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6장에서는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는 사건이 기록되었다. 예수님이 오천명을 먹이는 사건이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예수님이 영육으로 채워주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말씀한다. 육적인 것을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이며 영적인 것을 복음의 말씀으로 채워서 공급해 주시는 분이다. 성도는 영혼이 복음으로 구원받으면 하나님이 육적인 먹을 것도 공급해 주신다.
예수님의 오병이어 기적(요 6:1-15)
성 경: [요6:1] 메타 타우타 아펠덴 호 이에수스 페란 테스 달랏세스 테스 갈릴라이아스 테스 피베리아도스
그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 바다 곧 디베랴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 여기 "디베랴 바다"란 이름은, 주님 당시의 이름이 아니고 좀 후대의 것이었으나, 저자가 이방 교회의 식별을 위하여 "갈릴리 바다"란 말에 첨부한 것이다. 디베랴 바다라고 해야 당시 이방 사람들이 잘 알았다.
성 경: [요6:2] 카이 에콜루데이 아우토 오클로스 폴뤼스 호티 호오론 아우투 타 세메이아 하 에포이에이 에피 톤 아스데눈톤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인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봄이러라 - 표적"이란 말은, 예수님의 이적으로서 메시아이신 사실을 보여주는 표란 뜻이다. 이 표적들에 대하여는, 마 14:14; 막 1:34,40-42,2:11-12.3:1-5,6:5; 눅 9:11; 요 2:11을 참조하여라. 그러나 대중은 예수님의 이적의 표적 성격을 잘 깨닫지 못하였다. 그들은, 호기심과 육적요구를 위하여 예수님을 좇았던 것이다. 26절 참조, 그들은 아직 그의 말씀이 이적보다 귀한 줄 몰랐던 것이다.
성 경: [요6:3] 아넬덴 데 에이스 토 오로스 호 카이 이에수스 카이 에케이 에카데토 프손 메타 톤 마데톤 아우투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 여기 말한 "산"은 언덕을 의미하므로 이것은 갈릴리 바다의 해변 언덕을 가리킨다. 유대의 랍비들은 보통으로 높은 데 앉아서 그 제자들을 가르쳐 주었다. "제자들"은 열 두 제자를 가리킨다.
성 경: [요6:4] 엔 데 엥귀스 토 파스카 헤 헤오르테 톤 이우다이온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 "유월절"에 대하여는 2:13의 해석을 참조하여라. 여기 "유월절"이란 말이 모든 사본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교부들의 증거는, 이것이 없는 편을 지지한다. 홀트(Hort)도 그렇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있는 것이 연대적으로도 자연스럽고 저자의 신학적 견지에서도 자연스럽다(Schlatter, Barrett).
성 경: [요6:5] 에파라스 운 호 이에수스 투스 오프달무스 카이 데아사메노스 호티 폴뤼스 오클로스 엘카타이 프로스 아우톤 레게이 프로스 톤 필립폰 포덴 아고라소멘 아르투스 히나 파고신 후토이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하시니 - 예수님께서 눈을 드시고 큰 무리를 보신 것은, 그들을 위하여 무슨 좋은 일을 하시려고 그리 하신 것이다. "빌립"에 대하여는 1:44, 12:21, 14:8을 참조하여라. 예수님께서 빌립에게 물으신 문제는 그의 신앙을 시험하시는 것이었다. 그런데 빌립은 신앙적으로 이 문제를 취급하지 못하였다. 그의 당한 것은 모세가 주린 백성을 앞에 두고 당한 난제와 같으며(민 11:13,22), 엘리사의 종이 당한 것과도 같았다(왕하 4:42-43).
성 경: [요6:6] 투토 데 엘레겐 페이라존 아우톤 아우토스 가르 에데이 티 에멜렌 포이에인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 - 예수님께서는, 이때에 자기의 권능으로 군중을 먹이실 대책을 벌써 생각하고 계셨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육신을 먹이는 문제보다 영적 문제, 곧, 제자들의 신앙 교육을 더욱 중히 하셨다. 그는 빌립의 신앙을 시험해 보시려고 그에게 문제를 주셨다. 그것은, 빌립이 그 군중의 가련한 정형을 보고 동정심을 가지는 여부를 아시려는 시험이 아니다. 그것은, 비범한 방법으로 먹을 것을 준비해 주실 수 있는 주님의 능력에 대한 그의 신앙 여부를 알아보시려는 시험이었다(Grosheide). 이와 같은 시험은 신앙을 배양하는데 유익하다.
성 경: [요6:7] 아페크리데 아우토 필립포스 디아코시온 데나리온 아르토이 우크 아르쿠신 아우토이스 히나 헤카스토스 아우톤 브라퀴 티 라베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 한 사람의 하루 품삯이다. 그러므로 200 데나리온이면 상당한 금액이다. 빌립의 이 계산은 다만 현실적이고 타산적인 것이다. 그에게는 건전한 이해력은 있었으나 신앙은 없었다(Godet). 그는 일찍이 예수님의 이적들을 보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는 이때에 신앙적으로 생각하지 못하였다. 사람들은 이렇게 주님의 권능에 대해서는 건망증이 많다.
성 경: [요6:8] 레게이 아우토 헤이스 에크 톤 마데톤 아우투 안드레아스 호 아델포스 시모노스 페트루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 빌립과 안드레는 종종 함께 나타난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그들이 같은 고향 사람인 사실과 그들이 제자 중 가장 먼저 선발된 까닭인 듯하다. 12:20-22, 1:41-44 참조. 안드레의 말(9절)은, 이 부분 기사를 깨닫는데 도움이 된다. 곧, 그때에 그 많은 사람 가운데 음식물이라고는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었으므로 이적으로만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사실을 밝혀 주었다. 이 부분 기사가 이적이 아니고 단지 각 사람에게 있었던 음식물을 먹도록 하였다는 합리주의 해석은 안드레의 말을 위반하는 것이니, 그것은 그릇된 해석이다.
성 경: [요6:9] 에스틴 파이다리온 엔 호데 호 에케이 펜테 아르투스 크리디누스 카이 뒤오 옵사리아 알라 타우타 티 에스틴 에이스 토수투스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 "보리떡"은 가난한 사람들의 양식이다. "물고기"라고 한 것은 멸치와 같이 작은 고기라고 한다. 안드레도 여기서 그리스도의 권능을 믿지 못하고 현실주의 견지에서 낙심하고 만 것이다.
성 경: [요6:10] 에이펜 데 호 이에수스 포이에사테 투스 안드로푸스 아나페세인 엔 데 코르토스 폴뤼스 엔 토 토포 아네페산 운 호이 안드레스 톤 아리드몬 호세이 펜타키스킬리오이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신대 그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효가 오천쯤 되더라 - 무리를 앉힌 것은 그리스도의 긍휼의 표현이며, 그들이 앉은 것은 그들의 순종이다. 그들은, 그저 단순한 마음으로 예수님의 권위 있는 지도를 받으려고 감심으로 순종하였다. 언제나 신앙의 태도는 이런 것이다. 사람들은 마땅히 자기 스스로 지혜 있는 체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 권위(權威)를 믿고 순종하며 기다려야 한다. 여기 5,000명이란 것은, 여자와 아이들 외에 남자들만을 계수한 것이다(마 14:21). 이때에 남자들만 계수한 것은, 여자들과 아이들의 인권을 무시한 것이 아니고, 남자들의 대표적 지위를 염두에 둔 것이다.
성 경: [요6:11] 엘라벤 데 투스 아르투스 호 이에수스 카이 유카리스테사스 디에도켄 토이스 마데타이스 호이 데 마데타이 토이스 아나케이메노이스 호모이오스 카이 에크 톤 옵사리온 호손 엘델론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저희의 원대로 주시다 - "예수께서 떡을 가져"란 말씀은, 그 제공한 다섯 개의 보리떡을 받으셨다는 뜻이다. 예수님이 여기서 전연 없는 데서 창조하심이 아니고, 조금이라도 있는 것을 가지시고 많게 하셨다. "축사"하셨다는 말은 감사하셨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적은 것을 가지고도 하나님께 감사하셨다. 감사하는 자리에 더 많은 축복이 임한다.
성 경: [요6:12] 호스 데 에네플레스데산 레게이 토이스 마데타이스 아우투 쉬나가게테 타 페릿슈산타 클라스마타 히나 메 티 아폴레타이
성 경: [요6:13] 쉬네가곤 운 카이 에게미산 도데카 코피누스 클라스마톤 에크 톤 펜테 아르톤 톤 크리디논 하 에페릿슈센 토이스 베브로코신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 예수님은 선물을 관대하게 주시지만 낭비하는 것을 금하신다. 물질이 헛되이 내버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남은 조각이 열 두 바구니에 찼더라 - 유대풍속에, 식사에 봉사하고 남은 음식은 그 봉사자들의 분깃이 되었다고 한다(Lightfoot, Hor., 3,302).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봉사한 12 사도들은 저렇게 필경받은 상급이 컸다.
성 경: [요6:14] 호이 운 안드로포이 이돈테스 호 에포이에센 세메이온 호 이에수스 엘레곤 호티 후토스 에스틴 알레도스 호 프로페테스 호 엘코메노스 에이스 톤 코스몬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 "그 선지자"에 대하여는 신 18:15에 예언되었으니 곧, 메시아를 가리킨다. 그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았기 때문에 억지로 임금 삼으려고 하였다(15절 참조).
성 경: [요6:15] 이에수스 운 그누스 호티 멜루신 엘케스다이 카이 하르파제인 아우톤 히나 포이에소신 아우톤 바실레아 아네코레센 팔린 에이스 토 오로스 아우토스 모노스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다시 산으로 떠나가시니라 - 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았으나, 진리대로 바로 알지 못하였다. 그들은 예수님을 저희의 물질 문제나 해결하여 주실 메시아로 알았던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그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고 하니, 그가 거기 응하시지 않았다. 어쨌든 이 사건은, 그 떡 먹이신 이적이 얼마나 위대하였던 것을 증명해 준다. 그들이 그 권능을 본 뒤에는, 로마 정권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막바로 예수님을 유대의 임금으로 추대하려고 하였다. 예수님께서 거기에 응하시지 않은 것은, 그가 군중의 메시아 관념이 육적인 것을 합당치 않게 보셨기 때문이었다.
[갈라디아서 헬라어 강해] 율법주의에 빠진 갈라디아 교회(갈 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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