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18장 성경 말씀은 욥을 책망하는 빌닷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수아 사람 빌닷이 욥의 결백을 주장하는 말씀을 듣고 말을 했다. 빌닷은 욥을 좋게 보지 않고 악인으로 보려고 한다. 욥이 고통받고 있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욥을 책망하는 빌닷(욥 18:1-21)
빌닷이 욥을 공격함(1-4)
• 18:1-2 수아 사람 빌닷이 대답하여 가로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말을 찾겠느냐 깨달으라 그 후에야 우리가 말하리라
욥의 친구 빌닷이 8장에서 욥에게 충고하였고, 이번에 다시 노(怒)한 어조(語調)로 욥을 경책하며 정죄하였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말을 찾겠느냐 “너희”는 욥이 욥을 지지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어느 때까지 변명할 말을 찾아서 변명만 하겠느냐는 것이다.
깨달으라 그 후에야 우리가 말하리라 빌닷은 욥이 자기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줄로 생각했다. 그러므로 욥이 욥을 지지하는 자들이 바로 깨달은 다음에야 같이 말하겠다는 것이다. 지금은 욥이 너무 잘못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와 말할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눈 하나 있는 자가 눈 둘 있는 자를 병신으로 여기는 것과 같다.
• 18:3 어찌하여 우리를 짐승으로 여기며 부정하게 보느냐
빌닷은 욥이 자기들을 짐승으로 취급하고 부정하게 여겼다는 것이다. 욥은 친구들에게 실지로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니다. 욥은 그들에게 “조롱하는 자”라고 했고(17:2), “지혜롭지 못한 자”라고 했으며(17:10), “헛된 말을 지어내는 자”라고 한 것인데(16:3), 이 말을 과장(誇張)하여 자기들을 짐승으로 취급했다고 몰아붙였다. 다른 사람에게 냉혹하게 대하는 자는 다른 사람이 먼저 자기에게 그렇게 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욥은 자그마한 사실을 말했으나 친구들은 악평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이것은 그들이 교만하고 자존심이 강하여 자기중심으로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교만한 자들은 하나님을 공경한다고 하면서도 자기 중심으로 살기 때문에 이렇게 큰 오해에 빠져서 의인을 핍박하게 된다.
• 18:4 너 분하여 스스로 찢는 자야 너를 위하여 땅이 버림을 당하겠느냐 바위가 그 자리에서 옮기겠느냐
빌닷은 욥을 가리켜 “분하여 스스로 찢는 자”라고 비방하였다. 그는 욥이 전에 한 말을 오해하고 확대하여 책잡은 것이다. 욥이 실지로 한 말을 13:14에 “내가 어찌하여 내 살을 내 이로 물고 내 생명을 내 손에 두겠느냐”라고 했고, 16:9에 “그는 진노하사 나를 찢고 군박하시며 나를 향하여 이를 갈고 대적이 되어 실족한 눈으로 나를 보시고”라고 한 것이다. 욥의 분노가 욥을 스스로 찢게 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너를 위하여 땅이 버림을 당하겠느냐 바위가 그 자리에서 옮기겠느냐 땅과 바위는 하나님께서 창조해 놓은 자리에 그대로 있다. 그러므로 이 말은 욥이 아무리 분을 내어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과 하나님의 법은 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욥을 벌하고 멸망시키려고 하는데 땅과 바다를 제자리에서 옮길 수 없는 것같이 그 형벌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빌닷은 욥이 마땅히 받아야 할 형벌을 받아야 하고 그 형벌을 벗어날 수 없다고 가혹하게 정죄하였다.
빌닷이 악인이 받을 벌을 진술함(5-21)
• 18:5-6 악인의 빛은 꺼지고 그 불꽃은 빛나지 않을 것이요 그 장막 안의 빛은 어두워지고 그 위의 등불은 꺼질 것이요
빌닷이 여기서부터 끝 절까지 악인이 받을 벌에 대하여 진술(陳述)하고 있다.
첫째, 악인의 빛은 꺼지고 그 불꽃은 빛나지 않을 것임. 악인은 이 세상에서 빛나게 살 수 없고 행복하게 살 수 없다는 것이다. 빌닷의 이 말은 일반적인 진리를 말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욥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둘째, 그 장막 안의 빛은 어두워지고 그 위의 등불은 꺼짐. 악인은 행복이나 번영의 등불이 더 이상 비춰 나가지 못하고 삶의 소망이 다 끊어진다는 것이다. 이것도 일반적으로는 옳은 진리이나 욥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 18:7 그 강한 걸음이 곤하여지고 그 베푼 꾀에 스스로 빠질 것이니
셋째, 악한 사람은 아무리 강해도 마침내는 피곤해져서 가다가 쓰러짐.
넷째, 자기가 베푼 꾀에 스스로 빠지게 됨. 시편7:15에 “저가 웅덩이를 파 만듦이여 제가 만든 함정에 빠졌도다”라고 하였다. 악인은 잘될 줄 알고 악을 꾀하지만, 제 죄에 빠져 망한다.
• 18:8-9 이는 그 발이 스스로 그물에 들어가고 얽는 줄을 밟음이며 그 발뒤꿈치는 창애에 치이고 그 몸은 올무에 얽힐 것이며
다섯째, 악한 사람의 발은 그물에 걸림.
여섯째, 얽는 줄을 밟음. 자기를 얽어맬 줄에 자기 스스로 걸린다는 것이다.
일곱째, 발이 창애에 치임. 짐승을 잡는 창애에 치인다는 것이다.
여덟째, 자기 몸이 올무에 걸림.
• 18:10-11 그를 동일 줄이 땅에 숨겼고 그를 빠뜨릴 함정이 길에 베풀렸으며 무서운 것이 사방에서 그를 놀래고 그 뒤를 쫓아올 것이며
아홉째, 동일 줄이 땅에 숨겨 있음.
열째, 빠질 함정이 길에 베풀어져 있음.
열 한째, 무서운 것이 사방에서 놀라게 함.
잠언28:1에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하니라”고 하였다. 정당하지 못한 길을 걸어가는 자는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게 된다.
• 18:12-13 그 힘은 기근을 인하여 쇠하고 그 곁에는 재앙이 기다릴 것이며 그의 백체가 먹히리니 곧 사망의 장자가 그 지체를 먹을 것이며
열 두째, 기근으로 인하여 힘이 쇠해짐. 악인은 힘이 있는 것 같으나, 가다가 반드시 쇠패한다. 기근을 당하여 굶주리며 쇠하게 되고 거꾸러진다(암5:18-19).
열 셋째, 그 곁에는 재앙이 기다림.
열 넷째, 백체(百體)가 짐승에게 먹힘.
열 다섯째, 사망의 장자가 지체(肢體)를 먹음. “사망의 장자(長子)”는 가장 무섭고 독한 악성 질병을 가리킨다. 아랍 지방에서는 열병이나 문둥병처럼 무서운 병들을 “사망의 아들”, “운명의 딸”이라고 칭하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그러한 것들이 그 지체를 먹는다는 것이다. 헤롯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자기에게 돌렸으므로 충(蟲)이 먹어 죽었다(행12:23).
• 18:14-15 그가 그 의뢰하던 장막에서 뽑혀서 무서움의 왕에게로 잡혀가고 그에게 속하지 않은 자가 그 장막에 거하리니 유황이 그 처소에 뿌려질 것이며
열 여섯째, 그 의뢰하던 장막에서 뽑힘. 악인은 자기 집을 안식처로 삼고 살지만, 그 의뢰하던 집에서 뽑혀 무서움의 왕에게 잡혀가게 될 것이다. 무서움의 왕은 무서운 질병으로서 13절에서 “사망의 장자”라고 한 것을 인격화(人格化)한 것을 가리키나 실상 죽음 자체를 가리키는 듯하다(시49:10 참조; 사28:15).
열 일곱째, 그에게 속하지 않은 자가 그 장막에 거하게 됨. 이것은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 와서 자기 집에 거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악인은 자기가 의뢰하고 안식처로 삼던 집도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게 된다는 것이다.
열 여덟째, 유황이 그 처소에 뿌려질 것임. 불의한 길을 걷는 사람의 처소에는 유황불이 내려 완전히 폐허가 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이것도 역시 욥에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 18:16-17 아래서는 그 뿌리가 마르고 위에서는 그 가지가 찍힐 것이며 그의 기념이 땅에서 없어지고 그의 이름이 거리에서 전함이 없을 것이며
열 아홉째, 뿌리가 마르고 가지가 찍힘. 이 말은 욥의 가정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빌닷이 말한 “뿌리”는 욥을 염두에 둔 말이고, “가지”는 욥의 자녀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나가지 않는 자는 자신이나 그의 자녀들이나 다 징벌을 받아 쇠해진다는 뜻이다. 이것도 일반적인 진리이다. 그러나 욥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스무째, 그의 기념이 땅에서 없어지고 이름이 거리에서 전함이 없어짐. 악인은 아무리 훌륭하다 할지라도 곧 그 기념할 만한 것도, 그 이름도 사람들 사이에서 사라진다는 것이다. 시편37:35-36에 “내가 악인의 큰 세력을 본즉 그 본토에 선 푸른 나무의 무성함 같으나 사람이 지날 때에 저가 없어졌으니 내가 찾아도 발견치 못하였도다”라고 하였다. 불의한 사람은 아무리 무성한 큰 나무 같아도 얼마 후에 망한다. 그러나 성도의 이름은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영원히 빛난다. 누가복음10:20에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하였다.
• 18:18 그는 광명 중에서 흑암으로 몰려들어가며 세상에서 쫓겨날 것이며
스물 한째, 악한 사람은 광명 중에서 흑암으로 몰려들어감. “광명”은 형통함과 행복을 가리키고, “흑암”은 불행과 부끄러움 당하는 것을 가리킨다.
스물 둘째, 세상에서 쫓겨남. 이것은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 성도는 언제나 의(義)의 길에 서서 모든 일을 정직하게 하고 양심을 써서 해야 한다.
• 18:19 그는 그 백성 가운데서 아들도 없고 손자도 없을 것이며 그의 거하던 곳에는 한 사람도 남은 자가 없을 것이라
스물 셋째, 후손이 없게 되고 그가 거하던 곳에는 한 사람도 남은 자가 없게 됨. 악인이 하는 모든 일은 실패하고 계승자가 없으며 그가 모아 놓은 단체나 기업체에 있던 사람은 다 헤어지고 한 사람도 남는 자가 없게 될 것이다. 자기의 아들도 불의한 길을 걸으며 부모를 공경하지 않을 것이요 손자도 조부모를 공경하지 않는다. 그들이 부모나 조부모의 사상이나 사업을 계승하지 않고 도리어 반대로 나가게 되므로 손자라고 할 수 없을 정도가 된다.
• 18:20-21 그의 날을 인하여 뒤에 오는 자가 앞선 자의 두려워하던 것같이 놀라리라 불의한 자의 집이 이러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의 처소도 그러하니라
스물 넷째, 뒤에 오는 자가 놀라게 됨.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불의한 자가 멸망한 것을 보고 뒤에 오는 후대(後代) 사람들이 놀라고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마치 롯의 처가 소금 기둥이 된 것이 후대 사람들에게 징벌 받은 표본(標本)이 되어 두려움이 된 것과 같다. 악인이 망하면 후대에게 죄를 경고(警告)하는 간판이 된다는 것이다.
빌닷은 여기서 악인의 멸망에 대해서 24가지를 진술했는데 이것은 욥을 두고 한 말이다. 즉 욥이 지금 불의한 길을 걷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망한다는 것이다. 악인은 망한다는 빌닷의 말은 진리였다. 그러나 그것을 욥에게 적용시킨 것은 잘못이다. 욥이 깨닫고 걸어가는 깊은 진리에는 적용이 안 되는 것이다. 빌닷은 진리의 말씀을 가지고 욥의 경건과 의와 성결을 빼앗아 넘어뜨리려는 것이었다. 이것은 분명히 마귀 시험이다. 마귀가 빌닷을 통해서 욥을 넘어뜨리려는 술책이었다. 그러나 욥은 끝까지 자기 진리를 양보하지 않고 신앙 양심을 써서 의의 길을 걸어갔다. 그러므로 마침내는 욥이 하나님의 인정과 권고를 받게 되었고 갑절의 복을 받았다.
오늘날도 깊은 진리의 말씀대로 영적 생명의 길을 걷는 성도를 미혹시키려 한다. 그러나 성도가 욥이 같이 자기가 받은 진리와 신앙 양심을 양보하지 말고 끝까지 생명길을 걸어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권고해 주tu서 그 빛이 영원히 빛나게 되고 상급이 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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