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신앙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힘으로 핍박을 이겨냈고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살았다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앞으로 환난 가운데 있어도 복음의 말씀으로 싸워 이기라고 권면합니다.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양심을 버렸다고 했습니다.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믿음을 버리고 사탄에게 내주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믿음과 신앙을 지켜야 하겠습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권면함(딤전 1:12-20)
12절 카이 카린 에코 토 엔뒤나모산티 메 크리스토 이에수 토 퀴리오 헤몬 호티 피스톤 메 헤게사토 데메노스 에이스 디아코니안
=====1:12
나를 능하게 하신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엔뒤나모산티'는 '힘 있게 하였다'는 뜻이다. 이 단어가 부정 과거 시상인 점은 바울이 성령의 선물인 하나님의 특별한 능력을 이미 과거에 부여받았음을 시사한다. 바울이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담대하게 말씀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능력 때문이다.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 교회를 핍박했던 바울을 그리스도께서 '충성되이 여겼다'는 말은 이상하다. 그러나 이 말은 절대적인 주권 사상과 연결되어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바울을 개종시키고 그에게 능력을 부여하신 다음에 그를 충성되이 여기신 것이다. 이는 사도 바울이 결코 위대하거나 행위의 온전함 때문이 아니라 주님의 주권에 의하여 복음 사역의 사명을 수행하였기 때문임을 보여준다. '직분'이란 말은 '봉사'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사도의 직분은 사랑과 헌신의 정신으로 주님께 드리는 봉사이다. 사도 바울은 본래의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가를 묻지 아니하고 자신에게 직분을 맡기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이러한 일련의 일들은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회심하였을 때 거의 동시적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13절 톤 프로테론 온타 블라스페몬 카이 디오크텐 카이 휘브리스텐 알르 엘레에덴 호티 아그노온 에포이에사 엔 아피스티아
=====1:13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 '훼방자'의 헬라어 '블라스페몬'은 '상해를 입히다'는 뜻을 지닌 '블라프토'와 '연설'을 뜻하는 '페메'의 합성어로 롬 2:24에서는 '모독하다'의 뜻으로 사용되었다. 또한 '포행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휘브리스텐'은 '거만한 사람', '다른 사람을 학대하는 사람'을 뜻한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런 행동을 하였다는 것을 서슴지 않고 고백하고 있다. 바울은 자신의 부끄러운 부분을 말함으로써 비웃음을 살 수도 있으나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고백한 것은 자신의 무가치성을 스스로 인정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위대성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 '알지 못하고'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서 지식적으로 알지 못하였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신앙적인 문제이다. 당시에 그는 그리스도인들을 훼방하고 핍박하는 것이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는 것인 줄 알았다. 즉 그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는 암매 상태에 있었다. 이처럼 바울의 과거 잘못은 영적 무지에 기인한 것이었지만 성령을 거스리는 죄까지는 이르지 않았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징계 대신에 긍휼을 베푸셔서 복음 사역을 감당하는 사도로 불러주신 것은 그와 같은 사실을 잘 말해준다.
14절 휘페르에플레오나센 데 헤 카리스 투 퀴리우 헤몬 메타 피스테오스 카이 아가페스 테스 엔 크리스토 이에수
=====1:14
우리 주의 은혜가...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 '풍성하였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휘페레플레오나센'은 '휘페르'와 '플레오나조'의 합성어로 '대단히 풍성하였다'는 의미이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훼방하는 죄인이었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도록 하셨다. 혹자는 바울의 이러한 표현은 자신의 사도직을 공격하고 중상모략하는 악한 무리들에게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믿음과 사랑과 함께 - 믿음과 사랑은 은혜로부터 온다. 바울은 여기서 '함께'라는 전치사를 사용함으로써 은혜로부터 오는 믿음과 사랑의 뜻을 더욱 분명하게 하였다.
15절 피스토스 호 로고스 카이 파세스 아포도케스 악시오스 호티 크리스토스 이에수스 엘덴 에이스 톤 코스몬 하마르톨루스 소사이 혼 프로토스 에이미 에고
=====1: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 구원은 행위가 아니라 은혜로 말미암는다는 사실은 이미 12-14절에서 언급되었다. 바울이 큰 죄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께서 베푸신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은 모든 사람이 확실하게 알아야 할 사실이다. '미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피스토스'는 '충분히 믿을 만하다', '전적으로 확실하다'는 의미로 확실하게 권유하는 완곡어법이다. 이런 표현은 목회 서신에만 5번 나오는데(3:1; 4:9; 딤후 2:11; 딛 3:8) 본절과 4:9에서는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이라는 부가 어구가 첨가되었다. 혹자는 이 말에 대해 당시에 요한이 자주 사용하던 표현으로 추측하나 이 견해는 타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런 표현은 목회 서신에만 나오는 바울의 표현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 예수께서 말씀하셨고(마 9:13) 여러 사도들도 증거 하였던(롬 5:8) 이 말씀은 기독교 진리의 가장 중요한 사실, 곧 복음의 본질을 잘 요약하고 있다. '세상에 임하셨다'는 단순히 성육신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떠나기까지 일어난 모든 것을 다 포함한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 바울이 괴수라고 고백한 본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다. (1) 내가 괴수 죄인들의 무리에 속해 있다. (2) 내가 역사적으로 첫 번째 괴수이다. (3) 내가 가장 나쁜 죄인이다. 여기서는 (3)의 해석이 가장 타당하다. 혹자는 본절에서 바울이 '건전하지 못한 비 실제적인 겸손'을 취하고 있다고 말하며, 또한 '형식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본절에서 바울은 참으로 자신을 낮추며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내고 있다. 특히 바울은 현재형 동사를 사용하여(에이미, '...이다') 회심한 지 수년이 지난 지금에도 자신의 과거를 깊이 회개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바울의 이러한 죄의식과 참회의 고백은 그의 복음 사역을 승리로 이끄는 근본적인 동인(動因)이 되었다.
16절 알라 디아 투토 엘레에덴 히나 엔 에모이 프로토 엔데익세타이 이에수스 크리스토스 텐 파산 마크로뒤미안 프로스 휘포튀포신 톤 멜론톤 리스튜에인 에프 아우토 에이스 조엔 아이오니온
=====1:16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 13절에 이어 바울은 자신이 긍휼을 입은 이유를 밝히고 있다. 예수의 긍휼은 그의 오래 참으심에서 온다. '먼저'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토'는 행렬 가운데서 순서상 '첫 번째'를 말한다. 따라서 바울 자신은 미래의 신자들 가운데서 예수의 오래 참으심의 첫 번째 대상으로서 본보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 '믿어'라는 동사 다음에 나오는 구문을 보면 '위에'라는 전치사가 여격과 함께 온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믿음의 확고한 기초가 됨을 나타낸다. 이처럼 요동하지 않는 굳건한 반석 위에 신앙의 근거를 둔 사람들에게 바울은 모본이 되었다. '본'의 헬라어 '휘포튀포신'은 '실례', '본보기'라는 뜻이다. 이는 바울이 예수께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신 바로 그 죄인들의 '견본'이라는 말이다(벧후 2:6).
17절 토 데 바실레이 톤 아이온온 아프다르토 아오라토 모노 소포 데오 티메 카이 독사 에이스 투스 아이오나스 톤 아이온온 아멘
=====1:17
만세의 왕 - 본절은 바울이 위대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가슴으로부터 나오는 감사의 외침이다. 혹자는 이것을 '유대교의 예배 의식'이라고 주장하지만 두 가지 면에서 이 견해는 타당하지 않다. 첫 번째, '만세의 왕'이라는 표현이 바울 서신의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엡 2:7 ; 3:9, 11). 이 표현이 유대인에게 친숙한 표현이긴 하지만, 바울이 이 말을 사용한 것은 '영원토록' 다스리시는 하나님과, 위대한 왕으로 자칭했으나 단명한 '네로'와의 대조를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두 번째, 유대 사회에서는 두 세대, 즉 현세대와 오는 세대를 구분하는 습성이 있었다. 바울은 두 세대 가운데서 공히 지배하시는 왕으로서의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 - 본문은 '만세의 왕'과 동격으로 세상의 모든 왕이나 다른 신들을 능가하는 하나님의 유일한 지존 성을 강조한다. '썩지 아니하고'는 성경 전체에 언급되는 하나님의 속성이다(시 103:15-17 ; 롬 1:23). 하나님은 피조물들과 달리 불변성을 지니 시기에(시 45:6 ; 히 13:8) 신자의 영생에 대한 보증이 되신다. '보이지 아니하고'는 하나님이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여 계신 영이심을 말한다(골 1:15 ; 6:16). 따라서 인간은 하나님을 볼 수도 알 수도 없으며 다만 믿음을 통해서 가능하다(히 11:27). '홀로 하나이신'은 하나님이 다른 신들과 비교할 수 없는 유일하시고 초월적인 신으로서 우리의 유일한 경배의 대상이 되심을 강조한다(요 17:3 ; 엡 4:6).
18절 타우텐 텐 파랑겔리안 파라티데마이 소이 테크논 티모데에 카타 타스 프로아구사스 에피 세 프로페테이아스 히나 스트라튜에 엔 아우타이스 텐 칼렌 스트라테이안
=====1:18
내가 네게 이 경계로서 명하노니 - '경계'는 3절과 5절에서 각각 제시되었는데 그 내용은 3-17절에서 설명되고 있다. '경계'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교훈', '지시', '명령'을 의미한다. 이것은 디모데가 사람들에게 율법을 불법하게 사용하지 않고 적법하게 사용하도록 가르쳐서 그리스도께로 돌아오도록 하라는 지시이다. '명하노니'의 헬라어 '파라티데마이'는 '옆에 두다'를 뜻하는 '파라티데미'의 현재 중간태 직설법으로 중요한 임무를 맡길 때 사용되었다(눅 12:48; 딤후 2:2). 그리고 눅 23:46에서는 예수께서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하실 때 사용되었다.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 - 이것은 디모데가 목회자로서 안수를 받을 때 바울을 통해 내려진 하나님의 예언을 가리킴이 분명하다. 이 예언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복음 사역의 사명을 부여받은 디모데가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게 하는 말씀들 일 것이다.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 '그것'은 예언된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킨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러한 예언들을 힘입어 용감하게 싸울 것을 명하고 있다. 이는 디모데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소명(召命)을 깨달은 자에게 담대한 싸움을 싸울 것을 명하는 것이다.
19절 에콘 피스틴 카이 아가덴 쉬네이데신 헨 티네스 아포사메노이 페리 텐 피스틴 에나우아게산
=====1:19
믿음과 착한 양심을 기지라 - 선한 싸움의 도구는 '믿음과 착한 양심'이다. 엡 6:10-17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전신 갑주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하였는데 본절에서는 교리와 행동에 연관된 근본적인 측면만을 언급하고 있다. '믿음과 착한 양심'은 본 서신 안에서 세 번 언급되고 있는 것으로(1:5;3:9) 보아 믿음과 착한 양심이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본문의 '믿음'은 딤후 2:17, 18에서 기록된 것처럼 '진리'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사람의 양심이 파괴되면 도덕적 부패와 함께 영적 파멸까지 초래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바울 사도는 양심을 버림으로써 오는 믿음의 파멸을 막기 위해 선한 양심, 즉 성령으로 거듭난 양심과 진리인 믿음을 가지라고 권면한다.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 '선한 양심'은 그리스도인들이 안전한 항해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만약 양심이 파괴되면 믿음에 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여기서 바울은 양심을 버림으로써 파멸이 초래됨을 경고하고 있다. 본절의 '버렸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포사메노이는 자의적으로 거부했음을 뜻한다.
20절 혼 에스틴 후메나이오스 카이 알렉산드로스 후스 파레도카 토 사타나 히나 파이듀도신 메 블라스페메인
=====1:20
후메내오와 알렉산더 - 믿음이 파선당한(19절) 대표적인 두 사람이 열거되고 있다. 그들은 에베소 교회에서 극단적인 이단자였다. '후메내오'는 딤후 2:17, 18에 의하면 이단 교사로 언급되어 있는데 그는 부활에 관해서 이미 지나갔다고 주장하며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알렉산더'의 정체에 대해서는 행 19:33과 딤후 4:14에 언급된 두 사람 중 어떤 사람인지는 분명치 않다. 혹자는 행 19장의 알렉산더로 주장하나 그가 유대인으로서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했다가 다시 이단자가 되었다는 것은 단지 추측일 따름이다. 아무튼 그들은 율법 선생이 되기를 간절히 원했던 자칭 의로운 사람들이었으나 지나친 오류에 빠져 교회를 혼란 속에 빠뜨리고 있었다.
내가 사단에게 내어준 것은 저희로 징계를 받아 - 이러한 표현은 고전 5:5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여기 언급된 '징계'는 사도적인 권위만이 아니라, 회중 앞에 제시하여 결의된 것으로 두 가지로 해석된다. (1) 교회로부터 쫓겨나 사단의 영역으로 추방된 것이다. (2) 육체적인 고통을 겪게 한 것이다. 혹자는 후자의 경우를 반대하나 어떤 경우든지 사단에게 내어준 바 되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한편 저들을 징계한 목적은 파멸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에 이르도록 하려는 교정적인 것이다. 이는 본절에 '하려 함이니라'로 번역된 헬라어 '파이듀도신'이 '배우게 하려 함이니라'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분명해진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들이 죄인임을 깨닫고 회개하여 더 이상 진리에 대해서 훼방하지 않게 하려는 사도 바울의 사랑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헬라어로 보는 디모데전서] 이단과 이단 사상에 대한 경계(딤전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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