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는 베드로전서에서 믿음으로 영혼이 구원받는 것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됩니다. 율법주의자들은 행위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성경에는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혼이 구원받았습니다.
믿음으로 받는 영혼 구원(벧전 1:7-12)
7절 히나 토 도키미온 휘몬 테스 피스테오스 폴뤼 티미오테론 크뤼시우 투 아폴뤼메누 디아 퓌로스 데 도키마조메누 휴레데 에이스 에파이논 카이 티멘 카이 독산 엔 아포칼륍세이 이에수 크리스투
=====1:7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 본절은 약 1:3과 유사하여 혹자는 베드로가 야고보서를 참조하였을 것이라고 추측한다(Robertson). 그러나 야고보와 베드로의 표현에는 차이가 있기에 참조했다고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그 차이점은 두 가지이다. (1) 야고보서에는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배우는 '수단'으로 언급되는 반면 본문에서는 금보다 더 귀한 가치를 지닌 '목적'으로 취급되고 있다. (2) 야고보서에는 믿음의 시련이 온전한 신앙에서 요구되는 한 요소에 불과하지만 본문에서 믿음의 시련은 신앙의 최고 요소로 취급되고 있다. 베드로는 본절에서 앞서 언급된 차이점과 같은 자신의 의도를 강조하기 위해 '히나'로 인도되는 목적절로 믿음의 시련을 수식하고 있다(Michaels). 베드로가 시련을 통한 믿음과 금을 비교하여 강조하는 바는 (1) 참된 믿음은 변하거나 소멸되지 않는다는 사실과 (2) 금이 불로 연단받듯이 믿음도 시련을 통해 연단받는다는 사실이다. 베드로는 이러한 강조점을 통해 고난당하는 수신자들을 위로하고 있다(Bigg, Leighton, Michaels).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 금이 불에 의해 제련되어 순수해지듯이 그리스도인 역시 시련을 통해 참되고 순수한 신앙을 소유하게 된다. 이 참된 신앙이 온진히 밝혀지는 날 곧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에 순수하고 참된 신앙을 소유한 자는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된다. '칭찬과 영광과 존귀'는 종말론적 보상 혹은 상급으로서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기다리는 온전한 '구원'의 모든 것을 나타낸다(롬 2:7,10; 빌 1:11; 히 2:7,9, Michaels).
8절 혼 우크 에이도테스 아가파테 에이스 혼 아르티 메 호론테스 피스튜온테스 데 아갈리아스데 카라 아네클랄레토 카이 데독사스메네
=====1: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네 - '보지 못하였나'에 해당하는 헬라어 '우크 이돈테스'는 문법적으로 맞지 않다. 왜냐하면 '이돈테스'는 '호라오'('보다')의 제2부정 과거 능동태 분사로서 분사의 부정으로는 '메'를 써야 함에도 불구하고 본절에서는 '우크'가 쓰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세 가지 견해가 있다. (1) 혹자는 '양보적'인 의미보다 '사실적'인 의미를 강조하기 위함이라고 주장한다(Robertson). 즉 본문은 '비록 너희가 예수를 보지 못하였으나'가 아니라 '너희 가운데 아무도 예수를 보지 못했다'라는 의미로 '사실성'을 강조한다. (2) 혹자는 베드로 자신이 예수를 친히 목격했음을 수신자들과 비교해 강조했다고 주장한다(Selwyn). (3) 혹자는 베드로를 포함해 수신자 전체가 현재 계시하시는 예수를 보지 못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표현이라고 주장한다(Michaels). 즉 본절에서 베드로는 예수를 보지 못하나 믿고 있는 수신자들을 칭찬하려고 했다. 세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수진자들이 비록 예수를 보지 못하나 사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도 장차 종말론적 보상으로 주어질 영광과 존귀와 칭찬을 현재 볼 수 없다 할지라도 믿음으로 바라보며 즐거워하고 기뻐해야 한다.
9절 코미조메노이 토 텔로스 테스 피스테오스 휘몬 소테리안 프쉬콘
=====1: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 '받음이라'의 헬라어 '코미조메노이'는 '코미조'의 현재 중간태 분사로 구원이 지금도 실현 과정에 있음을 강조한다. 참된 믿음의 결과인 미래에 주어질 종말론적 보상은 영원하며 온전한 구원이기 때문에 현재 믿음을 소유한 것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 주어질 상급을 소유하고 누리는 것과 동일하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온전히 완성되는 구원은 미래에 속해 있다(Stibbs, Blum). 한편 베드로는 이러한 구원에 대해 '영혼의 구원'(소테리안 프쉬콘)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 때문에 베드로가 '영'과 '육'을 구별하는 헬라어 이분법 사상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기 쉬우나(Dihle)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영혼'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쉬콘'은 히브리적 이해 속에서 '자아'나 '인격' 전체를 지칭하기 때문이다(2:25; 4:19, Dautzenberg, Selwyn). 비록 베드로가 '프쉬콘'을 신체적 생명으로 생각하였을지라도 그것은 육체적 죽음을 초월하는 생명이다(Michaels).
10절 페리 헤스 소테리아스 엑셀제테산 카이 엑세류네산 프로페타이 호이 페리 테스 에이스 휘마스 카리토스 프로페튜산테스
=====1:10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 본절에서 불 특징인으로 나타나는 '선지자들'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 혹자는 베드로 당시에 활동하던 선지자들이라고 주장한다(Selwyn). 이 견해는 본서를 읽는 수신자들이 선지자에 대해 알고 있다는 전제하에 베드로가 불특정으로 썼다고 추측한다. (2) 혹자는 구약성경 전체에 나타나는 선지자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Michaels, Blum, Cranfield). 이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전자의 견해는 본절과 12절 이하에서 선지자들이 예언하므로 유익함을 얻은 자들은 선지자들 자신이 아니라 수신자들을 포함한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간파하였으며 신약 시대의 선지자를 포함할 경우 그들은 이미 그리스도의 고난과 영광을 알았기에 그것을 재삼 강조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지자들'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영광을 직접 목격하지 못한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을 가리킨다. 구약 시대의 예언자들은 메시야의 때에 대해서 간절히 알기를 원했으며 그것을 알기 위해 말씀을 연구하였다(눅 10:24).
11절 에류논테스 에이스 티나 에 포이온 카이론 에델루 토 엔 아우토이스 프뉴마 크리스투 프로마르튀로메논 타 에이스 크리스톤 파데마타 카이 타스 메타 타우타 독사스
=====1:11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여...상고하니라 - '그리스도의 영'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 혹자는 선재(先在)하신 그리스도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Windisch, Lenski). (2) 혹자는 성령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Michaels, Selwyn).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영'은 신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영' 혹은 '주의 영' 혹은 '성령'과 상호 교환으로 사용되고 있으며(행 1:16; 2:33; 벧후 1:21)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것이 성령의 사역이기 때문이다(12절; 요 15:26, Stibbs). 성령께서 예언자들로 하여금 메시아의 때와 그가 받으실 고난과 영광에 대해 예언하게 하였다(삼하 23:2; 눅 24:26).
12절 호이스 아페칼뤼프데 호티 우크 헤아우토이스 휘민 데 디에코눈 아우타 하 뉜 아넹겔레 휘민 디아 톤 유앙겔리사메논 휘마스 엔 프뉴마티 하기오 아포스탈렌티 아프 우라누 에이스 하 에피뒤무신 앙겔로이 파라큅사이
=====1:12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 예언자들이 간절히 알기를 원하며 열심히 상고하고 예언한 것은 예언의 내용 곧 메시아의 때에 대해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기에 예언자 자신과 당대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후대의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것이었다(롬 4:23,24; 15:4; 고전 9:9,10;10:11, Blum, Stibbs, Michaels).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고한 것이요 - '보내신'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포스탈렌티'는 수동태 분사로 성령께서 보내심을 받았음을 나타낸다. '성령을 보낸 자'에 대해서 신약성경은 '하나님 아버지'(요 14:16,26; 갈 4:6)라고 나타내기도 하며 '예수 그리스도'(요 15:26; 16:7; 행 2:33)로 나타내기도 한다. 그러나 본절에서는 '성령'을 보낸 자에 대해서 특정한 자로 정하기는 어렵다(Michaels). 한편 앞서 언급된 예언자들이 메시아의 고난과 영광을 예언하여 전한 것을(11절) 본절에서는 '복음'과 동일시하고 있다. 구약 시대의 예언자들이 성령의 지시하심을 따라 말씀을 상고하여 메시야의 고난과 영광을 예언하였던 바와 같이 신약 시대에 복음을 전하는 자들도 성령을 힘입어 메시야의 고난과 영광 즉 복음을 그리스도인들에게 전하였다.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 '살펴보기를'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라큅사이'는 '자세히 주의하여 보다'라는 의미로 잘 보기 위해 노력하고 애쓰는 것을 나타낸다. 천사들은 본래 하나님의 계획을 전달하는 존재이기에 인간보다 훨씬 더 깊은 뜻을 알 수 있지만 구원의 계획은 너무도 오묘하여서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속 사역이 실현되어 하나님의 계획이 공개되고 선포될 때에야 비로소 깨닫는다. 그들은 예수의 초기 지상 생활을 지켜보았으며(딤전 3:16) 구속이 완성될 때에는 찬양으로 기뻐할 것이다(계 5:11-14, Blum). 한편 베드로는 10-12절의 논의를 통해 복음의 전달 과정을 세 단계로 기술하고 있다. (1) 선지자(10절). (2) 복음 전파자(12절). (3) 천사들(12절). 이러한 전달 과정을 거쳐 실현된 하나님의 오묘하신 구속 계획은 신실하게 성취되어 왔다(Lenski, Cranfield).
[헬라어 성경 강해 빌레몬서] 바울이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보냄(몬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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