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15장 하나님 말씀은 사울 왕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여 왕에서 폐위된 사건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말렉 민족을 말살하라고 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좋은 것은 취하고 나쁜 것만 멸했습니다. 아각 왕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순종을 기뻐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거역한 사울 왕(삼상 15:1-35)
사울왕에게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명령함(1-5)
• 15:1-3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어 왕에게 기름을 부어 그 백성 이스라엘 위에 왕을 삼으셨은즉 이제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곧 애굽에서 나올 때에 길에서 대적한 일을 내가 추억하노니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약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
사무엘이 사울에게로 가서 하나님의 명령을 전달하였다. 그내용은 아말렉이 출애굽 때에 이스라엘에게 대적한 일을 하나님께서 추억하시고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다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약대와 나귀를 죽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 사건은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약속한 땅, 가나안으로 인도해 내는 구원 운동이다. 그런데 아말렉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구원 운동을 방해하여 광야길을 가는 이스라엘을 대적했었는데(신25:17-19), 약400여년이 지난 지금 사울에게 그 원수를 갚도록 명령하셨다. 하나님께서 아말렉의 죄를 결코 잊지 않으시고 때가 되매 갚으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귀중히 여기시는 구원 운동을 방해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진노하시고 행한 대로 갚으신다.
신약시대에도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사신 하나님의 교회에 손해를 주면 하나님께서 아주 진노하신다. 구원 운동을 방해하는 것은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는 것과 같다. 오늘날은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택한 자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일이 곧 출애굽의 역사이다. 택한 자를 애굽과 같은 이 세상에서 건져내어 예수를 믿게 하여, 광야 같은 세상 길에서 연단시켜 하나님 앞으로 점점 더 가까이 나아가게 하시며, 중생한 영을 자라나게 하신다. 이스라엘을 불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지금은 말씀과 영감으로 보호하며 인도하신다.
오늘날 교회를 대적하고 교역자를 비방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진노하신다. 하나님에서는 교회를 구원의 기관으로서 사랑하시고 교회를 대적하는 세력은 반드시 잊지 않고 심판하신다. 불신자들만 교회를 대적하는 것이 아니라 신자라도 시험에 들면 교회를 대적하고 하나님의 종을 비방하게 되는데, 하나님은 이런 일을 반드시 심판하신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18:6-7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구원운동에 손해를 주면 당장에 망하지 않는다고 해도 오랜 후에는 다 망하고 만다. 아말렉이 400년 후에는 멸망하지 않았는가 ! 생명을 살려 나가는 하나님의 구원 운동을 방해하면 개인이나 단체나 국가나 다 망한다. 일본 제국주의가 한국 교회에 신사참배를 강요하고 성도들을 핍박하더니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하였다.
• 15:4-5 사울이 백성을 소집하고 그들을 들라임에서 계수하니 보병이 이십 만이요 유다 사람이 일만이라 사울이 아말렉 성에 이르러 골짜기에 복병하니라
사울이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하여 전국의 군대를 모으고 계수하니 보병이 이십 만이요 유다 사람이 일 만이었다. 상당히 큰 군대이다.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려고 하러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두 협력을 잘한 모양이다. 사울이 아말렉 성에 이르러 골짜기에 복병을 하였다.
겐 사람을 피난시킴(6)
• 2:6 사울이 겐 사람에게 이르되 아말렉 사람 중에서 떠나 내려가라 그들과 함께 너희를 멸하게 될까 하노라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 애굽에서 올라올 때에 너희가 그들을 선대하였느니라 이에 겐 사람이 아말렉 사람 중에서 떠나니라
겐 사람은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 선대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치기 전에 미리 피난을 시키라고 하였다. 겐 사람은 모세의 장인 족속이다. 이스라엘 사람이 애굽에서 나올 때 모세의 장인이 나와 이스라엘의 갈 길을 안내하여 주고, 모세가 재판할 때에도 십부장, 오십부장, 백부장, 천부장을 세워 가벼운 사건은 그들이 처리하고 그들이 처리할 수 없는 것만 모세가 하도록 좋은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출18:17-23). 이렇게 하나님의 구원 운동을 도와준 겐 사람은 하나님께서 결코 잊지 않으시고 기억하여 400년 후에라도 재난과 화를 면하게 하여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 운동을 조금이라도 도와 준 것은 하나님께서 늘 기억하시고 자자손손이 복을 받게 하여 주시며 은총을 베풀어주시고 위험한 데서 건져 앞길을 인도하여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크게 도운 것만을 기억하시는 것이 아니라 작은 것이라도 자기의 힘 있는 대로 정성껏 도울 때 기뻐하신다. 마가복음 9:41에 “누구든지 너희를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가 결단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며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방해하는 자는 늘 기억하여 반드시 심판하여 멸망시키고,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협력하고 돕는 자에게는 반드시 상급으로 갚아 주시고 은총을 베풀어주신다. 성도는 어떻게 하든지 힘써서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도움이 되어야 하겠다. 하나님의 구원 운동을 돕는 길은, 자신이 먼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영이 자라나게 만들고, 마음과 몸과 물질을 정성껏 바치고, 힘써 전도하고, 교회를 위하여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찾아 충성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 충성하는 것이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성도가 땅 위에서 살 동안 구원 운동에 도움을 주는 일을 하다가 가는 것이 본분이다. 자기 자신을 위하여 세상의 것(물질, 명예, 영광)을 얻으려고 아무리 수고하고 애를 써도 세상을 떠날 때는 다 남의 것이 되고 썩어 없어진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 운동을 도와 드린 것은 하나님께서 영원히 기억하시며 우리의 영원한 상급이 된다.
아각과 좋은 짐승을 남김(7-9)
• 15:7-9 사울이 하월라에서부터 애굽 앞 술에 이르기까지 아말렉 사람을 치고 아말렉 사람의 왕 아각을 사로잡고 칼날로 그 모든 백성을 진멸하였으되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키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낮은 것은 진멸하니라
하나님께서 사울왕에게 아말렉을 칠 때에 다 진멸하여 죽이라고 하셨다. 그러나 사울은 아각왕을 사로잡고 죽이지 않았다. 다른 사람은 다 죽이고 왕만은 사로잡아 왔다. 왜 죽이지 않았는가? 불쌍하다고 사정을 조금 보아 준 모양이다. 또 보통 전쟁을 하면 왕은 죽이지 않는 것이 관례인 것 같다. 그리고 양과 소도 가치 없고 나쁜 것만 죽이고 기름진 것과 좋은 것을 남겼다. 이것은 백성들이 잡아먹으려는 속셈으로 죽이지 않고 가져온 것이다.
사울의 득세와 사무엘의 탄식(10-16)
• 15:10-12 여호와의 말씀이 사무엘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내가 사울을 세워 왕 삼은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좇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이루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신지라 사무엘이 근심하여 온 밤을 여호와께 부르짖으니라 사무엘이 사울을 만나려고 아침에 일찌기 일어났더니 혹이 사무엘에게 고하여 가로되 사울이 갈멜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 돌이켜 행하여 길갈로 내려갔다 하는지라
내가 사울을 세워 왕 삼은 것을 후회하노니 이것은 사울의 마음이 변하여 하나님을 좇지 않고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치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하는 일이 없으시지만 인간편에서 볼 때에는 탄식하는 것처럼 느껴진 것이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므로 사무엘이 사울의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밤을 새워 기도하였다.
사무엘이 사울을 만나려고 아침에 일찌기 일어났다. 그저 어떤 사람이 사무엘에게 와서 말하기를 사울이 갈멜에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 길갈로 내려갔다고 하였다.
• 15:13-16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른즉 사울이 그에게 이르되 원컨대 당신은 여호와께 복을 받으소서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행하였나이다 사무엘이 가로되 그러면 내 귀에 들어오는 이 양의 소리와 내게 들리는 소의 소리는 어찜이니이까 사울이 가로되 그것은 무리가 아말렉 사람에게서 끌어 온 것인데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 그 외의 것은 우리가 진멸하였나이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가만히 계시옵소서 간밤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신 것을 왕에게 말하리이다 가로되 말씀하소서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행하였나이다 사울이 크게 승리하고 의기 양양(意氣揚揚)해서 전승비까지 세웠으며, 사무엘을 만났을 때는 칭찬이라도 받을 줄 알고 이렇게 자랑스럽게 말하였다. 그러나 사무엘은 사울왕과 이스라엘의 장래를 위하여 밤새도록 근심하고 하나님께 부르짖다가 온 것이다. 사울의 생각은 사무엘과 너무 먼 거리에 있다. 사울이 전쟁에 나가서 수고도 많이 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행하느라고 했지만 완전히 순종하지 못했다.
사무엘이 자기 귀에 들려오는 소와 양의 소리는 어찌 된 일이냐고 물었다. 사울이 대답하기를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께 제사하기 위하여 가장 좋은 것을 남기고 그 외에는 진멸하였다”고 말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전부 죽이라고 하셨는데 하나님께 제사한다는 구실을 붙여서 살지고 좋은 것은 살려 두고 나쁜 것만 죽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순종하지 못하고 구실을 붙여서 불순종한 것이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간밤에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이르신 말씀을 들어보라고 하였다.
사무엘의 책망과 사울의 변명(17-21)
• 15:17-21 사무엘이 가로되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 여호와께서 왕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으시고 또 왕을 길로 보내시며 이르시기를 가서 죄인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되 다 없어지기까지 치라 하셨거늘 어찌하여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고 탈취하기에만 급하여 여호와의 악하게 여기시는 것을 행하였나이까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나는 실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여 여호와께서 보내신 길로 가서 아말렉 왕 아각을 끌어왔고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였으나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취하였나이다
사무엘은 대단히 격노한 음성으로 사울을 책망하였다.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때에(겸손할 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왕)가 되었으며, 여호와께서 왕에게 기름을 부어 왕을 삼으시고 왕을 보내시며 명령하기를 “가서 죄인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되 다 없어지기까지 치라” 하셨는데 어찌하여 왕이 하나님의 목소리를 청종치 않고 탈취하기에만 급급하여 여호와의 악하게 여기시는 것을 행하였느냐고 책망하였다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데는 구실이나 조건이 있을 수 없다. 무조건 순종하여야 한다. 그런데 사울이 하나님께 제사한다는 핑계를 대고 탈취하는데 눈이 어두워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사울은 하나님을 위해서 살릴 것을 살렸다고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
사울왕이 왜 아각왕을 죽이지 않고 데려 왔는가? 그것은 아각왕을 불쌍히 여겨 인정에 기울어졌기 때문이요, 패전국의 왕을 살리는 세상의 관습을 따르느라고 그랬는지도 모른다.
또 사울이 살진 짐승들을 끌어온 이유는 백성들을 두려워해서이다(24절). “짐승을 다 죽이지 말고 하나님께 제사드리고 우리도 먹는 것이 좋지 않느냐”는 백성들의 여론에 굴복하여 좋은 것은 죽이지 않고 끌어온 것이다. 또 탈취하기에만 급급했던 것이다(19절). 그러나 인간의 사정을 보아주는 것이 큰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 큰가? 세상 관습이 큰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 큰가? 백성의 여론이 큰가 하나님의 말씀이 큰가? 무엇보다도 크고 존귀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나 사울은 백성의 환심을 사서 자기의 왕권을 오래 누려 보려고 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보다 백성의 여론을 크게 여겨 하나님 앞에 큰 죄를 범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때 가감하지 않아야 하며 어떤 이유든 구실을 붙여 불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진노하신다.
순종이 제사보다 나음(22-23)
• 15:22-23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순종이 아주 귀하다는 말씀이다. 사울이 하나님께 제사하기 위하여 짐승들을 살려서 끌어왔다고 하지만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지 못한 것이다. 순종이 없는 제사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신다.
제사드리는 것은, 첫째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죄로 막혔던 담을 헐어 버리고 하나님과 사귀기 위한 것이며, 둘째로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거역하는 것은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다. 순종하지 않으면 벌써 그 자체가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제사나 다른 무엇보다도 순종을 가장 기뻐하신다.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하나님의 말씀 듣는 것이 제물보다 낫다. 로마서 10:17에“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하였다. 믿음에는 표준이 있고 표준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말씀을 듣는 것이 중요하고 들어서 말씀대로 믿어야 한다. 믿음을 위하여 희생할 때 말씀대로 희생하여야 한다. 예수를 믿는 사람 중에도 말씀대로 희생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희생을 해도 바로 하여야 한다. 바르지 못한 교리에 대하여 희생하고 충성하는 것은 헛것이다. 영적 골방에 들어가기를 힘쓰고 사모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다음에는 힘써 순종하여야만 된다. 순종하지 않으면 죄이다.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邪神)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는 것은 하나님을 떠난 것이고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요 또한 자신을 속이는 것이 된다. 하나님을 떠나서 아무리 열광적으로 하나님을 섬긴다 하여도 그것은 무당이 굿하는 것과 같다.
완고함은 마음이 굳어지고 고집이 센 것으로 온유함의 반대이다. 마음이 완고하면 감동을 받지 못하므로 하나님을 떠나게 되고 생명의 역사가 떠나게 된다. 이런 처지에서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우상에게 절하는 것과 같다. 감동을 소멸하여 하나님의 역사가 떠나고 하나님과는 상관이 없기 때문에 우상을 섬기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하나님을 참으로 섬기는 사람은 온유하고 겸손하여 어린아이와 같이 순진해야 한다. 그러한 사람이어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능력이 그에게 나타나게 된다.
사울이 사무엘을 이용하려 함(24-31)
• 15:24-31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 청하오니 지금 내 죄를 사하고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나로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나는 왕과 함께 돌아가지 아니하리니 이는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음이니이다 하고 사무엘이 가려고 돌이킬 때에 사울이 그의 겉옷자락을 붙잡으매 찢어진지라 사무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나라를 왕에게서 떼어서 왕보다 나은 왕의 이웃에게 주셨나이다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 사울이 가로되 내가 범죄하였을지라도 청하옵나니 내 백성의 장로들의 앞과 이스라엘의 앞에서 나를 높이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나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이에 사무엘이 돌이켜 사울을 따라가매 사울이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사울이 자기가 범죄하였다고 말하였는데 그것은 여호와의 명령을 어기고, 하나님의 종의 말씀을 어긴 것을 말한다. 사울이 죄를 범한 이유는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았던 것이다. 사울이 이렇게 말하였지만 진정한 회개를 한 것이 아니다. 범죄한 이유를 대고 다른 사람을 원망하거나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자기의 죄를 원통히 생각하여 상한 심령으로 회개하는 행위가 아니다. 세리의 기도는 자기의 죄를 깨닫고 통절히 회개하는 기도였다(눅18:13).
사울이 백성의 신임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것은 자기를 위하는 정신에서 나온 것이었다. 자기를 높이고 자기의 유익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다. 이것은 곧 자기가 우상이 된 것이다. 제일 큰 원수가 자기이며 제일 큰 우상이 자기인 것을 알아야 한다. 언제나 자기를 위하는 정신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면 하나님은 떠나시고 결국에는 멸망하게 된다.
사울은 자기를 위하는 정신을 그대로 두고 회개했기 때문에 참된 회개가 되지 않았다.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 하는 회개는 회개가 아니다. 하나님만 위하고 자기는 부인하여야 진정한 회개가 되고 진정한 순종도 할 수 있게 된다.
지금 내 죄를 사하고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나로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사울이 사무엘과 동행함으로써 자기의 위신을 높이려고 한 것이다. 아직도 자기를 위하는 정신이 여전하여 자기의 죄를 진정으로 회개하려 하지 않고 자기의 죄를 감추려고 하였다.
나는 왕과 함께 돌아가지 아니하리니 진리(말씀)를 버린 자와는 동행할 수 없고 하나님의 종이 한 개인의 유익을 위하여 이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사무엘은 또 사울에게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을 버렸다”고 책망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도 그를 버리신다.
사무엘이 가려고 돌이킬 때에 사울이 그의 겉옷자락을 붙잡으매 찢어진지라 사울이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고 교만하여지니 하나님께서 사울에게서 왕권을 빼앗아 다른 사람에게 주신다는 것을 보여 주신 것이다.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하나님은 진실하시고 불변하신 하나님이시다. 인간은 형편에 따라 수시로 변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변하지 않으신다.
내 백성의 장로들의 앞과 이스라엘의 앞에서 나를 높이사 사울은 자기가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백성과 장로들 앞에서 자기를 높여 달라고 사무엘에게 말하였다. 겸비하고 낮아져서 통회하여야 할 터인데 도리어 뻔뻔스럽고 허영과 교만이 가득한 태도이다.
사무엘이 돌이켜 사울을 따라가매 사무엘이 사울을 따라간 것은 진리 문제를 다 밝혀 놓았기 때문에 이제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동행하여 준 것이다. 진리를 세워 놓은 후에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것은 잘한 것이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사랑하여야 된다.
사무엘이 아각을 죽임(32-33)
• 15:32-33 사무엘이 가로되 너희는 아말렉 사람의 왕 아각을 내게로 이끌어 오라 하였더니 아각이 즐거이 오며 가로되 진실로 사망의 괴로움이 지났도다 하니라 사무엘이 가로되 네 칼이 여인들로 무자케 한 것같이 여인 중 네 어미가 무자하리라 하고 그가 길갈에서 여호와 앞에서 아각을 찍어 쪼개니라
사무엘의 책망을 듣고 사울이 참으로 회개할 마음이 있었다면 아각왕과 모든 짐승을 다 죽이고 진정한 회개를 하였을 것이다. 그렇게 하였더라면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겼을지도 모른다. 사울이 죽이지 않은 아각왕을 사무엘이 죽였다. 사무엘이 아각을 죽이기 전까지는 사울이 회개할 기회가 있었으나 아각왕을 죽인 후에는 회개할 기회가 없어졌다. 참으로 사울의 장래가 불쌍하게 되었다.
지금도 사울과 같은 타락된 성도(교회)가 있고 사무엘과 같은 참성도(교회)가 있다. 타락된 성도는 성경 말씀을 자기의 마음에 맞는 것만 지키고 맞지 않는 것은 버린다. 참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지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모두 지키려고 애를 쓰다가 지키지 못하면 회개하고 더욱 힘써 지켜 나아가는 것이 참성도이다.
찍어 쪼개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수행하는데는 단호하게 수행하고 인정이나 사정을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하나님께서 죽이라면 죽이는 것이 옳고 살리라면 살리는 것이 옳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 지키려고 힘써 나아가야 한다. 사울과 같이 가감하여 지키면 마지막에는 왕권이 떠나고 하나님의 심판이 와서 망하고 만다.
사무엘이 사울을 다시는 만나지 않음(34-35)
• 15:34-35 이에 사무엘은 라마로 가고 사울은 사울 기브아 본집으로 올라가니라 사무엘이 죽는 날까지 사울을 다시 가서 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사울을 위하여 슬퍼함이었고 여호와께서는 사울로 이스라엘 왕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더라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살면서 회개할 줄 모르는 사울에게 사무엘은 더 이상 권면할 필요가 없었다. 하나님께서 회개할 기회를 주실 때 회개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돌이킬 수 없는 때가 온다. 에서도 나중에는 울면서 원통해 하였지만 한 뻔 빼앗긴 장자의 명분을 끝내 되찾지 못하였다. 사울이 사무엘의 책망을 듣고 즉시 거꾸러져서 “불쌍히 여겨 주소서”하고 아각왕과 소와 양을 다 죽이고 잘못을 통회하였더라면 하나님의 노가 풀어졌을 것이지만 기회를 잃고 말았다.
사무엘은 아각왕을 죽이고 돌아갔다. 그 후에는 사울왕을 다시 보지 않았다. 회개할 때가 다 있는데 그때를 놓치면 회개할 수가 없다. 우리도 하나님 명령에 불순종한 것을 찾아서 회개할 기회가 지나가기 전에 다 회개해야 한다.
'구약성경 말씀 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종교개혁 주일설교말씀] 느헤미야의 종교개혁(느 13:1-31) (0) | 2023.12.16 |
---|---|
[종교개혁 주일 설교말씀] 아달랴 죽음과 여호야다의 종교개혁(대하 23:1-21) (0) | 2023.12.10 |
[열왕기하 25장 오늘 말씀] 바벨론 3차 침공과 예루살렘 멸망(왕하 25:1-30) (0) | 2023.12.09 |
[역대하 21장 강해 성경말씀] 여호람의 악한 정치와 죽음(대하 21:1-20) (0) | 2023.12.03 |
[에스겔 17장 성경말씀] 유다 멸망과 바벨론 포로 예언(겔 17:1-24) (0) | 2023.11.21 |
[예레미야 25장 성경말씀] 유다 백성의 70년 바벨론 포로 생활(렘 25:1-38) (0) | 2023.11.19 |
[잠언 23장 힘이 되는 말씀] 포도주와 술을 먹지 말라(잠 23:1-35) (0) | 2023.11.11 |
[욥기 18장 성경 말씀] 욥을 책망하는 빌닷(욥 18:1-21) (0) | 2023.11.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