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1장 성경 말씀은 시드기야와 예루살렘에 대한 예레미야의 예언이 기록되어 있다. 유다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는 바벨론에 의해서 포로로 잡혀간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멸망의 길로 인도했다.
시드기야와 예레미야에 대한 예언(렘 21:1-14)
바벨론군이 침략하매 시드기야가 예레미야에게 기도를 부탁함(1-2)
• 21:1-2 시드기야왕이 말기야의 아들 바스훌과 제사장 마아세야의 아들 스바냐를 보내어 예레미야에게 말하기를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우리를 치니 청컨대 너는 우리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라 여호와께서 혹시 그 모든 기사로 우리를 도와 행하시면 그가 우리를 떠나리라 하던 그 때에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하니라
바벨론 군이 예루살렘을 치니 시드기야왕이 바스훌과 제사장 스바냐를 예레미야에게 보내어 기도를 부탁하였다. 이것은 15:11下 에 “내가 진실로 네 대적으로 재앙과 환난의 때에 네게 간구하게 하리라”고 한 예언대로 된 것이다. 시드기야의 잘못된 점은 다음과 같다. ①평소에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선지자를 무시하다가 환난을 당할 때에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려고 하였다. ②회개하지 않고 구원만 받으려고 하였다. ③자기는 기도하지 않고 선지자에게 기도를 부탁하였다. ④자기의 유익을 위하여 이적이 나타나기를 원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하나님의 구원 운동을 위하여 이적을 행하시나 사람이 자기를 위하여 모험적으로 이적을 요구할 때에는 행치 않으신다. 그 들이 평소에 예레미야를 비방하고 악평하면서도 양심으로는 예레미야가 옳은 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위기에 처할 때에 예레미야에게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언제나 하나님 말씀대로 바로 믿고 나가는 성도를 비방하고 악평하는 자들이 양심으로는 성도가 옳은 줄 알고 있다.
하나님이 진노하여 유다 백성을 바벨론 왕에게 붙임(3-7)
• 21:3-4 예레미야가 그들에게 대답하되 너희는 시드기야에게 이같이 말하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너희가 성 밖에서 바벨론 왕과 또 너희를 에운 갈대아인과 싸우는 바 너희 손에 가진 병기를 내가 돌이킬 것이요 그들을 이 성 중에 모아 들이리라
시드기야가 하나님의 기사로 자기들을 도와 달라고 사신들을 예레미야에게 보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다. 그 말씀은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 성을 에우고 칠 때에 하나님께서 유 다 군으로 하여금 패하게 하여 성이 바벨론 군에게 함락되리라는 것이다.
너희를 에운 갈대아인은 예루살렘을 에워싼 바벨론 군대를 가리킨다. 이것을 보면 유명한 하나님의 종에게 기도를 부탁한다고 다 잘되는 것이 아니다. 잘되는 길은 평소에 자기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고, 환난을 당하면 자기가 회개하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고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해야 한다.
• 21:5-7 내가 든 손과 강한 팔 곧 노와 분과 대노로 친히 너희를 칠 것이며 내가 또 이 성에 거주하는 자를 사람이나 짐승이나 다 치리니 그들이 큰 염병에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 여호와께서 또 말씀하시되 그 후에 내가 유다 왕 시드기야와 그 신하들과 백성과 및 이 성읍에서 염병과 칼과 기근에서 남은 자를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과 그 대적의 손과 그 생명을 찾는 자들의 손에 붙이리니 그가 칼날로 그들을 치되 아끼지 아니하며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며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진노와 분(忿)으로 예루살렘 성에 거하는 사람과 짐승을 쳐서 염병과 칼과 기근으로 죽이고 거기에서 벗어난 왕과 신하와 백성들은 바벨론 왕의 칼날에 죽임을 당하고, 나머지는 포로로 잡혀가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이처럼 미워하시고 심판하신다.
유다 백성에게 사망의 길과 생명의 길을 둠(8-10)
• 21:8-9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또 이 백성에게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신다 하라 보라 내가 너희 앞에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을 두었노니 이 성에 거주하는 자는 칼과 기근과 염병에 죽으려니와 너희를 에운 갈대아인에게 나가서 항복하는 자는 살리니 그의 생명은 노략한 것 같이 얻으리라
너희 앞에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을 두었노니 하나님께서는 죄 값으로 멸망하는 사람에게도 생명의 길을 주신다. 그러므로 우리 앞에는 사망의 길과 생명의 길, 두 길이 있는 줄 알고 사망의 길로 가지 말고 생명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아무리 큰 재앙을 만나고 원수가 쳐들어 와서 다 망할 것 같아도 생명의 길은 반드시 있다. 그 생명길은 곧 회개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것이다. 신명기 28장에도 두 길 즉, 복 받는 길과 화 받는 길에 대하여 말씀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면 복을 주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거역하면 화를 받는다. 예레미야 선지자 당시 예루살렘 사람들의 생명의 길은 갈대아인에게 나가서 항복하는 것이다. 바벨론 왕에게 항복하면 그 생명을 노략질한 것 같이 얻게 된다.
※ 왜 바벨론에 항복하는 것이 사는 길인가? ①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② 회개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③ 겸손하고 낮아지는 길이기 때문이다. ④ 연단을 잘 받아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격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항복하여 예속(隸屬)되는 것보다 독립해서 살기를 원한다. 그러나 유다인들이 교만하여 하나님을 불순종하고 완악하여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고 마귀의 종들이 되었다. 그러므로 그대로는 하나님이 쓰실 수 없다. 그들이 바벨론에게 항복해야 많은 고난을 받아 회개하고 그 교만과 완악한 마음이 깨어져 나가 정결케 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을 바벨론에 항복하게 하여 바벨론 왕을 섬기게 한 것이다.
오늘날에도 다른 사람의 수하(手下)에 예속(隸屬)되어 연단을 받아야 더 잘 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하와이의 경우 미국에 합병되므로 하와이 사람들이 미국의 본토인과 같은 혜택을 받게 되었다. 윗사람에게 예속되고 윗사람을 섬겨야 잘 된다. 윗사람을 섬겨보지 않은 사람은 교만하기 쉽고, 교만하면 패망한다.
당시 유다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바벨론에 항복하고 그 밑에 예속되어 사는 것이다. 항복하면 낮아지고 수치스러운 일이나 하나님은 유다 민족을 낮추고 연단시켜 좋은 민족을 만들어 복 주시려고 그 길을 명하신 것이다. 만일 유다 백성이 자존심을 내세우고 자립적 주권을 고집하며 항복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므로 마침내 망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께서 낮아지라고 할 때에 낮아져야 하고 내놓으라고 하시면 내놓아야 한다. 자기의 자존심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면 더욱 낮아지고 망하는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해야 사는 길이 열린다. 진리는 생명을 내놓고 지켜 나아가야 하며 자기의 체면이나 주장이나 권리는 다 버려야 한다.
오른 뺨을 치면 왼 뺨도 돌려대라는 것은 신앙을 위해서 인격적인 모독(冒瀆)을 달게 받으라는 것이다. 또 억지로 오리(五里)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十里)를 동행하라는 것은 인권을 포기하면서라도 신앙을 양보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것이 승리하는 길이요 사는 길이다. 그러나 믿음을 쓰지 않는 사람들은 낮아지기를 싫어하여 사망의 길로 나아간다. 그의 생명은 노략한 것 같이 얻으리라 위태(危殆)한 중에서 겨우 생명을 건진다는 뜻이다.
• 21:10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얼굴을 이 성으로 향함은 복을 위함이 아니요 화를 위함이라 이 성이 바벨론 왕의 손에 붙임이 될 것이요 그는 그것을 불로 사르리라
나의 얼굴을 이 성으로 향함은 복을 위함이 아니요 화를 위함이라 회개하지 않고 완악하게 나가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심판의 얼굴을 향하시고, 회개하고 온유한 마음으로 순종하는 자에게는 긍휼과 구원의 손으로 나타나신다. 하나님은 사람이 행한 대로 갚아 주신다. 예루살렘 성이 범죄하고 순종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이 바벨론 왕의 손에 붙여 불사르게 한다고 하였다.
회개하고 바로 서지 않으면 다 망하게 됨(11-14)
• 21:11-12 유다 왕의 집에 대한 여호와의 말을 들으라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다윗의 집이여 너는 아침마다 공평히 판결하여 탈취 당한 자를 압박자의 손에서 건지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의 악행을 인하여 내 노가 불 같이 일어나서 사르리니 능히 끌 자가 없으리라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에게 두 가지를 명령하셨다. 첫째, 공평히 판결하라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나 모든 것을 공평히 판단하고 판결하여 의를 세워 나가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나라는 공평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모든 일에 있어서 양심을 쓰고 공평히 바로 행해야 한다.
둘째, 탈취(奪取)당한 자를 압박자의 손에서 건지라는 것이다(12절). 오늘날 탈취 당하는 자가 많이 있으니 그들을 건져낼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불쌍한 사람, 딱한 사람, 억울한 사람을 도와주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 마귀에게 탈취 당하고 영적으로 억눌려 고생하는 자들을 구원하여 영적 해방과 자유를 얻게 하는 것이 우리 성도들의 사명이다. 기독교의 사명은 세상에서 탈취당한 자들을 어느 정도 도와주고 영적으로 탈취당한 자들에게 영적 자유와 해방을 얻게 해 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물질적으로 가난한 자들을 어느 정도 도와주시고 영혼 구원하는 일에는 전 생명을 바친 것과 같다.
해방신학은 영적 해방과 구원은 경(輕)히 여기고 육신적 해방과 사회적 구원을 원목적으로 삼는 탈선(脫線)된 신학이다. 그러므로 해방신학은 사회주의요 세상운동이요 살륙과 폭력을 일삼는 마귀운동이다.
• 21:13-14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골짜기와 평원 반석의 거민아 보라 너희가 말하기를 누가 내려와서 우리를 치리요 누가 우리의 거처에 들어오리요 하거니와 나는 네 대적이라 내가 너희 행위대로 벌할 것이요 내가 또 수풀에 불을 놓아 그 사경을 사르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골짜기와 평원 반석은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요새지(要寨地)를 말한다. 유다 백성이 그것을 의지하여 염려 없다고 안심하고 있다. 적군이 침입할 수 없을 만큼 요새를 잘 만들어 놓고 그것을 의지하고 자랑하나 하나님께서는“나는 네 대적이라”고 말씀하신다. 아무리 안전한 요새에 앉아 있어도 하나님께서 대적이 되시면 감당할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 들어가지 못할 요새가 어디 있겠는가? 세상의 요새지를 의지하고 그것을 안식처로 삼고 있는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어리석게 보신다. 아무리 견고한 철옹성(鐵瓮城)을 만들어 놓아도 하나님이 한 번 손을 들면 순식간에 파괴되고 멸망하며 하나님께서 보호하여 주시지 않으면 아무리 견고한 요새지라도 소용이 없고 오지병 깨지듯이 다 깨어진다.
내가 너희 행위대로 벌할 것이요 하나님은 행위대로 벌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 앞에 바른 행위를 가져야 한다. 견고한 요새를 만들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 바로 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야 한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고 보호하여 주시고 피난처가 되어 주시고 생명의 길로 인도해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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