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원문 강해

[열왕기하 2장 히브리어 성경말씀] 엘리사를 조롱하던 자들의 최후(왕하 2:19-25)

엘벧엘 2022. 4. 30.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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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2장에서 엘리사는 물이 나빠서 열매를 제대로 맺지 못하는 물의 근원을 정화시켰습니다. 소금을 물에 던졌더니 물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엘리사가 벧엘로 올라갔는데 사람들이 나와서 엘리사를 대머리라고 조롱하고 있습니다. 엘리사가 저주했더니 수풀에서 암곰 둘이 나와서 42명을 죽였습니다.

 

엘리사를 조롱하던 자들의 최후(왕하 2:19-25)

 

19절 바요메루 아니셰 하이르 엘 엘리샤 힌네 나 모샤브 하이르 토브 카아셰르 아도니 로에 비하마임 라임 베하아레츠 미샤칼레트

=====2:19

이 성읍의 터는 아름다우나 - 여기서 말하는 성읍은 구체적으로 어느 성읍을 가리키는지 알 수 없으나 일반적으로 여리고 성 일 것이라고 생각한다(Hobbs). 왜냐하면 여리고는 광활한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이 경치가 좋고 살기 좋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여리고에는 유대 산지에서 저지대로 흐르는 강이 있었으며, 종려나무(신 34:3)와 무화과나무(눅 13:6-9)가 있었고 방향(芳香)의 관목들과 향기로운 수지를 내는 나무 등이 많아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히던 장소였기 때문이다. 한편 본문의 이 이야기는 텔 에스술탄(Tell es-Sultan)의 서쪽에 위치한 '엘리사의 샘'의 전설로서 오늘날까지 전해져 오고 있다.

   물이 좋지 못하므로 - 본절에서는 물에 독소가 어떻게 해서 생겨났는지를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 성의 사람들은 물이 나쁘기 때문에 토산물(土産物)이 익지 못하고 떨어진다고 생각을 했던 것이다(Wycliffe). 한편 혹자는 이러한 환상이 여리고성에 대한 여호수아의 저주(수 6:26)에 의한 것으로 설명하기도 한다(Blake).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지나이다 - 여기서 '토산'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하아레츠'인데, 이것은 '땅', '육지', '나라', '주민'등의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여기서는 '땅'을 의미(Keil & Delitzsch)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땅의 '주민들'도 함께 의미(The Interpreter's Bible)한다고 보는 것이 옳다(레 19:29). 또 '익지 못하고 떨어지나이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메솨켈레트'로서 사람이나 동물들이 '자식을 낳지 못하다'라는 뜻의 동사 '솨콜'의 분사형이다. 또 이 단어는 특별히 비유적으로 포도원에 '결실이 없다'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러한 비유적인 의미는 결국 자손에 관한 것일 수도 있다(호 9:14). 그래서 루시니안 헬라어 역본은 이를 '아이가 없는'(be childless)으로 번역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다양한 문제들을 고려하면서 본절을 원문에 따라 해석하면 1) '그 땅에는 소산이  없다', 2)'그 거민은 유산한다'를 의미한다. 이에 따라 공동번역과 Living  Bible은  70인 역(LXX)과 마찬가지로 '주민이 아이를 낳지 못한다'란 의미로 해석한 반면 대부분의 영역본들(KJV, RSV, NIV)은 '그 땅에 소산이 없다'라고 번역하였다. 그런데 물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은 땅의 소산이므로 본절에서는 1)의 해석을 따르는 것이 타당하다. 한편 토산을 맺지 못하던 땅이 변화된 것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변화된 성도들에  비유될 수 있다. 즉 토산을 맺지 못하던 여리고 성읍과 같은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거둘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기억해야 하겠다(마 13:23).

20절 바요메르 케후 리 칠로히트 하다샤 비시무 샴 멜라흐 바이케후 엘라이브

=====2:20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 '소금'은 음식물의 양념으로(욥  6:6), 제사용품으로(레 2:13;겔 43:24), 그리고 신생아의 소독제와(겔 16:4), 방부제 등으로 사용되었다. 이런 다양한 용도와 관련하여  '폐허'(삿 9:45;신 29:23),  '생명'(마 5:13), '언약'(민 18:19;대하 13:5)등을 상징하기도 했다. 이는 엘리사가 마라의 쓴 물을 달게 하신(출 15:23) 여호와 하나님의 권능을 믿어 의심치 않았으며 이러한 확신하에 하나님의 능력을 표현한 기적을 연출해 냈던 것이다(4:41;출 16:25;요 9:6). 이러한 사실은  예수께서 소경을 치료하실 때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만든 다음 그것을 소경의 눈에 발라서 낫게 하신 사실과 비교될 수 있다. 한편 본절에서 새 그릇은 전적으로 깨끗하고 정결한 수단, 즉 새롭게 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Matthew Henry, Vol. , p. 717) 소금은 정결을 상징한다(Pulpit Commentary, The Bible Knowledge Commintary).

21절 바예체 엘 모차 하마임 바야쉘레크 샴 멜라흐 바요메르 코 아마르 아도나이 리피티 라마임 하엘레 로 이흐예 미샴 오드 마베트 우미샤칼레트

22절 바예라푸 하마임 아드 하욤 하제 키드바르 엘리샤 아셰르 디베르

=====2:21,22

  오늘날에 이르렀더라 - 이 말은 본서의 저자가 열왕기서에 관한 사료를 편집해 기록할 그 당시까지 여리고의 물이 청결하게 되어 백성들에게뿐 아니라 소산에 대해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음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서 본절은 엘리사의 이적에 대한 기록을 실증해 줌과 동시에 21절에 예언했던 엘리사의 말에 대한 권위를 대변해 주는 말이다.

23절 바야알 미샴 베이트 엘 베후 올레 바데레크 우니아림 키타님 야치우 민 하이르 바이트칼리수 보 바요메루 로 알레 케레아흐 알레 케레아흐

=====2:23

 젊은 아이들이 성에서  나와서 -  여기서 '젊은 아이들'이란  히브리어로 '나아르'로서 십이 세부터 십오 세의 '소년들'을  가리킨다(G.Rawlinson). 이들은 선악에 대한 충분한 인식력을 지니고서 도덕적으로 책임 있는 행동을 해야 할 자들이었다(Wycliffe).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낯선 나그네인 엘리사를 보고서 도움을 베풀기는커녕 오히려 조롱하고 비웃는 짓궂은 짓을 일삼았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엘리사가 그들에게 그렇게 잔인한 저주를 내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머리여 올라가라 - 율법에는 인공적으로 머리를 깎아 대머리가 되게 하는 것은 불법으로 되어 있다(신 14:1). 또 대머리는 문둥병에 의한 것으로(레 13:42-44)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징벌의 표징으로 생각했을 뿐만 아니라 천민으로 간주했던  것이다. 그러나 본절에서 엘리사의 대머리는 자연적인 특징으로서 결코 사람들의 조롱이나 비웃음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엘리사의 외모는 스승 엘리야의 외모와  대조를 이루고 있다(1:8). 한편 본절의 '올라가라'는 히브리어 '아래'를 번역한 말인데 이는 '높이 오르다', '도약하다', '능가하다'는 뜻으로 '네 길을 계속 가라'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Pulpit Commentary). 그러나 여기서는 엘리야처럼 '하늘로 올라가라'는 의미로(The Bible Knowledge Commentary) 엘리야의 승천을 비꼬는 말이다(Matthew Henry, Vol. , p. 718).

24절 바이펜 아하라이브 바이르엠 바이칼릴렘 비솀 아도나이 바테체나 쉬타임 디빔 민 하야아르 바티바카이나 메헴 아리바임 우쉐네 일라딤

=====2:24

본절에 기록된 저주와 그에 대한 성취 방법은 매우 잔인하였다. 그러나 이 사건은 우리의 윤리 기준을 가지고 설명해서는 안된다. 이것은 당시 여호와를 떠나 우상 숭배에 빠져있는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심판을 상징할 뿐만 아니라, 이제 사역을 시작하는 엘리사의 신적 권위를 증명하는 행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의 사람인  자신을 조롱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과 동일한 것으로 엘리사는 간주했던 것이다(대하 36:16;눅 23:36). 그래서 그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젊은 아이들에게 저주를 선포했는데 이는 율법 하에서 하나님의 일꾼들이 불순종하는 자에게 저주하도록 하는  모세 오경에 근거한 것이다(신 27:14-26). 그리고 아이들 중에 사십 이 명을 찢었다는 본절의 기록으로 미루어 보아 이 보다 더 많은 젊은이들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는 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조롱에 가담했다는 사실은 그 조롱의 행위가 미리 의도된  것이었음을 암시할 수도 있다(Wycliffe).

25절 바옐레크 미샴 엘 하르 하카르멜 우미샴 샤브 쇼므론

=====2:25

  갈멜 산으로 가고 - 갈멜 산은 휴양과 명상에 적합한 장소일 뿐만  아니라(Matthew Henry) 엘리야의 주된 활동지였기 때문에(Ewald) 그곳은 특별히 선지자들의 거주지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엘리사가 갈멜 산으로 간 것은 그곳에 있는 엘리야의 친지들이나 선지자의 생도들에게 그가 승천한 것을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G. Rawlinson, Pulpit Commentary).

   거기서 사마리아로 돌아왔더라 - 엘리사는 은둔 생활을 한 자기 스승 엘리야와는 달리 왕궁이 있는 사마리아에서 살았다. 거기서 사람들과 사귀고 교제하며(5:9;6:32), 왕의 친밀한 상담자 역할을 하기도 했다(6:9). 그리고 그는 왕에게로부터 상당한 존경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8:4). 한편 사마리아는 북이스라엘의 수도로서 엘리사가 사역한 중심지이다(Wycliffe).

[열왕기상 2장 히브리어 강해 말씀] 다윗의 군대장관 요압의 죽음(왕상 2:28-35)

 

[열왕기상 2장 히브리어 강해말씀] 다윗의 군대장관 요압의 죽음(왕상 2:2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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