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 2장에서는 룻이 보아스를 만난 것에 대해서 나오미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오미가 룻의 이야기를 듣고 보아스는 자기의 기업 무를 자라고 말합니다. 보아스는 영적으로 보면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보아스 같은 나의 신랑입니다.
룻이 보아스의 만남을 나오미에게 말함(룻 2:17-23)
17절 바텔라케트 바사데 아드 하아레브 바타헤보트 에트 아셰르 리케타 바예히 키에파 시오림
=====2:17
그 주운 것을 떠니 - 아마도 룻은 그 주운 보리 이삭을 편편한 바닥이나 또는 멍석 위에 올려 놓은 후 적당한 막대기나 돌로서 두들겨 떨었을 것이다.
한 에바 - '에바'(Ephah)는 구약 시대 부피의 단위로서 대략 23l 즉 약 12되 정도의 분량이다. 이처럼 룻이 하루 동안 23l 정도의 이삭을 주웠다는 것은 보아스가 그녀에게 보여 준 호의가 어느 정도였는가를 잘 설명해 준다. 즉 보아스는 룻에게 점심 식사를 줄 때, 그녀가 먹고 남을 만큼 풍족히 제공했을 뿐 아니라(14절), 곡식 단을 묶을 때 조금씩 흘리도록 함으로써 그녀가 풍성히 거둘 수 있도록 했던 것이다(16절). 그러므로 룻은 이러한 보아스의 호의 때문에 넘치는 수확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이다.
18절 바티사 바타보 하이르 바테레 하모타흐 에트 아셰르 리케타 바토체 바티텐 라흐 에트 아셰르 호티라 미사비아흐
=====2:18
보이고...드리매 - 이 한 구절 속에 시모에 대한 룻의 효성이 함축적으로 잘 나타나 있다. 즉 룻은 자신을 보내놓고 걱정하시는 시모를 위하는 마음으로 자신이 하루 동안 한 일을 죄다 보여 드렸을 뿐 아니라, 또한 대접받은 음식을 자기만 배불리 먹은 것으로 끝나지 않고(14절) 집에 홀로 있는 시모를 생각하여 정성껏 남겨 가지고 돌아왔던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룻의 행동은 끝까지 시모를 공경하며 따르겠다고 약속한 것(1:16,17)을 구체적으로 실천에 옮긴 것이라 볼 수 있다.
19절 바토메르 라흐 하모타흐 에포 리카티티 하욤 베아나 아시트 예히 마키레크 바루크 바타게드 라하모타흐 에트 아셰르 아시타 임모 바토메르 솀 하이쉬 아셰르 아시티 임모 하욤 보아즈
=====2:19
오늘 어디서 주웠느냐 어디서 일을 하였느냐 - 연속되는 나오미의 질문 속에서 나오미의 궁금증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즉 나오미의 생각에 여인이 하루 동안 보리 이삭을 한 에바 정도 줍는다는 것도 예사 일이 아닐뿐더러, 준비해 가지 않은 점심을 먹고 남겨 가져온다는 것도 누구의 호의를 입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오미는 젊은 과부인 룻의 신변이 염려되어 그녀에게 호의를 베푼 사람을 알고 싶어 했던 것이다. 분명 오늘 룻에게 어떤 일이 생겼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리고, 그 일의 자초 지종을 듣고 또한 알기 원했던 것이다. 이에 룻은 시모의 궁금증을 풀어 드리기 위해 그날 일어났던 일의 자초 지종을 예의 그 자상함으로 이야기했을 것이다.
20절 바토메르 나오미 리칼라타흐 바루크 후 라아도나이 아셰르 로 아자브 하시도 에트 하하임 베에트 하메팀 바토메르 라흐 나오미 카로브 라누 하이쉬 미고알레누 후
=====2:20
그가 생존한 자와 사망한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도다 - 여기서 '생존한 자'란 나오미와 룻을 가리키며, '사망한 자'란 모압 땅에서 죽은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과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을 말한다. 그런데 본절에는 한 가지의 문제가 내포되어 있다. 즉 '생존한 자와 사망한 자'에게 은혜를 베푼 '그가' 곧 누구인가 하는 문제이다. (1) 혹자는 본절의 주어 '그'를 '하나님'이라고 주장한다(Keil, Goslinga). 이러한 주장은 사람이 '사망한 자'에게까지 은혜를 베풀 수 없기 때문이라는 추론에 의한 것이다. 이에 따라 영역 성경 중 NIV와 Living Bible에서도 본 구절의 주어를 구체적으로 '하나님'으로 밝히고 있다. (2) 그러나 혹자는 본절의 주어를 문장 그 자체에서 보여주는 대로 '보아스'로 주장한다(Matthew Henry, A.C.Hervey). 이 주장을 따라 본절을 해석해 보면, 나오미는 보아스가 그녀의 남편과 아들들이 살아있을 때에도 자신의 가정에 호의를 베풀었던 사실을 기억하고, 지금 살아 있는 자신들에게 베풀고 있는 보아스의 호의를 그때의 상황과 연결시켜 말했다는 의미가 된다. 결론적으로 무엇보다 여기서 보아스가 룻에게 호의(好意)를 베풀었다는 소식을 접한 나오미가 보아스의 호의를 칭송하면서 그 호의를 강조하고자 이 말을 사용했다고 볼 때, 본절의 주어는 '보아스'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기업을 무를 자 - 이 단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고엘'은 '되찾다', '무르다', '구속하다'등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 한편 '이스라엘의 고엘 제도'는 하나님께로부터 할당받은 기업을 영구히 보존하고, 혈족을 유지하며, 그리고 부당한 피해를 당했을 경우 이를 보상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기 위한 목적에서 생겨났다. 따라서 고엘(Goel)이 된 자는 '고엘의 의무'를 감당해야 했는데, 그것은 곧 (1) 가난한 혈족의 땅을 도로 사주어야 했고(레 25:25,26), (2) 부당한 피해를 당한 친족을 위해 복수할 책임을 져야 했으며(민 35:12,19,21), (3) 그 친족의 미망인과 결혼하여 대(代)를 이어 주어야 함은 물론, 심지어 그 친족의 죄값을 대신 받기까지 했다(민 5:8). 그리고 '고엘의 자격'으로서는 (1) 혈연적 관계에 있을 것(신 25:5-7), (2) 자원해야 할 것(3:13), (3) 그리고 고엘로서의 능력을 구비할 것 등을 들 수 있다(레 25:25 주석 참조). 이러한 면에서 볼 때 베들레헴 성에서 유력한 자(2:1)이며, 친족에게 호의를 베풀 줄 아는 보아스가 엘리멜렉 가정의 고엘로서 가장 합당하였다<레 25:8-55 강해, 근족의 의무>
21절 바토메르 루트 하모아비야 감 키 아마르 엘라이 임 하네아림 아셰르 리 티드바킨 아드 임 켈루 에트 콜 하카치르 아셰르 리
=====2:21
그가 내게 또 이르기를 - 보아스의 큰 호의에 룻 또한 감격하여 시모 나오미에게 보아스가 자신에게 베푼 호의를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자세히 말해준다.
추수를 다 마치기까지 - 여기서는 보리 추수만을 의미하지 않고, 곧바로 이어지는 밀 추수 때까지를 의미한다(23절).
소년들에게 가까이 있으나 - 여기서 '소년들'(네아림)은 비록 남성형으로 표기되었지만 엄밀히 '소녀들'과 구분하고자 그리 사용된 것은 아니다. 다만 룻으로 하여금 벼 베는 소년들 뒤를 따라가며 단을 묶는 소녀들 틈에서 추수기가 다 끝날 때까지 부담 없이 이삭을 주우라는 뜻으로 사용된 것이다(8,22,23절).
22절 바토메르 나오미 엘 루트 칼라타흐 토브 베티 키 테치이 임 나아로타이브 베로 이피기우 바크 비사데 아헤르
=====2:22
다른 밭에서 사람을 만나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라 - 나오미의 이 말속에는 보아스가 엘리멜렉 가정의 '고엘'이 될 자격이 있다는 확신이 내포되어 있다. 즉 앞절에서(21절) 룻이 보아스의 말(8절)을 나오미에게 전해 줄 때, 나오미는 보아스가 자기 친족의 고엘이 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해석했고, 따라서 룻에게 다른 사람의 밭으로 가서 보아스 외에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되는 일을 삼가하라고 충고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룻이 다른 사람의 밭에서 이삭을 주우려다 자칫 거칠게 다루어질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23절 바티다바크 비나아로트 보아즈 리라케트 아드 켈로트 키치르 하시오림 우키치르 하히팀 바테셰브 에트 하모타흐
=====2:23
보리 추수와 밀 추수를 마치기까지 이삭을 주우며 - 팔레스틴 지방에서 보리는 밀보다 먼저 익어서 대개 태양력으로 4월 중순경에 거둬들인다. 그리고 약 2주일 후에 밀 추수가 시작된다. 그러므로 이 기간 동안 내내 룻의 겸손하고 근면한 품행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을 것이고, 보아스는 이러한 룻의 행동을 계속해서 지켜볼 수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본절은 보아스와 룻의 관계가 점차로 무르익어 가서 마침내 결혼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암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Morison, Cassel).
그 시모와 함께 거하니라 - 이 짧은 한 마디의 말은 곧 시모(媤母)에 대한 룻의 변함없는 효성을 암시해 준다. 즉 18절에서 보여지듯, 그 근면하고 순결한 성품으로 하루 일을 마친 다음 그날의 좋은 것들로 시모를 봉양하고, 아울러 시모에게 하루의 일과를 자상하게 이야기하는 등 물심양면으로 시모를 편하게 받들어 모시는 룻의 한결같은 모습이 이 짧은 한 구절 속에 응축되어 있는 것이다.
[사사기 히브리어 강해설교] 사사에게 대적하는 이스라엘 백성(삿 2: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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