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원문 강해

[히브리어 성경 강해 열왕기상] 솔로몬에게 다윗의 유언(왕상 2:1-9)

엘벧엘 2021. 10. 7.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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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이 기혼에서 왕으로 즉위하고 나서 다윗이 나이가 들어 죽을 날이 임박했습니다. 다윗은 솔로몬에게 유언을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고 법과 계명과 율례와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행동하라고 말합니다. 여호와 신앙을 가져야 할 것을 말합니다. 다윗은 그러면서 솔로몬에게 유언하기를 요압에 대해서 말합니다. 아브넬과 아마사에게 행한 일이 기억하라고 말합니다. 또한 길르앗의 바르실래의 아들들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라고 말합니다. 베냐민 사람 시므이도 기억하라고 말합니다. 시므이가 다윗을 저주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에게 다윗의 유언(왕상 2:1-9)

 

1절 바이크르부 예메 다비드 라무트 바예차브 에트 쉘로모 베노 레모르

=====2:1

   다윗이 죽을 날이 임박하매 - 다윗이 솔로몬을 왕으로 임명한 때로부터 그에게 최종 유언을 하는 현시점에 이르기까지가 어느 만큼의 기간인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상당 기간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역대기에서는 솔로몬 즉위 후 다윗이 다시 건강을 회복하여 성전 예배의 새로운 규례 제정, 제물 봉헌, 그리고 솔로몬의 왕위 계승을 공포하는 의식을 성대히 행하는 등 여러 가지 활동을 한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대상 23장-29장). 

   명하여 가로되 - 다윗이 공식적으로 신하들과 백성들에게 남기는 명령은 대상 28-29장에서 볼 수 있다. 그리고 본절 이하의 내용은 다윗이 왕위 계승자인 아들 솔로몬에게 사적(私的) 유언의 형태로 은밀히 당부하는 말이다. 한편 본서가 솔로몬 즉위 이후의 다윗의 활동을 생략하고 있는 것은 역대기와 달리 열왕기는 솔로몬의 통치에 주안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2절 아노키 홀레크 베데레크 콜 하아레츠 베하자케타 베하이타 레이쉬

=====2:2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의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 직역하면 "나는 모든 땅에 속한 자들의 길로 가고 있노니"(I am going in the way of all the earth)란 의미로서, 곧 임종(臨終)이 가까왔음을 나타내는 성경적 표현이다. 일찍이 여호수아도 이와 비슷한 표현으로서 '나는 오늘날 온 세상이 가는 길로 가려니와'(수 23:14)라고 말한 바 있다.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웨하자크타 웨하이타 레이쉬'를 직역하면 '너는 강하게 되어라! 그리고 남자가 되어라'란 의미이다. 이러한 다윗의 권면은 모세 사후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정복 전쟁을 수행해야만 하는 막중한 책임을 떠맡은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 권면해 주신 말씀과 동일하다(수 1:6-4). 한편 혹자는 다윗의 이 말을 통해 당시 솔로몬의 나이가 매우 어렸을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Rawlinson). 그리고 사실 즉위식 이후에도 다윗은 솔로몬을 '어리고 약한 아들'로 말하기도 한다(대상 29:1). 이런 맥락에서 유대 사가 요세푸스는 당시의 전통으로 미루어 즉위 시 솔로몬의 나이를 14세 정도로 보았다. 혹자는 12세로 보기도 한다(Eupolemus). 아무튼 20세가 채 안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Hammond). 그러나 여기서 대장부가 되라는 다윗의 말이 결코 나이의 문제만은 아니다(삼상 4:9). 오히려 이 말은 여호와의 율법 준수의 임무를 행함에 있어 담대하라는 뜻으로 보아야 한다(Keil, B hr).  왜냐하면 모세의 뒤를 잇는 여호수아에게서도  '담대한 것'과 '율법 준수'는 상호 연결되고 있기 때문이다(수 1:7). 그러므로 여기서 다윗은 무엇보다 하나님의 계명을 힘써 지키도록 아들 솔로몬에게 당부한 것이다. 따라서 데니우스(Thenius)의 견해처럼, 다윗의 이 말을 부친의 죽음을 남자답게 용감히 견디도록 위로하는 말로 해석하는 것은 문맥상 타당치 않다(Keil).

3절 베솨마르타 에트 미쉐메레트 아도나이 엘로헤이카 랄레케트 비드라카이브 리쉐모르 후코타이브 미체오타이브 우미쉐파타이브 베에드오타이브 카카투브 베토라트 모쎄 레마안 타세킬 에트 콜 아쎄르 타아세 베에트 콜 아쎄르 티프네 솸

=====2:3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을 지켜 - 여기서 '지키라'는 '파수꾼이 되라'는 뜻을 갖고 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의 파수꾼이 되라는 말이다. 이 같은 용어는 특별히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직무 수행을 표현하는 데 주로 사용되었다(레 8:35;18:30;민 1:53;3:7). 그런데 이스라엘의 왕도 이들처럼 신적(神的) 직무를 위임받은 여호와의 통치 대리 자로서, 여호와를 위하여 여호와의 율법의 파수꾼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B hr). 

   그 길로 행하여 - 여기서 '길'(데레크)은 여호와께서 명하신 말씀의 도(道)이다. 구체적인 일례로, 신 32:4에 의하면 하나님의 길은 공평(公平)의 길이다. 따라서 솔로몬은 통치할 때 '공평'을 기본 강령으로 삼아 선민 이스라엘을 여호와의 도로 다스려야 했다.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 여기서 '법률'(훅카)과 '계명'(미츠와)과 '율례'(미쉬파트)와 '증거'( 에두트)를 각각 개별적으로 다른 대상들을 지시하는 것으로 보고 그것들을 구별하여 설명하려는 시도들이 있어 왔으나, 불가능하고 또한 불필요했다(Hammond). 오히려 이러한 표현은 모세 율법 그 전체를 강조하여 제시하려는 중언법(重言法)적인 표현인 것이다(Keil). 성경 다른 곳에서도 이처럼 비슷한 어휘가 반복되어 나란히 등장하는 예를 종종 찾아볼 수 있다(신 5:31;8:11;시 119편).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켜라 - 신정 왕국 이스라엘의 면모가 잘 드러나 있다. 즉 솔로몬은 하나님의 율법을 근간으로 하여 백성을 다스려야 했던 것이다. 인간이 세운 법과 제도는 불완전할 뿐만 아니라 자칫 소수의 집권층만을 위한 악법이 될 우려를 안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은 거룩하고 선하므로(롬 7:12), 그 법대로 통치하는 자나 통치를 받는 자들은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생활을 하게 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친히 통치하시는 공의와 평강의 나라인 것이다(계 11:15).

   형통할지라 - 사전적 의미에서의 형통(亨通)은 '모든 일이 뜻과 같이 잘됨'을 의미한다. 그런데 여기서 '형통할지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원어 '타스킬'은 '지혜롭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는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키는 사람은 지혜롭게 되는 것이고 또한 지혜로운 그가 행하는 것은 무엇이든 형통하게 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B hr). 그러므로 '형통'(사칼)이란 말속에서 뜻한 바대로 잘되는 그 뜻은 바로 '하나님의 뜻'이다. 그리고 '지혜'란 하나님의 뜻과 나의 뜻을 일치시키는 것이다.

4절 레마안 야킴 아도나이 에트 데바로 아쎄르 디베르 알라이 레모르 임 이쉐므루 바네이카 에트 다르캄 랄레케트 레파나이 베에메트 베콜 레바밤 우베콜 나페솸 레모르 로 이카레트 레카 이쉬 메알

=====2:4

   일찍이 나단을 통해 주신 하나님의 약속(삼하 7:12-16)을 이제 죽음을 앞둔 다윗이 솔로몬에게 전해주고 있다.

   만일 네 자손이...행하면 - 이 조건절은 원래 나단의 메시지 (삼하 7:8-16) 속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다. 그러나 이후로는 계속 나타나고 있다(8:25;9:5 등). 그런데 애초 이 내용은 신명기에 기록된 바(신 6:1-9)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전체 백성들에게 위탁한 교육적 책임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왕도 이러한 의무에서 면제되고 있지 않다(신 17:18-20).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 신 6:5 주석 참조.

5절 베감 아타 야다에타 에트 아쎄르 아사 리 요아브 벤 체루야 아쎄르 아사 리쉐네 사레 치브오트 이스라엘 레아브네르 벤 네르 베라아마사 벤 예테르 바야하르겜 바야셈 데메 밀하마 베솰롬 바이텐 데메 밀하마 바하고라토 아쎄르 베모트나이브 우베나알로 아쎄르 베라겔라이브

=====2:5

   스루야의 아들 요압 - 스루야는 다윗의 누이이며, 요압은 그녀의 맏아들이다(대상 2:16).

   내게 행한 일 곧...네가 알거니와 - 요압이 아브넬과 아마사를 죽인 일에 대해서는 삼하 2-3장과 19-20장을 각각 참조하라. 한편, 그런데 요압이 아브넬과 아마사를 죽인 까닭은 무엇보다도 이들에게 군대 장관 지위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시기심 때문이었다(삼하 3:6-39;20장). 여기서 특기할 것은 요압의 그러한 살해 행위를 다윗은 마치 자신에게 행한 일로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아마 요압이 아브넬과 아마사를 죽인 것은 다윗의 권위에 대한 멸시와 도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삼하 3:26;20:11). 적어도 요압은 다윗 왕에 대해서는 끝까지 충성을 바친 훌륭한 전사였지만, 그러나 지나치게 방자하고(삼하 18:5,14) 거칠었던 것 같다(삼하 3:27;18:14). 그래서 끼친 공(功) 못지않게 자주 다윗 왕가를 괴롭혀왔던 것이다. 그중에서 요압이 아브넬과 아마사를 죽인 행위는 도저히 묵과될 수 없었던 요압의 치명적 실수로서, 다윗은 그 사실에 대해 아들 솔로몬에게 응분의 조치를 내릴 것을 명하고 있는 것이다.

   태평시대에 전쟁의 피를 흘리고 - 다윗은 아브넬과 협상하여 평화적으로 통일 왕국을 이루려 했었다(삼하 3:21). 또한 압살롬의 군대 장관이었던 아마사를 등용한 것은 내란을 종식시키고 왕국의 재정비를 도모하려던 때였다(삼하 19:13;20장). 그런데 다윗의 이러한 평화의 노력이 요압의 살해 행위로 인해 크게 방해를 받았던 것이다. 따라서 요압이 사울의 군대 장관 아브넬과 압살롬의 군대 장관 아마사를 계략으로 살해한 행위는 다윗을 심히 분노케 했다(삼하 3:29).

   전쟁의 피로...띠와...신에 묻혔으니 - 여기서 '띠'와 '신'은 어떤 임무를 수행할 때 갖추어야 할 것들로서, 주로 전쟁에 임하는 전사(戰士)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필수 도구였다(Keil, B hr). 만일 요압이 전쟁 중에 정정 당당히 싸워 그들을 죽임으로 그들의 피를 띠와 신에 묻혔다면, 그것은 결코 책할만한 일이 못될 것이었다. 그러나 요압은 태평한 시대에, 곧 다윗이 탕평책을 쓰고 있는 즈음에 자기 자신의 개인적인 시기와 질투 및 복수심으로 말미암아 마땅히 전쟁터에서나 묻혔어야 할 피를 명분 없이 흘리게 했으니, 그것이 곧 요압의 용서받지 못할 죄라는 것이다.

6절 베아시타 케호크마테카 베로 토레드 세바토 베솰롬 쉐올 

=====2:6

   네 지혜대로 행하여 - 요압은 그때까지도 군대 장관이었고(35절), 다윗의 조카로서 다윗이 왕이 되는 데 큰 공로를 세운 당대의 세도가였다. 그러한 인물을 명분없이 처단한다면 민심의 동요와 같은 어려움이 생길지도 몰랐다(Starke). 그러므로 이 말은 나쁜 술수로 요압을 처단하라는 뜻이 아니라, 납득이 갈 만한 처벌의 정당성과 적절한 시기를 가려 시행하도록 충고하는 말이다. 실제로 솔로몬은 아도니야의 불측한 시도가 재차 드러나자 그의 동조자였던 요압도 함께 처단한다(19-25절, 28-34절).

   그 백발로 평안히...내력지 못하게 하라 - 그 무렵 요압도 고령기에 접어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백발의 평안한 죽음은 죄 없는 자의 죽음으로서, 요압 같은 자에게 허용될 수 없는 것이었다(B hr). 왜냐하면 요압은 까닭 없이 피를 흘렸기 때문이다(31절).  히브리인들은 무고한 자가 흘린 피는 그 피값이 보상될 때까지 하나님께 호소한다고 믿었고(창 4:10), 또한 그 피를 흘리게 한 자는 현세에서 반드시 하나님의 저주를 받는다고 생각했다(수 2:19;마 27:24,25). 한편, 이처럼 '피는 피로 갚아야 한다'(창 9:5,6)는 피의 보상 원리에 입각하여 다윗은 요압이 그 피 흘린 죄를 반드시 감당해야 할 것이라고 솔로몬에게 권고한 것이다. 그러면 왜 다윗은 자신의 손으로 직접 요압을 처단하지 않고 아들 솔로몬에게 그 일을 위임했는가? 카일(Keil)은 당시 다윗으로서는 군대 장관인 요압을 제어하기에는 역부족이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나,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닌 듯하다. 즉 다윗은 적어도 자신에게는 충실했을 뿐 아니라 많은 전공을 세운 요압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처단하는 것은 오히려 득 보다 실이 더 크게 작용할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 같다. 이에 대해 또 혹자는 생각하기를, 다윗은 요압과 공모하여 밧세바의 남편이자 신실하고 용감한 신하인 우리아를 죽게 한 씻지 못할 죄악을 저지른 경험이 있으므로(삼하 11:14-25), 그 일로 인해 양심이 찔려 요압을 직접 처리하지 못했다고 보기도 한다(Leon Wood). 아무튼 다윗은 요압의 불의한 살해 행위를 잊지 않고 있다가 결국 솔로몬을 거슬러 아도니야의 반역 행위에 가담한 요압을 솔로몬이 처리하도록 그에게 위임하는 것이 오히려 솔로몬 왕국의 강화를 위해, 그리고 하나님의 공의 실현 차원에서 더 유익하다고 판단하고 요압의 처리 문제를 자신의 손으로부터 솔로몬에게 넘겨준 것 같다(R. Patterson, J. Hammond).

   음부(쉐올) - 죽은 자들의 사후 거처 또는 죽음의 상태를 가리키는 히브리식 표현. 창 37:35;민 16:30;신 32:22;삼상 2:6;삼하 22:6 주석 참조.

7절 베리베네 바르질라이 하길르아디 타아세 헤세드 베하이우 베오켈레 슐하네카 키 켄 코르부 엘라이 베보르히 미페네 아브솰롬 아히카

=====2:7

   바실래 - 바실래 및 그가 다윗에게 베푼 선행에 대해서는 삼하 17:27-29;19:31-39 부분의 주석을 참고하라.

   네 상에서 먹는 자 중에 참예하게 하라 - 다윗의 이 부탁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느냐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즉 왕 자신의 식탁에서 함께 먹는 것을 의미한다는 견해(Keil), 왕궁에서 음식을 공급받는 것을 의미한다는 견해(B hr). 그러나 어쩌면 이것은 하나의 형태로 결합될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스바 여왕이 솔로몬의 식탁을 보고 놀랐으며, 솔로몬 왕궁의 매일 음식 소비량이 굉장히 많았다는 기록이 있기 매문이다(4:22,23;10:5). 어쨌든 이 일은 원래 다윗이 한때 압살롬의 난을 당하여 어려움에 처한 자신에게 음식물로 공궤한(삼하 17:27-29) 바실래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 해왔던 것인데, 이제 솔로몬에게도 그 선행 보답을 계속하도록 부탁하고 있는 것이다(삼하 19:33, 37).

   저희가 내게 나아왔었느니라 - 압살롬의 난을 당하여 다윗이 정처 없는 피난길에 나서는 극도의 곤경에 빠졌을 때, 바실래는 여러 가지 식물로 다윗과 그의 일행의 굶주림과 목마름을 채워주는 선행을 베풀었었다(삼하 17:27-29). 따라서 후일 다윗이 압살롬의 난을 진압하고 다시금 환궁 길에 오르게 되었을 때, 그는 바실래에게 그의 후손들을 보살피겠노라고 약속했다(삼하 19:31-39). 본절은 다윗이 바로 그러한 바실래의 선행을 기억하면서 자신이 바실래와 맺은 약속을 솔로몬 역시 계속 지켜 나가도록 요청하고 있는 장면이다.

8절 베힌네 임메카 쉬므이 벤 게라 벤 하예미니 미바후림 베후 킬렐라니 켈라라 니므레체트 베욤 레케티 마하나임 베후 야라드 리케라티 하야르덴 바에솨바 로 바아도나이 레모르 임 아미테카 베하레브

=====2:8

   바후림 - 시므이가 살던 '바후림'(Bahurim)은 수도 예루살렘에서 약 9km가량 떨어진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고을로, 베냐민 지역에 속한다(삼하 16:5).

   게라의 아들 - '게라'(Gera)는 베냐민의 손자이므로(창 46:21;대상 7:6) 시므이의 아버지일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시므이보다 약 300년 전의 인물인 사사 에훗도 '게라의 아들'로 불렸던 것으로 보아(삿 3:15) 이 말은 '게라의 후손'이라는 뜻이다(J.H-ammond). 

   시므이가 너와 함께 있나니 - 여기서 '너와 함께 있나니'(임메카) 란 말은 곧 너와 가까이에 있다는 뜻으로, 이는 솔로몬이 거주하고 있는 예루살렘 성과 가까운 곳에 시므이가 살고 있다는 뜻이다(Keil, B hr). 그러므로 이 말은 혹자(Starke)의 견해처럼 시므이가 솔로몬의 권력 하에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한편 '시므이'(Shimei)에 대해서는 삼하 16:5 주석을 참조하라.

   독한 말로 나를 저주하였느니라 - 직역하면, '그는 지독한 저주로써 나를 저주하였다'란 의미인데, 구체적인 저주의 내용은  삼하 16:7, 8에 나타나 있다. 한편 학자들은 여기서 '독한 말'(켈랄라 니므레체트)을 '강렬한 말'(Gesenius), '거친 말'(Keil), '악한 말'(Thenius) 등으로 번역한다. 여하튼 시므이의 그 저주 까닭에 오히려 하나님이 자신을 불쌍히 여겨 혹 은총을 베풀어 주실 지도 모른다고 기대했을 정도로 시므이의 독한 말 (저주)은 다윗에게 깊이 원통함을 심어준 말이었다(삼하 16:12). 

   저가 요단에 내려와서 나를 영접하기로 - 압살롬의 난이 평정된 후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환궁할 때 자신의 잘못에 대해 생명의 위험을 느낀 시므이는 급히 환영단 일천 명을 이끌고 요단으로 내려가 다윗 왕을 영접하는 기회주의적 처신을 하였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삼하 19:16-23 부분의 주석을 참조하라.

   내가...너를 죽이지 아니하리라 하였노라 - 당시 다윗은 압살롬의 반란을 진압하고 막 환궁하는 시점에서 사울 왕의 지파인 베냐민 기파 소속의 유력자 시므이를 처형하는 것은 시기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결코 바람직스럽지 못하다고 판단하고 일단 시므이의 죄를 용서해 주었다. 그러나 다윗의 이 용서는 시므이의 범죄를 용인한 것이라기보다는 그에 대한 징계를 보류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삼하 19:21,23 주석 참조.

9절 베아타 알 테나케후 키 이쉬 하캄 아타 베야다에타 에트 아쎄르 타아세 로 베호라드타 에트 세바토 베담 쉐올

=====2:9

   그러나 저를 무죄한 자로 여기지 말지어다 - 압살롬의 반란 때 시므이는 피난 가는 다윗에게 혹독한 저주를 퍼부었으나, 후에 다윗은 그를 용서한 바 있다(삼하 16:5-13;19:19-23). 그 까닭은 시므이가 사울의 출신 지파인 베냐민 지파의 유력한 유지였고, 또 그 무렵은 압살롬 내란 이후 회합 책으로 민심을 수습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당시 다윗은 시므이를 죽이지 않겠다고 맹세했던 것이다(삼하 19:23). 그러나 아들 솔로몬에게는 그러한 맹세의 책임이 없는 것이다. 한편 원문은 '무죄'를 '벌하지 않은 상태'로 말하고 있다. 또한 '그러나'는 원문상 '그리고 지금'이란 뜻이다. 따라서 이 말은 이제까지 벌하지 않은 상태로 보류해 온 시므이에 대한 처벌을 지금 집행할 때가 왔다는 뜻이다(J. Hammond).

   그 백발의 피를 흘려...내려가게 하라 - 다윗은 시므이의 행위(삼하 16:5-13)를 단순히 한 개인에 대한 저주와 모욕이 아닌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하고, 자신의 시대에는 비록 민심(民心) 수습이란 현실적 문제로 그를 처단하지 않았지만 끝내는 처단해야 할 존재로 작정했다. 사실 시므이와 같은 기회주의적 인물은 때가 되면 또다시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다분히 있었으므로, 다윗은 솔로몬의 견고한 왕국을 이루기 위해서는 시므이와 같은 암적(癌的) 존재가 반드시 제거될 필요가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한편, 혹자는 용서받은 후 시므이의 행동이 신실한 회개에 근거하고 있지 않다는 판단하에 다윗이 이처럼 명령하고 있다고 보기도 한다(Richard D. Patterson). 또한 편 일부 학자들(Stanley, Harwood)은 주장하기를, 시므이를 처형시키라는 다윗의 명령은 '뿌리 깊은 증오심' 내지는 '끝내 참을 수 없었던 복수심'에 근거하고 있다고 하나, 우리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다윗의 명령은 결코 개인적 차원의 원한이나 복수심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 실현' 내지는 '하나님 왕국의 강화'라는 차원에서, 하나님의 대리자인 기름 부음 받은 왕을 모욕하고 저주한 자에 대해 개인적인 용서의 차원을 떠나 신적 심판은 반드시 집행되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라고 보아야만 한다(Keil, Hammond).

[히브리어로 보는 열왕기상] 기혼샘에서 솔로몬 즉위식(왕상 1:38-53)

 

[히브리어로 보는 열왕기상] 기혼샘에서 솔로몬 즉위식(왕상 1:38-53)

안녕하세요. 오늘은 히브리어로 보는 열왕기상 중에서 기혼 샘에서 솔로몬 즉위식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솔로몬은 다윗의 노새를 타고 기혼 샘으로 올라가서 왕으로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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