것인지 시험한다. 그러나 연옥의 불은 시험을 위하고 인간의 행동을 조사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다만 벌을 주기 위함이다. 그들은 용서받을 죄로 가정된다. 이 세상에서 해결되지 않고 연옥의 형벌을 받아야 된다.
(3) 왜냐하면 이 불은 바울과 아볼로의 공력도 시험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들이 연옥의 불을 통과해야 한다고 주장할 신부들은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성전(고전 3:16-17)
여기에서 바울은 그가 말한 "너희는 하나님의 집이라"는 언급에 입각하여 그의 주장과 권면을 다시 시작한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16,17절). 바울이 똑 같은 취지를 말하는(6:13-20 참고) 이 서신의 다른 부분에서 본다면 고린도 교인들의 거짓 선생은 방탕한 교리를 가르친 것 같다. 이러한 교리가 풀이나 짚으로 생각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을 위하여 세워졌고 하나님에게 바쳐진 교회를 부패시키고 파괴하려고 한다. 이런 교리를 전파시키는 사람들은 파멸을 초래하도록 하나님의 교회를 부패시켜 신성과 정결을 깨뜨리는 사람은 멸망하게 된다. 분열이 파멸로 가는 길이기 때문에 불화와 분쟁을 반대하는 주장으로 이해될 수도 있겠으나 내가 의미하는 것은 다음 구절의 본래 의미이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그것은 고린도 교회를 집합적으로 의미한다고 볼 수 있겠다. 기독교의 교회는 하나님의 전이다. 하나님은 성령을 통하여 그들 가운데 거하신다.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 2:22) 하나님은 유대인의 성전에 거하셨다. 그 성전을 소유하시고 그 안에 거하시고 영광스러운 구름이 임재의 표시였다. 그와 같이 그리스도의 성령으로 모든 참다운 신자들 안에 거하신다. 성전은 거룩하게 하나님에게 바쳐졌고 거룩하게 구별되어 사용되었다. 그와 같이 모든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을 위하여 구별되어 그를 섬기게 되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라면 우리 자신을 더럽히거나 하나님으로부터 소외시키는 것을 하면 안 된다. 우리를 유혹하는 어떠한 교리나 박사의 말을 들어서도 안 된다. 기독교인은 천직이 거룩한 것이다. 마음과 교제가 순결해야 한다. 우리는 중심으로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고 그에게 거룩하게 바칠 것을 팔지 않도록 주의하고 피하여야 한다.
[역대하 19장 성경 하나님 말씀] 여호사밧을 책망하심(대하 19: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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