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빌립보서에서 말하기를 자신이 감옥에 투옥됨으로 인하여 복음이 더 확실하게 전파되는 길이 열렸다고 말합니다. 성도들이 복음에 매임을 받으면 예수 그리스도가 드러나게 됩니다. 성도의 삶은 세상에서 핍박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의 빛이 있기 때문입니다. 흑암들은 빛을 공격하게 됩니다. 우리가 올바르고 공의롭게 살려고 하면 세상 사람들은 우리는 놔두지 않고 시기함으로 핍박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에 연연하지 않고 더 열심히 거룩한 성화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바울의 투옥으로 인한 복음 전파(빌 1:12-18)
12절 기노스케인 데 휘마스 불로마이 아델포이 호티 타 카트 에메 말론 에이스 프로코펜 투 유앙겔리우 엘렐뤼덴
=====1:12
형제들아...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 바울이 그의 서신에서 중요한 주장을 말하기 전에 즐겨 사용한 어투이다(롬 1:13;고전 10:1;12:1;살전 4:13).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알리기 원했던 것은 로마에서 벌어지고 있는 복음에 대한 상황들이다. 한편 '형제들아'(아델포이)는 바울이 즐겨 쓰던 단어로서 빌립보 교인들과 바울 사이의 친밀(親密)하고 깊은 애정의 관계를 나타낸다.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 바울은 A.D. 61-63년까지 로마에 투옥되어 재판을 받고 있었다. 본서도 아마 A.D. 62-63년 사이에 로마의 옥중에서 쓰였을 것이다. 그래서 본절의 '나의 당한 일'은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힌 것과 로마의 옥중에서 복음을 위하여 가이사에게 변호하였던 사실을 지칭한다. 바울은 그가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지 못하도록 환난이 있었지만 오히려 그 어려움이 복음을 잘 전파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진보가 된'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코펜'은 원래 비난과 박해 속에서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말로 바울이 옥에 갇혀서 복음을 변호하게 된 것이 오히려 이방 세계에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복음의 진보가 이루어졌음을 시사한다(딤후 2:9).
13절 호스테 투스 데스무스 무 파네루스 엔 크리스토 게네스다이 엔 홀로 토 프라이토리오 카이 토이스 로이포이스 파신
=====1:13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온 시위대 안과 기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 '그리스도 안에서'는 '그리스도를 위한 나의 매임'이라는 의미로 바울의 '매임' 즉 로마 감옥에 투옥된 이유가 정치적 소요(騷擾)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하여 복음을 전했기 때문임을 나타낸다. 하나님은 바울의 매임과(7절) 변명함을 통해서 그리스도가 최고의 법정에서 증거 되게 하셨다(행 24:13-23;25:6-22;26:2-23). 한편 '시위대'에 해당하는 '프라이토리오'는 지방에 있는 통치자의 거주지를 가리킬 때나 예루살렘의 가이사랴 총독의 관저를 가리킬 때 사용되었다(마 27:27;막 15:16;요 18:28,33;19:9;행 23:35). 그러나 본절에서 '시위대'는 장소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집정관의 시위 대원'을 가리킨다. 시위 대원들은 죄수들을 감독하고 감시하는 가운데 바울과 접촉하였을 것이며, 그 기회를 통해서 바울은 복음을 선포하였을 것이다. 또한 바울의 복음 증거는 그의 숙소로 찾아온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져서 밖으로 전파되었다.
14절 카이 투스 플레이오나스 톤 아델폰 엔 퀴리오 페포이도타스 토이스 데스모이스 무 페릿소테로스 톨만 아포보스 톤 로곤 랄레인
=====1:14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을 인하여 주 안에서 신뢰하므로 - 여기서 '형제'는 로마에 있는 신자들을 가리킨다. 이는 이방인에서 개종한 신자들과 유대인에서 개종한 신자들을 포함한다. 또한 '다수'에 해당하는 헬라어 '투스 플레이오나스'는 코이네 헬라어에서 자주 사용한 용법으로 '형제들 중 많은 편' 즉, '절대다수'를 나타내는 최상급의 의미이다. 로마에 거주하는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은 바울의 투옥(投獄)이 그리스도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 확인하면서 더욱 담대해졌다.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말하게 되었느니라 - 바울이 매임을 당한 것처럼 다른 그리스도인들도 적대자들로부터 핍박과 고난을 당하였으나 더욱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다. 본절의 '담대히 말하게 되었느니라'의 헬라어 '아포보스...랄레인'은 현재 시상으로 위험의 상태가 계속해서 존재하고 있었지만 용기를 새롭게 가지고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였음을 시사한다.
15절 티네스 멘 카이 디아 프도논 카이 에린 티네스 데 카이 디 유도키안 톤 크리스톤 케륏수신
=====1:15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 본절의 '어떤 이들'을 혹자는 바울이 로마에 가기 전에 이미 유대주의적 경향(傾向)을 가졌던 로마 교회 지도자들로 본다. 그들이 이미 확보한 지위가 바울의 전도 때문에 흔들리게 되자 시기와 질투심으로 바울의 전도를 막았을 것이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본절은 14절에 나타난 '형제 중 다수'와 연결 지어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즉 본절의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로 인해서 투옥당한 바울을 보고 담대함을 얻은 이들 중에서 바울을 개인적으로 시기하여, 경쟁심을 갖고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를 전파한 사람들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 '착한 뜻'에 해당하는 헬라어'유도키안'은 '만족', '충족'을 의미하는 말로 다른 사람과 유익된 관계를 가진 것을 가리킨다. 즉 본절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의 목적을 바로 깨닫고 선한 일꾼으로서 복음의 사역을 행하는 것을 시사한다.
16절 호이 멘 엑스 에리데이아스 톤 크리스톤 카탕겔루신 우크 하그노스 오이오메노이 들립신 에피데레인 토이스 데스모이스 무
=====1:16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명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 본절의 '이들'은 앞절의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한 자들'을 가리킨다. '세우심을 받은'의 헬라어 '케이마이'는 어떤 목적을 위해 지정하거나 정해두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바울이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세움을 받은 것이 바울의 의도나 우연한 계기(契機)를 통하여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계획에 의해서 된 것임을 시사한다. 한편 '사랑으로'에 해당하는 헬라어 '엑스 아가페스'는 문자적으로 '바울을 향한 사랑으로부터'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바울이 하나님에 의해서 세우심을 입은 자임을 깨달은 이들이 바울의 사역에 더욱더 애정을 갖게 되어 그를 도와 복음 선포 사역에 헌신하였음을 시사한다.
17절 호이 데 엑스 아가페스 에이도테스 호티 에이스 아폴로기안 투 유앙겔리우 케이마이
=====1:17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 본절은 15절에 언급된 '투기와 분쟁으로' 복음을 전하는 자들과 관계된다. 그들 바울이 매임을 당하자, '매임'으로 인해 바울의 명성은 크게 손상되고 위축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의 명성을 회복시키려는 동기를 가지고 복음 선포를 하였다.
순전치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 '다툼'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리데이아스'는 '에리듀오'('양털에서 실을 뽑다')와 '에리도스'('고용인')에서 유래한 것으로 당파심을 위해 돈을 받고 일하는 사람을 지칭할 때 사용되었다. 이것은 직분(職分)을 맡은 자가 일을 할 때 헌신의 동기를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기적인 목적과 야망을 가지고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일하는 것을 시사한다. 투기와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한 이들은 자신의 명성이라는 이기적 야망을 위해서 복음을 전파하였다.
18절 티 가르 플렌 판티 트로포 에이테 프로파세이 에이테 알레데이아 크리스토스 카탕겔레타이 카이 엔 투토 카이로 알라 카이 카레소마이
=====1:18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 '외모로 하나'는 15절의 '투기와 분쟁으로'와 상관되며 '참으로 하나'는 15절의 '착한 뜻으로'와 상관된다. 순수하게 헌신하는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전파나, 자기의 전파나,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전하는 사람들의 전파나 복음은 동일하게 전파되었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승리하는 것이라면 자신에게 향한 비난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으며 오직 그리스도만 전파되기를 바라는 바울의 소망을 암시한다.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 복음이 이기적인 야망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전파되었을지라도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를 조금씩 알아가는 사람들을 보고 바울은 기뻐하고 있다. 바울은 육체적으로는 감옥에 갇혀있고, 정신적으로는 시기하는 자들에게 고통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자신의 상황에 의해서 더 담대하게 복음이 선포되는 것을 보고 즐거워하였다. 본절은 바울의 관점의 초점(焦點)이 자신이 아니라 오직 복음 선포에 관한 것임을 시사한다.
[헬라어 성경 강해 빌립보서] 바울의 성도에 대한 감사와 중보기도(빌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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