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말씀 강해

[잠언 6장 성경 좋은 말씀] 보증과 담보에 대한 경계(잠 6:1-35)

엘벧엘 2024. 4. 17.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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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6장 성경 좋은 말씀은 보증과 담보에 대한 경계에 대해서 하나님이 말씀합니다. 성도는 교회에서 보증을 서거나 담보를 걸면 안 됩니다. 이것 때문에 교회에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신앙에도 큰 문제가 생겨서 교회를 떠나거나 신앙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빚보증을 서지 말고 빚 담보를 서지 말아야 합니다.

 

보증과 담보에 대한 경계(잠 6:1-35)

 

. 경솔한 보증에 대한 경고 6:1-5

저 세상에서 필요한 하나님의 지혜를 가르쳐 줄뿐만 아니라 신중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도록 이 세상에서 필요한 인간적인 분별력도 가르쳐 주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가진 우수성이다. 보증하지 말라는 것은 훌륭한 원칙이다. 왜냐하면 보증을 서는 일로 인해서 알거지가 되고 파탄을 맞는 가정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보증서는 것을 올무로 생각해서 이를 거절해야 한다(1,2). 형편을 잘 알고 재정적 능력을 확신할 수 있는 친구라 하더라도 그를 위하여 담보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다구나 재정적 능력이 있는지 또한 정직한지 알지 못하는 타인을 위해서 보증을 서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감언이설에 넘어갔거나 언젠가는 그도 같은 친절을 베풀어 주겠지 하는 생각에서 경솔하게 약속을 하였다면,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다'는 것을 알아라." 이같은 올무에 빠졌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재빨리 빠져나오는 것이 상책이다(3-5).

당장은 잠잠하다. 즉 거기에 대해서 아무런 말이 없다. 빚을 갚으라는 성화도 없다. 당사자는 "염려말게 내가 해결할테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보증의 책임은 여전하다. 이자는 늘어나고 채권자는 언제 찾아올지 모른다. 그 채권자는 성질이 급하고 모진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네 스스로 구원하라. 채권자가 빚을 포기하거나 빚진 장본인이 또 다른 보증을 마련한 뒤에야 마음을 놓아라. 네가 상대편과 합의하고 네가 선 보증으로 인해서 너와 네 식구가 피해를 입지 않도록 타협할 때까지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여라."

그러나 우리는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다른 사람을 위해서 보증서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합법적인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때로 그 일은 정의로운 일이 될 수도 있으며 자선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바울은 오네시모를 위해 보증인이 되었었다(1:19). 우리가 알고 있는 정직한 젊은이를 위해서 사업을 도와줄 수도 있고 그를 위해서 말을 몇 마디 해줌으로써 그에게 신용을 얻어 줄 수도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에게는 전혀 손해가 되지 않고 그에게는 큰 친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될 수 있는 대로 빚을 멀리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다. 왜냐하면 빚은 그 사람에게 의무를 지우고 세상에 매이게 하며 피해를 주거나 입히게 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꾸는 자는 꾸어 주는 자의종이며 스스로 세상의 종이 된다. 자기가 갚아 줄 수 있고 갚아 줄 마음이 있으며 자기 가족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고 갚아 줄 수 있는 범위에서만 보증을 서야 한다.

. 게으름에 대한 책망 6:6-11

솔로몬은 여기서 게으른 자 즉 안일을 좋아하고, 게으름 가운데 살며 아무 것에도 관심이 없고 특히 신앙에 대해서 무관심한 자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1) 게으른 자를 가르치는 방법으로(6-8). 솔로몬은 그를 학교로 보낸다. 왜냐하면 게으른 자들은 훈련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게으른 자들은 그에게 와서 배우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에(조는 학생들은 철저한 선생들을 결코 좋아하지 않는다)가능한 한 가장 쉬운 학교로 그들을 보낸다. "개미에게로 가라, 벌에게로 가라"(70인역). 사람은 세상의 어떤 동물보다도 지혜롭고 총명하게 지음을 받았다. 그런데 지금은 타락하여 한낱 보잘것없는 곤충에게 지혜를 배우며 수치를 당하게 되었다.

하등 동물들이 가지고 있는 놀라운 슬기를 살펴볼 때 그것을 교훈으로 받아들이며, 평범한 일들을 영적으로 해석함으로써 하나님의 일들을 쉽게 이해하고 매일 그것과 접할 수 있다. 그 하는 것을 보고. 게으른 자는 자신을 잘 살피지 않기 때문에 게으른 것이다. 특히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는 것을 배우라. 나중을 대비해서 예비하여 다 먹어 버리지 말고 거둘 때에 쓸 때를 대비해서 쌓아두라. 겨울을 대비해서 쌓아두며 언제 닥칠지 모르는 환난과 기근을 대비하여 그리고 노년을 대비하여 저축해 두어야 한다. 영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더욱 그리해야 한다. 충분한 은혜를 누리는 때에 은혜가 마를 때를 대비하며, 살아 있는 동안에 죽음을 대비하며, 시간 속에서 영원을 대비하라.

날씨가 더운 여름에도 개미는 부지런히 양식을 모아 쌓아두며 여름에는 노래하고 놀기만 하다가 겨울이 오면 죽어 버리는 베짱이같이 안일에 빠지거나 쾌락을 즐기지 않는다. 개미는 서로 돕는다. 낟알이 너무 커서 집으로 가져오기 힘이 들며 다른 개미들이 가서 도와준다. 유리한 시기를 잘 이용하는 것이 바로 지혜이다. 빛이 있을 때 행하라.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간역자도 없으며 주권자도 없지만 본능적으로 이렇게 한다. 우리에게는 부모, 선생, 목회자, 관리들이 있어서 우리에게 마땅히 행할 바를 가르쳐 주며 지시해 준다.

(2) 게으른 자를 책망한다(9-11).

1) 솔로몬은 게으른 자에게 충고한다.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눕겠느냐. "언제나 일어날 생각을 하려느냐?" 인간으로서 받을 특별한 소명과 신자로서 받은 일반적인 소명을 행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게으른 자들에게 깨우쳐 주어야 한다. "언제까지 시간을 낭비하며 언제나 시간을 아끼는 자가 되겠느냐? 언제까지 안일을 꾀하려느냐? 어느 때가 되어야 자기를 부인하고 수고하기를 배우겠느냐? 언제까지 머뭇거리며 기회를 소홀히 가려느냐? 어느 때에 분발해서 해야만 할 일 즉 지금 하지 않으면 영원히 하지 못할 그 일을 행하겠느냐?"

2) 게으른 자가 늘어놓는 변명에 대해서 말한다. 게으른 자는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며 어떻게 해서든 좀 더 자고 좀 더 졸고 싶어 한다. 게으른 자는 따뜻한 이불속에 누워 있는 것을 좋아하며 일어나는 것, 특히 일하려고 일어난다는 것은 생각하기조차 싫어한다. 그는 아주 조금만 더 자고는 일어나 일하러 가겠다고 자기 자신에게, 그리고 주인에게 약속한다.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자신을 기만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한번 게으르기 시작하면 끝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해서 하루 하루 연기하다가 아주 중요한 일을 결국은 못하게 된다. 좀더 자는 것은 결국 영원히 자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3) 게으름의 치명적인 결과에 대해서 경고한다(11). 게으른 자에게는 빈궁과 곤핍이 틀림없이 찾아온다. 자기 일을 아무렇게나 내버려 두는 자는 곧 그 일이 엉망이 되며, 자기의 금화가 한푼짜리 동정으로 바뀌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데 게으른 자들에게는 영적인 가난이 임하게 된다. 패트릭 주교가 말한 것처럼 그들은 게으름으로 인해 강도에게 털린 자처럼 알몸만 남게 된다.

. 일곱 가지 악행 6:12-19

(1) 게을러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들이 비난을 받는다면 악을 행하며 무슨 악이든지 행하려고 노리는 자들이 비난을 받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여기서 나오는 "불량한 자"는 히브리어의 "벨리알의 사람"과 같다. 여기서 "벨리알의 사람"을 묘사하고 있다. 그는 악을 행하는 것, 특히 입으로 악을 행하는 것을 자기의 업으로 삼는 악한 자이다. 즉 그는 궤휼한 입(12)을 가지고 거짓말하고 일을 왜곡시킴으로써 자기의 일을 이루는 자이다. 그에게는 뱀과 같은 간교함이 있어서 고도의 수단 즉 눈짓으로, 발과 손가락으로(13), 자기의 뜻한 바를 이룬다.

그가 악의 도구로 이용하는 사람들은 그가 눈짓만 해도, 발 한 번만 구르고, 손만 한 번 까딱해도 그 뜻을 알아차린다. 그는 의심받지 않기 위해서 지시를 내려 악을 행한다. 그가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은 야망이나 탐욕이라기보다 오히려 패역과 악의요 악한 본성이다. 그가 노리는 것은 자신의 부나 출세라기보다 오히려 주위 사람들을 해치는 것이다. 그 재앙이...임한즉...패망하리라(15). 해를 도모하는 자들은 자신이 해를 입게 된다. 당장에 패망하게 되어 온갖 사악한 계교로 사람들을 급작스레 올무에 빠지게 한 그 자신이 스스로 형벌당할 것이다.

(2) 하나님께서 특히 싫어하시는 일들은 대개 다 벨리알의 사람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죄를 미워하신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특히 싫어하시는 것들이 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죄악은 모두 이웃에게 해를 입히는 죄악이다.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들은 우리 자신도 미워해야 한다.

1) 거만해서 다른 사람들을 경멸하는 것 즉 교만 : 교만은 가장 큰 죄이다. 왜냐하면 많은 경우 죄의 밑바닥에는 교만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얼굴 표정으로 자신은 과대 평가하고 다른 사람들은 과소 평가하는 것을 알 수 있을 때 하나님은 특히 그것을 미워하신다.

2) 허위, 사기, 위선 : 교만한 눈 다음으로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은 거짓된 혀이다. 진실보다 신성한 것은 없으며 대화에 있어서 진실을 말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3) 잔인 : 마귀는 처음부터 거짓말쟁이요 살인자이다(8:44). 마찬가지로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도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데 왜냐하면 저희가 이로써 악마의 형상을 가지며 악마를 섬기게 되기 때문이다.

4) 죄악을 꾸며내는 데 있어서의 간교함 즉 악한 계교를 꾸미는 마음과 머리 : 죄의 수법이 교묘하면 교묘할수록 하나님은 더더욱 미워하신다.

5) 죄악을 행하는 데 열심을 내는 것 즉 발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 : 악인들의 죄악을 행하는 데 열심인 것을 보면 선을 행하는 데 미지근한 우리가 부끄러울 정도이다.

6) 거짓 증거 : 고의로 거짓 증거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모독하며 이웃을 해치는 것은 없다.

7) 친척과 이웃을 이간하고 온갖 악한 수단을 동원해서 그들 사이의 애정을 소원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감정을 격분시켜서 서로 원수가 되게 하는 것 : 사랑과 화평의 하나님께서는 형제들 사이에 불화를 심는 자를 미워하신다.

. 음란한 죄에 대한 경고 6:20-35

(1) 하나님의 말씀을 중시하며 모든 행동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도자를 삼으라는 일반적인 권면이 나타난다.

1) 하나님의 말씀을 빛으로(23), 법으로(20,23) 여기라. 하나님의 말씀은 빛이며 인간의 오성은 그 빛에 복종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눈으로 길을 찾을 수 있게 해주고 발걸음을 인도해 주는 등불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고 확실한 진리를 제시해 준다. 성경의 빛은 확실한 빛이며, 그 앞에서 의지를 복종시켜야만 하는 법이다.

2) 하나님의 말씀을 아비의 명령, 어미의 법으로 삼으로(20).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명령이자 하나님의 법이다. 부모들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눈을 돌리게 하였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순종하는 데서 우리가 성장하게 하였다. 부모의 말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그 말씀을 시험해 보고 그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으므로 믿게 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부모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추천해 주었다는 데서 부모에게 은혜를 입은 것이다. 부모가 우리에게 한 훈계와 권고와 명령은 하나님의 말씀에 이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모의 훈계와 권고와 명령에 꼭 따라야 하는 것이다.

3) 하나님의 말씀과 그 말씀으로부터 주신 부모의 선한 교훈을 그대로 실천하라. "네 아비의 명령을 지키며 그것을 계속하고 결코 그것을 버리지 말라." 그것을 절대로 버리지 말라. "다시 말해서 그것을 네 손목에 맬 뿐만 아니라(6:8), 항상 네 마음에 새기라." 손목에 매단 성구함은 마음속에 가끔씩 경건한 생각과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이상의 가치는 없다. 그것을...네 목에 매라. 그 말씀들이 목을 지키게 해서 금단의 열매를 삼키거나 악한 말이 목을 통해 나오지 못하게 하라. 그것을 항상 마음속에 시기면 그 말씀이 명령하는 대로 우리는 따르게 된다. "그것이 네가 다닐 때에 너를 인도하며(22), 선한 길로 인도하리라.

네가 옆으로 빗나가려고 하면 '여기가 길이니 이리로 가라'고 네게 말해 줄 것이라. 그것을 네 규칙으로 삼아라. 그러면 성령이 너를 인도하시리니 성령이 너를 경고하고 붙들어 주시리라." 그것이...너를 보호하며. "네가 잘 될 때에 흑암의 권세에 노출되더라도 그것이 너를 보호하리니 너는 안전할 것이요 자신도 안전함을 알게 될 것이라." 그것은 우리에게 친구가 되어줄 것이다. "밤중에 잠이 깨어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모를 때 즐거운 명상을 통하여 너로 더불어 말할 것이라. 아침에 깨어서 하루의 일과를 궁리할 때도 그것에 대하여 너로 더불어 말할 것이며 너를 도와서 가장 좋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라"(1:2).

(2) 음란한 죄에 대한 구체적인 경고가 있다.

1) 이 죄악이 얼마나 번성해 있는가를 살펴본다면 이 죄악에 대해서 충고를 계속하는 데 대해서 별로 의아해하지 않을 것이다. "훈계의 책망은 생명의 길이니라. 왜냐하면 훈계의 책망은 너로 반드시 사망에 이르게 할 악과 계집에게서 지키고, 나를 사랑하는 척하면서 너를 파멸시키려 하는 이방 계집의 혀로 호리는 말에 빠지지 않게 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라." 이 죄악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다(25). 그 아름다운 색을 탐하지 말며. "아니, 마음으로도 말라. 마음속으로 그러했다면 너는 이미 간음한 것이라. 그 매력적인 얼굴에 대해서 말하지 말며, 그 눈꺼풀에 홀리지 말라. 그의 표정은 화살이요 환전이라. 소위 그것을 사랑의 포로라고 하지만 사실은 죽으러 끌려가는 포로요 애굽의 노예보다 못한 것이라."

2) 이러한 경고를 강조하기 위해 솔로몬은 여러 가지로 논증하고 있다. 사람을 가난하게 하며, 재산을 탕진하게 하고, 알거지로 만드는 것이 바로 이 죄악이다(26). 음녀로 인하여 사람이 한 조각 떡만 남게 됨이여. 이 죄악은 생명을 위협하며, 사람을 죽게 한다. 음란한 계집은 귀한 생명을 사냥함이니라. 들릴라가 삼손의 생명을 노렸듯이 그들은 의도적으로 귀한 생명을 노린다. 이 죄악은 양심을 죄짓게 한다. 음심을 품고 이웃의 아내를 만지는 자는 결코 무사하지 않을 것이다(29). 아주 대담한 죄인은 말하기를 "내가 이 죄를 범하고 심판을 피해 보리라"한다. 하지만 그 말은 "불을 품에 품고도 옷을 태우지 않겠다"는 말과 같다.

이 죄악은 도둑질보다 훨씬 수치스럽다(30-33). 나단이 다윗에게 간음의 악함을 깨우쳐 주고자 했을 때 다윗이 보기에도 사형에 처해야 마땅한 아주 악한 강도질을 비유해서 했다(삼하 12:5). 그때 나단은 다윗의 죄가 그보다 훨씬 더 악하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이 죄악은 인간의 이성에 비추어 보아서도 더욱 비난받을 만하다. 왜냐하면 도둑처럼 배가 고파서 그랬다고 변명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녀와 간음하는 자는 무지한 자'요 형편없는 바보로 불릴 만하다. 간음을 행하면 자기 명성을 손실하게 되고 자기 가문에 능욕을 가져오게 된다. 회개하면 그 죄는 사라지지만 그렇더라도 그 죄악의 부끄러움은 영영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아에게 행한 다윗의 죄는 다윗 자신에게도 영원한 치욕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여호와의 대적들이 여호와의 성호를 참람케 하는 기회도 주었던 것이다. 이웃의 아내를 만지고 친하게 지내는 자도 그녀의 남편에게 질투의 대상이 되거니와 그 아내를 범하는 자는 말할 것도 없다. 아무리 비밀로 한다 할지라도 발각되어 심한 질투의 대상이 될 것이다(5:12).

[이사야 은혜 설교말씀] 고레스 왕의 열국 정복과 이스라엘 구원 약속(사 4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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