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강림과 방언의 역사(행 2:5-13)
사도행전 2장에서 오순절에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이 강림했습니다. 하늘로부터 급한 바람이 불었습니다. 각국에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각자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했습니다. 각자의 방언으로 했는데도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 알아들었습니다. 성령이 임하게 되므로 바벨탑 이후에 언어가 혼잡하게 되었는데 다시 하나가 되는 방언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성 경: [행2:5] 에산 데 엔 이에루살렘 카토이쿤테스 이우다이오이 안드레스 율라베이스 아포 판토스 에드누스 톤 휘포 톤 우라논
그 때에 - 이 시점은 (1) 유대인의 명절인 오순절을 지칭할 수 있고 (2) 성령 강림의 때를 의미할 수 있다. 여기서는 두 가지 의미를 모두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경건한 유대인이 - 누가가 '경건한'(율라베스)이란 뜻으로 사용한 이 말은 신약에서 유대인들에게만 사용되고 있다(8:2; 22:12 ;눅 2:25). 유대인들은 본래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경건하게 살아보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경건한 유대인'이란 표현은 이방인들을 가리켜 경건하다고 할 때(10:2) 사용되었던 말과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본절에서 이 표현은 오순절과 그 규례(민 28:26-31)를 지키기 위해 모인 유대인 중에서 율법을 잘 준수(遵守)하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유대인들은 디아스포라 되어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었다. 그러나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모였다. 유월절, 칠칠절(오순절), 초막절은 꼭 지켰다. 이 세 절기는 예루살렘에 와서 지켰다.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우거하더니 - 유대인 중 다수가 바벨론에 의해 남쪽 유다가 멸망당한 후(B. C. 586) 각국에서 흩어져 사는 '디아스포라'(약 1:1; 벧전 1: 1)였다. 한편 '우거하다'(카토이쿤테스)는 현재 분사를 사용하고 있다. 절기를 지키러 온 사람들을 말한다. 이 말은 보통 한 곳에 머물러 사는 것을 뜻한다. 특히 헬라어 본문의 9절에서 각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가리킬 때 이 말이 사용된 것을 볼 때. 어떤 사람은 예루살렘에 거주했던 것으로 짐작할 수도 있다(De Wette). 그러나 8-11절의 내용이 외국에 거주하던 '디아스포라'를 암시하므로 오순절의 절기를 지키기 위하여 일시적으로 온 나그네였을 것이다(Meyer, Alfoed, Knowling, H. Marshall).
성 경: [행2:6] 게노메네스 데 테스 포네스 타우테스 쉬넬덴 토 플레도스 카이 쉬네퀴데 호티 에쿠온 헤이스 헤카스토스 테 이디아 다알레크토 랄룬톤 아우톤
이 소리가 나매 - 이 소리는 바람 소리(2절)인지, 방언으로 말하는 소리(4절)인지 주석가들 간에 견해가 각기 다르다. 그러나 ' 소리 '를 뜻하는 헬라어 '포네'가 보통 인간의 소리를 의미하기 때문에 후자가 더 타당하다(Black, Marshall, Lake, Neil, Bruce).
큰 무리가 모여 - 이는 4절의 '다른 방언'으로 말하는 소리를 듣고 큰 무리가 모여들었던 것을 뜻한다(Robertson). 이로 보아 제자들이 머물러 기도했던 장소가 예루살렘 성 안에서 많은 사람이 붐비는 장소에 위치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각국에서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모였다. 보통 엄청난 군중이 모였다고 한다. 엄청난 숫자가 예루살렘에 모였기 때문에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의 말하는 것을 듣고 - '듣고'(에쿠온)란 미완료 시상으로서 무리들이 소리를 들은 시각이 한참 방언하고 있을 때였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것은 제자들이 방언이 다락방에서 처음으로 일어났고 주변의 골목과 안뜰에서 계속 일어났으며 마지막에는 예루살렘 성전 경계 지역까지 퍼져 나갔던 것을 암시하여 주고 있는 듯하다(Richard N. Longenecker). 따라서 제자들의 방언은 잠시 동안이 아니라 상당히 오랜 시간 지속되었을 것이다. 여기에서 '방언'(디알렉크토스)은 '자신들의 언어'(NIV, NASB)로서 고전 14장에 언급된 성령의 은사(恩賜)인 방언은 아니다. 각 사람은 자신들이 거주하던 나라의 언어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들었던 것이다.
성 경: [행2:7] 엑시스탄토 데 판테스 카이 에다우마존 레곤테스 프로스 알렐루스 우크 이두 판테스 후토이 에이신 호이 랄룬테스 갈릴라이오이
다 놀라 기이히 여겨 이르되 - '놀라'(에다우마존)란 말의 원뜻은 '어떤 장소에서 떠난다'는 뜻인데 입을 다물지 못하는 놀라움을 의미한다. 또 '기이히 여겨'(엑시스탄토)는 미완료 과거형으로 그 놀라움이 점점 커져서 어떤 사건이 뜻하는 바를 어떻게 설명할지 몰라서 당황하는 표현이다. 그들은 방언을 말하는 제자들이 갈릴리사람(1:11)인데다가 또 배우지 못한 자들이면서도 그와 같이 자신들의 언어로 말 하는 것을 듣고 심히 놀란 것이다.
보라 이 말하는 사람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 이 첫째 질문은 제자들의 출신에 관한 것이다. 갈릴리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뛰어난 언어 구사력(驅使力)이 없는 무식한 자들로 여겨졌으므로 나다나엘도 빌립에게 갈릴리에 속한 동네 나사렛에서 선한 것이 나올 수 있느냐고 의문을 제기한 적이 있다(요1:46). 그렇기 때문에 제자들이 다른 나라의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들었을 때 모여든 사람들은 놀라움을 표시할 수밖에 없었다.
성 경: [행2:8] 카이 포스 헤메이스 아쿠오멘 헤카스토스 테 이디아 디알레크토 헤몬 엔 헤 에겐네데멘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것 - '각 사람의 난 곳'은 9-11절에 기록되어있는 곳을 가리킨다. 각국 사람들이 모였는데 서로 말을 알아 들었다. 성령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다. 듣게 되었는데 아쿠오멘이다. 직설법 현재 능동태 동사이다. 각 사람들이 서로 실제로 방언을 지금 알아듣고 있다는 의미다.
성 경: [행2:9] 파르도이 카이 메도이 카이 엘라미타이 카이 호이 카토이쿤테스 텐 메소포타미안 이우다이안 테 카이 캅파도키안 폰톤 카이 텐 아시안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 - 이 사람들은 유대의 동쪽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들 지역은 과거 앗수르인들이 북쪽 이스라엘의 열 지파로부터 포로로 잡혀온 자들을 이주시켰던 지역으로(왕하 17:6) 가장 먼저 디아스포라(Diaspora) 유대인들이 생겨난 곳이었다. 그 후에도 느부갓네살 시대에 유다의 포로들로 말미암아 그 수는 더욱 증가되었다(단 1:1, 2) 그들은 나중에 바사 왕국이 쇠퇴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팔레스틴으로 귀환(歸還)하지 않고 살던 곳에 머물렀다. 한편 여기서'우리'는 바대와 메대 그리고 엘람이란 곳에 사는 유대인들인지 아니면 그곳에 살면서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인지 분명하지 않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그곳에 살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로 추정한다(Bruce, Ralph Earle, Hervey, W. Neil). 그러나 10절 하반절의 진술로 미루어 보아 디아스포라 유대인들뿐 아니라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도 포함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 메소보다미아 - 티그리스 강과 유브라데 강 사이의 지대로 비옥한 초생달 지역(Crescent)으로 잘 알려져 있다. 유대인들은 그 지역에 자리 잡고 있던 바벨론 제국에 의해 B. C. 589년 이후에 포로로 잡혀가서 그곳에 정착하게 되었다. 1세기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메소보다미아와 그 인접지역에 정착해 살던 유대인들에 대해 많은 것들을 언급하였다.
유대 - 이 명칭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의심의 여지가 있다. (1) '유대'(이우다이안)란 단어는 형용사이기 때문에 명사로 사용되려면 앞에 관사가 있어야 하지만 본절에서는 생략되었다. (2) 그 지역에 거주하던 유대인들이라면 사도들이 자기들의 언어로 말하는 것을 듣고 놀라워했을 리 없다. 뿐만 아니라 당시 예루살렘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을 가리키기 위해 특별히 이처럼 언급했을 리 없을 것이다. 여기서 가장 설득력 있는 제안은 본절이 '유대'란 말이 보다 광범위한 예언적(豫言的) 인 의미를 내포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말은 유브라데 지역으로부터 이집트 변방 지역까지 확장되었던 '유대인의 영토', 곧 다윗 왕과 솔로몬에 의해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통치되었던 지역을 가리키는 넓은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F. F. Bruce). 이렇게 생각할 때 수리아가 그 목록에서 누락(漏落)된 이유를 알 수 있으며 예루살렘 출신의 원주민과는 전혀 다른 여러 가지 방언에 대한 긍정적인 설명이 될 것이다(Richard N. Longengcker).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 이들 지역은 소아시아(지금의 터어키) 지방으로 당시에 로마의 행정 구역이었다(벧전 1:1). 소아시아의 지방들에는 규모가 꽤 큰 유대인 공동체가 있었다는 많은 증거가 있다(13-19장; Philo, Embassy to Gaius).
성 경: [행2:10] 프뤼기안 테 카이 팜퓔리안 아이귑톤 카이 타 메레 테스 리뷔에스 테스 카타 퀴레넨 카이 호이 에피데문테스 로마이오이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 아시아와 가바도기아의 중간에 위치한 로마의 행정 구역이었다.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 유대인들은 B. C. 6세기 초엽부터 계속 애굽에 거주해 왔다. 예수 당시 애굽에는 유대인이 백만 명가량 살았는데 알렉산드리아의 다섯 구역 중에 두 구역의 전 주민이 유대인이었다고 한다(Philo, on Flaccus 6, 8). 애굽의 톨레미 1세(Ptolemy)는 그의 왕권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하여 많은 유대인들을 구레네에 정착시켰는 그때에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의 여러 지방에 유대인들이 흩어져 살게 되었다(6:9; 11:20; 13:1).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은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와 동격(同格)으로 봐야 할 것이다(R. C. H. Lenski). B. C. 2세기 경에 로마에는 유대인 거주지역이 있을 정도로 많은 유대인이 있었다. 본문의 사람들은 B. C. 62년에 폼페이(Pompeii)에 의해 포로로 잡혀왔다가 후에 자유케 되었던 자들로 볼 수 있다. 본절에서 로마에서 왔던 사람들 중에 나면서부터 유대인들이었던 사람과 이방인 개종자들이 '둘다'(NVI와 NASB 는 both를 사용함) 포함되었다는 사실은 당시 로마에서 이방인들을 개종시키는 유대인의 활동이 상당히 활발했다는 것을 암시해주고 있다.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 이란 곧 재종자로 말하는데 유대인의 율법을 완전하게 지키고 그들의 의식을 준수한다는 점에서 유대인들과 교제를 누리도록 허용된 이방인을 가리킨다.
성 경: [행2:11] 이우다이오이 테 카이 프로셀뤼토이 크레테스 카이 아라베스 아쿠오멘 랄룬톤 아우톤 타이스 헤메테라이스 글롯사이스 타 메갈레이아 투 데우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 그레데는 발칸 반도 남방의 섬이고 아라비아는 홍해에서 유브라데에 이르는 지역, 곧 시리아와 팔레스틴 동쪽 지방에 있는 나바티안 왕국(the Nabataean)을 가리킨다. 누가는 지금까지 15개국(또는 지방)에서 살던 유대인 또는 이방인 개종자들이 예루살렘으로 모였던 것을 일일이 열거했다. 서론의 지도를 통하여 보는 바처럼 열거된 그 나라들은 당시 지중해를 중심한 근동과 유럽지역에까지 확장되어 있었다. 이것은 앞으로 복음이 이처럼 세계 각국에 각 나라의 말로 전과될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4절; 창 11:1-9 참조).
우리가 다 우리의 각 방언으로 - 이 말은 8절에서 말했던 것을 다시 강조한 말이다. 그 강조점 소유격 '우리의' 란 말에 있다(R.H.Lenski).'우리'가 각국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과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 모두를 지칭하므로, 본절에서는 그들이 속한 지역의 방언을 강조하기 위해 '우리의'란 소유격이 첨가되었다.
하나님의 큰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 여기에서 말한 '하나님의 큰일을'(타 메갈레이아 투 데우)이란 그리스도의 부활과 같은 특별한 사실에 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하셨던 구원의 전 사역에 관한 것을 말한다(H.Bavinck). 사도들은 성령이 부어지자마자 모든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하나님의 큰 일'을 전파하기 시작하였다. 하나님은 사도들에게 성령 부어 주시사 이 큰 일을 깨닫고 자랑하며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도록 하신 것이다. 이러한 이적(異蹟)은 이미 예수가 제자들에게 약속하셨던 것으로(요 16:13. 14) 본절에 특별히 언급되어 약속의 성취를 보여준다.
성 경: [행2:12] 엑시스탄토 데 판테스 카이 디에포룬 알로스 프로스 알론 레곤테스 티 안 델로이 투토 에이나이
다 놀라며 의혹하여 서로 가로되 - '의혹하여'라는 말은 '완전히 당황하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 '디아포레오'의 미완료형으로 신약성경에서 누가만 사용한 독특한 용어다(5:24; 10:17; 눅 9:7 ). 이 동사의 시제가 암시하듯이 그들은 계속해서 놀라고 당황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어찐 일이냐 하며 - 모여든 무리들은 사도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의심을 가진 사람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그에 대한 긍정적인 관심을 보인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바로 다음 구절에 조롱하는 어떤 이들이 있었음을 볼 때 부정적인 시각을 사람들도 상당 수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성 경: [행2:13] 헤테로이 데 클류아존테스 엘레곤 호티 글류쿠스 메메스토메노이 에이신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가로되 - '어떤 이들'이 9-11절에 언급된 사람들을 가리키는지 또는 그 외 다른 사람들을 가리키는지 명확지 않다. 오순절을 지키기 위해 팔레스틴 지역에 거주하는 유대인들도 그곳에 많이 왔을 것이다(14절). 따라서 누가는 조롱한 자들이 특정 부류의 사람들이 아니라 방언하는 소리를 들은 불특정인임을 지칭하기 위해 단순히 '어떤'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저희가 새 술이 취하였다 하더라 - 바울이 아덴에서 죽은 자의 부활을 주제로 전도하는 것을 듣고 기롱 한 사람들이 있었다(17:32). 또한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이 방언으로 말하면 '미쳤다'고 생각할 위험이 있다(고건 14 :23). 이처럼 '자연인은 저들의 무지와 수치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초자연적인 사실을 자연적인 원인으로 돌리는 법이다'(Bengel). 한편 '새 술'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글류코스'로 '감미로운'을 뜻하는 '글뤼퀴스'에서 파생된 용어다. 본래 '글류코스'는 발효(醱酵)되지 않은 포도즙을 의미했다. 본절에서는 아마 발효되기 시작한 감미로운 포도즙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요한복음 3장 히브리어 성경 강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요 3:21-36)
'성경 원문 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히브리어 보는 에스겔 강해] 말씀 선포의 지시를 받은 에스겔(겔 3:1-11) (0) | 2022.11.17 |
---|---|
[히브리어성경 레위기 7장 강해] 제사 보충 규례중 속건제의 규례(레 7:1-10) (0) | 2022.11.08 |
[이사야 5장 히브리어 성경말씀] 극상품 포도나무인 유다 백성(사 5:1-12) (0) | 2022.11.05 |
[빌립보서 2장 헬라어강해]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빌 2:12-18) (0) | 2022.11.02 |
[창세기 8장 히브리어 말씀] 방주에서 나온 노아가 하나님께 번제를 드림(창 8:13-22) (0) | 2022.10.30 |
[요한복음 3장 히브리어 성경강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요 3:21-36) (0) | 2022.10.27 |
[사도행전 2장 헬라어 설교말씀] 오순절 마가 다락방 성령 강림(행 2:1-4) (0) | 2022.10.26 |
[누가복음 헬라어 성경말씀] 호적을 정리하는 요셉과 마리아(눅 2:1-7) (0) | 2022.10.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