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원문 강해

[히브리어 성경 강해 느헤미야] 아닥사스다 왕의 성벽 중건 허락(느 2:1-8)

엘벧엘 2021. 10. 10.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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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지고 성문이 불탔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아파서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느헤미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아닥사스다 왕의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 느헤미야가 아닥사스다 왕에게 포도주를 바칠 때에 왕의 마음을 감동시켜 느헤미야의 근심을 보게 했습니다. 문제가 무엇이냐고 했을 때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지고 성문이 불탔다고 말했습니다. 느헤미야가 이것을 중건하기를 원하자 아닥사스다 왕은 허락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느헤미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아닥사스다 왕의 성벽 중건 허락(느 2:1-8)

 

1절 바예히 베호데쉬 니산 쉐나트 에세림 레아르타흐샤세트 하멜렉크 야인 레파나이브 바에사 에트 하야인 바에트나 라멜렉크 베로 하이티 라 레파나이브

=====2:1

 아닥사스다 이십 년 니산 월 - '니산월'은 유대 종교력으로 정월에 해당된다.  그리고 '하나니'등이 페르시아에 도착했던 '기슬르 월' 9월이다(1:1). 그렇다면  1:1의 '기슬르 월'이 '아닥사스다 제 이십 년'이었다고 할 경우, 본절의 '니산 월'은 '아닥사스다 이십일 년'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도 본절에 '이십 년'이라고 표기된 까닭은, 그 당시 느헤미야가 왕의 재위 년수를, '디스리 월'(양력으로 9-10월)부터를 새해로 간주하는 유대 민간력을 좇아 계산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슬르'(1:1)이나 본절의 '니산 월'은 동일한 년도에 속하는 셈이 된다.

   왕의 앞에 술이 있기로 - 이것은 그 당시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음을 암시해주는 문구이다. 사실 페르시아의 왕들은 이와 같은 잔치를 매우  자주 베풀었었다(에 1:3; 5:6). 또한 이것은 고대 중근동 국가들의 일반적 관습이기도 하였다. 아마도 그때 아닥사스다 왕은 바벨론에서의 월동을 마치고, '니산 월'(양력으로 3-4 월), 즉 봄이 되었기 때문에 느헤미야가 있던 '수산 궁'으로 다시 돌아왔을 것이다(1:1). 아무튼 왕이 베푼 잔치는 '술 관원'이었던 느헤미야가 왕에게 나아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1:11). 한편, 느헤미야는 민족적 재난에 관한 소식을 듣고서 그토록 가슴 아파하면서도 결코 성급하게 서두지 않았다. 다시 말해서 느헤미야는 자신의 요청을 올릴 가장 적절한 기회를 찾으면서 계속 하나님께 기도해 왔음이 분명하다.

   내가 들어 왕에게 드렸는데 - 어떤 이들은 바사 왕실에 술 관원이 여럿 있었다는 사실을 전제하고서, 본절에서 느헤미야가 술을 올릴 차례가 온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이전에는 내가 왕의 앞에서 수색(愁色)이 없었더니 - 이것에 대해서는 (1) 여기의 '없었더니'(로)를 '진실로'(루) 로 보고 '진실로 내가 그의 면전에서 근심했었다'라고 하는 해석, (2) '왕의 앞에서'(레파나이우)를 '전에'(레파님)로 보고 '내가 전에는 근심하지 않았다'라고 하는 해석, (3) 맛소라 본문을 그대로 유지하되 '왕의 앞에서'(레파나이우)의'왕'을 비인칭으로 번역한 '그것'으로 보고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온 그 소식 앞에서 근심하지 않았다'라고 하는 해석, (4) 맛소라 본문을 그대로 인정하여 개역성경의 번역처럼 받아들여야 한다는 해석 등이 있다, 이처럼 (1) (2) (3)의 견해는 모두 맛소라 본문의 수정을 주장하지만 그것을 입증치 못한다는 점에서 (4)의 견해가 가장 타당성이 있다. 그렇다면 여기의 이 문구는 느헤미야가 그 전에는 항상 밝은 얼굴로 자기의 소임을 다했음을 말해  준다고 볼 수 있다.

2절 바요메르 리 하멜렉크 마두아 파네이카 라임 베아타 에네카 홀레 엔 제 키 임 로아 레브 바이라 하르베 메오드

=====2:2

  왕이 이르시되 어찌하여 얼굴에 수색이 있느냐 - 이것은 느헤미야의 기도(1:11)가 응답되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이다. 사실 술 관원이 흥(興)을 최고조로 돋우어야 할 직책에 있으면서 도리어 연회장에서 슬픈 얼굴을 하고 다니는 것은, 한편으로 생각하면 그것을 주최한 왕에 대한 도전으로 볼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왕이 느헤미야에게 연민 어린 관심을 보인 것은, '형통하여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라는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된 결과로밖에 볼 수 없다.

   근심(로아) - 이는 앞의 '수색'과 어근에 있어서는 동일하며, 전  7:3에서는 '슬픔'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그때에 내가 크게 두려워하여 - 본절은 느헤미야가 왜 이 같은 감정을 갖게 되었는지를 밝히고 있지 않다. 그러나 그 이유는 (1) 왕이 연회장 내에서 느헤미야가 슬픈 얼굴을 한 것으로 인해 진노하지 않았을까 하는 염려, (2) 왕이 느헤미야의 간청을 듣고 오히려 진노하지 아니할까 하는 염려 등으로 압축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느헤미야의 '수색'에 대한 왕의 반응이 사뭇 동정적이었다는 점에서 본다면 (2)의 것이 보다 타당할 것이다. 그렇다면 느헤미야는 왜 자신의 간청에 대해서 아닥사스다가 진노할 것으로 염려했을까? 그것은 예루살렘의 성벽 재건사업이 아닥사스다의 명령에 따라 그의 즉위 초기에 중단됐음을 느헤미야가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스 4:11, 21). 따라서 느헤미야가 성벽 재건의 일로 예루살렘에 가겠노라고 아닥사스다 왕에게 요구하는 일은, 곧 아닥사스다에게 그가 내렸던 이전의 명령을 번복하라는 것과 다를 바 없으며 또한 이는 왕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문제라는 점에서 대단히 위험 부담이 뒤따랐다.

3절 바오마르 라멜렉크 하멜렉크 레올람 이흐예 마두아 로 예르우 파나이 아쎄르 하이르 베이트 키브로트 아보타이 하레바 우쉐아레이하 우켈루 바에쉬

=====2:3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고대 중근동의 왕들에 대해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던 찬사형의 인사이다 왕상 1:31; 단 24:4; 3:9; 5:10; 6:6, 21).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인사에 왕의 호감을 사려는 느헤미야의 의도가 담겨 있음을 배제할 수는 없다,

   나의 열조의 묘실 있는 성읍 - '열조의 묘실', 즉 '조상의 무덤'은 고대 중근동 사회에서는 매우 중요시되었다. 특히 왕족 및 귀족들에게는 더욱 그러하였다. 따라서 이 같은 언급은 아닥사스다 왕으로 하여금 '성읍' 곧 '예루살렘'을 외부의 침입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곳으로 간주토록 유도하는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또한 아닥사스다  왕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의도에 따라 '예루살렘'(스 4:20 )이라는 고유 지명 대신 '성읍'이 사용되고 있다. 만일 느헤미야가 여기서 '예루살렘'이라는 지명을 사용했다면, 아닥사스다 왕으로 하여금 자신이 이전에 사마리아 관리들의 요청에 따라 그곳에 성벽 쌓는 일을 중지시켰던 사실을 쓸데없이 상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을지도 모른다.  또한 본 문구는 느헤미야가 유다 지파 출신으로서, 그의 조상들이 예루살렘에 살았었음을 암시해준다(1:6).

   황무하고 성문이 소화되었사오니 - '황무하고'(하레바)는 '말라 불다' 혹은 '죽이다'의 뜻을 갖는 동사 '하레브'에서 온 형용사로서, 인간 혹은 자연의 피조물 등이 특별한 원인에 의해서 그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게 된 상태를 가리킬 때 사용된다(시 106:9; 사 19:5; 34:10; 렘 26:9; 겔 6:6). 따라서 이것은 '하나니'가 예루살렘의 형편을 느헤미야에게 보고할 때(1:3) 사용한 단어, '훼파되고'(파라츠) 보다 더 강력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또 '소화되었사오니'(에클루 바에쉬)는 문자적으로 '불에 의해서 먹혔다'의 뜻으로서 1:3의 '소화되었다'(니체투 바에쉬) 보다 강조적인 의미를 갖는다.

4절 바요메르 리 하멜렉크 알 마 제 아타 메바케쉬 바에트팔렐 엘 엘로헤 하솨마임

=====2:4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이것은 느헤미야에게 간청할 기회를 주기 위한 질문이다. 이때 아닥사스다 왕은 이미 느헤미야를 위해 어떤 배려라도 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 갈다.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黙禱)하고 -여기서 '묵도하고'(에트팔렐)는 '간청하다' 혹은'기도하다'의 뜻을 갖는 동사 '팔랄'의 재귀적 강의형으로서, 간절한 소원을 품고서 적극적으로 하나님께 기도로써 매어 달리는 것을 가리킨다(삼상 1:17; 왕상 8:33; 왕하 19:20; 20:2). 느헤미야의 이 같은 기도는 (1) 자신의 소원이 아닥사스다 왕에게 정확하게 전달되며, (2) 전달된 자신의 소원이  왕에 의해서 호의적으로 가납될 수 있기를 바라서 드려졌음이 분명하다.

5절 바오마르 라멜렉크 임 알 하멜렉크 토브 베임 이타브 아브데카 레파네이카 아쎄르 티쉘라헤니 엘 예후다 엘 이르 키브로트 아보타이 베에브네나

=====2:5

그 성을 중건하게  하옵소서 - 이것은 느헤미야가 아닥사스다 왕에게 간청했던 것의 핵심적 내용이다. 다른 것들은 '성 중건'의 부차적 요소들일뿐이다. 이는 구체적으로 '성벽의 복구'를 뜻한다(3절).

6절 바요메르 리 하멜렉크 베하셰갈 요쎄베트 에첼로 아드 마타이 이흐예 마할라카카 우마타이 타슈브 바이타브 리페네 하멜렉크 바이쉘라헤니 바에트나 로 제만

=====2:6

왕후도  곁에 앉았더라 - 고대 중근동 국가에서는, 왕이 국사(國事)와 관련된 귀빈을 맞이하고 있을 때는 '왕후'가 내전(內殿)에 있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잔치가 벌어지고 있는 자리였던 관계로 인하여 '왕후'도 왕과 함께 있었다. 이런 때에 '왕후'는 관례적으로 긴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서 술을 마시고 있는 왕의 발(足) 곁에서 왕의 얼굴을 쳐다보며 앉아 있었으며 왕과 왕비가 이런 자세로 있는 동안 신하들은 그 주변에 모여 서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느헤미야가 본절에서 '왕후'가 함께 있었음을 특별히 밝힌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 세 가지 견해가 제시되고 있다. (1) 왕이 느헤미야에게 호의적 반응을 보인 데는 '왕후'의 영향력 행사가 있었음을 암시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 (2) 느헤미야가 왕으로부터 팔레스틴으로 돌아가기 위한 허락을 받는 과정에서 '왕후'라는 장애물이 있었음을 암시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 (3) 느헤미야가 아닥사스다 왕에게 자신의 소원을 알린 곳은 연회장이 아닌 은밀한 장소에서였음을 암시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 등이 있다. 그렇지만 첫째, '왕후'는 왕의 명령이 있을 경우 왕과 함께 연회장에 참석할 수 있고 또한 이것은 매우 보편적이었으며(에 1:11) 둘째, 아닥사스다 당시에는 여인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컸으며 셋째, 느헤미야 항상 왕궁에 거하므로 왕의 처첩들과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을 것이며 넷째, 5절과 6절은 왕이 왕후가 있었을 내전으로 자리를 옮겼다는 추측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사실 등으로 볼 때, 위의 세 견해 중 (1)의 것이 가장 타당성이 있는 듯하다. 한편 '왕후'(쉐갈)에 대해서는 (1) 이와 동일한 아람어 단어가 왕의 첩들을 의미한다는 사실(단 5:23)에 근거하여 왕의 많은 첩들 중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소유한 여인이라는 견해. (2) 이 '히브리 단어가 시 45:9에서는 첩이 아닌 왕비를 가리키고 있음을 근거로 해서 아닥사스다 왕의 유일한 정비(正妃)였던 '다마스피아')라는 견해 등으로 그 해석이  갈라진다. 그러나 첫째, '쉐갈'이라는 히브리 단어의 시편에서의 용례 둘째, '다마스피아'라는 왕후가 실제 역사 속에 존재했었음을 증명해주는 문헌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위의 두 견해 중 (2)의 것이 더 타당하다.

   몇 날에 행할 길이며 어느 때에 돌아오겠느냐 - 이것은 느헤미야가 아닥사스다 왕으로부터 상당한 신임을 얻고 있었음을 극명히 보여준다. 즉, 아닥사스다 왕은 느헤미야를 자신의 곁에서 떠나보내기를 아쉬워했던 것이다. 한편, 이 문구는 동의적 대구법의 표현 방식이다. 따라서 '몇 날에 행할 길이며'와 '어느 때에 돌아오겠느냐'는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데 소요되는 전(全) 기간을 묻는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 아닥사스다 왕은 이러한 반복적 표현을 써서 느헤미야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강렬하게 드러내고 있다.

   내가 기한을 정하고 - 이처럼 아닥사스다 왕이 느헤미야가 다시 올 날을 직접 정하지 않고,  느헤미야에게 직접 정하도록 한 것은 느헤미야에 대한 세심한 배려임이 분명하다(본 단락 주제 강해, '에스라 느헤미야의 약사'참조).

7절 바오마르 라멜렉크 임 알 하멜렉크 토브 이게로트 이트누 리 알 파하오트 에베르 하나하르 아쎄르 야아비루니 아드 아쎄르 아보 엘 예후다

=====2:7

  강 서편 총독들 - 여기의 '총독들'(파하 우오트)은 작은 지역을 다스리던 지방관리를 가리킨다(스 8:36). 유프라테스 강 서편에는 이러한 관리들이 많았었던 것 같다.

   조서를 내게 주사  유다까지 통과하게 하시고 - 에스라의 경우 와는 달리 느헤미야는 다분히 정치적인 명목으로 귀환을 요청하고 있다(스 7:10과 비교).  따라서 그는 팔레스틴으로 가는 여행길에 페르시아의 지방 관리, 특히 사마리아 관리로부터 적대적인 대우를 받을 가능성이 상당히 많았다. 그러므로 느헤미야가 자신에 대한 적대 행위를 피하기 위해서 필요 적절한 증표를 왕에게 요구한 것은 당연한 것으로 이해된다.

8절 베이게레트 엘 아사프 쇼메르 하파르데스 아쎄르 라멜렉크 아쎄르 이텐 리 에침 레카로트 에트 샤아레 하비라 아쎄르 라바이트 우레호마트 하이르 베라바이트 아쎄르 아보 엘라이브 바이텐 리 하멜렉크 케야드 엘로하이 하토바 알라이

=====2:8

 왕의 삼림 감독 아삽 - 여기의 '삼림'(파르데스)에  대해서는 (1) 레바논의 삼림, (2) 예루살렘 근방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페르시아 왕의 정원, (3) 유다 왕가의 왕실 재산(대상 27:28)이었던, 평지의 감람나무 밭 등의 세 가지 해석이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첫째,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미 성전 공사를 위하여 레바논으로부터 목재를 들여온 일이 있었으며(왕상 5:6; 스 3:7) 둘째, 예루살렘 성벽을 완전히 새로이 복구하기 위해서(3절) 필요한 막대한 양의 목재는 레바논 산지를 제외하고는, 적당한 조달처가 없었으리라는 점 그리고 셋째, 건축용으로 적절한 나무는 오직 레바논 산지에서 벌목되는 백향목뿐이라는 사실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위의 세 견해 중 (1)의 견해가 가장 타당성이 있다. 물론 여기에 대한 반론으로 (1) 삼림 감독이었던 '아삽'이 히브리식 이름의 소유자라는 점, (2) '삼림'이라는 단어가 고대 아리안어에서 온 것으로서 자연림이 아닌 울타리나 담장 등으로 둘러 싸여 있는 숲이 울창한 공원을 가리킬 때 사용된다는 점 등이 제시된다. 그렇지만 이러한 반론은 첫째, 페르시아 왕이 멀리 유다 땅에 개인적인 공원을 두었을 가능성은 문헌적 입증이 없다는 점에서 매우 희박하며 둘째, '아삽'이라는 이름은 히브리식으로 볼 수도 있지만 '말'(馬)을 뜻하는 페르시아어 '아스파'에서 파생된 페르시아식 이름 '아스바다'(에 9:7)와 유사한 형태로도 볼 수 있다는 사실 등으로 미루어 볼 때 타당성이 약하다.

   전에 속한 영문의 문 - 여기의 '영문'은 성전 북쪽에 위치했었던 요새 혹은 망대이다. '하나넬 망대'(3:1)는 바로 이것의 한 부분으로 추측된다.   이것은 성전의 보호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였다. 후대에 들어서서는, 바로 이 자리에 헤롯왕에 의해서 '안토니아 영문'이 세워졌었다.

   성곽 - 성곽 건축에 목재가 직접적인 재료로 사용되지는 않았으리라 짐작된다. 다만 성을 쌓아 올리는 과정에서 필요하였을 것이며 '성곽'에 속한 여러 '문'(門)을 세우는 데 필수 불가결하였을 것이다(3:3, 6). 아무튼 고대 중근동 사회에서 목재가 '성곽' 건축과 관련해서 사용되었다고 하는 증거는 대단히 많다.

   나의 거할 집을 위하여 - 이것은 문자적으로 '내가 들어갈 수 있는 한집을 위하여'의 의미이다. 그런데 '거할'(보)이 특정한 임무의 수행과 관련해서도 사용된다는 점(대상 12:17, 23, 38; 16:33; 19:3)에서 볼 때, 여기의 '집'은 총독의 관저로 사용할 처소를 의미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것이 반드시 새로이 지어질 '집'을 의미한다고는 볼 수 없다. 추측컨대 느헤미야는 자신의 형제 '하나니'(1:2)와 더불어 자신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됐을 때 머무를 처소에 대해서도 상의를 하였을 것이며, 이에 따라 이미 존재하고 있던 집을 수리해서 사용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들보 재목을 주게 하옵소서 - 느헤미야가 왕의 질문(4절)에 대해 이처럼 즉각적으로 필요한 것을 제시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그가 아닥사스다 왕이 수산궁에 없는 동안(1:1) 하나님께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위해 기도를 했음(1:4 - 11)은 물론이고 그  성벽 재건을 위한 구체적 계획까지 세워 놓았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라고 할 수 있다.

[히브리어 성경 주석 강해 느헤미야] 유다 민족을 위한 느헤미야 기도(느 1:4-11)

 

[히브리어 성경 주석강해 느헤미야] 유다 민족을 위한 느헤미야 기도(느 1:4-11)

안녕하세요. 오늘은 히브리어 성경 주석 강해 느헤미야 중에서 유다 민족을 위한 느헤미야 기도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졌다는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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