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3장에서는 율법주의에 빠진 갈라디아 교인을 향하여 바울이 책망하고 있다. 복음을 전해주었는데 율법에 빠져 거짓 교사를 따르기 때문이다. 성도가 거짓 복음에 빠지면 율법주의에 빠지게 된다.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구원받아야 한다. 행위로는 절대 구원받을 수 없다.
율법주의에 빠진 갈라디아 교회(갈 3:1-5)
성 경: [갈3:1] 오 아노에토이 갈라타이 티스 휘마스 에바스카넨 테 알레데이아 메 페이데스다이 호이스 카트 오프달무스 이에수스 크리스토스 프로에그라페 엔 휘민 에스타우로메노스
주제1: [율법과 복음]
주제2: [성령과 성경의 증거]
어리석도다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노에토이'는 돌이킬 수 없는 죄에 대해 책망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죄를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서도 그 능력을 사용하지 않는 것을 질책하는 것이다(롬 1:14;딤전 6:9;딛 3:3). 본절과 3절에서 두 번에 걸쳐 사용되는 이 단어는 매우 도전적이고 통렬한 어투로 진술되고 있다. 바울은 앞으로 전개될 결론에 대하여 보다 준엄하고 냉정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이...밝히 보이거늘 - '밝히 보이거늘'의 헬라어 '프로에그라페'는 '공적 선언으로 발표하다' '미리 기록하다' 등의 뜻으로 부정 관계형이다. 이는 이미 과거에 편지를 통해서나 직접 방문하여 복음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음을 보여준다. 바울은 자신이 처음 갈라디아를 방문했을 때 선포하였던 복음의 진리들을 상기시키면서 그때에 그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선명하게 전파하였음을 강조한다. 그 의미는 너무나 선명하여 마치 공공 게시판이나 그림과 같이 육안으로 볼 수 있게끔 제시했다는 뜻이다. 특히 바울은 본절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에스타우로메노스)를 분사 완료형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그 의미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사건이 과거에 이미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것이 '밝히 보인다'라고 하는 것은 그 십자가의 공효(功效)가 여전히 지속적으로 적용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전 2:2,10). 그 효과의 지속성은 갈라디아 교인들 뿐만 아니라 오늘날 성도들을 포함하여 복음의 핵심을 듣고 믿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작용한다.
누가 너희를 꾀더냐 - '꾀더냐'의 헬라어 '에바스카넨'은 '거짓된 칭찬이나 음흉한 눈으로 악을 가져오다' 또는 '악한 술책으로 타락시키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말로써 신약에서는 본절에서만 사용되었다. 바울은 지금 갈라디아 교인들의 마음을 어지럽게 한 거짓 교사들이 누구냐 하는 것을 문제 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선명한 복음의 핵심을 잃어버릴 수 있느냐를 묻고 있는 것이다. 한편 '에바스카넨'은 '시기하다'는 뜻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즉 유대인들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유를 부러워하여 '너희를 시기하느냐'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전체적인 문맥이 의도하는 목적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 같다(Cole).
성 경: [갈3:2] 투토 모논 델로 마데인 아프 휘몬 엑스 에르곤 노무 토 프뉴마 엘라베테 에 엑스 아코에스 피스테오스
주제1: [율법과 복음]
주제2: [성령과 성경의 증거]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 '율법'의 헬라어 '노모스'는 구원에 이르는 수단으로서의 '믿음'과 상대되는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율법은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 선생(24절)으로서의 역할을 할 뿐이지만 갈라디아의 율법주의자들은 오히려 율법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율법의 행위를 강조하였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라는 양자택일의 문제를 던진다. 이것은 곧 율법을 따르는 자들에게는 들음이 요구된다는 점을 암시한다. 여기서 '들음'은 십자가와 부활의 역사적 사건에 대한 반응이다. 이와 관련하여 바울은 로마서에서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롬 10:14-17). 또한 베드로는 믿음이 들음에서 난다는 것을 주장하며 전파하는 자의 소명을 강조한 바 있다(행 15:7). '들음'은 전파하는 자와 성령의 사역으로 되는 것이기에 불완전한 인간이 행하는 행함과 족히 비교할 수 없는 은혜의 방편이다.
성 경: [갈3:3] 후토스 아노에토이 에스테 에나륵사메노이 프뉴마티 뉜 사르키 에피텔레이스데
주제1: [율법과 복음]
주제2: [성령과 성경의 증거]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육체로 마치겠느냐 - '성령'과 '육체'가 또 하나의 상대적 개념으로 등장한다. '육체'(사륵스)는 본서에서 크게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되었다. (1) 할례를 자랑으로 여기는 자들이 내어 보이는 인간의 신체를 가리킬 때 사용되었으며(6:13) (2) 본절에서와 같이 성령의 하시는 일과 대조를 이루는 인간적인 삶의 방식을 상징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본절에서 바울이 의도하는 바는 두 번째 의미로서 육적인 자아(自我)를 십자가에 못 박은 성도가(2:20) 어떻게 다시 그 육체적 자아로 돌아갈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 생명을 얻은 성도는 성숙한 신앙의 열매(5:22, 23)를 맺기 위해 부단히 정진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마땅하며 다시는 율법의 종으로 돌아갈 수 없다(Howard).
성 경: [갈3:4] 토사우타 에파데테 에이케 에이 게 카이 에이케
주제1: [율법과 복음]
주제2: [성령과 성경의 증거]
괴로움을 - 헬라어 '에파데테'는 '파스코'의 부정 과거 형태이며 '파스코'는 '선한 또는 악한 경험을 하다'라는 뜻이다. 개역 성경은 '악한 경험을 했다'는 뜻으로 번역하였으나 NEB는 '영적인 놀라운 일' 즉 영적인 축복들을 의미하는 '선한 경험'으로 번역하였다.'파스코'가 성경에서 주로 '고난당하다', '괴로움을 받다'(마 27:19;막 9:12;눅 22:15;24:46;고전 12:26;빌 1:29;히 2:18;9:26)의 의미로 사용되나, 본절에서 선한 영적 경험으로 사용되었다는 주장도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 악한 의미에서의 괴로운 경험과 선한 의미에서의 영적 경험이라 해석하는 두 견해를 각각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악한 경험, 즉 박해의 의미로 받아들이는 자들은 본문이 바울과 바나바가 남갈라디아 지방에서 교회를 세울 때에 받았던 고난을(행 13:50;14:2, 5, 19, 22 등) 의미하는 것이라고 받아들인다(Lenski, Robertson). 비록 본절의 박해가 남갈라디아에서의 박해(행 14장)를 의미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바울은 지금 유대주의자들로부터 받았던 모든 박해를 회상하고 있다는 것이다(Cole). (2) 축복된 영적 경험으로 해석하는 자들은 '너희가 그렇게 풍성한 영적 축복들을 받았는데 그것을 헛되게 하려느냐?'라는 의미로 본문을 해석한다(Boice). 이 견해를 주장하는 자들은 갈라디아 교회가 성령의 풍성한 능력을 받았다고 말하는 5절과 본문을 연결시킨다. 또한 이들은 갈라디아 교회가 성령으로 거듭나게 되는 놀라운 능력을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육체의 소욕(所欲)을 따라 행하려느냐는 3절과 본문을 연결시킨다. 사실 본절과 긴밀하게 연결된 문맥을 살펴본다면 하나님께서 성령 주심(3절), 하나님께서 갈라디아 사람들 가운데 능력 행하심(5절)등 긍정적이고 영적인 경험으로 번역되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본다.
과연 헛되냐 - 바울은 여전히 '아니오 헛되지 않습니다'라는 대답을 기대하고 수사의문문을 사용한다. '헛되냐'의 헬라어 '에이케'는 '아주 보잘것없는 무가치한 것'을 의미하며 여기서는 '믿음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Lenski). 진정 그들이 믿음에서 떨어져 나간 상태에 거하게 된다면 그들을 부르신 하나님의 사역과 성령의 풍성한 은사와 또한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를 향하여 가졌던 사랑과 수고한 모든 열심이 헛된 것이 되고 말 것이다(4:11).
성 경: [갈3:5] 호 운 에피코레곤 휘민 토 프뉴마 카이 에네르곤 뒤나메이스 엔 휘민 엑스 에르곤 노무 에 엑스 아코에스 피스테오스
주제1: [율법과 복음]
주제2: [성령과 성경의 증거]
너희에게...행하시는 이 - 본절은 형식상 2절과 유사하나 그 내용에 있어서는 몇 가지의 차이점을 가진다. (1) 2절에서는 성령을 보내시는 하나님이 주체가 되신다. 즉 2절에서는 갈라디아 교인들이 성령을 받았던 근거가 무엇이냐에 관심을 두는 반면, 본절에서는 하나님이 어떠한 기준에 따라서 성령을 주시느냐는 물음에 초점을 두고 있다. (2) 2절은 갈라디아 교인들이 성령을 받았던 과거 사실에 역점을 두어 과거 시제로 표현했지만 본절은 현재 시제로 되어 있다. 특히 하나님이 성령을 '주시고'(에피코레곤), '능력을 행하시는'(에네르곤) 두사역은 현재 분사를 사용하고 있다. 이는 과거에도 사역하셨지만 지금도 사역하시는 현재적인 의미를 보다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다. 바울은 지속적(持續的) 의미를 나타내는 두 개의 현재 분사를 사용하여 하나님께서 갈라디아 교인들이 처음 회심할 때뿐만 아니라 지금도 계속 역사하고 계심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능력'의 헬라어 '뒤나메이스'는 '에네르게오'('행하시는')와 연결되어 현재적 의미를 강조할 뿐만 아니라, 그 능력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만 베풀어질 수 있다는 제한성을 보여준다.
성령을 주시고 - 바울 서신에서는 보통 '주다'라는 의미로 '디도미'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고전 12:7;고후 1:22). 그러나 본절에서 바울은 일반적인 용어인 '디도미'를 사용하지 않고 '에피코레곤'을 사용하고 있다. 이는 21절에서 '율법을 주셨다'는 의미로 사용된 '디도미'와 구별하기 위함인 것 같다. 또한 '에피코레곤'은 '값없이 제공하다' 또는 '지원하다'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바울은 본절에서 '에피코레곤'을 사용함으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신 보혜사 성령이 율법과는 달리 값없이 주신 선물임을 강조하고 있다.
[히브리어로 보는 창세기 말씀] 하나님의 무지개 언약(창 9: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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