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서 1장에서 유다는 이단자들에 대한 심판이 확실하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거짓 복음을 전파하는 자들을 가만두지 않습니다. 마지막 날에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아담의 칠대 손 에녹은 주님의 재림에 대해서 예언했습니다. 예수님이 반드시 재림하시니 올바르게 살라고 했습니다. 에녹은 죽음을 맛보지 않고 승천한 사람입니다. 성경에서 최초로 죽음을 맛보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강림이 확실하고 성도들이 부활할 것을 예표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이단들이 전하는 거짓 복음을 들어서는 안 됩니다. 항상 십자가 복음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단자들의 심판이 확실함(유 1:14-25)
14절 프로에페튜센 데 카이 투토이스 헤브도모스 아포 아담 에노크 레곤 이두 엘덴 퀴리오스 엔 뮈리아신 하기아이스 아우투
15절 포이에사이 크리신 카타 판톤 카이 엑셀레그크사이 판타스 투스 아세베이스 아우톤 페리 판톤 톤 에르곤 아세베이아스 아우톤 혼 에세베산 카이 페리 판톤 톤 스클레론 혼 엘랄레산 카트 아우투 하마르톨로이 아세베이스
유 1:14, 15
아담의 칠세손 에녹이 사람들에게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 --- “아담의 칠세손 에녹”이라는 표현은 성경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창 5:3-24과 역대상 1:1-3에서 아담을 일대 손으로 하여 계산할 경우 에녹이 칠대 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유다는 창세기나 역대상을 인용한 것이 아니라 에녹서를 인용한 것이다(에녹서 60:8 ; 93:3). 유다는 당시에 인정을 받고 많이 알려진 위경인 에녹서의 인용을 통해서 자신의 진술의 진정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어지는 인용의 내용은 에녹서 1:4, 9에서 비롯된 것이다.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사람을 심판하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 “주께서 ... 임하셨나니”는 에녹서에서 하나님의 종말론적 도래 즉 현현에 대한 예언이었으나 (에녹서 1:4), 유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파루시아에 적용해서 악한 자의 심판을 위한 그리스도의 재림을 강도하고 있다. 한편 그리스도의 파루시아에 적용해서 악한 자의 심판을 위한 그리스도의 재람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그리스도의 재림에 동반되는 “그 수만의 거룩한 자”는 천사들을 의미한다(신 33:2 ; 슥 14:5 ; 마 16:27). 그리스도께서는 파루시아 때에 천사들과 함께 임하셔서 불경건한 자들의 모든 것을 심판하실 것이다.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슬러 한 모든 강퍅한 말.------- 뉴다는 본문에서 “아세베스”와 관련된 제 개의 단어, 즉 “투스 아세베이스(경건치 않은 자)”, “에세베산(경건치 않게)”, “아세베이스(경건치 않은)”을 사용하여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아니한 자의 행위와 말을 심판하실 것을 강조하고 있다. “아세베스”와 관련된 이러한 것을 강조하고 있다. “아세베스”와 관련된 이러한 단어들은 이미 유다가 거짓 교사에게 적용한 것이다(4절). 유다는 의도적인 인용을 통해 경건치 않은 자의 행위와 말이 그리스도의 심판의 대상이 된 것처럼 거짓 교사들의 행위와 말이 파루시아 때에 그리스도의 심판의 대상이 될 것임을 암시한다. 거짓 교사들의 행위와 말은 주되신 그리스도를 거스르고 모욕하는 것이기에 파루시아 때에 반드시 정죄를 받게 될 것이다(4-10).
16절 후토이 에이신 공귀스타이 멤프시모이로이 카타 타스 에피뒤미아스 아우톤 포류오메노이 카이 토 스토마 아우톤 랄레이 휘페롱카 다우마존테스 프로소파 오페레이아스 카린
유 1:16
유다는 본절에서 다시 한번 거짓 교사들에 대해 정의를 내린다. 혹자는 본절의 내용을 유다가 “모세의 승천”에서 인용한 것이라고 주장하나 에녹서에서 인용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한 듯하다.
이 사람들은 원망하는 자며, ----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그의 뜻을 거부하였던 것을 반영하는 것으로(민 14:2,27,29,36 ; 신 1:27 ; 시 106:25 ; 고전 10:10) 앞절에서 언급된 에녹서의 인용문에서 불경건한 자들이 주를 거슬러 강퍅한 말을 한 것에 대한 설명이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양에서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한 것처럼 거짓 교사들은 주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권위를 받아들이지 않을 뿐 아니라 도리어 원망하고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자유를 남용하여 율법을 멸시하고 도덕 폐기론을 주장하였다.
불만을 토하는 자.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멤프시모이로이”는 “원망하는 자”를 강조하는 표현으로 거짓 교사들이 자신의 몫에 대해 늘 불만족하여 습관적으로 비판하고 불평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도덕적인 규정들을 불만족스럽게 생각하여 내던져 버리고 도덕 폐기론을 주장하였다.
그 정욕대로 행하는 자라. --- 이것은 “그들의 정욕을 따라 산다”라는 의미로 거짓 교사들이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처럼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보다는 자신들의 뜻을 따라 행동하였음을 시사한다 그 결과 그들은 정욕, 탐욕과 같은 죄에 빠지게 되었다.
그 입으로 자랑하는 말을 내며. --- “자랑하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휘페롱카”는 문자적으로 “거대한”을 의미한다. “거대한”이란 말은 “안디오쿠스 에피파네스”(단 11:36)나 적그리스도(계 13:5)를 연상케 하는 표현으로 하나님을 대적하여 떠드는 것을 의미한다(에녹서 5:4 101:3). 이것은 거짓 교사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멸시하고 거부하여 도덕 폐기론을 주장함으로 하나님을 향해 거만한 태도를 취하였음을 시사한다.
이를 위하여 아첨하느니라. --- 이것은 유다가 들은 구약 성경의 예에서 발람의 예에 해당된다(11절). 발람이 삯을 위하여 발락의 요구대로 이스라엘 백성을 음란과 우상 숭배에 빠지게 했던 것처럼 거짓 교사들의 행동은 자신의 이익(利益)을 위한 것이었다. 한편 “아첨하느니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다우마존테스 프로소파”는 히브리어 “나사 파님”을 번역한 것으로(신 10:17 ; 대하 19:7 ; 잠 18:5). 사람을 편견으로 대하거나 뇌물을 줌으로 정의를 왜곡되게 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거짓 교사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여 고회 내의 부자나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아부하였음을 암시한다.
17절 휘메이스 데 아가페토이 므네스데테 톤 레마톤 톤 프로에이레메논 휘포 톤 아포스톨론 투 퀴리우 헤몬 이에수 크리스투
유 1:17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미리 한 말을 기억하라. ---- 유다는 4-16절까지 거짓 교사들에 대해서 비판한 후 본절에서부터 수신자들에게 권면을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은 사도들의 권위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비롯된 것임을 시사한다. 한편 "미리 한"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에이레메논”은 사도들이 유다가 본서를 기록하기 이전 시대에 속한 사람들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사도들이 이전에 미리 거짓 교사들에 대해 권면과 경고를 하였음을 시사한다. 수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를 가지고 거짓 교사들에 대해 경고한 사도들의 말을 기억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거짓 교사들의 실체를 분명히 파악하고 그 유혹에 빠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18절 호티 엘레곤 휘민 호티 엔 에스카토 크로노 에손타이 엠파이크타이 아타 타스 헤아우톤 에피뒤미아스 포류오메노이 톤 아세베이온
유 1:18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마지막 때에 자기의 경건치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기롱 하는 자들이 있을라 하였나니. --- 본문은 사도들이 미리 경고한 말씀이다. “마지막 째”는 그리스도의 초림 때부터 재림 때까지를 가리킨다(히 1:2 ‘ 약 5:3 ’ 벧전 1:5,20). 한편 “기롱 하는 자들”은 신앙과 도덕을 무시하거나 멸시하는 자를 가리키는 것으로(시 1:1 ; 잠 1:22 ; 9:7,8 ; 13:1) 거짓 교사를 의미한다(벧후 3:3). 기롱자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불경건하게 행동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보다는 자기의 뜻대로 행하였다(14, 15절). 이러한 거짓 교사들의 등장은 마지막 때의 특징이다(막 13:5-23).
19절 후토이 에이신 호이 아포디오리존테스 프쉬키코이 프뉴마 메 에콘테스
유 1:19
유다는 12절과 16절에 이어 다시 한번 거짓 교사들에 대해 두 가지로 정의하고 있다.
당을 짓는 자며. ---- 이것은 거짓 교사들이 교회 안에서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자신들을 구분하였음을 시사한다. 그들은 교회 밖으로 나가서 또 다른 그룹을 형성한 것이 아니다. 고라와 같이(11절) 교회 내에서 애찬 하여도 참여하면서 자신들만이 참된 영을 소유(所有) 한 것처럼 인식하고 그룹을 형성하였다.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은 없는 자니라. -- “육에 속한 자”의 헬라어 “프쉬키코이”는 “성령은 없는 자”와 동일한 의미로 하나님과 전혀 관계가 없고 단지 세상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자들을 의미한다. 그들은 스스로 영적인 존재라고 주장할지라도 실제로는 종말론적 선물인 성령을 소유하지 못한 비그리스도인이었다.
유 1:20-23
유다는 이제 마지막으로 수신자들이 해야 할 것에 대해서 권면하고 있다.
20절 헤메이스 데 아가페토이 테 하기오타테 휘몬 피스테이 에포이코도문테스 헤아우투스 엔 프뉴마티 하기오 프로슈코메노이
유 1:20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며. --- “믿음”은 복음을 가리킨다(3절,. 이것이 거룩한 것은 거룩하신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자기를 건축하며”란 말은 수신자들이 사도들을 통해서 전해받은 복음을 잘 상고하고 연구하여서 터되신 그리스도 안에서(고전 3:11) 뿌리를 내려 공동체 전체가 영적으로 성숙해져 가야 함을 의미한다. dbek는 이러한 권면을 통해 수신자들이 거짓 교사들의 도덕 폐기론에 미혹되지 말고 오직 복음에 근거해서 영적 성장을 이룸으로 거룩한 생활을 영위해야 함을 강조한다.
성령으로 기도하며. --- “성령으로”의 헬라어 “엔 프뉴마티”는 “성령의 영감 아래서”라는 의미이다(마 22:43 ; 막 12:36 ; 눅 2:27 ; 4:1 ; 롬 8:9 ; 고전 12:3 ; 계 1:10 ; 4:2). 거짓 교사들은 스스로 영적인 존재라고 주장하나 실제로는 성령을 소유하지 못한 자로서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기 정욕대로 불경건하게 행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을 소유한 진정한 그리스도인인 수신자들은 하니님의 일을 수행하는 성령의 뜻대로 기도해야 한다(롬 8:26,27 ; 갈 4:6 ; 엡 6:18).
21절 헤아우투스 엔 아가페 데우 테레사테 프로스데코메노이 토 엘레오스 투 퀴리우 헤몬 이에수 크리스투 에이스 조엔 아이오니온
유 1:21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며. ---“하나님의 사랑”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가페 데우”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① 혹자는 주격적 속격으로 이해하여 “그리스도인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② 혹자는 목적격적 속격으로 이해하여 “하나님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사랑”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두 가지 견해 중 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본문과 병행(竝行)을 이루는 요 15:9의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가 제자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계명에 순종함으로 이루어진다.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 “영생”은 그리스도인들이 현재에도 향유하는 것이나 그것이 궁극적으로 성취되는 때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이다. 한편 “긍휼”은 하나미의 백성이 고대하는 종말론적 소망으로(마 5:7 ; 딤후 1:18 ; 마카비 2서 2:7 ; 에녹 1서 1:8 ) 항상 하나님과 연관되어 사용되었다. 그러나 유다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이라고 기술함으로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의 심판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위임(委任)하셨음을 나타내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한 속죄 사역으로 인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긍휼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3절).
22절 카이 후스 멘 엘레에이테 디아크리노메노이
유 1:22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 --- “의심하는 자들”은 거짓 교사들의 도덕 폐기론에 미혹되어 진리인 복음에 굳게 서지 못하고 흔들리는 자들을 가리킨다. 수신자들은 거짓 교사들의 잘못된 가르침에 의해서 흔들리는 자들을 보여줌으로 그들을 도와주어야 한다.
23절 후스 데 엔 포보 소제테 에크 투 퓌로스 하르파존테스 미순테스 카이 톤 아포 테스 사르코스 에스필로메논 키토나
유 1:23
또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 “불”은 지옥의 마지막 심판을 가리킨다(7절). 혹자는 “어떤 자”가 이미 불 속에 있는 자들을 가리킨다고 주장하나 불 속에 떨어지기 직전에 있는 자, 즉 그냥 내버려 두면 불 속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자들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한편 “끌어내어”는 슥 3:2를 반영하는 것으로 거짓 교사의 가르침으로 인해서 범죄 행위를 일삼는 자들을 구원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들은 거짓 교사의 영향을 받아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을 거부하고 부도덕한 행위를 일삼으므로 지옥의 불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자들을 건져내어 형제애로 써 책망하고 경고함으로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마 18:15-17 ; 눅 17:3 ; 갈 6:1 ; 살후 3:15 ; 딤전 5:20 ; 딛 3:10 ; 약 5:19,20).
또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이라도 싫어하여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 --- “육체”는 죄성이 있는 신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거짓 교사들이 탐닉했던 육체의 죄를 의미한다(8,10절). 거짓 교사들은 자신들이 주장했던 교리로 인해서 자유를 빙자한 방종으로 부도덕한 죄를 범하였고 그 죄로 인해서 자신을 부패시켰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그러한 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과 진리를 보여줌으로 긍휼히 여겨야 하지만 그들의 죄에 전염되어 거짓 교사들처럼 죄를 탐닉하지 않도록 주를 경외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주의해야 한다.
24절 토 데 뒤나메노 퓔락사이 아우투스 아프타이스투스 카이 스테사이 카테노피온 테스 독세스 아우투 아모무스 엔 아갈리아세이
유 1:24
24, 25절은 송영이다. 유다는 이 송영에서 거짓 교사의 가르침과 교리로 인해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수신자들을 위로하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한다.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데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 자. ---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는 시편 기자들이 걸림돌에 걸려 넘어질 지경에서 자신들을 보호하신 하나님을 찬양하였던 것을 반영한다(시 38:16 ; 56:13 ; 66:9 ; 73:2 ; 91:12 ; 116:8 ; 121:3-8 ; 140:4 ; 141:9). 신약 성경에도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을 보호하시는 분으로 나타난다(요 17:11 ; 롬 16:26 ; 엡 3:20 ; 살후 3:3 ; 계 3:10). 유다는 이러한 찬양을 통해 하나남께서 수신자들을 거짓 교사들의 거짓 가르침과 교리 그리고 부도덕성에서 보호하셔서 파루시아 때에 온전한 구원을 얻게 하실 것임을 드러냄으로 수신자들을 위로하고 있다. 한편 “흠이 없게”의 헬라어 “아모무스”는 제사 용어로 하나님께서 수신자들을 정결하게 하시고 온전하게 하실 것임을 시사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을 온전하게 하셔서 자신의 존전(尊前)에 담대하게 그리고 즐거움으로 설 수 있도록 하실 것이다.
25절 모노 소포 데오 소테리 헤몬 독사 카이 메갈로쉬네 크라토스 카이 엑수시아 카이 뉜 카이 에이스 판타스 투스 아이오나스 아멘 에피스톨레 아우다 카돌리케
유 1:25
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권력과 권세가 만고 전부터 이제와 세세에 있을 지어다. 아멘. --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에서 “구주”는 하나님을 지칭하는 전통적인 유대적 용어로써(시 94:1) 신약 성경에서는 드물게 하나님께 사용된다(눅 1:47 ; 딤전 1:1 ; 2:3 ; 4:10 ; 딛 1:3 ; 2:10 ; 3:4). 또한 “홀로 하나이신”의 헬라어 “모노”는 유대인 신앙 고백에서 독특하게 사용되는 “유일신이신 참 하나님”을 나타내며 신약 성경의 송영에서도 자주 나타나는 고백이다(딤전 1:17 ; 6:15, 16). 한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리스도인들을 구원하시며 성도들은 오직 그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음을 시사한다(벧전 4:11). 유다는 참 구원자이시며 참 신이신 유일한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과거와 현대 그리고 미래까지 하나님의 네 가지 속성이 있을 것을 찬양하고 있다.
① 영광 -- 이것은 모든 송영에서 거의 발견되는 하나님 존재의 궁극적인 본질로서 광채를 가리킨다.
② 위엄 -- 이것은 영광과 마찬가지로 하나님 자신을 가리키는 신적인 본질로서 하나님의 경외스러운 초월성을 나타낸다.
③ 권력 -- 이것은 송영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것으로(딤전 6:16 ; 벧전 4:11 ; 5:11 ; 계 1:6 ; 5:13) 하나님의 힘(God,s power)을 가리킨다.
④ 권세 -- 이것은 권력과 밀접한 의미를 지니나 특히 통치자로서의 하나님의 주권적 권위를 나타낸다.
[헬라어 성경으로 보는 요한일서] 새 계명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요일 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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