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네시모가 빌레몬으로부터 도망을 쳐서 로마에서 바울을 만나게 됨으로 복음을 듣고 구원받게 됩니다. 바울은 감옥에서 오네시모에게 복음을 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여 구원받게 했습니다. 바울은 오네시모를 다시 빌레몬에게 돌려보내게 됩니다. 복음 안에서 하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보냄(몬 1:8-14)
8절 디오 폴렌 엔 크리스토 파르레시안 에콘 에피탓세인 소이 토 아네콘
=====1:8
이러므로 - 이 말은 본절이 앞절까지 언급된 서론 부분과 관계를 맺어주는 접속사로서 바울은 오네시모 문제를 앞서 칭찬한 빌레몬의 사랑에 호소하고자 하는 의도를 나타낸다.
많은 담력을 가지고 - '담력'으로 번역된 헬라어 '파르레시안'은 문자적으로 '자유'나 '말(言)의 특권'을 의미하는 것으로서(엡 3:12), 바울은 이 용어를 두 가지 경우에 사용한다(Lohse). (1) 사람들에 대한 자신의 '개방성'과 '솔직성'을 나타낸다(고후 3:12;7:4;엡 6:20;딤전 3:13). (2)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믿음에 근거한 '정직'을 나타낸다(고후 3:12;엡 3:12;빌 1:20). 본절에 나타난 '파르레시안'은 전자의 의미로서 바울이 타인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마음을 열어 놓고 있음을 시사한다.
네게 마땅한 일로 명할 수 있으나 - '마땅한 일'에 해당하는 헬라어 '토 아네콘'은 일반적으로 유용한 '도덕적 계명'보다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지켜야 할 의무'를 뜻하는 것으로, 뒤에 언급하고자 하는 오네시모 문제를 가리킨다(Lohse, O'Brien). 한편 '명할 수'의 헬라어 '에피탓세인'은 바울의 사도적 권위를 암시한다.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자신이 사도로서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생활에 대해서 제정(制定)하고 가르치며 다스릴 수 있는 권위를 가지고 있음을 반복하여 밝히고 있다(롬 1:1;고전 5:3,4;9:1;고후 10:13,14;12:12;갈 1:1;딤후 1:1,11;4:1;딛 1:1). 혹자는 앞서 언급한 '파르레시안'이 사도권을 암시한다고 보나 '에피탓세인'이 사도권을 가리킨다고 봄이 더 타당하다(O'Brien).
9절 디아 텐 아가펜 말론 파라칼로 토이우토스 온 호스 파울로스 프레스뷔테스 뉘니 데 카이 데스미오스 이에수 크리스투
=====1:9
사랑을 인하여(디아 텐 아가펜) - '사랑'에 대해서 혹자는 바울의 사랑이나 빌레몬의 사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덕목으로서 이해한다(Vincent, Lohse, Lightfoot). 그러나 본절의 '사랑'은 빌레몬의 사랑을 의미한다(O'Brien). 왜냐하면 이미 앞절에서 빌레몬이 성도들에게 보여주었던 사랑에 대해 언급하고 있으며(5, 7절), 더욱이 본문의 관사 '텐'은 앞에서 언급한 빌레몬의 사랑에 대한 재언급임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바울은 빌레몬의 사랑을 재차 말함으로써 오네시모에 대해 빌레몬이 관대하게 대해 주기를 간청하고 있다.
나이 많은 나 바울은 - '나이 많은'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레스뷔테스'는 두 가지로 해석된다. (1) '사신'(ambassador)을 의미한다(Lightfoot, Carson). (2) 문자 그대로 '나이 많은'을 의미한다(Hendriksen, Lohse, Vincent). 전자를 주장하는 자들은 '프레스뷔테스'가 신약성경에서 '사신'으로 사용되고 있으며(고후 5:20;엡 6:20), 더욱이 목회를 하고 있는 아킵보의 아버지인 나이 많은 빌레몬에게 바울이 자신의 나이를 언급하는 것은 어색하다고 말한다(Carson). 바울은 앞절과 본절에서 자신의 사도적 권위로 인하여 자신의 간청이 받아들여지는 것을 원치 않으며, 또한 공적인 관계에서만 '프레스뷔테스'를 '사신'으로 사용하였으므로(Vincent) 두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즉 본절에서 바울은 연장자의 입장에서 또한 개인적인 관계에서 빌레몬에게 보다 설득력 있게 호소하고 있다 하겠다.
10절 파라칼로 세 페리 투 에무 테크누 혼 에겐네사 엔 토이스 데스모이스 무 오네시몬
=====1:10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 - '갇힌 중에서'는 1, 9절에서처럼 바울이 옥중에 있음을 나타낸다. 본절의 '낳은 아들'은 랍비적 표현으로 선생인 랍비와 토라를 배우는 학생들 사이의 관계를 나타낸다(Lohse, O'Brien). 바울은 이 표현을 통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 해산의 고통을 통해 오네시모를 개종(改宗)시켰음을 나타냄(고전 4:14-17;갈 4:19;딤전 1:2,18;딤후 2:1)과 동시에 오네시모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나타내고 있다. 한편 '오네시모'라는 이름은 헬라어 본문에서 본절의 마지막에 기록되어 있으며 이는 바울의 세심한 배려(配慮)를 보여준다.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종으로 있다가 도망하였기에 바울은 오네시모에 대한 빌레몬의 나쁜 인상을 염려하여 먼저 오네시모가 변화되었으며 자신이 사랑하는 자임을 언급한 후에 오네시모 이름을 마지막으로 언급한 것이다(O'Brien).
11절 톤 포테 소이 아크레스톤 뉘니 데 소이 카이 에모이 유크레스톤 혼 아네펨프사
=====1:11
저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 오네시모는 빌레몬에게서 도망갔을 뿐만 아니라 도망가기 전에도 유익(有益) 하지 못했다. 바울은 그런 무익한 오네시모의 개종 전후의 변화 상태를 나타내기 위해서 '무익하였으나'(아크레스톤)와 '유익하므로'(유크레스톤)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이 두 단어는 비슷한 음을 가졌으나 정반대의 뜻을 나타내고 있어 오네시모의 변화 상태를 언어적으로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더욱이 바울은 '전에는...이제는'(포테...뉘니 데)이라는 표현을 통해서 오네시모의 변화 상태를 빌레몬에게 확신시키고 있다.
12절 쉬 데 아우톤 투테스틴 타 에마 스플랑크나 프로슬라부
=====1:12
네게 저를 돌려 보내노니 저는 내 심복이라 - '돌려 보내노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네펨프사'는 '아나펨포''돌려보내다')의 부정 과거로서 바울은 본 서신을 빌레몬이 받았을 때를 기준으로 쓰고 있음을 시사한다(O'Brien). 한편 '심복'의 헬라어 '스플랑크나'는 문자적으로 '내장'이나 '핵심'을 의미하나, 본절에서는 '마음'(heart, NIV, RSV)을 뜻하며(Bruce) 동시에 '바울 자신'을 의미한다(O'Brien). 즉 바울은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돌려보내면서 오네시모에 대해 '내 마음'이라고 말함으로 마치 자신이 가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Lohse).
13절 혼 에고 에불로멘 프로스 에마우톤 카테케인 히나 휘페르 수 디아코네 모이 엔 토이스 데스모이스 투 유앙겔리우
=====1:13
복음을 위하여 갇힌 중에서 - 이 말은 바울이 서신을 쓰던 때의 상태를 암시하는 것으로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가 되었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1, 9절). '복음을 위하여'에 해당하는 헬라어 '투 유앙겔리우'는 속격으로서 바울이 갇히게 된 원인을 시사한다(Vincent, O'Brien).
네 대신 나를 섬기게 하고자 하나 - '네 대신'에 해당하는 헬라어 '휘페르 수'는 상황이 가능하다면 빌레몬이 흔쾌히 자신을 섬기기를 원할 것이라는바울의 가정(假定)이 있음을 암시한다(Lightfoot).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오네시모가 빌레몬을 대신하는 대체물임을 말하지는 않는다. 일반적으로 신약성경에서 '대신에'(instead of)나 '너의 위치에서'(in thy place)를 의미하는 헬라어로는 '안티'가 사용되며 본절의 '휘소기르'는 '위하여'를 의미한다(Vincent). 즉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대체물(代替物) 이상이었다. 바울은 본문을 통해서 빌레몬과 오네시모의 관계가 더 이상 주인과 종의 관계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해 사역의 짐을 지는 대등한 관계임을 나타내고자 한다. 한편 '하고자 하나'로 번역된 '에블로멘'은 '블로마이'('소원하다')의 미완료로서 본절에서 바울이 개인적으로 소원하는 바가 간절함을 나타낸다.
14절 코리스 데 테스 세스 그노메스 우덴 에델레사 포이에사이 히나 메 호스 카타 아낭겐 토 아가돈 수 에 알라 카타 헤쿠시온
=====1:14
네 승낙이 없이는 내가 아무것도 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 '승낙'에 해당하는 헬라어 '그노메스'는 일반적으로 '견해'(고전 7:25,40;고후 8:10)나 '결정'(행 20:3;계 17:17)을 의미하나, '사전 지식' 혹은 '승낙'의 의미를 내포한다(O'Brien). 한편 '원치'의 헬라어 '에델레사'는 '에델로'('원하다')의 부정 과거로 앞절의 '에불로멘'과는 달리 '실제적인 행위'에 강조점을 둔다. 이는 바울이 오네시모와 함께 있기를 간절히 원하지만 빌레몬의 동의가 없이는 절대로 함께 있지 않겠다는 의미이다.
이는(히나) - 이것은 본절의 상반절에서 밝힌 바울의 생각에 대한 이유를 설명한다.
너의 선한 일이 억지 같이 되지 아니하고 자의로 되게 하려 함이로라 - 바울은 본절에서 상반된 개념을 사용하여 자신이 빌레몬의 승낙을 구하는 이유를 밝힌다. 상반되는 두 단어 '억지 같이'(아낭켄)와 '자의로'(에쿠시온)중 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지 행하도록 요구하는 외부적 압력을 의미하며, 후자는 자유롭게 스스로 내리는 결정을 뜻한다. 바울은 오네시모에 대한 빌레몬의 결정이 자신의 사도적 권위나 압력에 의해서 이루어지기보다는 그리스도의 은총 하에서 자발적으로 선택되기를 원한다. 한편 '선한 일'에 해당하는 헬라어 '토 아가돈'은 도덕적으로 선한 것을 의미한다기보다는 그리스도의 은혜 가운데 행해지는 '친절함'이나 '좋은 결과를 맺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6절에서 언급된 '선'과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O'Brien).
[헬라어 성경 강해 빌레몬서] 바울이 빌레몬에게 감사함(몬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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