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원문 강해

[히브리어 성경 구약 룻기 강해] 룻과 보아스의 만남(룻 2:1-7)

엘벧엘 2021. 10. 6.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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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멜렉과 나오미가 흉년에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으로 갔다가 남편도 잃고 두 아들도 잃고 난 후에 나오미는 룻과 함께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무 재산도 없이 새롭게 베들레헴에서 살아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룻은 우연히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을 줍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알게 됩니다. 룻과 보아스가 자연스럽게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구속의 대를 이어가기 위해서 보아스를 만나게 하셨습니다. 룻은 모압 여인이지만 예수님의 족보에 올라간 여인입니다.

 

룻과 보아스의 만남(룻 2:1-7)

 

1절 우레나오미 메유다 레이솨흐 이쉬 깁보르 하일 미미쉐파하트 엘리멜렉크 우쉐모 보아즈

=====2:1

 친족 - 여기서 이 말은 원문상 흔히 '케티브(모음 부호를 붙이기 이전의 원문 그대로의 자음) 독법'(讀法)을 따라 '메우다'로 읽는데, 그 뜻은 '잘 알고 있는(자)', '가까운(자)'라는 의미를 지닌다(시 55:13;88:8,18). 여기서는 특별히 기업 무를 의무를 가진 '혈족 관계'(kinship)에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확실치는 않지만 유대 전승에 의하면, 보아스는 엘리멜렉의 조카라 한다(Keil, Cassel).

   유력한 자 - 이 말은 히브리어로 '이쉬 깁보르  하일'인데, '깁보르'는 주로 '용사'를 가리킬 때 사용되었다(수 1:14;10:2;삼상 2:4). 그리고 '하일'은 '재산이 많은 사람'을 의미하기도 하며(신 33:11), '재물'을 의미하기도 한다(사 8:4). 뿐만 아니라 '현숙하거나 능력있는 사람'에게도 사용되었다(3:11).  따라서 본절에서 보아스(Boaz)를 유력한 자라고 칭한 것은 재물이 많을 뿐 아니라 도덕적으로 존경을 받으며, 그 지방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사람임을 보여 준다. 이런 의미에서 영역본들은 각각 '유력한 자산가'(a mighty man of wealth,  KJV), '명망 있는 유지'(a man of standing, NIV)등으로 번역했다.

   보아즈(Boaz) - 히브리 어근상 그 이름의 뜻이 분명치 않다. 따라서 (1) 혹자는 '벤 아즈'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아 '힘센(자)'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Cassel). (2) 혹자는 '바아즈'에서 파생되었다고 하며, 그 뜻은 곧  '민첩한(활동가)'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Keil). (3) 그리고 혹자는 이 말의 어근을 산스크리트어(Sanskrit, 梵語)의 '부안티'(bhuvanti)에서 찾아, 그 뜻을 '복된(자)'로 보기도 한다(Raabe).

2절 바토메르 루트 하모아비야 엘 나오미 엘르카 나 하사데 바알라코타 바쉬볼림 아하르 아쎄르 에므차 헨 베에나이브 바토메르 라흐 레키 비티

=====2:2

 나로 밭에 가게 하소서 - 동서 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추수기가 되면 가난한 자들은 추수를 한 밭에 나가 떨어진 이삭을 주워 생계를 유지했다. 특별히 히브리 사회에서 모세 율법은 이러한 자들을 위해 밭이나 포도원, 그리고 감람원에서 추수하는 자들로 하여금 밭의 가장 자리에 있는 농작물의 일부를 남겨놓도록 규정하고  있다(레 19:9,10;23:22;신 24:19). 룻은 이러한 율법의 혜택과 관습을 좇아 자신과 시어머니의 양식을 구하기 위해 밭으로 나갔다.

   뉘게 은혜를 입으면...이삭을 줍겠나이다 - 모세 율법은 분명 가난한 자의 생계를 보장키 위해 추수 후에 그 떨어진 이삭을 줍는 자들의 권리를 보장해 줄 것을 규정하고 있다(레 19:9,10;23:22;신 24:19). 그러나 백성들은 그 규정을 무시했다. 즉 여호수아 사후(死後)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안정과 번영을 누리게 되자, 오히려 하나님의 율법을 무시하고 자신의 소견대로 사리 사욕을 취하는 사사 시대의 타락상을 연출했다. 따라서 당시 가난한 자들은 율법의 혜택을 받지 못한 채, 밭주인의 냉대와 멸시를 받기 일수였고 심지어 이삭 줍는 일을 금지당하기까지 했다. 더군다나 모압 여인 룻(Ruth)으로서는 모압에 대한 이스라엘의 좋지 못한 감정을 고려할 때, 결코 이삭 줍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따라서 룻의 이 말은 이방인으로서의 당할지도 모를 온갖 어려움과 냉대를 감수하고, 또한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하루 종일 허기를 참아가며 일해야 할 육체적인 고통을 기꺼히 감수하고 '내가 누군가의 눈에서 호의를 발견할 수만 있다면'(in whose eyes I shall find favor) 그를 좇아 열심히 이삭을 줍겠다는 결의를 보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말속에는 시어머니에 대한 룻의 지극한 효성이 구체적으로 잘 나타나 있다. 이로써 룻은 신실한 신앙을 소유한 여인일 뿐 아니라(1:16,17), 홀 시어머니를 극진히 모시는 현숙한 여인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에 합당한 여인으로 부각된다.

3절 바텔레드 바타보 바텔라케트 바사데 아하레 하코체림 바이케르 미크레하 헬르카트 하사데 레보아즈 아쎄르 미미쉐파하트 엘리멜렉크

=====2:3 

베는 자를 따라...이삭을 줍는데 - 후대의 유대 랍비들은 '이삭 줍기'에 대해 나름대로의 규정을 정했다. 그중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즉 '만일 추수하는 자가 보리나 밀 등을 벨 때 한 줄기나 두 줄기를 놓쳐버리면 그것은 이삭 줍는 자의 몫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세 줄기 이상 베지 않았다면 그것은 주인에게 다시금 돌려져야 했다'(Pulpit Commentary).

   우연히...이르렀더라 - 룻이 이삭을 줍기 위해 보아스의 밭으로 갔을  때, 그녀는 당시 그 밭의 주인에 대해서나 앞으로 일어나게 될 사건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그러나 분명코 이것은 룻의 입장에서는 우연한 일이지만, 하나님의 편에서는 그녀를 위해 미리 준비하신 기회였다(Gillis Gerleman). 따라서 본서의 저자가 본절에서 이 말을 한 것은 앞으로 발생되는 일이 인간의 계획과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임을 가르쳐 주기 위함이다.

4절 베힌네 보아즈 바 미베이트 레헴 바요메르 라코체림 아도나이 임마켐 바요메루 로 예바레케카 아도나이

=====2:4

 본절은 보아스와 그의 일꾼들 간에 인사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구약 시대에 히브리인들이 나누었던 인사법으로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1) 이웃의 안부를 물을  때(삼하 8:10;11:7;왕하 4:26) 혹은 사람을 만났을  때(왕하 5:21)나  헤어질  때(삼상 1:17) '샬롬'이라는 인사말을 나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평강 주시기를 바랍니다'라는 의미가 축약된 인사로서, 히브리인들에게는 가장 보편적인 인사법이다. 그리고 이 같은 인사말과 더불어 그들은 서로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는 것이  일반적이었다(창 27:26;출 18:7;삼상 20:41). (2) 존경과 충성을 표시하는 인사로서 땅에 엎드려 절하는 방식(창 50:18;삼하 9:6;14:4;왕하 4:37;대하 20:18)과 무릎을 꿇어  절하는  방식(창 42:6)이 있었다. 그런데 본절의 인사법은 이러한 관습적인 것과 퍽 다르다는 인상을 준다. 즉 보아스는 자기 일꾼들에게 매우 자상하게 인사했으며, 일꾼들도 그에게 매우 친밀한 말로 화답하였다. 그러므로 이것은 보아스의 평소 신앙 인격을 잘 증명해 준다고 볼 수 있다.

5절 바요메르 보아즈 레나아로 하니차브 알 하코체림 레미 하나아라 하조트

=====2:5

 사환 - 이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아르'는 '젊은 사람',  '심부름꾼', '시종' 등을 의미한다. 그런데 '나아르'는 '노예'나 '종'을 의미하는 '에베드'와는 매우 다르다. 즉, '나아르'는 대체로 독립된 가정을 가지며, '에베드', 즉  '종'들을 관장하는 사람을 일컬을 때도 사용된다(삼하 9:9,10). 본절에서 사용된 '나아르'도 추수하는 일꾼들을 관장하는 위치에 있는 것으로 보아(6절), 단순한 종이나 사환이 아니라 보아스의 가사를 책임 맡은 감독관과 같은 사람일 것이다.

   이는 뉘 소녀냐 - 사실 룻은 그동안 유력한 엘리멜렉 가문의 안주인으로서 유복하게 생활해 왔기 때문에, 여느 이삭 줍는 가난한 여인네와는 다른 고상한 기품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룻은 훌륭한 신앙과 고매한 덕성을 지닌 현숙한 여인으로서 그 단정한 몸가짐으로 다소곳하게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금방 보아스의 눈에  띄인 것 같다.

6절 바야안 하나아르 하니차브 알 하코체림 바요마르 나아라 모아비야 히 하솨바 임 나오미 미세데 모아브

=====2:6

  이는...모압 소녀인데 - 주인의 질문에 즉각 응하여 룻을 소개하는 사환의  대답을 볼 때,  그리고 룻에게 호의를 베풀면서 보아스가 한 말(11절)을 볼 때 당시 베들레헴 성내에서는 룻에 대한 이야기가 널리 알려진 것 같다. 더욱이 이방 여인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룻은 여호와를 향한 신앙과 시모(媤母)에 대한 지극한 효성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널리 인정받고 있었던 것 같다.

7절 바토메르 알라코타 나 베아사프티 바오마림 아하레 하코체림 바타보 바타아모드 메아즈 하보케르 베아드 아타 제 쉬브타흐 하바이트 메아트

=====2:7

 잠시 집에서 쉰 외에 - 커버데일(Coverdale) 역에서는 본절을 '잠깐 동안 집에  가곤 했던 것 외에'라고 하여 '집'이란 말이 성읍에 있는 나오미의 주택을 언급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본문에 사용된 '집'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바아트'는 '집'이란 뜻 말고도 '임시적인 오두막', '장막', '움막' 등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고 룻이 점심 식사를 밭에서 한 것으로 보아(14절), 그녀가 쉰 곳은 성읍에 있는 집이 아니라  더위를  피하기  위해  임시로  지은  장막이나  오두막이었을  것이다(James Morison). 아무튼 본절에서 저자가 이러한 표현을 쓴 것은 그녀가 어디에서 쉬었느냐 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룻이 부지런히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을 뿐이다.

[히브리어로 보는 룻기] 나오미와 룻의 베들레헴 귀향(룻 1:19-22)

 

[히브리어로 보는 룻기] 나오미와 룻의 베들레헴 귀향(룻 1: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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