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 사도는 베드로후서에서 주님께서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고 말합니다.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믿음이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주님께서 나를 부르시고 예정하시고 선택하셔서 구원의 은혜를 주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주님의 부름과 선택함을 믿어라(벧후 1:8-15)
8절 타우타 가르 휘민 휘파르콘타 카이 플레오나존타 우크 아르쿠스 우데 아카르푸스 카디스테신 에이스 텐 투 퀴리우 헤몬 이에수 크리스투 에피그노신
=====1: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 본문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이다. (1) 혹자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앞서 언급한 덕목들의 목적이요 부산물이라고 주장한다(Mayor, Reicke, Green, Spicq). (2) 혹자는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앞서 언급한 덕목들의 근원이라고 주장한다(Bigg, Kelly, Bauckham). 이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자신에 대한 지식을 통해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신의 성품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시며(3절) '알기에'라고 번역된 헬라어 '에피그노신'이 2절에서도 언급된 것으로 보아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그리스도인의 전 생활에 기본이 되는 구원 얻는 지식임을 가리키기 때문이다(Bauckham).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 '게으르지'(아르구스)와 '열매 없는'(아카르푸스)은 본서에서 동의어로 사용된다(Bauckham). 이 두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대부분 그리스도인의 신앙에 있어서 윤리적 노력과 관계되어 쓰였다. '게으름'은 '행함이 없는 믿음'(약 2:20)을, '열매 없음'은 윤리적 특성이 드러나지 않는 삶을 나타낸다(마 3:8;막 4:20;갈 5:22;골 1:10;약 3:18).
9절 호 가르 메 파레스틴 타우타 튀플로스 에스틴 뮈오파존 레덴 라본 투 카다리스무 톤 팔라이 아우투 하마르티온
=====1:9
이런 것이 없는 자는 소경이라 원시치 못하고 - 5-7절에서 언급한 덕목들을 갖추지 못한 자들에 대한 묘사이다. '소경'의 헬라어 '튀플로스'는 신약성경에서 진리 보기를 거절하거나 보지 못하는 자들을 은유적으로 표현할 때 사용되었다(마 15:14;23:16;눅 6:39;요 9:40,41;롬 2:19). 또한 '원시치 못하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뮈오파존'은 '근시'라는 의미로 본절에서는 '튀플로스'와 함께 결합하여 장님보다 훨씬 더 심각한 상태를 묘사하고 있다(Bauckham). 앞서 언급한 덕목들을 갖추지 못한 자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진실의 빛을 잃어버려서 영적 안목이 어두워진 자들이다(계 3:17, Bigg). 이들은 바로 앞에 놓여 있는 인간적인 탐욕에 눈이 어두워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한다.
그의 옛 죄를 깨끗케 하심을 잊었느니라 - 본절은 과거에 그리스도인들이 받았던 세례에 대한 언급이다. '옛'에 해당하는 헬라어 '팔라이'로 미루어 볼 때 베드로는 본절에서 과거에 행한 세례를 염두에 두고 있으며 죄가 청산된 것을 잊어버리고 과거로 되돌아가려는 자들을 전제로 언급하고 있다(Blum, Bigg). 또한 '깨끗하게 하심'의 헬라어 '투 카다리스무'도 역시 정결케 하는 세례를 가리킨다(행 22:16;고전 6:11;엡 5:26;딛 3:5). 본래 세례는 죄 용서와 더불어 이제까지의 죄된 생활을 시작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믿음을 세례에만 국한시킨 나머지 거룩한 삶을 추구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옛 죄악의 상태로 되돌아갈 위험이 있다(2:20). 이에 베드로는 죄악 된 삶으로 되돌아가려는 경향을 경고하면서 세례가 죄를 씻을 뿐만 아니라 더 이상 죄에 머물지 않고 성결한 삶을 살게 하는데 그 목적이 있음을 상기시킨다(Bauckham).
10절 디오 말론 아델포이 스푸다사테 베바이안 휘몬 텐 클레신 카이 에클로겐 포이에이스다이 타우타 가르 포이운테스 우 메 프타이세테 포테
=====1:10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 본절은 5절의 반복으로 부지런히 애쓰라는 권면이다. '굳게 하라'의 헬라어 '베바이안...포이에이스다이'(...에서 '베바이안'은 의사(意思)를 확인할 때 사용하는 법률 용어로 무엇을 '확실히 한다'는 의미이며, '포이에이스다이'는 중간태로서 수신자 스스로가 해야 하는 일임을 시사한다(Blum, Bauckham, Bigg). 한편 베드로는 그리스도인의 구원이 하나님의 '부르심'(벧전 1:15;2:9,21;3:9;5:10)과 '택하심'(벧전 1:2)에 관계되어 있음을 밝히고 있다(Richardson). 그런데 베드로가 본절에서 '부르심'을 먼저 언급한 것은 인간의 응답에 강조점을 두기 위함이다(Blum). 즉 복음에 합당한 윤리적 삶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리스도인은 은혜 안에서 이루어지는 도덕적인 노력을 통해서 거룩한 삶을 영위해야 하며 궁극적인 구원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Blum, Bauckham).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 - '실족'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타이세테'는 원래 말(馬)이 '디딤돌에서 미끄러지는 것'을 나타낸다. '프타이세테'에 대해서 혹자는 '범죄'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롬 11:11;약 2:10;3:2, Blum, Green). 그러나 본절의 '프타이세테'는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구원 얻지 못하는 것을 시사한다(유 24:Bigg, Richardson, Kelly, Lenski, Grundmann). 왜냐하면 다음 절에서 영원한 나라를 향해 걸어가는 노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Bauckham).
11절 후토스 가르 플루시오스 에피코레게데세타이 휘민 헤 에이소도스 에이스 텐 아이오니온 바실레이안 투 퀴리우 헤몬 카이 소테로스 이에수 크리스투
=====1:11
이같이 하면...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 '주시리라'의 헬라어 '에피코레게데세타이'는 7절에 언급된 '공급하라'와 같은 단어로, '넉넉히'(플루시오스)와 함께 결합되어 하나님께서 거룩한 관대함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기에 충분하도록 하실 것임을 시사한다(Bauckham). 비록 베드로가 앞절에서 궁극적인 구원을 얻는데 인간의 노력이 필요함을 역설하였으나 본절에서 또다시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고 있다(3절).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를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 묘사하지 않고 그리스도께 속한 것으로 진술한다(눅 1:33;계 11:15). 베드로가 이렇게 표현한 이유는 아마도 본 단락(3-11절)에서 언급된 기독론적 관심과 일치시키기 위함일 것이다(Bauckham). 이러한 그리스도의 나라는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신 것으로(눅 22:30) 하나님의 나라와 동일하며(마 13:41;16:28;눅 23:42;요 18:36) 미래에 주어질 새 하늘과 새 땅을(3:13) 가리킨다. 한편 '우리 주 곧 구주'의 헬라어 '투 퀴리우 헤몬 카이 소테로스'는 문자적으로 '우리 주이시며 구세주이신'이란 의미로 기독론적 칭호이다(2:20;3:2,18). 그리스도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구세주이실 뿐만 아니라 온 우주의 주(主)이시다.
12절 디오 우크 아멜레소 휘마스 아에이 휘포밈네스케인 페리 투톤 카이페르 에이도타스 카이 에스테리그메누스 엔 테 파루세 알레데이아
=====1:12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섰으나 - '진리'는 '복음'을 가리키는 것으로(갈 2:5,14;5:7;엡 1:13;골 1:5;살후 2:12,13;딤후 2:15;약 1:18;요이 1:4) 전반적인 사도적 가르침을 시사한다(Green, Blum, Bauckham). 한편 '섰으나'의 헬라어 '에스테리그메누스'는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형제를 굳게 하라'라고 권면할 때 사용하신 단어와 동일한 것으로(눅 22:32) 수신자들이 기독교 신앙 안에서 가르침을 받고 굳게 서있기 때문에 거짓된 가르침의 위험에 쉽게 넘어지지 않을 것임을 암시한다. 베드로는 본절에서 수신자들이 사도적 진리를 바탕으로 굳게 선 그리스도인들임을 인정하고 있다.
내가 항상 너희로 생각하게 하려 하노라 - 베드로는 수신자들이 이미 진리에 서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다시 권고하는 이유가 수신자들로 하여금 항상 진리를 상기하고 부지런히 애써서 진리 가운데 굳게 서있게 하기 위함임을 역설한다.
13절 디카이온 데 헤구마이 에프 호손 에이미 엔 투토 토 스케노마티 디에게이레인 휘마스 엔 휘포므네세이
=====1:13
내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 - '장막'의 헬라어 '스케노마티'는 문자적으로 고대 근동의 유목 민족들이 임시적인 거주지로 사용했던 '천막'을 가리킨다. 본절에서 이것은 '육체'를 가리키므로 본문은 '목숨이 살아 있을 때까지'를 의미한다. 이는 베드로가 자신의 죽음이 곧 다가올 것을 예감하였음을 암시한다(14절, Blum, Bauckham, Green).
14절 에이도스 호티 타키네 에스틴 헤 아포데시스 투 스케노마토스 무 카도스 카이 호 퀴리오스 헤몬 이에수스 크리스토스 에델로센 모이
=====1:1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같이 - 본절은 베드로가 자신의 죽음의 임박함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설명해주고 있다. 베드로가 그리스도에게서 받은 지시는 요 21:18을 가리킨다(Plumptre, Bigg Lumby, Green, Zahn, Bauckham, Lenski). 요 21:18은 예수께서 친히 베드로가 노년에 당할 순교에 대해서 예고하신 것으로 베드로는 요한이 복음서를 기록하기 이전에 이미 그 예고를 알고 있었으며(Robertson) 당시 초대 교회에서도 요 21:18의 예수 그리스도의 예고가 베드로의 순교에 대한 예언이라는 것을 대부분 광범위하게 알고 있었다(Bauckham). 따라서 요 21:18의 베드로 순교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예언은 그의 임박한 죽음에 대한 암시가 되며 본서의 수신자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었다.
이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 - 베드로는 그의 죽음이 가까워옴을 깨닫고 있었다. 여기서 '임박한'에 해당하는 헬라어 '타키네'는 베드로가 사용한 독특한 용어로써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2:1). (1) '곧'(사 59:7), '신속한'(약 1:19)을 의미한다(Bauckham). (2) '갑작스러운'을 의미한다(2:1, Green, Zahn, Plumptre). 이 두 가지 의미 중 어느 한 견해를 선택하기는 어려우나 두 가지 의미 모두가 베드로의 죽음의 절박함을 표현한 것으로 그의 순교의 임박함을 암시한다(Meyer, Bengel, Bigg).
15절 스푸다소 데 카이 헤카스토테 에케인 휘마스 메타 텐 에멘 엑소돈 텐 투톤 므네멘 포이에이스다이
=====1:15
내가 힘써 너희로 하여금 나의 떠난 후에라도 필요할 때는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 '이런 것'은 베드로가 수신자들에게 행한 '교훈'이나 '권면'을 가리키는 것으로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혹자는 '이런 것'이 미래 즉 베드로의 죽음 후에 주어진 권면을 가리키며, 마가가 베드로의 해석자로서 베드로의 설교를 근거로 마가복음을 기록하였기 때문에 '이런 것'은 '마가복음'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Irenaeus, Plumptre, Bigg, Mayor, Green). (2) 혹자는 '이런 것'이 본서 자체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Knopf, Chaine, Windisch, Kelly, Grundmann).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본서 내에서 마가복음과 상관관계를 맺는 암시가 전혀 나타나지 않으며, 본서 전체와 12-15절은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Bauckham). 따라서 베드로는 본서에서 언급한 모든 교훈과 권면이 자신의 죽음 후에도 보존될 뿐만 아니라 수신자들에게 계속적으로 상기되어서 수신자들로 하여금 진리 안에 굳게 설 수 있게 될 것임을 확신하였다고 볼 수 있다. 한편 '나의 떠난 후'는 '나의 죽음 후'를 의미한다. 여기서 '떠난'의 헬라어 '엑소돈'은 영혼이 육체로부터 분리되는 것을 의미하며 은유적 표현으로 '죽음', '임종'을 시사한다(눅 9:31).
[헬라어 성경 강해 베드로전서] 믿음으로 받는 영혼 구원(벧전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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