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2장에서는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예수님을 믿을 때 사람이 의롭게 된다. 행위가 아님을 우리가 알아야 한다. 율법을 지켜서 의롭게 된다고 가르친다면 성경적이지 않다.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아난다.
율법의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의롭게 됨(갈 2:11-16)
성 경: [갈2:11] 호테 데 엘덴 페트로스 에이스 안티오케이안 카타 프로소폰 아우토 안테스텐 호티 카테그노스메노스 엔
주제1: [바울의 사도권과 이신득의]
주제2: [게바를 책망함]
내가 저를 면책하였노라 - 여기서 베드로의 행위가 명백하게 잘못된 것으로 드러나는데, 이는 다음과 같은 사실로 더욱 뚜렷해진다. (1) '면책하였노라'의 헬라어 '안테스텐'이 문자적으로 '대항하다', '저항하다' 혹은 '반발하다'라는 의미로 베드로의 행위가 '복음의 진리'를 훼손(毁損)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에 있었음을 시사한다. (2) '안텐스텐'의 시제가 부정과거로서 바울이 베드로를 성공적으로 책망했으며 베드로는 바울의 책망에 대항하지 못하고 굴복했다는 것을 시사해 준다(Lenski). (3) 더욱이 바울은 베드로를 개인적으로 아니고 공개적으로 면책하며 저지했다는 사실로 베드로의 잘못의 심각성이 더해간다(Hendriksen). 이와 같이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와는 달리 안디옥에서는 베드로보다 높은 위치에 서서 성도들을 대하는 것같이 느껴지는데, 이는 베드로의 잘못이 너무도 명백하여 견책거리가 되기 때문이다(Robertson).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1) 바울이, 신자라면 누구나 소유하고 있는 완전한 동등권을 항상 공격하며 반대하는 유대인들의 좁고 치우쳐 있는 유대 중심적 신앙관에 대항하고 있다는 사실이며(Huxtable) (2) 예루살렘 교회의 그 어떠한 권세자도 하나님 앞에서 잘못을 저지를 수 있으며 나아가 그것에 대하여 책망받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Cole).
성 경: [갈2:12] 프로 투 가르 엘데인 티나스 아포 이아코부 메타 톤 에드논 쉬네스디엔 호테 데 엘돈 휘페스텔렌 카이 아포리젠 헤아우톤 포부메노스 투스 에크 페리토메스
주제1: [바울의 사도권과 이신득의]
주제2: [게바를 책망함]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 본 구절은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일반적으로 행하던 식탁 교제나 성찬을 가리키는 것 같다. 이것이 정식 예배였는지 아니면 비공식적인 그리스도인의 모임이었는지 확실하지는 않다. 본절에서 초대교회 당시 유대 출신의 그리스도인들이 이방 출신 그리스도인과의 식사를 꺼린 사실이 나와있는데 이는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1) 유대인들은 레 11장에 있는 정함과 부정함에 관한 규례를 철저히 지켜왔고 죽음을 각오하면서까지 준수하려 하였다(민 25장, 31장;단 1:8;토비트 1:1-12;마카베오상 1:62). 이들은 그리스도인이 되고 나서도 그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게다가 이방인들이 먹는 음식 중에는 레 11장의 정결(精潔) 규례에 위배되는 것이 있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따라서 유대 출신의 그리스도인들은 이방 출신의 그리스도인들과 식사를 함께 하지 않으려 했다. (2)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들을 부연하고 설명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제한 규정들 때문이다. 이러한 규정들은 그 종류가 대단히 많고 다양했는데 초대교회 당시에는 하나님의 율법 못지않게 존중된 것으로 보인다. 그 실례로 장로들의 유전에는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씻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는데, 이는 단순히 위생상 이유 때문에서가 아니고 이방 사람들과 접촉하여 부정하게 된 손으로 음식을 먹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마 15;1-20;막 7:1-23). 위와 같은 이유로 오랫동안 유대인들의 의식 속에는 이방인에 대한 배타심이 굳어져왔다. 이러한 것은 사마리아인도 인식하고 있는 일반적인 사실이었다.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할 때 그 여인은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라고 대답한다(요 4:7-9). 따라서 유대인이 이방인과 함께 식사를 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을 뿐 아니라 대단히 죄악 된 행동으로 간주되기까지 했다(Hendriksen).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구약의 율법이 완성되었다. 이러한 사실에 근거하여 유대인과 이방인 그리스도인이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은 실제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이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것이며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행동이며 삶이다. 예루살렘 공의회는 이러한 사실을 인식하고 늘어나는 이방 그리스도인에 대해 몇 가지 제한 사항을 제시하고 다른 어떠한 율법의 행위로도 짐을 지우지 않는다는 결의를 한 바 있다(행 15:14-21).
저희가 오매...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 베드로가 이방 그리스도인과 함께 식사하는 것이 정당함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예루살렘에서 사람이 오자 이방인들과 식사를 하지 않았다. 이러한 그의 행동의 동기는 예루살렘에서의 자신의 위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까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Hendriksen). 또한 베드로가 이방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은 사랑이나 자기 확신에 의해 나온 행동이 아니라 거짓과 위선의 행동이었기 때문에 바울은 베드로의 외식적인 행동을 책망했다.
성 경: [갈2:13] 카이 쉬뉘페크리데산 아우토 카이 호이 로이포이 이우다이오이 호스테 카이 바르나바스 쉬나페크데 아우톤 테 휘포크리세이
주제1: [바울의 사도권과 이신득의]
주제2: [게바를 책망함]
남은 유대인들도...외식하므로 - 주님의 가장 가까운 제자들 중 한 사람이요 공적인 위치에 있었던 베드로가 한 외식은 유대교의 율법주의와 복음의 자유가 첨예(尖銳)하게 대립되고 있는 초대교회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베드로의 이러한 실수는 단순히 개인적인 외식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1) 다른 사람들 심지어 바나바같은 지도자까지도 외식적인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는 근거가 되며 (2) 예루살렘 공의회(A.D.49)의 율법 무용론에 대한 결정을 무효화시키는 것이고 (3) 결과적으로는 율법주의에 굴복한다는 위미를 지닌다. 여기서 우리는 공적인 위치에 있는 지도자의 행동의 중요성과 함께 한 사람의 외식적인 행동은 중요성과 함께 한 사람의 외식적인 행동은 다른 사람들에게까지도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다(막 7:1-23).
성 경: [갈2:14] 알르 호테 에이돈 호티 우크 오르도포뒤신 프로스 텐 알레데이안 투 유앙겔리우 에이폰 토 페트로 엠프로스덴 판톤 에이 쉬 이우다이오스 휘파르콘 에드니코스 제스 카이 우크 이우다이코스 티 타 에드네 아낭카제이스 이우다이제인
주제1: [바울의 사도권과 이신득의]
주제2: [게바를 책망함]
모든 자 앞에서 - 바울은 베드로가 저지른 실수에 대해 공개적으로 책망을 했다. 이는 (1) 베드로뿐만 아니라 여러 유대 출신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러한 잘못을 했으며(2) 공적인 잘못은 사적으로 고칠 수 없기 때문이고(Lenski) (3) 그러한 실수를 베드로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유대 출신의 그리스도인들이 범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Hendriksen).
성 경: [갈2:15] 헤메이스 퓌세이 이우다이오이 카이 우크 엑스 에드논 하마르폴로이
주제1: [바울의 사도권과 이신득의]
주제2: [이신 득의의 원리]
우리는 본래 유대인이요 - 본절에서 바울이 '본래 유대인'임을 밝히는 것은 그도 태어나면서부터 유대인의 종교적 특권을 지녔음을 보여주어 다른 유대인들로 하여금 자신에 대한 반감을 줄이게 하고자 하는 의도로 보인다(Cole).
이방 죄인이 아니로되 - 이방인들에게 '죄인'(하마르톨로이)이라고 말하는 것은 윤리적인 판단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유대인의 독선에서 나오는 이방인에 대한 통상적인 언급이었다. 실제로 유대인들은 선택받은 백성으로서 특권을 누리고 있었지만 본문에서 바울은 그 특권을 자랑하거나 또는 이방인들을 조소하기 위해 '죄인'이란 말을 사용한 것이 아니다. 비록 바울이 유대교 내의 용어들을 사용하여 '이방 죄인'으로 표현하였지만 이 말속에는 매우 반어적(反語的)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즉, 당시 유대인들에 의해 죄인으로 간주된 이방인들에게 바울이 복음을 전하고 있었던 사실은 스스로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이방인들을 하찮게 여기며 조금도 가까이하지 않았던 유대인들의 독선적이고 교만한 태도와 극명하게 대조되는 것이다(Cole).
성 경: [갈2:16] 에이도테스 호티 우 디카이우타이 안드로포스 엑스 에르곤 노무 에안 메 디아 피스테오스 이에수 크리스투 카이 헤메이스 에이스 크리스톤 이에순 에피스튜사멘 히나 디카이오도멘 에크 피스테오스 크리스투 카이 우크 엑스 에르곤 노무 디오티 우 디카이오데세타이 엑스 에르곤 노무 파사 사르크스
주제1: [바울의 사도권과 이신득의]
주제2: [이신 득의의 원리]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 본절에는 법정 용어인 '디카이오스'('의로운')에서 파생된 말이 세 번 반복되고 있다. '의'는 하나님의 속성에 속하는 것이므로 그 근원은 인간에게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있다. 본절에서도 이 용어가 수동태로 기록되어 있는 것은 인간 스스로의 능동적인 노력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울이 말한 '의롭게 된다'는 것은 '의롭다고 선언한다'는 뜻이지 '의롭게 만든다'는 뜻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죄를 범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의로움에 이를 수가 없다(롬 3:20). 그러나 의의 주권자이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를 믿는 자들을 의롭다고 인정하시는 길을 열어 주셨다.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인정하시는 것은 인간의 윤리에 따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정적인 선언이며 신적 표준에서 발생하는 하나님의 행위이다.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 본서에서 처음 나타나는 '율법'에 해당하는 헬라어 '노모스'는 바울 서신 중 특히 로마서와 본서에 많이 등장하는데 '의'(디카이오쉬네), '행위'(에르곤) 등과 함께 복음의 핵심을 설명할 때마다 '믿음'(피스티스)과 관련되는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본절에서 관사 없이 사용된 '노모스'는 모세의 율법을 지시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선한 행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고자 하는 인간들이 '자기 의'를 위해 구축한 규범들을 가리킨다. 그것은 유대주의 사회가 만들어낸 거짓된 규범들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규범으로 하나님의 의를 소유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 인간의 믿음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의롭다고 선언하시게 되는 수단일 뿐 절대적인 자격이나 요건이 되지 못한다. 단지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들을 의롭다고 여겨주시는 것이다(롬 5:18,19). 죄악 된 인간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만이 인간들을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게 할 수 있으며 이를 신뢰하는 것이 구원에 이르게 하는 믿음이며 이러한 믿음은 생명력이 있어 신자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역동적(力動的)인 삶을 살도록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유대주의자들은 그 믿음에다가 할례와 같은 율법적이요 외적인 조건을 더 하려고 하였다.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 본절은 시 143:2(LXX, 142:2)의 인용이며 아울러 롬 3:20 내용과 병행을 이룬다. 아래의 도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시편의 '파스존'('모든 생명') 대신에 로마서에서는 '파사 사륵스'('모든 육체')를 사용하였고, 로마서와 본절에서는 시편에 없는 '율법의 행위'를 부가(附加)시키고 있다. 이것은 사람이 자기 스스로의 노력으로는 결단코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성경지명 원어설교 여호수아 말씀] 그술롯 Chesulloth(수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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